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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서

LIFESTYLE

작품도 보고 마음의 평화도 얻는 미술관에서의 명상.

뉴욕 현대미술관의 명상 프로그램 ‘조용한 아침’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뉴요커들.

피카소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나의 창작 활동은 명상에서 시작하며, 내가 가장 집중적으로 일할 때는 명상에 잠기는 순간이다. 나의 의식이 제약 없이 떠돌아다니게 놓아주면 언젠가 무언가에 걸리기 마련이고, 그때부터 그것은 정확한 형태로 나타난다.” 피카소가 3만여 점의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명상이다. 비단 피카소의 일화가 아니어도 명상의 이점에 대한 많은 연구 결과가 있다. 2014년 네덜란드의 레이던 대학은 ‘명상은 창의적 사고를 증가시킨다’는 발표를, 이듬해 미국의 조지타운 대학은 ‘명상은 스트레스와 불안 장애를 완화한다’는 발표를 하는 등 매년 명상의 긍정적인 면을 조명하는 연구가 쏟아진다. 명상이 좋다는 건 잘 알지만, 야속하게도 소음 공해 가득한 주변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이르다. 시끄러운 도심 속 명상하기 좋은 환경을 갖춘 미술관이 있으니.
요즘 미술관에 가면 감상보다는 가만히 앉아 사색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사실 에디터도 그런 부류 중 하나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집 근처 미술관을 찾곤 한다. 좋아하는 작품을 보러 가기보다는 미술관 특유의 정적이 마음에 들어서다. 게다가 대다수 전시실은 작품 보호를 위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내부 조명을 갖춰 분위기도 완벽하다. 전시장 중앙 의자에 앉아 멋지고 아름다운 것을 둘러보고 있으면 마음의 위안과 평화는 절로 찾아오고, 잡념도 사라진다. 단순 명상을 넘어 예술품, 예술가와 심적으로 하나 된 듯한 느낌을 자아내기에 일반 명상보다 만족도도 높다. 이 같은 이유로 미술관이 현대인의 피난처인 ‘케렌시아’로 각광받자 미술관들은 저마다 대중의 요구를 반영해 각종 명상 프로그램을 개설하기 시작했다.

‘조용한 아침’은 명상 전에 전시실을 산책한다. 그곳에서 창의적 사고를 기르기 위해 명상을 즐긴 피카소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분야의 선두 주자는 뉴욕 현대미술관이다. 매달 첫째 주 수요일에 열리는 ‘조용한 아침(Quite Mornings)’의 취지는 클로드 모네의 기념비적 작품 ‘수련’에 둘러싸여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아그네스 마틴의 미니멀한 캔버스에서 반성하는 시간을 가진 뒤 마크 로스코의 강렬한 색채에서 숭고함을 느껴보는 것이다. 구성은 간단하다. 프로그램 신청자가 모이면 오전 7시 30분부터 한 시간가량 전시실을 거닐고, 그 후 9시까지 조각 공원이 보이는 2층 아트리움에 앉아 전문가가 이끄는 명상에 잠긴다. 조용한 아침은 미술관 정식 오픈 전에 진행한다. 덕분에 프로그램 참가비 15달러(성인 기준)만 내면 신청자끼리 미술관을 통째로 빌린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미술관 내 명상을 통해 바쁜 뉴요커들이 평화로운 경험을 하길 원한다”는 디렉터 마지 리코의 기획 의도처럼 뉴요커 사이에 ‘아침을 시작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고 소문이 나서 자주 매진된다고.
명상이 동양 종교의 정신 수행법으로 알려져서일까.

1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은 미술관 복도를 치유와 명상의 공간으로 조성하는 ‘움직이는 거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 생체 인식 센서로 스트레스를 측정한 뒤, 그 결과에 따라 4가지 명상법 중 하나를 추천해주는 리즈닝 미디어의 ‘Hello! Inside’.

해외에서는 아시아 문화에 특화된 미술관과 박물관이 열심히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동양 종교를 심도 있게 다루는 뉴욕 루빈 미술관의 ‘마음 챙김 명상(Mindfulness Meditation)’이 대표적 사례. 매일 오후 1시에 열리는 마음 챙김 명상은 미술관 소장품 중 하나를 명상 주제로 삼고, 작품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45분 동안 글귀를 읊조리는 만트라, 손동작을 이용하는 무드라 그리고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는 마인드풀니스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 명상을 원하지만 현장 참여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팟캐스트 채널도 운영한다. 깊은 사고를 어떻게 시각으로 환원하는지, 선의 유동성, 공간에 존재하는 예술적 시점, 조각의 독특한 조형성 등 미술에서 비롯하는 명상법을 담고 있으니 궁금하다면 팟캐스트에 ‘Mindful Looking’을 검색해보자. 이 밖에도 정적인 명상과 동적인 명상을 같이 제공하는 오하이오의 클리블랜드 현대미술관, 영국의 명상 전문 기업 저스트 브레스(Just Breath)와 손잡고 회당 750명의 참가자를 받는 대영박물관의 프로그램, ‘메디테이션 인 더 뮤지엄(Meditation in the Museum)’을 개설한 V&A 그리고 아시아 소사이어티, 브리즈번 미술관, 해머 미술관 등 해외 기관은 저마다 특색을 담은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명상 프로그램 유치에 적극적인 이유는 앞서 말한 관람객의 니즈에 부합하기 위해서다. 작년, 세계적 문화 동향을 살피는 컬처 트랙은 “관람객은 더 이상 단순한 전시 감상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소극적 미술관이 아닌 적극적 미술관을 원한다”라는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즉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하길 원하고, 그 요구 사항을 들어주고 색다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관을 찾아간다는 의미. 이에 미술관은 관람객을 끌어 모을 수 있으며, 동시에 미술관의 이미지와도 부합하는 명상을 택하게 된 것이다. 왜? 매트에 앉아 눈을 감는 게 전부인 명상은 큰 움직임이 필요치 않다. 그래서 작품이 파손될 염려가 없고, 큰 소리를 내지 않기에 미술관 분위기를 해치지도 않는다.

루빈 미술관의 ‘마음 챙김 명상’은 전문가의 지도 아래 진행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벤트식으로 열릴 뿐 정기적 명상 프로그램을 갖춘 미술관은 아직 없다. 그렇다고 서운해하지 말 것. 에디터처럼 전시실 의자에 앉아 개인적으로 명상 시간을 갖는 방법도 있다. 미술관에서 명상을 하려는 독자를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가장 먼저 적합한 전시실 고르기. 명상을 하기에는 상설 전시장이 좋다. 전시 기간이 한정적인 특별전은 한꺼번에 많은 관람객이 모여 북적이지만, 상설전은 항시 열려 있기에 방문객이 적은 편이다. 다음에는 (휴대폰은 잠시 꺼두고) 작품 사이사이를 천천히 거닐며 그 아름다움을 직접 느껴본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자연스레 시선이 머무는 작품이 생기는데, 근처에 비치된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심호흡을 크게 하며 몸을 이완한 뒤 선, 면, 색깔, 텍스처 등 눈앞에 있는 작품에 담긴 조형 요소를 눈으로 훑으며 호흡에 맞춰 사색하고 명상에 잠긴다. 작품과 함께 명상하니 왠지 메이트가 생긴 기분이 들고, 일반 명상실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과 문화의 풍요로움이 결합함을 느낄 것이다. 충분히 시간을 가졌으면 천천히 몸과 마음가짐을 정리하고 작품을 둘러보고 나오면 끝. 명상에서 느낀 감상을 글이나 그림으로 남기면 금상첨화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