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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그리고 가방

FASHION

여자들이 백에 집착한다고 해서 가방이 오롯이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 그들도 가방이 필요하다. 익숙하지만 낯설고, 친숙하지만 논해본 적 없는 그의 가방에는 역사가 있다.

 

‘백스테이지展 by 0914’의 두 번째 에피소드 . 3개월 전 <노블레스> 11월호에 게재한 백스테이지展 by 0914의 첫 번째 스토리 , 여성과 가방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풀어쓴 기사를 읽고 전시를 관람한 이라면 남자와 가방을 연결 짓는 것이 아이러니다. 당시에는 정신분석학자들이 가방을 여자의 신체 일부에 빗대어 여성들이 가방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한 당위성을 강조했다. 게다가 남자들이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남성성의 발현이요, 가방 없이 다니길 좋아하는 여성의 무의식에는 보다 많은 남성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자에게 가방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남자와 가방이라니! 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는 남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의 이충걸 편집장이 그의 관점(His Story)에서 가방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한 번쯤 그의 글을 읽어본 이라면 짐작했을 테지만 평범한 일상을 기발한 수식 관계로 엮어 기 막힌 삶으로 탈바꿈시키는, 소위 찬탄할 만한 글발 내공자다. 게다가 비주얼 보는 안목은 어떤가. 오랫동안 예의, 우아, 기품 등의 단어와 함께 타인의 삶을 조련해온 이답게 세련됨을 향한 강박은 무모하리만큼 투철하다. 이렇듯 이름만으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그가 이번 전시를 위해 자신이 가진 가방을 촬영하고 에세이를 썼으며 영상 작가, 설치 작가와 함께 전시 디렉팅을 담당했다. 전시장에 디스플레이한 액자나 소품도 모두 잡지를 레이아웃하듯 대칭, 비례, 변화를 계산해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 전시는 이충걸 편집장이 만든 또 하나의 가방에 대한 문화 잡지다. 관람료도 무료여서 챙겨 본다고 해서 손해날 것 없는.

전시는 3가지 형식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자신이 선물 받은 많은 가방을 촬영하고 각기 다른 모양과 소재의 가방에 깃든 비하인드 스토리를 조목조목 기술해 개인과 타자가 맺고 있는 관계를 조명하며, 두 번째는 이충걸 편집장의 트위터(@iwillbebag)에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는 가방에 관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 편린을 전시장 벽면에 설치한 PDP 모니터로 보여주는 작업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에 대해 은유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빔 프로젝터로 마틴 루서 킹부터 비틀스까지, 정치가와 셀레브러티처럼 철저하게 사회화된 유명인이 가방을 든 모습을 투사해 ‘그들은 왜 그 순간 저 가방을 들었을까’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첫 번째다. 사실 처음엔 1회 차 전시, <여자의 가방>에서 사진작가 홍종우가 설명한 ‘가방은 지나온 과정을 담는다’와 무슨 차이가 있나?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홍종우는 백 깊은 곳에서 주인이 미처 자각하지 못한 단서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 과정을 통해 힐링의 효과를 누린 반면 이충걸은 “가방을 여는 순간, 그 어둡고 폐쇄된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거야”, “가방은 든 사람과 함께 나이를 먹지, 그건 자신만의 이데올로기거든. 하지만 가방에는 엄숙한 뭔가가 있어. 원래부터 엄숙한 뭔가가” 등 사진과 글을 통해 개인적인 생각을 쏟아낸다. 경험에서 우러난 지극히 사적인 사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시자의 소유물을 내가 본다는 행위, 직접 듣지 않고서는 사연을 알 수 없는 오브제에 대한 시선의 목적을 텍스트가 알려주는데, 2차원적 행위는 마치 귓가에서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듯 생생해 3차원적인 효과가 난다. 물론 머릿속 한편에서는, ‘남자에게 이렇게 많은 가방이 필요했나? 지우개처럼 더 이상 못쓰게 되면 구입하는 소모품인 줄 알았는데, 내 남자친구 혹은 남편이 이렇게 많은 가방을 가지고 싶어 한다면? 여자들이 브랜드에 열을 올린다면 남자들이 신봉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큰 가방을 멘다는 건 당나귀가 무거운 짐을 지듯 사회가 남성에게 요구하는 막중한 책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좋아하는 남성용 가방 디자인은?’ 같은 물음이 아우성치지만 문득 전시 제목처럼, 사진 속 가방과 함께한 날들이 편집장의 삶이자 역사고, 이를 바로 보는 나의 행위 역시 시간 속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무의식 속 인과관계와는 무관하게 “그건 남자의 물건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컨테이너이자 구두처럼 주인의 개인사를 드러내는 청진기니까”라는 문구처럼, 가방은 물건을 운반하는 운반체로 남자의 생활에 뿌리내려 여성의 백과는 또 다른 묵직한 의미로 움트고 있다고 할까. 어찌 됐건 그들에게도 필수품인 셈이다. 게다가 현대는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원주의 사회가 아닌가. 역사란 것이 꼭 위인전 속 위인들처럼 ‘거대한 목적을 동반할 의무’를 수반할 필요는 없다. 되레 공식화되지 않은 개개인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다수의 대중이 알지 못하는 소소한 일상을 훔쳐보는 관음증처럼 상쾌한 쾌감을 선사한다. 여자인 내가 남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란 불가능한 일이니 더욱더.

‘백스테이지展 by 0914’ 전시의 기획자이자 명품 핸드백 제조 기업 시몬느의 박은관 회장. 남자인 그는 가방은 무척 흥미로운 물건이라고 정의한다. 설령 없다고 해도 인간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의식주 밖의 것이지만 누구나 이를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요상하단다. 16만 개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매년 셀 수 없이 많은 모양의 가방을 창조하는 그에게도 가방은 여전히 심리적 정복 대상이자 호기심의 원천인 셈. 사실 가방은 누구나 외관을 볼 수 있으므로 모두에게 열린 구조지만 내부는 철저하게 감춰져 있어 모른다. 우리는 끊임없이 분석하고 정의하려 하지만 정답은 없다. 단지 자신만의 시선으로 이해할 뿐이다. 하지만 이렇듯 개인의 내면, 일상, 정체성으로 해석하는 과정이 우리의 ‘History’가 되는 것이다.

전시 기간ㅣ 1월 7일~ 3월 30일
전시 장소ㅣ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백스테이지 지하 2층 0914 갤러리

‘백스테이지展 by 0914’는 명품 핸드백 제조 기업 시몬느의 새로운 핸드백 브랜드 ‘0914’의 본격적인 런칭을 위해 2013년 10월부터 2015년 9월까지 2년간 모두 9회에 걸쳐 회화, 설치, 사진, 디자인, 음악, 문학 같은 예술뿐 아니라 심리학자, 수학자, 언론인 등과 협업해 다양한 시각으로 가방을 조명하는 릴레이 전시 프로젝트다.
에피소드마다 전시 작가와 함께하는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는데 편에서는 2월 17일 개그맨 김영철의 진행으로 이충걸 편집장과 함께 ‘가방’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전시를 통해 소개한 트위터의 오프라인 버전인 셈이다. 참석자는 0914 페이스북(www.facebook.com/genuine0914) 이벤트를 통해 선정할 예정. 감성적인 남자의 세밀하고 복잡한 감정이 실린 생생한 목소리를 만나는 특별한 경험이 될 터이니 관심있는 이라면 지금 바로 페이스북에 접속해보자.

에디터 서재희 (jay@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