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기능은 현대, 감성만 과거

LIFESTYLE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하고 답습하지 않는다. 뉴트로가 지닌 복고 그 이상의 매력.

1 골동품과 현대적인 감성이 만나면 뉴트로 공간이 탄생한다.
2 밴드 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뉴트로 트렌드로 크게 흥행했다.

평일 오전, 동네를 산책하던 중 진기한 풍경이 눈에 띄었다. 작고 평범한 카페 앞에 많은 사람이 길게 줄지어 늘어선 채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별한 메뉴라도 있는 걸까? 궁금한 걸 못 참는 성격이라 맨 끝에 줄을 섰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들어간 카페는 마치 할머니의 사랑방 같았다. 요즘 보기 힘든 미닫이문에 자칫 촌스러울 수 있는 꽃무늬 커튼을 드리운 내부. 오래된 자개장, 빈티지 협탁과 의자, 사소한 식기와 커틀러리조차 새것으로 보이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메뉴의 서체도 1970년대 출산 장려 포스터에서 볼 법한 투박한 모양새. 예상과 달리 특별한 디저트는 없었고, 커피 맛도 평범했다. 카페의 인기에 의아해하는데, 함께 간 동생은 “이런 데 처음 와봐. 새롭다”라고 말하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새로운 복고, 뉴트로(New-tro)는 바로 이런 것이다.
1980년대부터 2000년 초반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현재를 즐기는 것이 특징이며, 1995~2004년에 태어난 이들을 다시 Z세대로 구분한다. 카페와 뉴트로를 얘기하다 갑자기 웬 세대 타령인가 싶겠지만, 지금 이 트렌드를 파악하려면 Z세대를 이해하는 게 먼저다. Z세대는 그들만의 확고한 라이프스타일이 있다. SNS에 일상을 노출하면서 타인과 경험을 나누고 소통하는 일을 즐긴다. 특히 남이 모르는 무언가를 가장 먼저 발견해 SNS에 올리고, 타인에게 높은 공감을 받으면서 만족을 얻는다. 더 큰 공감을 받기 위해 누구나 아는 ‘핫’이 아닌 암암리에 공유되는 ‘힙’을 찾아다니고, 뉴트로에 사로잡히는 것. 왜? Z세대는 뭐든 새것을 써왔기에 되레 손때 묻은 옛 물건에 신선함을 느낀다. 마치 에디터의 동생이 카페에 있는 자개장을 ‘새롭다’고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

3 서울 웨스틴 조선 호텔은 뉴트로에 맞춰 과거 게임, 식음료를 즐길 수 있는 ‘추석회동’ 패키지를 기획했다.
4 20년 전 사랑 받았던 새들 백을 복각한 디올.
5, 6 필름 카메라를 디지털로 복원한 카메라 앱 구닥. 사진은 에디터가 구닥으로 찍은 결과물이다.
7 촌스럽지만 풋풋한 멋이 있는 빈티지 컵. 그 매력에 빠진 마니아들이 상당하다.

과거 문화를 현시점에 소비하는 점에서 뉴트로는 복고와 비슷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둘은 ‘맥락’과 ‘소비 주체’가 엄연히 다르다. 40~50대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다시금 회상하는 게 복고라면, 뉴트로는 옛 문화를 경험한 적 없는 10~20대가 주도적으로 이끈다. 실제로 뉴트로 트렌드의 주요 소비자는 Z세대다. 또 문화를 구축한 세대와 이용자의 세대가 다르기에 ‘현시대’라는 필터링이 더해진다. 즉, 복고처럼 옛 문화를 전부 향유하는 게 아닌 Z세대의 입맛에 맞는 것만 뉴트로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의미. 과거의 유산을 있는 그대로 가져온 복고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면, 현대적 감각을 더한 뉴트로는 향유하기 쉽다는 것이 Z세대 입장이다. 그렇다. 복고가 과거를 추억한다면, 뉴트로에 과거 회상은 없다.
유행에 민감한 패션업계가 가장 먼저 뉴트로 트렌드를 알아챘다. 세계 최대 시계 박람회 ‘2018 바젤월드’에서 옛 제품을 재현한 복각판이 대거 등장했고 디올, 나이키, 아크네 스튜디오는 현대적 감성을 덧입힌 1990년대 패션 아이템을 재출시했다. 청담동, 가로수길 그리고 한남동에 이어 을지로 전역이 차세대 플레이스로 떠오른 이유도 뉴트로 덕분이다. 지금까지 시대를 풍미했던 앞선 지역은 화이트 대리석과 골드 프레임의 데커레이션이 어우러진 깔끔한 인테리어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았지만, 을지로는 아니다.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살린 건 물론이고, 그 안을 골동품으로 가득 채웠다. 명칭 또한 ‘00당’, ‘00점’, ‘00상회’ 그리고 ‘00방앗간’으로 옛 감성을 잇는다. 뉴트로 감성의 레스토랑, 카페, 서점이 들어서면서 출판 산업의 약세로 인쇄소가 빠진 을지로의 황량한 거리는 북적이기 시작했고, 심지어 몇몇 가게는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추석 ‘조선 재미방’, ‘조선 경양식’ 등 1940~1950년대 감성과 식문화를 재해석한 ‘추석회동’ 패키지를 선보인 서울 웨스틴 조선 호텔도 “매해 트렌드에 발맞춰 패키지를 선보이는데, 인기 조짐이 보이는 뉴트로를 기반으로 추석회동을 기획했고, 방문객에게 호평을 받았다”며 그 유행에 힘을 보탰다.
뉴트로는 재테크(?)에도 꽤 쓸모가 있다. 혹시 델몬트 오렌지 주스 병을 기억하는지? 1990년대 가정마다 하나씩 있던 그 무거운 유리병은 단종된 지 오래지만, 뉴트로가 유행하면서 기존 판매가의 5배를 웃돌며 거래되고 있다. 이 밖에도 서울우유나 삼육두유의 옛날 로고가 박힌 우유병, 레트로한 로고가 큼직하게 박힌 유리컵 등 1990년대에 제작했다는 꼬리표만 붙어 있으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추세다. 어떤 컵은 브랜드 제품 못지않은 몸값을 자랑한다. 빈티지 컵 컬렉터 콩두살롱은 “돌아갈 수 없는 옛날 모습도 색다르고, 촌스럽고 투박한 모습이 귀엽고 풋풋하다”라며 그 무한한 매력을 설토했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찬장 구석의 먼지 쌓인 컵이 다르게 보인다.
최근 900만 관객을 돌파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1970년대를 풍미한 퀸과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처럼 훑지 않고, 현대 영화의 플롯을 적용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었다. 원래는 40~50대 관객이 타깃이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티켓 예매의 60%를 Z세대가 차지했다. 덩달아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음원 사이트 해외 음악 순위도 퀸이 장악했다. 만약 <보헤미안 랩소디>가 퀸을 단순한 과거의 재현인 복고 형식으로 그렸다면 지금과 같은 흥행은 거두지 못했을지 모른다.
불현듯 몇 년 전 인터넷을 휩쓴 카메라 앱 ‘구닥’이 생각난다. 필름 카메라를 디지털로 구현한 구닥은 찍은 즉시 결과물을 확인하고 보정까지 할 수 있는 카메라 앱과 달리 필름 롤 하나를 다 채운 뒤 24시간을 기다려야 사진을 볼 수 있다. 클래식한 감성에 모던한 기능을 갖춰서일까? 구닥은 일찌감치 Z세대를 사로잡으며 앱 스토어 판매 1위 자리를 오랫동안 지켰다. 이런 사례를 보면 뉴트로는 꽤 오래전부터 유행할 조짐을 보인 듯하다. 클래식하면서 모던한 무엇을 뉴트로가 실현했기에 각광받는 게 아닐까? 소비의 중심이 Z세대로 옮겨가는 요즘, 이들이 원하고 주도하는 뉴트로를 각인할 필요가 있다. 뉴트로로 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다면, 한 가지는 꼭 기억하자. 뉴트로는 단지 ‘과거’가 아니라 ‘기능은 현대, 감성만 옛것’이라는 점을. 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