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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인쇄 이야기

LIFESTYLE

활판인쇄로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시간은 오프셋인쇄의 10배, 비용은 20배 정도 더 든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만든다. 그것이 활판인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책 한 권에 들어가는 활자를 일일이 뽑는 활판인쇄의 시작인 문선 과정.

마크 트웨인은 최초로 타자기로 소설을 쓴 사람이다. 1876년, 그는 출간된 이래 단 한 번도 절판된 적 없는 <톰 소여의 모험>을 타자기로 탈고했다. 밤새 활판인쇄기 소리처럼 타닥타닥 강렬한 소리를 내며 글자를 쳐나갔다. 타자기는 자필로 힘들게 글을 쓰는 작업을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였다. 그는 동생에게 타자기의 편리성을 소개하는 편지 또한 타자기로 쓰는 등 점점 타자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물론 그가 훗날 친구의 타자기 회사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다가 실패해 폭삭 망했다는 사실은 조금 깨는 얘기지만 말이다.
각설하고, 마크 트웨인이 쓰던 타자기는 활자키를 누르면 금속으로 만든 활자가 잉크 리본을 눌러 글자를 쓰는 방식이었다. 이 원리는 활자를 판면에 배열하고 그것에 잉크를 발라 종이를 눌러 찍는 활판인쇄와도 흡사하다. 오래봐도 눈의 피로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고, 무엇보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것 같은 손맛이 있어 ‘뽀대’가 난다. 그래서 이런 타자기와 활판인쇄기는 특히 19세기 중반부터 100년 이상 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쓰였다. 각 나라의 신문과 도서 등 모든 인쇄와 출판을 담당했다.
한데 지금은 아니다. PC 키보드에 밀린 타자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이용 범위가 가장 넓은 인쇄 형태인 활판인쇄마저 이젠 자취를 감췄다. 이유는 단순하다. 수십 년이나 된 낡은 인쇄기의 관리 문제와 숙련을 요하는 활판인쇄 기술자들의 고령화, 또 1980년대 초반에 등장한 고속 인쇄가 가능한 오프셋인쇄기의 대중화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1990년대부터 활판인쇄와 활자 그리고 타자기의 상당수는 고물상으로 직행했다. 하지만 지금도 잘 찾아보면 옛 활판인쇄기를 쓰는 인쇄소를 발견할 수 있다. 멸종 위기에 이른 옛 기계를 그대로 돌리는 곳 말이다. 물론 이를 두고 활판인쇄의 ‘부활’이라 말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통 인쇄의 맥을 고단하게 잇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소개하는 건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 활자를 원고 내용대로 맞추어 짜는 식자 과정.   2 직접 활자를 고안해 다양한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하는 필 베인스.

먼저 소개할 곳은 2007년에 문을 연 경기도 파주의 ‘활판공방’이다. 이들은 전국을 뒤져가며 무려 10년 동안 인쇄소 오픈을 준비했다. 옛 활판인쇄기와 활자를 만드는 주조기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낡고 낡은 기계를 찾은 건 물론이고 그것을 운용할 전문가 또한 찾아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전문가란 활자를 만두는 주조공과 만들어낸 활자를 일일이 뽑아내는 문선공 등을 말한다. 평생 활판인쇄를 업으로 삼아온 사람들. 대부분 60~70대인 전문가들은 집에서 편히 삶의 여유를 만끽할 나이에 현재 활판공방에서 젊은 시절 익힌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활판공방의 활판인쇄는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300~400°C의 납물을 이용해 활자를 만들고, 원고에 따라 글자를 골라 문장을 만들어 틀에 끼워 넣고, 이후 틀을 활판인쇄기에 고정하고 잉크를 묻혀 찍어낸 뒤 제본하는 게 기본 과정. 문제는 이 긴 설명이 고작 책의 한 페이지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란 거다. 그 때문에 활판인쇄로는 시간당 2000장밖에 찍지 못한다. 시간당 1만8000장을 찍는 오프셋인쇄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수준이다. 현재 이곳에서 활판인쇄 체험 교실인 ‘느림학교’를 운영하는 백경원 실장은 활판공방을 다소 간단한 말로 정의한다. “오프셋인쇄라면 몇시간이면 끝낼 일을 두 달씩 걸려 해내는 곳” 그리고 “납으로 자모를 만들어 틀을 짜고 인쇄부터 제본까지 모두 수작업을 거쳐 책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책 한 권을 만드는 전 과정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이곳에선 현재 국내 시인들의 시선집을 활판인쇄본으로 출간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25권이 나왔고, 100권 출간이 목표다.
한편 지난해 8월 서울 상수동에 들어선 팩토리는 비교적 최근에 문을 연 곳이다. 종이 전문가인 최병호 전 두성종이 이사와 그래픽 디자이너 장성환이 공동 대표다. 이곳은 1000여 종의 종이와 활판인쇄기, 실크스크린 장비, 디지털 인쇄기지만 수작업적 요소가 강한 리소그래프 기기, 미니 오프셋인쇄기, 사철 제본기와 미싱 제본기 등을 갖추고 ‘종이와 인쇄의 실험 공장’을 표방한다. 이곳의 장성환 디자이너는 활판인쇄보다 오프셋인쇄가 훨씬 편한데 왜 굳이 어렵게 가느냐는 질문에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옛날 방식 그대로의 맛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고는 “외국에선 다양한 수작업 방식의 소량 인쇄가 이미 10여 년 전부터 화제”라고 덧붙였다.

3 납을 녹여 만든 납활자. 4, 5 1925년에 활판인쇄로 발행한 옛 소설 <청춘의 눈물>과 1933년 발행한 취미잡지 <개벽>.   

맨손으로 수백 개의 활자를 하나하나 골라 인쇄하는 활판인쇄는 그 수고만큼 오랫동안 보존된다. 400년 정도는 거뜬하다고 보면 된다. 오프셋인쇄로 찍은 책이 100년을 못 버티는 것에 비하면 굉장한 생명력이다. 그래서인지 실제로도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몇몇 나라에선 지금도 국가기록물이나 사상 전집 같은 중요한 문서를 활판인쇄본으로 보존한다. 여전히 활판인쇄로 찍는 출판도 이어가고 있다. 이런 나라에선 활판인쇄의 매력을 발견한 아티스트를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활판인쇄의 조합과 해체의 편리함에 반해 직접 활자를 고안해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하는 영국의 필 베인스(Phil Baines)나 뉴욕의 ‘킹’이라 불리는 갤러리스트 데이비드 즈워너가 요 근래 눈여겨보고 있다는 독일 작가 다니엘 리히터(Daniel Richter)도 심심치 않게 활판인쇄로 작업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한국과 같이 종이매체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는 옆 나라 일본의 명문 학교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선 현재 정규 과목으로 활판인쇄 수업을 진행한다.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독일의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보다 70여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을 만든 우리나라에선 정작 활판인쇄가 거의 종적을 감췄지만 말이다.
인쇄 기술은 최근에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3차원 형태로 스캔이나 인쇄를 하기도 하고, 몇 초 만에 수천 장의 종이를 복사하기도 한다. 한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날로그 인쇄의 손맛을 잊지 못한다. 특히 인쇄 기술자에 따라 갖가지 느낌을 주는 활판인쇄의 매력은 더더욱 그렇다.
활판인쇄의 손맛은 디지털 시대의 그 어떤 디자이너도 흉내 낼 수 없다. 그가 아무리 포토샵 달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다만 오해하진 말자. 이 말은 앞으로 활판인쇄가 인쇄업계의 주인공이 될 거란 전망은 아니다. 수년 전, 스티브 잡스가 ‘가장 위대한 그래픽 디자이너’로 손꼽은 폴 랜드는 이렇게 말했다. “손을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 그게 당신이 소나 컴퓨터 오퍼레이터와는 다른 점”이라고. 활판인쇄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대단한 게 아니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제공 활판공방, 국립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