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중 작가의 뷰파인더
폴 매카트니의 전속 사진가 김명중(MJ KIM)은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다는 그는 이제 영화감독의 ‘때’를 기다린다.

영국에서 유학 후 사진기자를 거쳐 유수의 스타들 사진을 찍게 되셨잖아요. 왜 전공으로 영화를 선택했나요? 어느 날 방송국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는데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모여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고, PD나 영화감독을 하면 재밌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뉴욕으로 유학 가려고 준비했다가 유학원을 잘못 만나 비자를 거절당하고 상심해 있는데, 영국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영국은 일단 가면 공항에서 비자를 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무작정 영국으로 향했죠.
그런데 결국 사진을 하게 됐죠. 사진에 처음 흥미를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영화 수업을 듣는데 영어가 짧아 그룹 과제를 할 수 없었어요.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그룹 과제가 많았거든요. 부전공이었던 사진은 개인 작업이 많아 자연스럽게 사진에 더 집중하게 됐죠. 암실에서 현상액에 인화지를 담그고 흔들면 그림이 뜨는데, 마치 아티스트가 된 것처럼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 느낌에 매료돼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사진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했더니 IMF 외환 위기가 터졌고, 형편상 돈을 벌어야 해서 학업을 중단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게 지금에 이르렀죠.
작가님의 인물 사진을 보면 피사체와의 진정한 교감이 느껴집니다. 제 생각에 가장 좋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웃는 거예요. 그 미소 안에 진정성만 있으면 되는 거죠. 사실 제가 사람들을 잘 찍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영어를 못해서인 것 같아요. 영어가 유창하지 않으니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항상 웃으면서 필요한 말만 했죠. 그런 면이 오히려 연예계 사람들에겐 장점으로 보인 것 같아요.
2008년 유명 사진가이자 폴 매카트니의 아내였던 린다 매카트니의 사진전 포스터를 함께 작업하며 폴 매카트니의 눈에 들었고, 이후 15년째 그의 전속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매카트니와 처음 만났을 때 특별한 기억이 있나요?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느낀 건 같은 문화권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오히려 장점이라는 거예요. 유명하다는 건 알아도 열광하는 건 아니니까. 매카트니가 처음 저를 보고 “Fly on the wall”이라고 말했어요. 그냥 ‘벽에 딱 붙은 파리’처럼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원하는 대로 찍으라는 거였죠. 저는 잘 찍기 위해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계속 요구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 요구받는 걸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알아서 찍습니다.
폴 매카트니와 작업할 때 가장 도전적인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와 작업하는 매 순간입니다. 매카트니는 조금만 해이해져도 바로 알아채요. 제가 이건 모르겠지 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촬영하면 딱 그 순간 찍은 사진을 콕 집으면서 “이건 왜 이 앵글로 찍었냐”고 속까지 꿰뚫어보는 듯한 질문을 하거든요. 폴 매카트니의 전속 스태프 중 30년 이상 같이 일하고 나이도 매카트니와 비슷한 투어 프로모터가 있는데, 그분도 매카트니와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아직도 안절부절못해요. 그런 긴장감 속에서 일하니까 사진이 좋을 수밖에 없죠. 오는 9월부터 다시 매카트니의 공연 투어 일정이 시작되는데, 또 어떤 작업으로 그를 만족시켜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주로 인물 작업을 하시다 언젠가부터 제품을 찍기 시작하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인물을 계속 찍다 보니 가끔은 아무 말도 안 하는 물건을 찍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구본창 선생님의 ‘비누’ 시리즈를 봤는데 너무 좋아서 열심히 찍었죠. 그런데 살아 있는 피사체와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사진을 찍다가 그렇지 않은 피사체를 찍으려니 쉽지 않더군요. 하루는 매카트니와 투어를 다니면서 공연이 끝나고 호텔방에 들어왔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 풍경이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묘했어요. 그때부터 투어가 끝나면 방 안에서 창밖의 건물을 찍기 시작했어요. 그 풍경이 15년 쌓이니 이야기가 됐고, 지난 1월 원앤제이갤러리에서 전시한 ‘전망 없는 방(Rooms Without A View)’ 시리즈로 이어졌습니다.
북서울꿈의숲 아트센터 드림갤러리에서 8월 11일까지 작가님의 <22세기 유물전>이 열립니다. 어떤 전시인가요? 22세기에 출토될 미래 유물을 미리 보는 전시입니다. 앞으로 발굴될 쓰레기와 그 쓰레기를 찍은 사진을 통해 우리가 미래에 남길 흔적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해보자는 취지죠. 달항아리는 항아리 자체도 작품이지만, 그걸 찍은 사진도 작품이잖아요. 어느 날 뒷산에 오르는데, 기슭에 콜라병 하나가 땅에 반쯤 박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땅을 파면 청자나 백자가 나왔는데, 우리 후손은 땅을 파면 쓰레기만 나오겠구나 싶었죠. 그렇게 시작된 작업을 모아 전시하게 됐어요.
준비 중인 새로운 프로젝트가 궁금합니다. 2020년 단편영화 <쥬시걸>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생각보다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 장편영화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꽤 오래전에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이 작품에 딱 맞는 시나리오 작가를 만났죠. 모든 것은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관심을 갖는 해외 제작자들이 있어 올해 시나리오 작업까지 끝낼 예정입니다.
에디터 이정윤(julie@noblesse.com)
사진 차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