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타는 사라지지 않았다
뉴욕과 유럽을 놀라게 하며 세계적 사진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아티스트 김아타가 6년 만에 돌아와 악수를 건넨다.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어찌 지냈느냐고 물으니 그저 작업을 했을 뿐이라고, 작업 말고는 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정말 그것 말고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처럼.
고향 사투리가 남아 있는 그의 말투는 리듬감이 있지만 간간이 떨림이 묻어났다. 작품 설명 사이사이 짧은 멈춤이 있었고,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고르고 골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김아타는 긴장한 듯 보였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313아트프로젝트에서 6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
일주일 후, 그를 파주 헤이리의 작업실에서 다시 만났다. 숙제를 만족스럽게 마친 아이처럼 개운하고 맑은 표정의 김아타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작업했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요. 작업의 성격 자체가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았어요. 한 도시를 넓은 전경부터 거리의 사람들, 작은 간판이나 기호까지 점점 좁혀가며 1만 장을 촬영하는 것은 육체적·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지요. 완전히 몰입해서 도시의 정체성을 담아내야 하니 적당히 할 수가 없죠.”
‘인달라’ 시리즈뿐 아니라 앞으로 김아타 작품 세계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남을 ‘자연 드로잉 프로젝트’를 시작한 3년 전부터 더 바삐 움직였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작업에 몰입하게 하는 것일까? 김아타는 자신을 농사짓는 농부에 비유했다. “쌀이라는 결과물도 얻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 흙, 물을 관찰하면서 부가적으로 얻는 것이 더 많죠. 저도 촬영하면서 한 도시의 정체성이 형성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깨달았어요. 그 과정이 더 값지다 생각하고 과정이 주는 맛을 절절하게 느꼈죠.”
1 김아타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8시간 동안 조리개를 열어서 촬영하는 장노출 기법의 8-hours 시리즈 ON-AIR Project 110-1, The New York Series, eight-hour exposure, 2005 ⓒattakim studio 2014 Courtesy 313 ART PROJECT
2 파르테논 신전을 1/15 사이즈의 얼음으로 재현해 매일 녹아 사라지는 모습을 촬영한 아이스 모놀로그 시리즈 ON-AIR Project 153-1, The Monologue of Ice Series Parthenon, 2008 ⓒattakim studio 2014 Courtesy 313 ART PROJECT
3 인달라 시리즈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고 말하는 김아타의 철학이 가장 잘 담겨있다. ON-AIR Project, Modiglani 106 ⓒattakim studio 2014 Courtesy 313 ART PROJECT
김아타의 작품 중 가장 친숙한 ‘8 hours’ 시리즈는 뉴욕, 파리, 베를린, 모스크바 등 전 세계 12개 도시에서 8시간 동안 조리개를 열어 장노출 기법으로 촬영한 작품이다. 대도시의 주인으로 스스로를 인식하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빽빽한 자동차는 모두 사라지고 그곳에는 건물과 텅 빈 거리만 남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유명 대도시의 모습이 낯설어 보인다. 낮도 밤도 아닌, 누구도 없는 도시. 도시의 화려함을 거세한 자리를 떠난 김아타의 의식이 닿은 작품이 ‘인달라’ 시리즈다. 각 도시별로 1만 컷의 사진을 촬영한 데이터를 디지털 레이어링을 통해 완성한 작품. 잠시 상상해보라. 한 도시의 전경부터 길거리에 뒹구는 작은 사물까지 모두 담겨 있는 사진 1만 컷이 하나로 모였을 때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2007년 뉴욕에서 ‘델리’를 완성했을 때 엄청 충격을 받았어요. 모니터에 뜬 작품을 본 순간 허탈함, 공허함이 몰려왔죠. 그리고 순수한 감동에 눈물이 쏟아졌어요. 사람들은 결과물만 보지만 저는 사진 한 장 한 장과 교감한 과정을 기억하니까 더 크게 다가왔죠.” 물리적으로 1만 컷의 사진과 막대한 양의 정보가 들어 있지만 모든 도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고 잿빛 안개 같은 이미지만 볼 수 있다. ‘인달라’ 시리즈는 컬러 톤의 차이만 있을 뿐, 작품의 레이블을 모두 떼어버리면 어느 도시인지 추측조차 할 수 없다. 수많은 개체가 하나로 소멸해버린 듯하지만 사실은 각각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인달라’ 시리즈는 김아타의 철학이 잘 담겨 있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토록 힘들게 작업한 1만 컷을 들여 겨우 한 작품이 남는다. 속된 시장 논리로 봤을 때 1만 컷을 모았다고 작품 값을 더 비싸게 받을 수도 없으니 그의 표현대로 무식하고 무지한 작업일 수도 있다. 한 컷씩 따로 놓고 봐도 근사한 사진은 많았지만 김아타는 미련을 두지 않았다. “아쉬움은 전혀 없어요. 큰 틀에서 보면 타임캡슐 같은 개념이죠. 그 속에 다 살아 있어요.” 아티스트 김아타를 아끼는 해외 사진계 지인, 평론가들은 ‘인달라’ 시리즈를 보고 지금은 공개할 때가 아니라며 말렸다. 2009년의 일이다. 반대하는 이유도 분명했다. 사진은 사실을 매개로 기억하고 기록하며 재현하는 것인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인달라’ 시리즈는 사진의 어법을 완전히 틀어버린 작품이라는 것. 이걸 사진계가 받아들이기엔 너무 이르니 반발이 클 것이고, 그 안에 담긴 개념 또한 무거우니 시간이 좀 더 흘러 생의 마지막 작업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을 듣고 방향을 돌릴 김아타가 아니다. “현대 예술의 트렌드 같은 것엔 관심 없어요. 저는 철저히 제 의식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갑니다. 타고난 성격 때문에 한국 사진계에서 여러 말을 듣기도 했지만 상관없었어요.”
‘해체’에서 ‘뮤지엄’ 시리즈로, ‘온에어’ 시리즈에서 ‘자연 드로잉 프로젝트’로 그는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 깨달은 원리를 따라 걸어왔다. 작업은 그의 의식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다. 파르테논 신전을 15분의 1 사이즈 얼음으로 재현한 다음, 매일 녹아 사라지는 모습을 촬영한 ‘아이스 모놀로그’ 시리즈, ‘8 hours’ 시리즈, ‘인달라’ 시리즈를 모두 ‘온에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묶었는데, 이 세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개념은 무엇일까? 어떤 의식이 이 작품을 세상에 탄생시켰을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뮤지엄’ 시리즈를 작업하면서 깨달은 사실이에요. ‘뮤지엄’ 시리즈는 세상의 모든 사물은 존재 가치가 있고 허투루 태어난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존의 뮤지엄에 전시된 것들뿐 아니라 하찮게 여기던 것에도 의미를 부여했죠. 그 작업에 몰두하던 중에 느꼈어요. 이 모든 것이 사라지는데 왜 나는 꾸역꾸역 묶고 박스에 넣고 있나? 즉 모든 사물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결국 사라진다. 이것이 ‘온에어’ 프로젝트를 통해 제가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프로세스로 그가 택한 것이 장노출, 얼음의 물성, ‘인달라’ 시리즈의 레이어다. 사진적 장치로 선택한 이 방법을 통해 그의 철학은 더욱 밀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본질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를 환기시켜준다. 뉴요커들이 김아타의 사진을 보고 슬퍼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전시장 문을 나서는 순간 매일 보던 일상의 풍경이 다르게 느껴진다. “어차피 사라지니까 깊이 사유하고, 더 사랑하고, 즐겁게 살아야 해요. 그걸 알려주는 것이 예술의 존재 이유고,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보여주는 것이 나의 존재 이유죠.”
모든 단계에 완전히 몰입해 감동하고 허망함을 느끼는데 어찌 거기서 벗어나 다음 작업으로 옮아갈 수 있었을까? 단 한 번도 주저하거나 개념에 스스로 눌린 적은 없을까? “완전히 몰입하면 빠져나올 수 있어요. 컵에 물을 계속 부으면 차고 넘쳐 흐르잖아요. 더 이상 채울 수 없죠. 저는 그 컵 자체도 깨버려요. 더 적극적이죠. 물이 흐르게 내버려두면 다른 일을 하겠지만 그 컵은 벗어날 수 없고 늘 같은 모양만 나오겠죠. 저는 세상이 기억하고 유통되는 그 틀을 깨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욕도 많이 먹었지만 오히려 그것 하나만 부여잡고 있는 삶이 한심해 보여요. 도구에 불과한 것에 천착하면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기자간담회에서 김아타가 3년 전부터 하고 있는 ‘자연 드로잉 프로젝트’ 작업 과정을 담은 짧은 필름을 볼 수 있었다. ‘자연 드로잉 프로젝트’는 세계 곳곳에 거대한 캔버스를 설치하고 길게는 2년 정도 내버려둠으로써 눈비와 바람을 맞으며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모습을 담는 작업이다. 이미 DMZ,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인도 부다가야, 히로시마 평화의 공원 등에 설치했고 완성된 작품을 수거해오기도 했다. 자연을 그대로 묻혀오는 작업인데 동양 사상의 발원지와 이데올로기의 현장이 주를 이루니 이미 장소 자체가 개념을 지닌 곳이 아니냐고, 완전한 자연이라고 하기 어렵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그는 너털웃음부터 지었다. “그건 1차적으로 알기 쉬운 장소일 뿐이죠. 물론 DMZ니까, 히로시마니까 세우는 이유도 있어요.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계곡이나 바닷속, 야생화가 흐드러진 풀밭에 세운 것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곳이라고 해서 역사가 없다고 할 수 있나요? 아무도 봐주지 않는 섬이라도 홀로 견뎌온 시간이 역사가 되는 거죠.” 그렇다. 이름이 없다고 해서 그곳에 쌓인 시간조차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이다. 과연 김아타다운 설명이다.
올해 9월에 열리는 2부 전시에 공개할 ‘자연 드로잉 프로젝트’의 캔버스를 수거하러 다니면서 그는 여러 번 충격을 받고 깨달음을 얻었다. 인디언이 사는 지역에 설치한 캔버스는 너무 맑고 깨끗해서 보는 순간 스스로 정화되는 경험을 했다. 소량의 흙이 묻고 산양으로 추정되는 동물의 뿔이 뚫어놓은 작은 구멍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인도 부다가야에 설치한 캔버스는 섬뜩할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싯다르타가 왜 그곳에서 붓다가 되었는지, 수련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어요. 환경이 존재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크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지역별로 다를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눈으로 확인하니 더 놀라웠죠. 캔버스마다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있어요.”
‘자연 드로잉 프로젝트’에서 카메라는 찾을 수 없다. 그는 가장 익숙한 도구를 내려놓았다. 사진작가로 알려진 김아타의 예술 세계가 여전히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종일관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말하는 그는 왜 이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걸까? 결국 아티스트 김아타도 사라질 것이다. 그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정말 남기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을까?
“내가 남긴 것이 있다면 다음 세대는 나를 자양분 삼아 살고 또 다른 역사를 생산하겠죠. 저는 자연의 법칙을 존중합니다. 그래서 죽어서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작업을 한 작가로 남고 싶어요. 어떤 명성도 의미 없어요. 사람들이 허황되게 볼 뿐이지 내 삶엔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아요. 감히 말해요. 나보다 작업 많이 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거면 돼요.” 마치 작업을 멈추면 죽을 사람처럼 그는 말했다. 작업을 이어나가는 동안 김아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고로 다시 김아타를 얘기해야 할 때다.
에디터 고현경
사진 이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