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합니다
지금은 명작 공연으로 꼽히는 작품도 언젠가 관객 앞에 첫선을 보인 순간이 있었다. 올해는 공연장에서 어떤 신작을 만나게 될까? 2016년 초연 무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다.
매슈 본이 2016년 6월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재기 발랄한 댄스 뮤지컬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처음 막이 오르는 순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공연을 말할 때 2가지를 꼭 언급한다. 가장 처음 공연한 연도와 극장 이름. 그러니까 ‘역사적 초연 무대’라는 건 공연에 대한 평가가 쌓인 훗날에 붙는 수식어다. 재미있는 건 지금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초연 당시 모두 찬사를 받은 건 아니라는 사실. 1913년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초연한 날 관객의 야유가 쏟아졌고 엄청난 소란이 있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1877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한 <백조의 호수>는 혹평이 이어지자 마음 여린 차이콥스키가 다시는 발레 음악을 작곡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을 정도다. 관객과 평단의 극찬을 받건 거부를 당하건 남다른 예술적 시도는 명작을 탄생시켰다. 누구보다 먼저 예술가의 신작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초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한 긴장감과 짜릿함을 객석에서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첫 공연의 티켓을 끊을 이유는 충분하다. 수백 년 전 처음 공연한 작품이 오리지널 버전으로, 혹은 재해석한 버전으로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지금, 새로운 공연 역시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새해 공연 캘린더는 다양한 신작으로 풍성하게 채워질 예정. 먼저 서울시오페라단은 2월 26일과 27일 <열여섯 번의 안녕>이라는 창작 오페라를 선보인다. 사전에 작품을 점검하고 피드백을 얻는 ‘리딩 공연’을 여러 번 진행한 뒤 선정한 작품이다. 또 서울시극단은 9월 30일부터 10월 16일까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2016년 한국을 배경으로 각색한 <함익>을 초연한다. 재벌 2세로 태어난 주인공 함익이 권력과 욕망이 얽힌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 수차례 고전 재창작을 시도해 호평을 얻어온 작가 김은성과 인기 연출가 김광보가 만났다는 점에서 더욱 그 결과물이 기다려진다.
음악계의 창작 초연이라면 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를 빼놓을 수 없다.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진은숙이 10년째 기획해온 프로젝트로 국내외 신작 위촉곡을 초연해 클래식 관객에게 낯설지만 신선한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2016년에도 3월 30일 서울시향이 위촉한 최지연의 <앙상블을 위한 신작>을 세계 초연하는 등 매 공연마다 아시아 초연과 한국 초연곡을 포함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아르스 노바> 외에도 서울시향의 특별한 초연 공연이 있는데, 8월 롯데홀의 개관 기념 음악회에서 서울시향이 진은숙의 신곡을 연주하는 것. 아직 곡목도 공개하지 않았지만 새로 문을 여는 클래식 전용 공연장에 헌정하는 곡이고 정명훈이 지휘를 맡는다는 솔깃한 정보만으로도 애호가들을 설레게 한다.
새해 금호아트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개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알리나 이브라기모바

국립오페라단이 한국 초연하는 신비로운 오페라, 드보르자크의 <루살카>의 한 장면
드디어 한국 무대에!
좀 다른 의미의 초연도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한 번도 선보이지 않은 작품을 처음으로 공연하는 무대. 창작 초연을 감상하는 것이 미지로 떠나는 여행이라면, 이런 국내 첫 공연을 감상하는 것은 사진으로만 보던 여행지에 실제로 가보는 경험이랄까. 음반이나 영상으로 익숙한 프로그램을 실연으로 처음 감상한다는 점에서 때론 창작 초연보다 더 반가울 수도 있다. 먼저 LG아트센터의 공연이 눈에 띈다. 장 콕토 감독의 영화 <미녀와 야수>를 ‘필름 오페라’ 장르로 공연하는 프로젝트. 3월 22일과 23일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생존하는 최고의 현대음악 작곡가로 꼽히는 필립 글래스가 함께한다. 영화의 사운드를 없애고 그의 음악을 라이브 공연하는 것.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공연하는 뮤지컬 <데드 독>은 영국 니하이 시어터의 첫 번째 내한 공연. 열성 팬을 이끌고 다니는 단체인 만큼 시각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독특한 경험을 선사할 듯하다. 또 <백조의 호수>로 유명한 매슈 본은 6월 22일부터 7월 3일까지 신작을 들고 10년 만에 한국을 찾는데, 이번에도 그 작품이 범상치 않다. 100년간 잠들었다 깨어나는 공주 이야기에 무려 뱀파이어(!) 스토리를 엮은 댄스 뮤지컬 <잠자는 숲 속의 미녀>. 2012년 영국 초연 당시 8주 공연을 전 석 매진시킨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그 저력이 통할지 궁금하다. 최소한 매슈 본의 ‘근육질 백조’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망설임 없이 달려갈 것이 분명하다.
국립오페라단과 국립발레단도 새해 신작을 발표할 예정. 먼저 국립오페라단은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를 국내 최초로 공연한다. 체코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요정 루살카의 이야기로, 드보르자크를 교향곡이나 첼로 협주곡 정도로만 접해온 한국 관객에겐 그야말로 희소식이다. 국립발레단은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조지 발란신의 안무와 차이콥스키의 음악 ‘현을 위한 세레나데’가 만난 작품 <세레나데>를 처음으로 공연한다. 그리고 또 하나, 안무가의 이름만으로도 발레 팬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만한 신작이 있다. 바로 칠레 산티아고 발레단 단장인 마르시아 하이데 버전의 발레 <잠자는 숲 속의 미녀>다. 11월 3일부터 6일까지 공연하는 이 작품을 위해 마르시아 하이데는 한국을 찾아 무용수들을 직접 지도할 예정이다.
클래식 음악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체크해야 할 공연 리스트가 더욱 풍성해진다. 지난 12월 7일 열린 파벨 하스 콰르텟의 첫 번째 내한 공연이 오랜 기다림을 충족시키고도 남을 만큼 훌륭했으므로 2016년에도 실력파 연주자들의 진가를 확인할 일이 기대된다. 3월 31일 금호아트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여는 알리나 이브라기모바는 유럽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바이올리니스트. 한국 무대에서 바흐부터 버르토크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주한다. 4월 7일에는 천재 음악가를 그린 영화 <비투스>의 주인공 테오 게오르규가 처음으로 내한할 예정이고, 11월 24일에는 세계적 리코더 거장 모리스 슈테거가 드디어 내한 공연을 한다. 고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에 찾아오는 고음악계 스타 연주자다. 처음 한국을 찾는 오케 스트라도 빼놓을 수 없다. 6월 24일과 25일에 상임지휘자 제임스 개피건과 공연하는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스위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악단. 7월 내한 예정인 스페인 내셔널 오케스트라 또한 여러모로 신선한 무대를 보여줄 듯하다. 신예 지휘자 안토니오 멘데스가 지휘하고 호아킨 로드리고와 마누엘 데 파야의 민속풍 음악과 춤곡 등 스페인 색채가 가득 담긴 레퍼토리를 준비하고 있다.
신예 아티스트들이 속속 등장하는 만큼 향유할 만한 공연의 폭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이제는 세계 투어를 자주 하는 익숙한 연주자나 단체 외에 새로운 이들의 작품도 감상해볼 때. 인상적인 첫 만남이었다면 두 번째 만남은 의외로 금세 찾아오기도 한다. 첫 내한 공연을 한 아티스트들이 한국 관객의 뜨거운 반응에 반해 곧바로 기획사와 다음 스케줄을 상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새해는 낯설거나 새로운 것을 좀 더 즐겁게 받아들이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세계 초연이나 첫 내한 공연을 감상하는 것 모두 더없이 설레는 일이자, 그 공연은 훗날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추억할 만한 ‘역사적 무대’가 될 수도 있으므로.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