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을 만났다
옷을 잘 입는다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참 좋은 무기다. 백발에 다부진 체격을 지닌 옷 잘 입는 중년 남자, 닉 우스터는 그런 점에서 볼 때 절대 권력자다.
1 옷은 날씨에 알맞게 입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닉 우스터. 선선한 바람이 불던 10월 초 그는 닉 우스터 X 일꼬르소 컬렉션의 셔츠, 카디건, 팬츠, 사파리 재킷을 입고 있었다.
Nick Wooster × Il Corso 피코트, 사파리 재킷, 후디드 베스트, 카디건, 옥스퍼드 셔츠와 팬츠. 총 6개의 제품을 완성하는 데 꼬박 6개월이 걸렸다. 실루엣과 패브릭, 단추 모양이며 주머니의 위치까지 닉 우스터가 섬세하게 디렉팅해 제작한 컬렉션답게 흡사 그가 입을 옷을 가져다 놓은 듯 그와 닮았다. 패션을 가까이 즐기는 이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이까지 누구나 입기 좋은 베이식한 컬러와 디자인으로 준비, 서울 시내 주요 백화점 일꼬르소 매장에서 한정 수량 판매한다.
2 캐주얼과 클래식의 경계선에 자리해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하는 피코트 3 재킷 위에 레이어링해 입기 좋은 다운 베스트. 모자가 있어 추운 날씨에 요긴하다. 4 네이비와 그레이 컬러 배색이 단정한 카디건
좀 더 근사했으면 싶지만 그를 처음 본 건 온라인 속 스트리트 패션 관련 블로그에서였다. 정확히 어떤 검색어를 타고 들어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TV 프로그램 ‘꽃보다’ 시리즈가 인기를 끌 즈음 닉 우스터(Nick Wooster)라는 이름은 꽃중년의 대명사로서 엄청난 추종자를 이끌고 있었다. 직업은 패션 디렉터이자 어드바이저. 패션 브랜드 랄프 로렌, 존 바틀렛, JC 페니, 톰 브라운부터 니먼 마커스와 버그도프 굿맨 등 유명 백화점의 패션 디렉터를 역임했으며 현재 다양한 브랜드와 작업하며 패션 관련 자문을 담당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옷! 그간의 경력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팬츠, 재킷, 셔츠 등 어떤 패션 아이템이든 근사하게 연출한다. 심지어 패션 테러리스트의 전매특허 아이템이라는 하와이안 프린트까지 그가 입으면 멋있어 보이는 지경이다. 여기서 잠깐! 치사하지만 그의 나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히 지천명과 이순의 중간. 안타깝게도 보통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패션에 대한 도전정신이 일보 후퇴하고 주변에서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기대치도 떨어진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다르다. 그래서 셀레브러티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소위 ‘핫’하다는 남성지의 커버를 여러 차례 장식했고 어느새 남자들의 로망이 됐다. 또 이런 유명세는 다양한 브랜드와 매체의 러브콜이 쇄도하게 했으며 마침내 국내 기업 LF 패션 에서 선보이는 이탤리언 스타일 캐주얼 브랜드 일꼬르소와 협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지난 10월 7일 이태원의 카페 안도에서 닉 우스터와 일꼬르소가 완성한 캡슐 컬렉션을 소개하는 행사가 열렸다. 온갖 매체의 취재진이며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다양한 연령층의 팬으로 붐빈 현장. 그가 <노블레스>를 위해 특별한 시간을 할애했다.
닉 우스터의 데일리 룩과 패션 소품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소감과 인상 일요일 오후에 도착해서 월요일 하루 동안 차를 타고 동대문, 종로, 이태원 등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어요. 특히 경복궁 일대가 인상적이더군요. 과거와 현재가 매우 근접한 거리에 공존하고 있었죠. 사실 전 서울이 이토록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인지 미처 몰랐어요. 이제부터 배워야 할 것 같아요.
한국 남성 패션에 대한 생각 요즘은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스타일에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해요. 인터내셔널 시대고 글로벌 브랜드가 대세니까요. 유럽 혹은 아시아에 살아도 브룩스 브라더스를 입고 바나나 리퍼블릭을 사고 일꼬르소를 알죠. 또 저는 체형이며 조건에 따른 다름을 존중합니다. 무엇을 입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옷을 자신답게 소화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런칭한 일꼬르소의 캡슐 컬렉션에 대하여 언제든 손쉽게 꺼내 입어도 꽤 괜찮을 수 있는 아이코닉한 아이템으로 구성했어요. 피코트, 셔츠, 카디건, 베스트, 팬츠, 사파리 재킷 총 6가지 제품이에요. 플란넬 원단을 사용해 테일러 느낌이 나는 동시에 활동적이죠. 클래식과 캐주얼의 경계를 적절히 넘나들며 스타일링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두 스타일의 장점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컬러는 제가 좋아하는 그레이와 네이비를 이용해 정중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표현했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스타일과 패션에 대한 정의 글쎄요. 사실 전 스타일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저 옷 입는 것, 오롯이 옷에 대한 생각만 할 뿐이죠. 우리는 누구나 모든 재료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들을 각자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하고 나름의 스타일을 만드는 거죠. 사람들이 저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아요. 무엇을 입고 신고 착용했는지 궁금해하죠. 과거 이탈리아에서 오래 살았어요. 자연스럽게 저에게 맞는 이탤리언 패션을 배웠고 시기적절하게 현재 트렌드와 맞물려 관심 대상이 되었죠. 타이밍이 좋았어요. 그런데 문득 다시 생각해보니 스타일이란 제게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전부(nothing but everything)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옷에 관심을 느끼기 시작한 때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유치원에 다닌 꼬마 시절부터 취향이 까다로운 아이였죠.(하하) 어머니가 옷을 입혀줄 때 싫다, 좋다고 명확하게 표현한 기억이 납니다.
패션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 옷을 어떻게 입을지 늘 고민하다 보니 갖고 싶은 것도, 입고 싶은 것도 많았어요. 한데 누구나 그 또래에 그렇듯 부모님이 사주는 것과 제가 원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저 역시 그랬어요. 부모님이 사주려는 것보다 제가 원하는 것이 더 비쌌죠. 그때 이런 제안을 하시더군요. “네가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직접 일해서 살 수 있도록 해라.” 1976년, 제 나이 열여섯 살 때였어요. 그래서 바로 패션계에서 일자리를 구했고 직접 돈을 벌어 마음에 드는 것을 샀죠.
옷장에 정말 많은 아이템이 있을 것 같다. 네. 정말 많아요. 친구들이 옷을 수집하느냐고 물을 정도로 많은 것으로 가득 차 있어서 정말 복잡해요. 그런데 전 그렇듯 많은 선택의 기회가 있는 제 옷장이 너무 좋아요. 가끔 제가 어떤 것을 가졌는지 다 기억할 수 없어서 같은 제품을 반복해 산 적도 있어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나면 당황스럽기보다 내가 이렇게 좋은 제품을 여러 개 갖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해하는 쇼퍼홀릭이에요. 제 단점이자 약점이지만 행복합니다.
옷을 잘 입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 옷 입기에는 연습이 필요해요. 많은 옷을 가지고 각각의 것을 어떻게 매치할지 고민해봐야 실력이 늘죠. 그 과정을 즐겨야 합니다. 만약 경제적인 방법을 찾는다면 제가 선보인 컬렉션처럼 기본 아이템을 위주로 선택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담한 체형을 위한 스타일링 팁 키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만약 작은 키가 고민이라면 상·하의를 한 가지 톤으로 입으세요. 그리고 굽이 두꺼운 슈즈(heavy shoes)를 신어 조금 높이 올라서면 됩니다. 지금 저처럼요.(하하) 브랜드는 톰 브라운, 닐 바렛 혹은 준야 와타나베, 비스빔(Visvim)등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가 제 체형에 잘 맞더군요. 거기에 운동이 필요해요. 저는 종종 헬스클럽에 가요. 어떤 때는 젊은이들보다 더 오래 운동하죠. 비단 외적인 면을 넘어 정신과도 관련되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년 남성의 옷차림과 트렌드를 따라 한다는 것에 대한 견해 ‘Mutton dressed as lamb’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직역하면 늙은 양(mutton)이 젊은 양(lamb)처럼 입었다는 말인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을 하거나 어려 보이기 위해 필사적인 사람을 일컫는 말이죠. 연령에 맞춰 옷을 입는 것은 중요해요. 하지만 요즘은 캐주얼 룩이 인기를 모으고 있어 14살 소년이 슈트를 입는 것이 아니고서야 어울린다면 어떻게 입어도 괜찮은 것 같아요. 단, 체형에 꼭 맞는 피트가 정말 중요해요.
여름과 겨울 극한의 날씨를 오가는 서울에서 옷 입기 노하우 서울도 뉴욕과 같나 봐요. 뉴욕의 날씨도 익스트림하죠. 그런데 되레 그런 경우 옷 입기가 쉬어요. 추운 날에는 레이어링이 정답이고 더운 날엔 벗으면 그만인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 통풍성이 좋은 튜닉이나 긴 셔츠와 같은 박시한 실루엣의 오버사이즈 룩이 해답이죠.
액세서리 활용법 장신구를 많이 착용하는 편은 아니에요. 주얼리는 오늘처럼 대개 심플한 반지 혹은 아주 작은 스터드 귀고리가 전부예요. 대신 시계를 좋아해요. 남성의 옷차림에서 시계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포인트예요. 그 사람의 취향을 보여주는 대표적 아이템이죠. 아! 선글라스도 정말 많아요. 이건 멋 내기용이라기보다 시력 보호용으로 착용하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제 시그너처 아이템이 됐죠. 사실 시력이 정말 안 좋아서 11년 전에 시력 교정술을 받았거든요.
당신만의 패션 롤모델 스티브 매퀸, 캐리 그랜트를 좋아해요. 그래서 그들이 출연한 영화를 종종 봐요. 특히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는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예요.
올가을 당신이 주목하는 아이템 우선 어떤 제품이 출시됐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은데, 아직 못했어요. 한데 지금 당장 떠오른 건 팬츠예요. 제가 입은 것처럼 발목에 밴드를 넣은 것이나 라르디니, 하이더 아크만에서 선보이는 주름 장식 플리티드(pleated) 팬츠가 좋겠어요.
에디터 서재희 (jay@noblesse.com)
사진 이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