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디자이너, 기억의 아틀리에
75년 이상 창조적인 활기로 가득한 디올의 화려한 아카이브가 서울에 도착했다. 파리 장식미술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에서 시작해 런던과 뉴욕, 도쿄, 도하, 리야드 등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한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Christian Dior: Designer of Dreams)〉.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7월 13일까지 펼쳐지는 이 전시는 플로렌스 뮐러(Florence Müller)의 큐레이션, 건축가 시게마츠 쇼헤이(OMA)의 공간 설계로 디올 하우스를 구성하는 꿈과 신화, 기억을 시간과 감각의 다양한 층위를 통해 매혹적으로 풀어낸다.
몽테뉴가 30번지에서 시작된 전설
전시는 크리스챤 디올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설립한 파리 몽테뉴가 30번지(30, Avenue Montaigne)를 모티브 삼아 시작된다. 무슈 디올은 파리 8구의 신고전주의 양식 건물을 선택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공간으로 삼았고, 1947년 이곳에서 첫 컬렉션을 발표했다. “모든 것이 완전히 새로운 하우스를 짓고 싶었다”는 무슈 디올의 말처럼 직원부터 가구, 향수, 패브릭, 미감에 이르기까지 브랜드의 전방위적 정체성을 이곳에 담았다. 오늘날까지도 몽테뉴가 30번지는 단순한 주소 이상의 의미로 기능한다. 진귀한 아카이브 자료와 흑백사진으로 초창기 디올 하우스, 무슈 디올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 처음으로 생명력을 얻은 ‘꿈의 왕국’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1947년 2월 12일, 몽테뉴가 30번지에서 무슈 디올이 선보인 첫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뉴룩(New Look)이라 명명되며 즉각적 반향을 일으켰다. 스커트의 곡선을 연상시키는 전시 공간 중앙에 배치한 바 슈트(Bar Suit)는 그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스커트 자락이 상징적인 코롤(corolle) 라인 실루엣은 전쟁 직후인 당시 절제된 시대상에 반기를 든 혁명적 형태로, 파리 패션계는 물론 영국과 미국에서도 커다란 논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스타일은 이후 수많은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여성성’을 대표하는 상징적 실루엣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가 해석한 현대적 뉴룩 실루엣도 함께 전시, 디올이 일관되게 선보인 전통과 혁신의 연결 고리를 입증한다.

위 이중 나선형 계단과 조명 연출, 디올의 드레스 룩을 통해 환상적인 무도회를 표현한 디올 무도회 섹션. © Kyungsub Shin.
아래 화이트 컬러 캔버스를 배경으로 화려하게 어우러지는 시각적 요소와 빛반사 효과를 통해 재단사들의 뛰어난 기교를 예찬한 디올 아틀리에 섹션. © Kyungsub Shin.
꽃과 아틀리에의 미학
“꽃은 여성 다음으로 신성한 창조물이다”라는 무슈 디올의 말은 꽃과 정원을 향한 그의 열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전시는 무슈 디올이 향수에 부여한 의미와 자연에 대한 애정을 2개의 서정적 전시 공간을 통해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디올 최초의 향수 ‘미스 디올(Miss Dior)’을 주제로 한 첫 번째 공간은 이전에 공개하지 않은 아카이브 자료와 더불어, 아티스트 에바 조스팽의 텍스타일 설치 작품이 디올 향수에 깃든 다양한 매력을 더욱 확장한다. 이어지는 ‘디올 가든(The Dior Garden)’은 아티스트 김현주가 한지로 제작한 식물 형태의 오브제와 라란 컬렉션의 은행나무 벤치가 어우러지며 자연과의 조화를 구현한다. 전설적 향수로 사랑받는 쟈도르(J’adore) 이야기는 장-미셸 오토니엘의 조형 작품, 빅투아르 드 카스텔란과 인디아 마다비가 제작한 보틀, 리애나 같은 매력적인 디올 앰배서더들이 착용한 황금색 드레스를 통해 펼쳐진다.
오트 쿠튀르의 본질은 결국 장인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이어지는 ‘디올 아틀리에(The Dior Ateliers)’ 공간은 드레스메이킹의 모든 단계를 마치 디오라마처럼 보여준다. 마스터 재단사가 스케치를 넘기고, 초벌 드레스를 만들고, 자수 공예 장인들이 손바느질로 형태를 완성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예술적으로 느껴진다. 특히 공간을 가득 메운 백색 트왈은 각각 실제 룩의 축소 모형으로, 패턴과 장식을 세밀하게 재현했다. “진정한 럭셔리는 좋은 소재와 장인의 솜씨에서 시작된다”는 무슈 디올의 철학을 고스란히 구현한 공간. 컬러라마 전시 공간에선 색채 조합을 활용한 몰입형 설치 작품을 통해 디올 액세서리의 다양성을 강조하며, 우아한 품격을 상징하는 레이디 디올(Lady Dior)은 디올 레이디 아트(Dior Lady Art)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9점의 작품과 레이디 디올 애즈 신 바이(Lady Dior As Seen By) 콘셉트로 완성된 17점의 작품 등 한국의 상징적인 아티스트가 특별히 재해석한 다양한 디자인으로 각별한 감흥을 선사한다.
고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연출한 ‘디올 무도회(The Dior Ball)’ 섹션은 이중 나선형 계단을 중심으로 한 무도회 공간이다. 드라마틱한 조명 연출과 함께 전시한 무도회 가운은 디올이 구현해온 궁극의 여성성과 장식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유산, 변주의 시간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메인 주제는 바로 크리스챤 디올부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에 이르기까지, 디올에서 활약한 7명의 디자이너가 탄생시킨 스타일에 대한 탐구입니다”라는 전시 큐레이터 플로렌스 뮐러의 말처럼,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꼽을 수 있는 공간은 무슈 디올에 이어 하우스를 책임진 아티스틱 디렉터들의 창조적 해석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선보이는 ‘디올의 유산(The Dior Legacy)’ 섹션이다.
현재까지 디올 아티스틱 디렉터들이 선보인 독창적 아이디어는 한국 전통 공예인 조각보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한 독특한 공간을 통해 표현되었다. 이 공간은 단지 시간 순으로 정리한 디올의 역사가 아니라, 6인의 아티스틱 디렉터가 무슈 디올의 유산을 어떻게 자신만의 언어로 번역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마련했다. 섹션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한국계 캐나다 작가 제이디 차가 완성한 무슈 디올의 초상화는 디올의 미학이 어떻게 동시대 예술과 대화할 수 있는지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시사한다.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는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다. 디올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20세기 중반 이후 여성상, 산업, 공예, 자연, 예술, 스타 시스템, 심지어 사회적 가치까지 포괄하는 방대한 문화사를 보여준다. 전시 후반부의 ‘디올과 스타들(Stars in Dior)’ 섹션이 그 대표적 사례다. 그레이스 켈리, 마를레네 디트리히, 매릴린 먼로부터 최근의 블랙핑크 지수, 내털리 포트먼까지, 디올은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들과 함께 진화해왔다. 이들이 입은 드레스는 단순한 의상이 아니라 꿈을 현실로 만든 결과물이자 기억의 조각이다.
INTERVIEW with Florence Müller
Dreams Tailored for Seoul
서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전시회는 어떻게 구상했나요?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전을 구상하며 10년 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디올 전시를 이미 개최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따라서 전시할 작품을 완전히 새롭게 선정하고 주제도 다시 생각해야 했죠. 전체적 콘셉트는 전통적 형태와 오브제를 통해 한국의 문화 예술에 경의를 표하면서 한국 현대 아티스트를 디올 하우스의 역사와 연관 지어 소개하는 것입니다. 전시의 구조는 한옥을 연상시키고, 달항아리의 형태와 보자기 기법도 감상할 수 있죠. 특히 김현주, 제이디 차, 이불, 이우환, 수 써니 박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작품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시에서 소개하는 디올 드레스와 액세서리, 문서는 대부분 처음 공개하는 것으로, 최근 디올 하우스의 유산에 포함된 것입니다.
이전 전시와 비교할 때 이번 서울 전시만의 특별한 점이 있나요?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메인 주제는 바로 크리스챤 디올부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에 이르기까지, 디올에서 활약한 7명의 디자이너가 탄생시킨 스타일에 대한 탐구입니다. 70년이 넘는 시간을 아우르며 모든 디올 스타일의 역사를 다루죠. 달항아리 형태로 구상한 디올 가든, 디올 아틀리에를 연상시키는 화이트 캔버스로 구성한 거울 장식 공간 등 OMA가 디자인한 공간도 매우 새로운 요소입니다. 컬러라마의 주제는 다양한 원색이 상호작용하는 색상환이라는 개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전시의 첫 번째 섹션은 완전히 새롭게 선보이는 공간으로, 무슈 디올이 활동하던 시기에 사용한 사무실, 스튜디오, 모델 룸, 아틀리에 등 디올 하우스의 각 층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활동을 보여줍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디올과 협업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그리고 전시를 위해 함께할 인물들은 어떻게 선정했나요? 전시의 새로운 에디션을 준비할 때마다, 연구 단계부터 최종 작품 설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디올 팀과 함께합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기 전에 디올 아카이브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죠. 그다음 선별한 작품들을 OMA의 평면도에 맞춰 비교하며 드레스가 공간에 들어가는지, 그리고 전시에서 선보이고자 하는 주제와 디올 하우스 고유의 매력이 잘 드러날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이후 실물 크기의 모형을 통해 선별한 작품들을 평가하고, 문서와 액세서리도 선택하죠. 선별 작업이 완료되면, 각 전시 공간을 설명하는 텍스트와 전시 작품들의 라벨 문구를 작성해야 합니다. 작품을 설치할 때는 주로 드레싱 전문가로 구성한 팀과 많은 시간을 함께합니다. 마지막으로 조명 디자이너가 모든 조명을 설치하면 이 길고 긴 여정이 마무리되죠.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디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