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아리랑
이탈리아어로 ‘길’, ‘통하다’를 뜻하는 Via. 이름 그대로 비아트리오는 유럽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것이 길 위라도 아리랑을 연주했다. 그리고 그 울림은 많은 이에게 통했다.
왼쪽부터_ 해금 연주자 남영주, 첼리스트 서수민, 피아니스트 강이슬, 바이올리니스트 이주희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
대구의 한 교회 화장실에서 흑인 꼬마가 ‘이상한’ 허밍을 한다. 익숙한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더 익숙한 ‘아리랑’이 묘하게 연결된다. 비아트리오의 찬송가 녹음을 허락해준 교회에 들렀다가 화장실에서 우연히 이 소리를 들은 ‘힘즈뮤직’의 송힘 대표는 곧바로 비아트리오 멤버들에게 이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즉석에서 연주가 시작되었다. 훌륭했다. 아리랑은 이처럼 누구에게나 쉽게 스며드는 곡이다. 너무 익숙해서 미처 깨닫지 못한 우리 소리의 매력. 2007년 11월 30일의 일이었다. 이 가슴 벅찬 연주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바이올리니스트 이주희의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기독교 음악 연주를 목적으로 바이올린을 전공한 저와 대학 동기 2명이 비아트리오를 결성해 카페와 교회 등에서 한 달에 한두 번씩 연주를 하곤 했습니다. 결국 교회 화장실에서 우연히 들은 꼬마의 허밍이 지금의 비아트리오를 있게 한 거죠.” 비아트리오의 대표곡 ‘아리랑+어메이징 그레이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올해로 비아트리오는 탄생 10주년을 맞았다. 클래식 악기와 전통 악기의 앙상블로 월드 뮤직을 연주하는 비아트리오는 비록 이름에 ‘트리오’를 쓰지만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와 해금 연주자 4명으로 구성된다. 어떻게 된 사연일까? 2009년 2집 녹음 후, 비아트리오와 송힘 대표는 ‘아리랑의 감동을 유럽에 전하러 가자’는 막연한 목표를 세우고 40일간 유럽 투어를 떠났다.
비아트리오의 표현대로라면, ‘유학 경력 없는 평균 나이 30세 지방 음대생들’의 무모한 도전이었다. 캠핑카를 빌렸고, 무작정 달리다 마을이 나오고 광장을 만나면 ‘판’을 벌였다. 길가에 선 검은 머리, 작은 체구의 동양 여자들이 울리는 아리랑. 그 깊은 울림이 통했다. 교회 화장실의 흑인 꼬마가 그러했듯, 외국인들의 입에서 아리랑의 허밍이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비아트리오의 유럽 첫 무대인 독일 바덴바덴의 괴테 광장에서 구세군 교회의 노숙자 쉼터까지 하루에 평균 서너 번씩 거리 공연을 했다. 이들이 유럽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독일 거리에서 만난 한 중년 남자의 질문이었다. “당신들이 들려주고자 하는 한국적 멜로디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다. 그런데 이 멜로디를 연주할 한국의 악기는 없나? 그것의 소리가 궁금한데…….”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서양인에게 익숙한 악기로 한국의 음악을 연주하면,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비아트리오의 의도를 벗어난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비아트리오는 해금, 가야금, 대금 등 전통 악기와의 앙상블을 시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에 해금이 합류했다. 이것이 비아트리오가 이름은 트리오인데, 멤버가 4명인 이유다.
첫 유럽 투어 이후 지금까지 총 네 번의 유럽 투어를 거치며 비아트리오는 더욱 단단해졌다. 그중 2011년에 떠난 두 번째 유럽 투어는 비아트리오의 10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있었던 해다. 첫 유럽 투어 당시 영국에서 알게 된 한인 공연 기획자가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참가 제안을 한 것이다. 페스티벌 참가 전, 수차례 페스티벌 오디션을 위한 연주 동영상이 오간 끝에 페스티벌 참가 자격이 주어졌다. 이것이 한국 아티스트 최초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참가한 사례다. 서울도 아닌 지방 출신 아티스트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비아트리오의 페스티벌 참가는 성공적이었다. 준비한 ‘현의 메나리’는 현지인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고, BBC가 이를 취재했으며, 일부 참가 팀에만 주어지는 현장 녹음의 기회까지 얻었다. 대단한 선전이었다.
10년 동안 비아트리오의 활동은 지속되었지만, 멤버는 몇 번 교체되었다. 유학, 결혼, 출산, 진로 변경 등의 이유에서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주희가 유일한 원년 멤버다. 비아트리오는 현재 일종의 프로젝트 팀 체제로 움직인다. 바이올리니스트 2명,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 각각 3명, 해금 연주자 2명이 비아트리오의 일원이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참여 가능한 아티스트들이 스케줄을 조율해 앙상블을 이룬다. 멤버 2년 차인 피아니스트 강이슬은 피아노 독주팀에서 활동하다 비아트리오와 같은 앙상블에서 공연하며 비아트리오의 장점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악기로 합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힐링이 된다고 할까요? 특히 저희 음악은 따뜻하고 편안해서 연주를 하면서도 마음이 평온해질 때가 많아요. ‘쎄쎄쎄송’이나 ‘신데렐라는 어려서’와 같은 동요를 편곡한 곡들이 그렇죠. 개인적으로 ‘섬집 아기’와 ‘모차르트의 자장가’를 가지고 편곡한 ‘자장가’를 좋아해요. 이 곡을 공연할 당시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연주하는 내내 마치 제게 잘 자라고 토닥여주는 기분을 느꼈고, 실제로 그날은 별탈 없이 숙면을 취한 것 같아요.”
해금은 비아트리오의 음악색을 드러내는 중요한 악기다. 어쩌면 팀 내에서 가장 어렵고 부담스러운 역할일 수도 있는 해금 주자 남영주에게 남다른 어려움이 없는지 물었다. “국악은 반음 내림, 즉 플랫(♭)이 붙는 음이나 조성의 곡이 많은 반면, 클래식은 반음 올림, 즉 샵(#)이 붙는 음이나 조성의 곡이 대부분이어서, 해금으로 서양 클래식의 음정을 맞추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또 같은 현악기라도 바이올린과 첼로는 활 쓰는 방법이 많이 달라서, 이들의 연주를 보며 맞추는 것도 제가 많이 공부해야 하고요. 아무래도 국악기 연주자들과 공연할 때보다 더 많이 신경을 써야하죠. 그래도 비아트리오는 합이 아주 잘 맞는 편입니다. 비아트리오에 합류한 지 4년이 넘었는데, 무대에 설 때마다 매번 즐겁고 행복합니다.”
1집 찬송가를 포함해 총 4장의 앨범을 낸 비아트리오는 올해 탄생 10주년을 맞아 곧 다섯 번째 앨범 <서른의 아리랑>을 발매할 예정이다. 6월 즈음,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일정에 맞춰 비아트리오의 다섯 번째 유럽 투어 일정도 계획 중이다. 첼리스트 서수민은 이를 계기로 비아트리오의 활동 범위가 더 확대되길 기대한다. “지금은 비아트리오가 주로 대구,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서울과 부산, 전주, 제주 등 활동 영역을 넓히고 싶어요. 유럽 투어 중 아티스트로서 가능성과 자존감도 얻고 그것을 양분 삼아 ‘2017년은 더 많은 사람에게 비아트리오의 음악을 들려주자’가 제 개인적인 목표입니다.”
모든 앨범 작업에 참여한 바이올리니스트 이주희는 이 다섯 번째 앨범에 대한 소감이 남다르다. “1집이 나왔을 때, 같이 팀을 꾸린 대표님이 앨범에 ‘10집까지 내자’라고 써주셔서 ‘설마요?’ 하면서 그냥 웃어넘겼거든요. 그런데 10집은 아니지만, 정말 비아트리오가 10년이 되었네요. 모두가 안 된다고 했어요. 지방에서 이런 크로스오버 음악을 하는 연주자들이 현실적으로 공연만으로 일정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고, 실제로 이런 사례가 거의 없다고요. 더구나 서른 즈음에 시작했으니, 비아트리오의 시작은 뭐 하나 좋을 게 없었죠. 5집 <서른의 아리랑>은 그런 정서를 담았어요. 조금은 불안하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는 서른의 아리랑.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 희망 맞죠? 비아트리오가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음악으로 그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에디터 손지혜(프리랜서)
사진 여승진 의상 협찬 까리나스포사, 화화호호 장소 협조 한영아트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