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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복을 향한 남다른 시선

MEN

에르메스 남성 컬렉션 특유의 창의성, 품격 그리고 절제미를 재확인한 시간! 반전과 대비를 테마로 2017년 F/W 시즌 레디투웨어와 액세서리를 공개한 행사 ‘맨 업사이드 다운(Men Upside Down)’이 지난 9월 23일 홍콩의 밤을 훤히 밝혔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모터사이클과 함께 연출한 장면.

지난 1월, 파리의 맨즈 패션 위크에서 마주한 에르메스의 2017년 F/W 컬렉션 런웨이 쇼. 늘 그랬지만 지난 30년간 에르메스에 몸담으며 이들의 남성 컬렉션을 책임져온 아티스틱 디렉터 베로니크 니샤니앙(Veronique Nichanian)의 기치는 여전했다. 편안하고 에너지 넘치는 다양한 형태의 실루엣이 런웨이를 수놓았고, 네이비·그레이·블랙·녹청·버건디 등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는 이들이 추구하는 남성성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의 장기인 가방, 스카프, 슈즈 등 다채로운 액세서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남성들의 이상적인 모습을 멋지게 그려냈다. ‘과연 에르메스!’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말이다.

1 슈즈로 랠리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 온 더 로드(On the Road) 섹션은 관람객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2 백, 가죽 소품 등 고도의 장인 기법을 시연한 맨 앳 워크(Men at Work) 섹션.   3 컬렉션 런웨이 쇼의 피날레.   4 백스테이지 전경. 이번 시즌에는 아이코닉한 오트 아 끄루아 백을 펠트 소재로 새롭게 선보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추위가 찾아오기 전, 에르메스의 이번 시즌 남성 컬렉션을 다시 한번 제대로 접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9월 23일에 홍콩의 옛 공항터에서 열린 ‘맨 업사이드 다운’ 행사가 바로 그것. 그곳은 현재 크루즈 여객선이 오가는 터미널로 용도가 바뀌었지만, 새 공항이 건설되기 전 홍콩의 하늘을 책임지던 장소로 홍콩섬의 ‘끝내주는’ 스카이라인을 감상하기 좋은 요새이기도 하다(아쉽게도 관광객이 흔히 찾는 장소는 아니다). 가을로 접어든 9월의 끝자락, 남중국해의 덥고 습한 해풍은 홍콩의 밤을 여전히 잠식했지만 그래서인지 몰라도 행사에 대한 기대는 더위와 함께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행사는 크게 2개 섹션으로 나뉘어 열렸다. 하나는 파리의 컬렉션 런웨이 쇼 재현, 다른 하나는 이들이 선보이는 레디투웨어와 액세서리 컬렉션을 본행사의 메인 테마인 ‘맨 업사이드 다운’에 걸맞게 배치한 전시 관람이다. 업사이드 다운. ‘뒤바뀌고 뒤집힌’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이 어구는 반전, 대비, 비대칭, 서로 다른 관점 사이의 유희 등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다채로운 미학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홍콩에 어둠이 짙게 깔리고, 전 세계에서 이곳을 찾은 취재진과 VIP 고객이 자리를 가득 메우자 마침내 런웨이 쇼가 시작됐다. 파리 출신의 인디록 밴드 캠프 클라우드(Camp Claude)의 선율을 타고 앞서 언급한, 이번 시즌의 다채로운 실루엣과 컬러 팔레트로 무장한 모델들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총 46개의 룩. 허리에 무심한 듯 벨트를 질끈 묶은 코트, 벨벳과 가죽의 조합이 환상적인 블루종, 칼라 부분에 시어링 양털을 더한 벨벳 소재 트렌치코트와 짙은 와인 향이 코끝을 스치는 듯한 버건디 컬러 더블 브레스트 코트 룩은 물론 벌키한 터틀넥과 루스 피트 팬츠의 조화, 중후한 매력을 겸비한 하운즈투스 체크 니트와 코트, 여기에 더해 보드라운 가죽 소재 사파리 재킷과 코듀로이 팬츠와의 만남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쉽게 시선을 뗄 수 없는 다채로운 매력으로 무장한 모델들의 런웨이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5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 레츠 플레이(Let’s Play) 섹션.   6 메트로놈에 타이를 연결해 시시각각 움직이는 타이를 표현한 타이(임) 바.   7 아티스틱 디렉터 베로니크 니샤니앙과 런웨이에 오른 각계각층의 인물들.   8 ‘뒤바뀌고 뒤집힌’이라는 이번 행사의 취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특히 이번 시즌에는 겨울을 대표하는 코듀로이와 벨벳을 대거 사용했는데, 이는 베로니크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재로 에르메스의 대표적 컬러 팔레트와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물론 이들이 ‘제일 잘 다루는 소재’ 가죽은 의상 곳곳에 포진해 컬렉션을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다양한 드로잉 프린트를 코트, 풀오버, 재킷에 새겼고 일본 디자이너 노무라 다이스케(Daisuke Nomura)가 디자인한 거미 모양 로봇 패턴이 스카프와 셔츠, 니트를 장식하며 룩에 활력을 더했다. 그런데 파리의 쇼와는 달리 길쭉한 모델들 사이로 보통 체격의 남자 여럿이 에르메스의 룩을 입고 등장했다. 바로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이름을 알린 인플루언서와 VIP 고객들이 모델 역할을 자처한 것! 배우, 영화감독, 파일럿, 큐레이터, 매체 편집장, 운동선수, 기업가 등 다양한 직종에 몸담은 인물들이 모델 사이로 당당하게 걸어 나오자 관객들의 엄청난 환호와 함께 런웨이는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런웨이가 아닌 리얼웨이에서 에르메스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보통’ 남자들의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모습이라고 하면 좋을까. 참고로 에르메스는 파리에서 열린 쇼를 재현하는 리쇼(re-show)를 특정 도시에서 개최할 경우 현지 사람들을 런웨이 쇼에 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남성복에만 해당). 이는 다양한 유형의 남성이 에르메스의 옷을 입는다는 전제하에 디자인하는 아티스틱 디렉터의 생각을 반영한 결과다. 진중한 컬렉션에 재미까지 더한 런웨이 쇼가 막을 내리자 관객들은 에르메스가 마련한 다른 장소로 옮겨갔다. ‘업사이드 다운’을 주제로 마련한 전시 공간. 오감 그 이상을 자극하며 다채로운 유희를 펼쳐내기 좋은 곳이다. 탁 트인 공간을 여러 섹션으로 나눈 그곳에는 이번 시즌 에르메스를 대표하는 재킷과 백, 타이, 스카프, 슈즈 등을 다양한 테마에 따라 진열했는데, 각종 오브제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이 매우 흥미로웠다. 조명, 계단, 문, 창문 등이 생각지 못한 곳에 위치하며 착시 효과를 이끌어냈고 뒤바뀌고 뒤집힌 공간 사이에서 남성 컬렉션이 절묘하게 융화되는 모습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 특히 개라지를 연상시키는 오렌지 컬러 전시 공간에는 모터사이클 한 대가 거꾸로 매달려 있어 사람들은 마치 묘기를 부리듯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남겼고, 미니어처 레이싱 서킷을 구현한 ‘온 더 로드’ 섹션에서는 이들이 선보이는 새 슈즈 컬렉션에 모터를 달아 자동차 경주를 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해 관람객의 이목을 모았다. 천장에 거대한 거울을 달아 끝없이 넓어 보이는 바, 메트로놈에 타이를 연결해 시시각각 움직이는 타이를 표현한 ‘타이(임) 바(Ti(m)e Bar)’도 놓칠 수 없는 광경. 그뿐 아니라 볼드한 프레임에 가둔 12벌의 재킷은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소재와 실루엣의 조화 혹은 대비의 아름다움, 그리고 장인정신을 목도할 수 있는 좋은 풍경이었다. 이제부터는 파티 타임! 행사장을 찾은 2000여 명의 관객은 홍콩의 밤바다를 마주하며 축제의 열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런웨이 쇼의 훌륭한 배경음악을 책임진 캠프 클라우드가 직접 무대에 오르자 그 열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방식으로 남성복 세계를 표현할 줄 하는 에르메스. 이번 시즌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9 노무라 다이스케가 디자인한 스파이더 로봇 패턴의 캐시미어·실크 혼방 소재 스카프.

SPECIAL TALK WITH VÉRONIQUE NICHANIAN, ARTISTIC DIRECTOR OF HERMÈS HOMME
지난 30년간 에르메스 남성복을 이끌어온 아티스틱 디렉터 베로니크 니샤니앙과 나눈 이번 행사와 남성 컬렉션에 대한 진중한 이야기.

이번 행사를 홍콩에서, 그것도 남다른 공간인 옛 공항터에서 진행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한국으로 초대를 안 해줘서 그렇다.(웃음) 한국에서 정말 뭔가 해보고 싶다. 아마 내년쯤엔 가능하지 않을까? 본론으로 돌아가 홍콩을 선택한 건 이번 행사의 주제인 ‘맨 업사이드 다운’과 잘 어울리는 도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행사가 열린 장소는 이번 테마를 충분히 펼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공간을 자랑한다. 게다가 이곳은 예전에 공항이었고 지금은 항구(터미널)로 사용하는데, 같은 옷이라도 어떻게 매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 다른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보면 좋을까? 여기에 더해, 행사를 준비할 때마다 다음 행사를 개최할 나라와 도시를 생각하는데 지난봄 LA에서 열린 맨즈 유니버스 행사 이후 홍콩이 막연하게 떠오른 것도 크게 작용했다. 한국에서 에르메스의 맨즈 유니버스 행사를 하게 된다면 적당한 장소를 소개해줄 수 있나? 중요한 것은 넓어야 한다! 상업적 쇼가 아니라 에르메스 남성복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장소였으면 한다.

2017년 F/W 컬렉션의 주목할 만한 특징 몇 가지를 짚어달라. 지난 S/S 시즌을 잇는 컬렉션이다. 계속해서 남자의 옷장을 구성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하면 좋을까? 각각의 컬렉션은 이전의 테마를 이어받아 더욱 발전해나간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시즌별 컬렉션보다는 에르메스 남성복 전체를 관통하는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그럼에도 이번 시즌에 중점을 둔 것은 비례(proportion), 그리고 서로 다른 소재의 결합. 루스 피트의 팬츠와 짧은 재킷의 만남이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에르메스의 가장 중요한 소재 가죽 외에도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벨벳과 코듀로이의 매력을 이번 시즌에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그린, 버건디, 네이비 등 어두운 컬러 팔레트와 노무라 다이스케가 디자인한 스파이더 로봇 패턴을 더해 컬렉션의 완성도를 높였다.

에르메스의 2017년 F/W 컬렉션은 하이엔드와 스트리트의 협업이 만연한 패션의 트렌드에 초연한 것 같다. 스트리트 패션과 하이엔드 스타일을 버무리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디자인하는 옷은 이상적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하며 즐길 수 있는 실용성이 특징이다. 내년 S/S 컬렉션에서 이런 트렌드는 더욱 눈에 띄는데 이것이 리얼웨이에서 옷을 입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에르메스는 항상 혁신을 추구하는 동시에 전통적 남성복의 기본을 충실히 따른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즉 혁신적 장인정신. 아주 기능적인, 그러니까 일상에서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는 캐주얼하고 스포티한 룩에 캐시미어 같은 고급스러운 소재를 적용하는 것. 테일러링이 완벽한 코트에 스니커즈를 매치하는 것도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이질적인 것을 믹스 매치함으로써 얻는 시너지는 실로 대단하다. 물론 스트리트와 스포티 룩을 만들 때도 품질에 엄청나게 신경 쓰는데 나는 아주 까다로운 기준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웃음)

당신이 생각하는 에르메스의 이상적인 남성상은 어떤 모습인가? 정형화된 에르메스 남성상은 없다. 나는 에르메스에 어울리는 특정 인물이나 신체 유형을 염두에 두고 옷을 디자인하지 않는다. 이는 곧 다양한 에르메스 남성상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번 런웨이 쇼에 전문 모델 외에 일반인 여럿을 모델로 세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기도 하지만 무척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30년간 에르메스의 남성복 컬렉션을 이끌어왔다.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열정과 호기심! 옷을 디자인하는 건 마치 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여행을 하면 많은 아이디어가 샘솟고 좋은 기운을 받지 않는가. 그런 마음으로 이 일을 오랫동안 해온 것 같다. 그래서 실제로 여행을 많이 다니는데, 특히 도쿄·파리·뉴욕 같은 대도시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얻는다. 다양한 전시회와 박물관을 찾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서울은 10년 전쯤 찾은 기억이 있는데, 조만간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에디터 이현상(ryan.lee@noblesse.com)
사진 제공 에르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