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Hyejin Kim
직업의 경계가 희미해진 시대를 살고 있지만 디자이너와 연기자, 게다가 아트 디렉터와 아티스트라는 삶을 한 사람의 인생에 모두 품는다는 건 어쩐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작가 김혜진은 삶의 갈림길에서 찾아온 기회마다 용기와 도전으로 응수하며, 디자이너에서 연기자로 그리고 전시 기획자에서 아티스트로 끊임없이 변신했다. 예쁜 눈웃음으로 모두를 맞이한 그녀는 더는 동안 배우가 아니라 자신과 관람객에게 예술적 치유라는 뜨거운 순간을 만나게 하는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중이다.
분당의 작업실에서 마주한 김혜진 작가.
그녀는 현재 9월 말 열리는 KIAF 전시 준비로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디자이너, 연기자, 기획자 그리고 아티스트까지 다채로운 활동을 해왔습니다. 지금은 어떤 부분에 가장 집중하고 있나요?
지난 2년 동안은 작가로서 활동에 주력해왔어요. 10년 넘게 방송 활동을 하던 중 예전부터 꿈꿔온 미술 쪽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미술 경영, 미술 이론 공부를 시작했죠(스탠턴 대학 미술 경영, 동국대학교 아트 마켓 & 아트테크). 애초에 갤러리 운영을 염두에 두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여러 전시회를 보고 직접 작가들을 만나다 보니 어느덧 제 안에서 창작 욕구가 꿈틀대더라고요. 고교 시절 내내 서양화를 전공하려고 준비하다 고3 때 디자인으로 전향했거든요. 작년에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에 참가한 후 마침 개인전 제안이 와서 설레고 두려운 마음으로 전시 준비를 했죠. 제 자리를 다시 찾은 기분이랄까, 모든 일엔 때가 있다는 말을 요즘 절감하고 있어요.
그럼 연기 활동은 중단한 건가요?
아니요. 연기는 계속할 거예요. 지난봄에도 김수로 선배님과 <밑바닥에서>라는 러시아 고전 작품을 연극 무대에 올렸어요. 제가 연기한 바실리사라는 캐릭터는 남편을 죽이고 싶어 하는 억척스럽고 악독한 여자인데, 난생처음 맡은 악역을 혹독하게 치렀죠. 제 인생을 좀 더 멀리 보면서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이 될 만한 기회를 찾다 맡은 역할이었어요. ‘아티스트로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 못지않게 ‘배우로 살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늘 제 자신에게 던지고 있어요.
직업 간 경계가 흐릿한 시대에 살고 있다지만,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가요?
글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나 하고 싶었던 일은 일단 시작하고 보는 성격이에요. 그걸 용기라고 표현하면 좋겠지만 늘 무언가에 도전하며 살아온 것 같아요. 디자인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던 서른 무렵 갑자기 연기를 하겠다고 했을 땐 주변에서 모두 미쳤다고 했어요. 10년이 지난 지금은 다시 붓을 들고 캔버스 앞에 앉았고요. 그렇게 10년을 주기로 제 인생에 큰 변화가 찾아오는 것 같아요. 어쩌면 제가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고요.
디자인을 전공하며 여러 매체와 재료를 접한 경험도 그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전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 매체의 제한을 두지 않거든요. 디자인을 전공하면서도 늘 순수 미술에 대한 갈망이 있어 부전공으로 도예 수업도 듣고, 칠공예도 했어요. 가구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많아 목재를 다루기도 했죠. 그렇게 여러 매체와 재료를 경험하며 표현할 수 있는 요소가 무척 다양하다는 걸 배웠어요. 지금도 늘 머릿속에선 그 모든 것을 다 접목하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해요. 가구를 만들 때 회화적 요소를 더할 수도 있고, 어떤 공간이 설치미술과 어우러질 수도 있는 것처럼요.
그런데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직장 생활을 하던 중 휴가차 외국에 나갔다가 재미 삼아 인터넷에 사진을 올렸는데, 여러 매니지먼트에서 연락이 왔어요. 서울에서 그들과 미팅한 뒤 CF와 영화에 출연했죠. 서른이란 늦은 나이의 데뷔였고, 저한테는 무모하리만치 큰 도전이었어요. 힘든 일도 많이 겪었는데, 우울증까지 찾아와 힘든 시기에 드라마 <아이리스>(2009년)에 여주인공인 김태희의 친구 ‘양 실장’ 역으로 출연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저에게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작품이었죠.
10여 년간의 연기 활동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배우라는 직업은 일반 사람과는 삶의 리듬 자체가 달라요. 자기표현에 대한 에너지가 굉장히 강한 사람들이죠. 그 어떤 직업보다 정신적·육체적 노동이 필요해요. 그만큼 힘든 면이 많지만 조명 아래에 있을 때, 카메라 앞에 섰을 때 형언할 수 없는 쾌감과 행복감을 느껴요. 만약 사회 경험도 없이 어린 나이에 시작했다면 여러 면에서 미숙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힘들어서 중도에 포기했거나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에 실수가 잦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배우로서의 경험은 지금의 작업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작품의 스토리를 풀어내는 면에서도 그렇고, 내면의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점에서도 그렇죠.
지난해 울산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에 출품해 큰 호응을 얻은 ‘엄마 마중’

지난해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입상해 ‘연예인 최초 미술대전 입상’이라는 기록을 남긴 ‘엄마 품’

엄마와의 이별의 기억을 테마로 한 회화 ‘기다림6’
연기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미술은 내 안의 무언가를 끌어내 다른 사물에 표현하잖아요. 그런데 연기는 내 안의 것을 ‘나’라는 본체로 표현한다는 게 가장 매력적인 것 같아요. 일반인이라면 평생 하나의 인물로 살아가잖아요. 하지만 배우로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하다 보면 나 자신도 알지 못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돼요. 일례로 미술 작품이 완성되면 좋다, 나쁘다는 반응이 작품에 전해지는데, 연기는 그런 반응이 바로 저에게 전해져요. 그래서 힘들 때도 있지만, 칭찬을 받을 땐 무척 기쁘고 행복하죠. 세상의 많은 일 중 연기만큼 타인과 세상의 반응이 즉각적인 일도 없을 것 같아요.
연극 무대에 선 경험이 개인적 성장에 도움이 됐나요?
미술에 설치와 회화, 영상이라는 매체가 있듯 연기 역시 영화, 드라마, 연극 등의 환경이 모두 달라요. 하지만 배우로서 기본을 다질 수 있는 건 단연 연극 무대인 것 같아요. 하나의 캐릭터를 수없이 연습하고 깊이 연구하거든요. 지난봄에 무대에 올린 <밑바닥에서>도 보통 연극영화과에서 한 학기 수업 분량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배우가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로 자료 조사부터 캐릭터 스터디 등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죠. 제가 맡은 역할을 100% 소화하진 못했을지라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지난해 초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마이클 라우 전시의 아트 디렉터로도 활동하셨어요. 기획자에겐 또 다른 역량이 요구될 것 같은데요.
전시 기획은 그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감각이 많이 요구되더라고요. 기획자는 작가 이상으로 작품에 애착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작품이 잘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자 스스로 작가의 마인드로 설치미술 행위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여러모로 예민한 작업이기 때문에 기획과 홍보 과정까지 꼼꼼히 엮으려고 노력했어요.
그 전시는 흥행에도 꽤 성공했는데, 전시를 기획하면서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었나요?
마이클 라우의 작품은 그 출발점에 스토리가 담겨 있어요. 그 스토리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전시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야 힙합과 스트리트 문화를 기반으로 한 재미있고 기발한 인물들에 대한 컨셉을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디스플레이나 공간에 대한 고민보다는 스토리와 감정을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는데, 마이클 라우 역시 그 부분에 대한 컨셉이 확실한 작가라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디자인과 연기, 예술의 영역을 모두 아울러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 있나요?
데이미언 허스트가 흥미로워요. 조각, 설치, 회화 등 모든 영역을 넘나들며 만들어내는 강렬한 시각적 임팩트를 보면 정말 이 시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들죠. 제가 직종을 넘나들며 작업해서인지 건축과 미술, 디자인을 동시에 아우르는 작가들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요. 전환기 중국의 사회상에 대한 깊은 해석과 감성이 담긴 중국 작가 우밍중(Wu MinZg hong)의 작품도 저에게 많은 영감을 줘요.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데뷔한 게 2013년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였어요. 드넓은 공간에 거대한 설치 작품을 전시했는데 대중에게 처음 선보이는 작품치곤 과감한 스케일이었어요.
울산 태화강 주변 대지에 작품을 설치하는 국제 미술제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공간과 스케일 같은 물리적 조건을 고려해야 했어요. 무엇을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았는데, 사회적 이슈보다는 내 안의 솔직한 이야기를 끌어내자는 생각으로 ‘엄마 마중’이라는 작품을 완성했어요. 가로세로 30m의 넓은 공간에 수백 장의 기저귀 천을 널어놓았죠. 햇살과 석양 아래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며 불어대는 바람 덕분에 수백 장의 천 조각이 더욱 극적으로 보였어요. 저도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졌는데, 관람객의 반응도 아주 좋았죠.
이후의 작품에서도 ‘엄마’라는 주제가 지속적으로 보여요.
두 살 때 저를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며 작업을 시작했는데, 아직 그 주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기억나지 않는 엄마에 대한 회상과 기다림의 시간을 표현하며 저 자신이 치유되는 걸 느껴요. 슬픈 자아에 함몰된 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다른 주제로는 아직 제 마음이 동요되지 않아요.
지난해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이 모두 매진됐다고 들었어요. 어떤 점이 관람객과 컬렉터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하나요?
마음을 움직여서가 아닐까요? 개인전에서 많은 분이 제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저는 작가로서 제 기억을 끄집어냈을 뿐인데, 누군가는 제 작품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나 봐요. 저뿐 아니라 모두가 나름의 사연을 갖고 있다는 걸 그때 알았죠. 전시장에서 제가 가장 많이 한 일이 관람객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였어요. 작품을 통해 저 자신이 치유되어가는 걸 느끼는데, 관람객에게도 위로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아요.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곧 9월에 열리는 KIAF 준비를 해야 하고, 상하이 아트 페어에도 참가할 예정이에요. 10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MIAF에선 30점 정도의 작품을 개인전 형식으로 선보일 계획이고요. 겨울에 DDP에서 열리는 오드리 헵번 전시 구상도 해야 하니, 연말까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 같아요.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글 박선영(프리랜서)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