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건축가, 낯익은 풍경
올여름 런던 아트 신의 핫이슈는 ‘건축’. 영국 동시대 미술의 챕터를 새로 쓰는 주인공을 소개한다.
Photo by Iwan Baan

Photo by Jim Stephenson

Photo by Jim Stephenson
올해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스페인 건축가 듀오 셀가스카노가 맡았다. 거대한 유기체 형태에 빛을 투과하는 건축자재를 사용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테이트에서 주관하는 터너상이 올해도 화제다. 건축 디자인 그룹이 처음으로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화제의 주인공인 어셈블(Assemble)은 18명의 30대 건축가와 예술가가 함께 활동 중이며, 건축가 자격을 얻기 위해 트레이닝을 받는 멤버도 있다.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 경제적 소재를 사용한 디자인, 다양한 장르와의 폭넓은 교류가 어셈블이 작업한 프로젝트의 특징이다. 버려진 주유소를 극장으로 개조한 ‘The Cineroleum’, 우범 지역인 고속도로 다리 밑을 문화 공간으로 만든 ‘Folly for a Flyover’, 제당소 일대의 건물을 예술가의 작업장으로 탈바꿈한 ‘Yardhouse’,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변화하는 진행형 놀이터 ‘Baltic Street Adventure Playground’ 등이 대표작이다. 최근에는 골드스미스 대학교의 갤러리 디자인 공모전에 당선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영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건축 디자인 그룹이 된 셈이다.
어셈블은 리버풀의 한 커뮤니티와 진행한 프로젝트로 터너상 후보에 올랐다. 한때 세계적 항구도시로 번성한 리버풀은 20세기 초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몰락했고, 대량 실업과 가난으로 많은 도시 문제가 발생했다. 이후 정부와 민간이 함께한 도시 재건 프로젝트로 리버풀은 2008년 ‘유럽 문화 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 ECOC)’로 선정될 만큼 활기찬 도시로 변신했지만, 아직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다. 그랜비 포 거리(Granby Four Streets)도 골칫거리 취급을 받는 낙후한 거리다. 도시 주민은 그 거리를 살리기 위해 커뮤니티를 만들고 건축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투자가치가 떨어지는 그 거리의 재생 계획을 쉽게 수용한 건축가는 없었다. 어셈블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유일한 건축가였다. 거주자가 떠난 빈집을 실내 정원으로 만들고 지역 예술가와 함께 낡은 집을 수리했다. 악조건을 적극적으로 돌파하는 자유롭고 색다른 아이디어로 주민에게 또 다른 ‘삶’을 디자인해준 것이다.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어셈블. 그들이 터너상 후보로 지명되자 영국의 문화 예술계는 반대보다 환영의 제스처를 보냈다. 수상 여부를 떠나 건축 디자인 그룹이 터너상 후보에 처음 오른 ‘사건’을 계기로 영국 동시대 미술이 한 단계 진일보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어셈블이 런던 클러큰웰의 버려진 주유소를 공공 문화 장소로 변신시킨 프로젝트 ‘The Cineroleum’ 전경
ⓒ Assemble, Photo by Zander Olsen

데이미언 허스트가 운영하는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 전경
ⓒ Kioyar Ltd, Photo by Yuki Shima

18명의 30대 건축가와 예술가로 구성된 어셈블 멤버
ⓒ Assemble
일상에 스민 건축
또 다른 건축 예술 프로젝트도 런던의 여름을 달궜다. 지난 6월 25일, 15회를 맞은 서펜타인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일반 대중에게 공개한 것.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뛰어넘은 프로젝트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무엇보다 런던의 여름은 15년 동안 서펜타인 파빌리온 프로젝트와 따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건축과 예술이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다. 올해는 건축가 듀오 셀가스카노(SelgasCano)가 파빌리온을 맡았다.
1965년생 동갑내기 건축가인 호세 셀가스(Jose Selgas)와 루시아 카노(Lucia Cano)는 1998년 스페인 마드리드에 셀가스카노를 설립했다. 그들이 진행한 건축 프로젝트는 남유럽 특유의 밝은 색상이 돋보이며 일반 건축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오거닉 형태를 띤다. 건축자재 역시 실험적인 소재를 사용한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에서도 셀가스카노 건축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도시를 따라 흐르는 듯한 런던 사람들의 동선에서 영감을 받은 그들은 그간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제작한 선배 건축가와 작가에 대한 오마주도 함께 담아냈다. 파빌리온은 입구라고 정의할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다. 빛이 투과하는 건축자재 ETFE와 불투명 소재 오페이크를 사용해 신비롭게 빛나는 거대한 유기체 형태를 완성했다. 그들은 파빌리온이 건축이냐, 예술이냐 따지는 지루한 논쟁 대신 이곳을 찾은 관람객에게 환상적인 무지갯빛 경험을 선사했다. 재료와 색과 형태, 빛과 그림자, 그 안에 들어갔을 때의 감정 변화. 이것이 곧 셀가스카노가 파빌리온을 통해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파빌리온 전시는 10월 18일까지 계속된다.
슈퍼스타가 차린 갤러리
오는 10월, 데이미언 허스트가 운영하는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Newport Street Gallery)가 마침내 문을 연다. 허스트는 2012년 3000점이 넘는 개인 소장품과 자신의 작품을 대중과 함께 나누고 싶다며 갤러리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세상을 들썩이게 한 발표 이후 3년 만에 갤러리가 베일을 벗는다. 램버스 다리 근처 극장 창고로 쓰던 블록을 갤러리로 개조해 6개의 전시 공간과 숍, 레스토랑을 마련했다. 데이미언 허스트가 ‘yBa’의 등장을 알리며 영국 동시대 미술의 판도를 바꾼 기념비적 전시로 평가받는 <프리즈(Freeze)>를 기획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허스트가 이곳에서 선보일 개인전과 기획전을 통해 그의 큐레이팅 실력을 다시금 확인하게 될 것이다. 개막전의 주인공은 영국 추상화가 존 호일랜드(John Hoyland)로 결정했다. 2011년 작고한 그는 영국 추상미술을 이끈 대표 작가로 허스트와 막역한 사이였다. 허스트의 소장품 중 존 호일랜드가 1964년부터 1982년까지 제작한 작품을 모아 ‘Power Stations’라는 제목으로 소개한다. 입장은 무료, 전시는 10월 8일부터 2016년 4월 3일까지다.
문의www.newportstreetgallery.com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글 양혜숙(기호리서처) 사진 제공 테이트, 서펜타인 갤러리,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