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예뻤을 때
분가루처럼 햇빛이 휘날리는 봄, 한 인간이 눈부시게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 성장소설 세 권.

독서가라면 한 번쯤 이런 일을 겪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소설을 발견해 종일 그것만 떠올린 경험. 하지만 그것이 시리즈물의 첫 번째 책이라면? 이는 <나의 눈부신 친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름도, 나이도, 국적도 알려지지 않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인 <나의 눈부신 친구>. 1950년대 이탈리아 나폴리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나폴리 4부작’은 릴라와 레누 두 여성의 60여 년에 걸친 우정에 이탈리아의 현대사를 녹인 작품이다. 릴라와 레누는 서로 아끼는 친구다. 함께 놀고 공부한다. 하지만 늘 함께할 것 같던 둘도 갈림길 위에 선다. 바로 상급 학교로의 진학. 둘 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상급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지만, 레누의 부모는 딸이 공부를 계속하기를 바라고 릴라의 부모는 딸이 학업을 중단하는 걸 택한다. 그러면서 둘 사이엔 모르던 벽이 생긴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 하지만 이 작품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 주변에 한두 명은 있을 법한 캐릭터가 나오기 때문. 소설은 그들의 우울과 상실보단 그것을 하나씩 이겨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두 인물의 대조적인 면을 극대화하고, 그 사이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그린다. 매일매일의 경험이 다 처음이던 시절, 난폭하기도 하고 불친절하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아름답고 따뜻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 ‘그 시절’을 다시 소환해 내가 지금 얼마나 잘 자랐는지 상기하고 싶은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사라바>는 주인공 아유무가 세상에 태어나 37세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긴 호흡으로 그린 작품이다. 아유무는 어린 시절 멋진 외모와 매력으로 사랑받은 남자. 하지만 해외에서 일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이란과 이집트 등지에서 학교를 다니다 일본에 돌아온 후엔 계속되는 실패를 맛본다. 작품 제목 ‘사라바’는 아유무가 위기에 처하거나 좋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주문처럼 던지는 외침이다. 이집트어 사라바는 ‘안녕’, ‘행운을 빈다’는 의미. 아유무는 이 단어를 중얼거리며 평온을 찾는데 이는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이다. 대충 보면 그냥 한 남자의 성장기구나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단 두 권의 책에 일본 버블 경제 전후의 모습과 그 버블 경제를 통과하는 청년, 정상이라곤 볼 수 없는 그의 가족과 그 안에서의 생활 등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 있다. 간단히 말해 한 인간의 ‘정신적 성장소설’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 책은 너무나 많은 시선과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말한다. 자신의 본모습을 잃지 말고 타인에게 절대 휘둘리지 말라고.
프랑스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50대 남자가 지난 삶을 돌아보는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은 유명 영화 평론가이자 소설가 알랭 레몽의 자서전 성격을 띤 성장소설이다. 유년의 추억이 담긴 집이 팔려 더는 내 집이 아닌 걸 알게 됐을 때, 그 시절의 감성으로 다신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더는 부모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주는 절망 등을 그린다. 너무 우울하지 않으냐고? 아니, 차라리 찬란하다. 나이가 들며 영원하리라 생각한 그 시절의 기억과 장소가 사라지고,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아픔 속에서 성숙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담히 그리기 때문이다. 왜 사람은 사랑하는 모든 것과 작별해야 할까? 왜 모든 것은 허물어지는 걸까? 왜 모든 것은 사라지는 걸까? 만약 단 한 번이라도 이런 질문을 해본 이라면 이 책을 필독하길 바란다. 여담으로 이 책은 프랑스에서 2000년에 출판됐다. 당시 50대 초반이던 작가는 현재 칠순을 넘긴 나이다. 아마 지금 예전의 그 시절을 회상하면 또 다른 기분일 거다. 삶은 이렇게 흘러가는 게 아닐까 싶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