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선이 풍경에 대해 말할 때
동양화에서 빌려온 심상과 철학, 인식, 사유로 이미 많은 것을 이뤄낸 건축가 겸 디자이너 김백선은 지금도 그 하늘거리는 산수화와 수묵화의 아련한 품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싶다.

“건축설계와 디자인, 아트 디렉팅을 망라하는 다양한 장르의 시도를 모두 ‘하나’라고 봐요. 그러니 건축과 인테리어, 미술은 제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일 뿐이죠. 그러니 영역을 나누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김백선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단순히 ‘건축가’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펼쳐왔고, 그 작업의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면 예쁜 목련을 그리던 동양화 전공자의 DNA가 숨어 있다. 심지어 몇몇 곳에선 아트 디렉터로도 활동했다. 또 틈틈이 사진도 찍었다. 한동안 대학 실내건축과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이젠 직접 디자인한 가구로 갤러리 전시까지 연다. 한마디로 ‘다재다능’.
20여 년 전, 고향인 전남 목포에서 상경해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배우고, 아직 어린 나이인 4학년 때(198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그는 사실 장래가 촉망되는 동양화가였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의 대부분이 그렇듯, 그는 그런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럭저럭 유명 작가입네 하며 기성의 틀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 현실이 싫었던 것. 불행 중 다행으로 그즈음 그는 규모가 큰 공간 작업에 대한 열망이 그득했다. 말하자면 건축 일이 그랬다. 그래서 포트폴리오를 들고 무작정 인테리어 디자인 사무소에 찾아갔고,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다시 열정을 안은 건축가가 되었다는 훈훈한 이야기다. “동양화를 전공했다고 꼭 드로잉을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보다 전 소재를 다양하게 써서 뭔가 큰 것을 만드는 걸 좋아했죠. 그러다 보니 건축을 비롯한 설치 작업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는 붓 대신 컴퍼스와 자를 잡았지만, 동양화의 감성마저 버리진 않았다. 그러니까 1990년대 중반부터 그는 건축 현장에서 옛 장인의 흔적을 좇고 그들의 창살 문양을 확대·복사해 공간을 구성하기도 했고, 여러 장소에 그걸 응용했으며 아예 국수 가락에 비유한 건축 작업으로 여기저기서 호평을 받았다. “어릴 때 연말이면 달력 선물이 들어오잖아요. 거기 그려진 그림은 거의 동양화였고요. 전 당시 달력에 그려진 설산이나 수묵화, 사군자, 산수화를 늘 따라 그렸어요. 그래서인지 알게 모르게 그 시절의 정서가 건축 작업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김백선 건축’은 한마디로 ‘한국적 미감이 발현된 현대적 공간’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탓에 그가 설계한 건물이나 실내 디자인은 하나같이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나 설악산 풍경처럼 자연을 닮았다. 수묵화 같은 공간, 동양적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풍경이 그의 작품을 위한 베이스인 것. 또 ‘선’을 그리던 섬세함과 건축설계를 하던 영민함이 우리 전통의 원형 가치를 알게 하며, 가슴 한편에 남아 있던 문화 콤플렉스도 완전히 극복했다. 전통과 현대 사이, 그에게 ‘짓는다’는 건 소유하는 게 아니라 ‘소통’의 근간이 된 지 오래다. 그런가 하면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백선디자인’이라는 디자인·건축 사무실도 운영하고 있다. 건축과 인테리어, 미술의 경계에서 자유로운 그는 그곳에서 규모가 큰 상업적 활동부터 ‘동양적’ 내음 물씬 풍기는 무형문화재 장인과의 예술 협업까지 이뤄내고 있다. “동양화가 제게 사물을 볼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그러니 제 작업에선 동양철학에 대한 생각이 정말 중요하죠”.
2009년 경복궁 수라간 터에 오늘의 식문화공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설치 작품 ‘화풍’

프로메모리아와 김백선이 협업한 소파 제품
그럼 여기서 그가 자꾸 입 아프게 설명하는 ‘동양의 미’라는 게 무엇인지 그 설명을 들어보자. “동양화는 천혜의 미, 자연주의, 비애의 미, 해학의 미, 절제의 미 등 본질적 아름다움을 다뤄요. 동양화를 하기 위해선 인문학적 견지도 필요하죠. 우리가 조선 후기 3대 화가로 꼽는 김홍도, 정선, 신윤복도 모두 자신만의 철학과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어요. 저도 동양화를 공부하며 물성론, 즉 사물에 감성을 이입하고 이것을 재해석해내는 능력을 터득할 수 있었고요.” 그렇다면 이제 그의 대표적 프로젝트와 눈에 띄는 활동도 한번 나열해보자. 그는 지금은 명소가 된 서울 홍익대 앞 대안공간 루프를 비롯해 덴마크 주재 한국 대사관, 페럼타워 공용 공간, 중국 당산 호텔, 베이징 문리버 타운하우스 빌라 단지, 올해 말 완공되는 롯데월드타워의 레지던시 주거 공간 등을 설계했다. 또 그러는 사이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아트 디렉터, 문화재청 자문위원, 서울디자인재단 자문위원 외에 2012년부터 2013년까지는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이런 그에게 ‘건축’과 ‘인테리어’, ‘미술’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묻는 게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그건 그렇고, 그는 요 몇 년 건축과 관련한 거대 프로젝트로 다소 소홀히 한 가구 디자인 전시로 관람객을 만난다. 10월 5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About the Living & Furniture’라는 이름으로 테이블과 소파, 의자, 조명, 수전 등 직접 디자인한 가구를 소개하는 것. 2007년 전주시의 공예 브랜드 ‘온(Onn)’을 통해 무형문화재들과 협업해 가구를 선보인 뒤 거의 10년 만에 다시 생활 가구 디자인으로 대중을 만나는 자리. 그런데 이번 전시는 일반적 가구 전시와는 그 궤가 다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최고급 가구 기업 프로메모리아(Promemoria)와 전통을 기반으로 혁신적 가구를 만드는 포로(Porro), 우아한 디자인 수전을 만드는 판티니(Fantini)까지 세 곳이 ‘김백선’이 디자인한 가구와 생활 인테리어를 선보이는 것. 특히 그중 프로메모리아와는 오너인 로메오 소치(Romeo Sozzi)가 직접 발벗고 협업 프로젝트를 기획했을 정도로 그의 디자인을 신뢰했다는 후문이다. “이 프로젝트에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평소보다 더 깊이 생각해본 것 같아요. 그러면서 ‘예술의 뿌리’, ‘자연의 원초성’에 중점을 뒀죠.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현상이 발현되고 풍부한 생태계가 만들어지잖아요. 쉽게 말해 동서양 또는 전통과 현대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이 만나고 어우러질 수 있는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이번에도 느꼈지만, 뭔가를 디자인할 땐 그것에 어떤 철학과 감성을 담을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웃음)
한 폭의 동양화 같은 건축, 자연에서 받은 영감에서 풀어내는 가구 디자인, 그리고 그 모든 걸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아우르는 다양한 아트 디렉터로서의 활동. 김백선의 예술이 향하는 종착지는 과연 어디일까? 오래전, 동양화는 그에게 사물을 볼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었지만, 그의 숱한 예술적 결과물은 이미 빚을 다 갚은 듯한 느낌이다. 앞으로도 그의 활동을 응원한다.
에디터 |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 김수린(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