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루는 모든 것
미술사, 철학, 문학, 영화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그 유산을 심도 있게 연구해 동시대적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자신을 둘러싼 개인적 경험을 겹겹이 쌓아 올려 완성하는 그의 화면에서는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데이비드 오케인 1985년 아일랜드 태생으로, 현재 더블린과 베를린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더블린 국립 미술 디자인 대학(The National College of Art and Design, Dublin)과 라이프치히 예술대학(Academy of Visual Arts, Leipzig)에서 수학했으며 사실주의 전통을 계승한 신라이프치히화파의 대표 작가 네오 라우흐를 사사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 유수 기관에서 작품을 선보였으며, 아일랜드 국립도서관, 예일 대학교, 스탠퍼드 대학교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2016년 갤러리바톤 개인전 이후 한국에서는 8년여 만에 열린 개인전입니다.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이번 전시가 준 감동은 더욱 컸어요. 〈자아의 교향곡(Symphony of Selves)〉은 어떤 전시였나요? 자아의 독자성, 즉 자아란 단일한 속성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속성을 지닌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시예요. 전시 제목은 제임스 패디먼(James Fadiman)과 조던 그루버(Jordan Gruber)의 저서 〈Your Symphony of Selves: Discover and Understand More of Who We are〉(2020)에서 따왔어요.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 누구와 상호작용하는지에 따라 자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이에요. 저는 여러 경험을 하고 때로는 명상을 하면서 제가 누구인지 계속 생각해요. 나이나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자아를 받아들이고, 고정된 지점에 머물지 않는 태도 자체를 믿는 거죠. 다중인격은 병리학적으로 질병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자아의 다중성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심포니처럼 화합을 이룰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이 책에서는 다양한 방향성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분석해요. 대중문화를 예로 들면, 다채로운 캐릭터성을 보여주는 데이비드 보위나 밥 딜런 같은 사람이 있죠. 영적이고 정신분석학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가 자아의 일부를 억압하지 않고 이런 다중적 자아를 받아들인다면 어떨까요? 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면 성격을 하나로 고정할 필요가 없죠. 모든 건 지속적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명사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동사처럼 움직이고 흘러가는 거예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가 〈율리시스〉에서 말했듯, 앉아서 명상하고 깊이 들여다보고 생각의 흐름과 지형이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과정이죠. 예술가로서 다양한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듯, 제 모든 작업은 결국 저 자신을 드러내는 데서 시작해요.
긴장감 있는 작품 옆에는 긴장감을 살짝 풀어주는 작품을 배치하는 등 전시의 흐름이 보여요. 처음부터 연출하고 작업했나요? 전시를 준비하며 가장 염두에 둔 것은 무엇인가요?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부터 이미 작품들 사이에서 대화(dialogue)가 시작되죠. 전시 환경과 창작 환경은 달라요. 스튜디오에서는 저와 작품 혹은 작품끼리 상호작용을 해요. 긴장감이 높은 작품, 긴장감이 해소되는 작품, 명상 과정을 요하는 작품도 있죠. 물리적 특성을 느낄 수 있는 큰 작업을 한 다음엔 작은 작업을 하기도 해요. 지난 전시 이후 한국에 온 적이 없어서 전시 공간을 처음부터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갤러리바톤 큐레이터와 많은 대화를 나눴죠. 동시에 많은 작품을 준비했어요. 그 당시 여러 면으로 뻗어나가는 다양한 작업을 하던 중이었거든요. 다른 스타일의 작품도 있지만, 이번 전시 주제를 생각하며 하나의 가지에 정착해 작품을 엄선했어요.
작품에 작가 자신, 가족, 친척, 연인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제스처나 구도, 장면 등을 미리 연출하는지 혹은 우연성에 기반하는지 궁금합니다. 작품마다 접근 방식이 달라요. 어떤 구도에 어떤 이미지를 담을지 대략적으로 미리 계획하기도 하지만, 우연이나 확률이 돋보이는 작업도 있어요. ‘Gloaming’(2024), ‘Zwielicht’(2024), ‘Dawn’(2025) 3부작은 제 모습을 카메라로 담았어요. 제 몸짓을 실제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우연성과 무작위성을 더 강조했죠. ‘Conversation’(2024) 속 캔버스 천으로 가린 인물은 제 연인이고, 작은 그림 속 인물은 돌아가신 제 아버지예요. 이 작품은 저 자신을 연인에게 대입해 초상화 같은 개념으로 접근했다고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촬영하니까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죠. ‘Maya’(2022) 시리즈는 조카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그렸어요. 이번 전시작은 결국 ‘자아란 무엇인가’라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제 작품에 저를 둘러싼 주변인이 등장하듯, 사람의 자아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정립되죠. 저는 역설적 시도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 무의식,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예술로 구현하고자 합니다. 흔히 예술가가 만드는 모든 작품은 일종의 자화상이라고 하지만, 제 작품을 통해 우리의 다층적 내면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 작품에서는 창작 행위 자체가 깨지기 쉬운 자아의 독자성을 암시하는 메타픽션적 장치로 쓰여요.
이번 전시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요소는 캔버스 천이에요. 캔버스 천은 제가 매일 다루는 재료예요. 어떻게 보면 제 창작 활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죠. 제 작품에서 캔버스 천은 인물을 가리는 매개체이기도 하고, 창작의 이중성이나 미스터리함을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죠. 제가 좋아하는 폴란드계 미국인 철학자 알프레트 코집스키(Alfred Korzybski)가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The map is not the territory)”라는 유명한 말을 했어요. 여기서 지도는 지각과 마음, 영토는 현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를 의미하죠. 언어로 무언가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결국 모든 걸 형언할 순 없잖아요. 예술도 마찬가지예요. 예술을 말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종국에는 모두가 경험에 의존해 느껴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캔버스를 비유적 모티브로 사용했어요. 현실을 이해하는 도구 혹은 자아와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게임 같은 거죠. 저는 의미가 없더라도 이렇게 질문을 계속 던지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에도 인물의 눈을 가리거나 뒷모습만 보여준 작품은 있지만, 이번 신작은 인물의 형체만 남기고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캔버스 천으로 거의 다 가렸죠. 예술가로서 긴장감을 표현했어요. 보통 예술가에게는 자기 자신과 작품을 드러내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그로부터 숨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거든요. 이 또한 이분법적이고 정신분열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죠. 예술가로서 제 현실과 개인적 경험을 통해 초상화면서 동시에 미스터리한 형체이기도 한 작품을 만들었어요.
철학, 미술사, 영화, 문학 등 다양한 레퍼런스를 작가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하죠.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심도 있는 고찰과 리서치가 인상적입니다. 기본적으로 무작위 과정을 거쳐요. 책을 읽다가 영화로 이어지고, 거기서 또 예술로 이어지는 등 상호작용하며 계속해서 뭔가가 떠오른다고 보면 돼요. 물론 특정 사상가에게 끌리거나 특정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작품을 읽다가 다른 사상가나 책으로 연결되기도 해요. 하나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고 상호작용하며 계속 새로운 것이 떠올라요. 일상에서 영화를 보거나 산책을 하면서 떠오르는 이야기도 있고요. 모든 아이디어가 얽혀 있다가 갑자기 다른 한 가지가 강하게 튀어나올 때가 있어요. 하지만 한 가지에 집착하거나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애쓰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며 작업하려 합니다. 릴랙스한 상태에서 두루두루 보고 편안한 태도로 받아들이는 걸 좋아해요.
작품에 어느 하나 허투루 들어간 요소가 없어요.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모르더라도 시각적으로 이미 깊이감이 뛰어나요. 맞아요. 하나하나 상징적 특징이나 제 개인적 경험을 담았어요. 하지만 그 모든 요소가 특정한 내러티브를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에요. 전체적 구성과 구조, 나아가 작품을 보고 어떤 경험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관람객이 제 작품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직접 느끼고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상징적이고 개념적인 요소가 작품 안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관람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지가 더 중요해요.
빛을 통해 시간적 전이를 다루고,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등 작품에서 빛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잘 다루잖아요. 빛만큼 묵직한 컬러와 톤도 시선을 사로잡는데, 이런 특징적 분위기는 어떻게 구축했나요? 빛은 어느 정도 컨트롤해 연출하기도 하고, ‘새벽, 황혼, 여명’이라는 작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일상의 풍경 속 자연광을 보여주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우리 마음, 즉 내면의 빛에 대한 비유이기도 해요. 초기 작품은 아일랜드 도니골에 있는 아버지 스튜디오에서 작업했어요. 아버지가 작가였거든요. ‘The Canvas’ 속 마루는 제가 어릴 때 뛰어놀던 곳이에요. 저와 제 가족의 역사와 과거가 깃든 공간이죠. 특정 색상을 제한해 그림을 그릴 수도 있겠지만, 제 이미지의 레퍼런스는 결국 제가 나고 자란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진 거나 다름없죠. 스튜디오 환경이나 위치가 작품의 무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이번 전시 작품 외에 새롭게 다뤄보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요? 이번 전시 출품작을 포함한 최근작은 저 자신의 내면과 내적 요소에 집중했어요. 앞으로는 그 문을 열어젖히고 외부 세계를 탐구하고 싶어요. 물론 초상화 개념에서 벗어날 순 없겠지만, 좀 더 외부를 들여다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몰두한 주제는 충분히 시간을 쓰고 창작한 것 같아서, 새로운 영감을 찾고 영향을 받기 위해 외부를 바라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계획을 공유해주시겠어요? 1월 30일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오픈한 단체전에 참여하고 있어요. 3월 8일부터는 라이프치히의 네오 라우흐 작가 밑에서 함께 수학한 동료 작가들과 함께 독일 서부의 옛 수도원 마리엔뮌스터 문화재단에서 3인전을 열고, 쿤스트베라인 드레스덴에서 개인전도 앞두고 있고요. 물론 한국에서도 다시 전시하고 싶어요. 지난 전시 이후 코로나19 등 여러 사정이 겹쳐 다시 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머지않아 다시 한국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글 백아영(프리랜서)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갤러리바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