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지 잊지 않으려면
핫한 공간에는 핫한 인물이 있다. 아트 바젤 홍콩, 엠플러스(M+) 등으로 현대미술계에서 전례 없는 주목을 받고 있는 홍콩. 이곳의 신선한 열기를 대변하는 작가가 있다. 홍콩을 대표하는 젊은 작곡가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샘슨 영이다.

2017 베니스 비엔날레 홍콩관 대표 작가인 샘슨 영
샘슨 영
2015년 BMW 아트 저니 어워드(BMW Art Journey Award)의 첫 번째 수상자로 선정된 후 이듬해에 아트 바젤의 아트 언리미티드(Art Unlimited) 작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그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홍콩 파빌리온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되어 최고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한 그는 작품에 늘 사운드를 사용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소리, 인터랙티브, 사회, 전쟁, 체계 등의 소재가 연계된 그의 작품 세계는 홍콩을 포함한 아시아와 세계를 잇는 무언가를 제시한다.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에서 선보인 개인전 〈A Dark Theme Keeps Me Here, I Will Make a Broken Music〉설치 전경, 2017
Courtesy of Gallerie Giesla Capitain, Kunsthalle Dusseldorf Photo by Simon Vogel, Cologne and Katja Illner

아트 바젤의 ‘아트 언리미티드 2016’에서 선보인 ‘Canon’ 설치 전경, Installation(3D Printed Water Basin, Custom-Designed Bench, Sound Track, Stamped Text on Wall, Wired Fencing), 2016
Courtesy of Gallerie Giesla Capitain, Team Gallery Photo by Simon Vogel, Cologne
안녕하세요. 현재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Kunsthalle Dusseldorf)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뒤셀도르프에서는 첫 개인전인데, 전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우선 전시명은 ‘어두운 주제가 나를 여기에 있게 한다. 나는 파괴적인 음악을 만들 것이다(A dark theme keeps me here, I will make a broken music)’입니다. 지난 3년간 제작한 작품과 전시를 위해 새로 작업한 ‘음소거된 상황(Muted Situations)’ 연작을 선보이고 있죠.
작년에 아트 바젤 아트 언리미티드 섹션에서 선보인 ‘캐넌(Canon)’(2016년)에 대해 얘기해보죠. 작품을 두 공간으로 나누어 구성한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갑자기 들리는 낯선 소리에 관람자는 ‘어떤 소리인지’, ‘어디에서 나오는 소리인지’ 확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했죠. 저도 그 소리를 듣자마자 높은 망루 같은 하얀색 기둥을 올려다봤어요. 인간이 내는 가짜 새소리는 거기서 나오더군요. 다른 작가들의 공간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서 새로운 작품을 감상한 뒤 같은 공간에서 1층 전시장을 바라보게 한 구성 덕분에 전시가 더 빛났어요. 프로젝트의 아이디어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제 작품은 상호 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 과부하된 상태처럼 종종 의미가 복잡하게 엉킵니다. 마치지 속적으로 확장되고 싶지 않은, 안전하게 착지하고 싶지 않은 마인드 맵과 같죠.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음향 대포인 장거리 음향 장치(LRAD)가 발견되는 지점입니다. 음을 발사하는 지점과 그 음을 듣는 지점 사이에 거리를 두는 아이디어는 이 작품의 구상 단계에 떠올린 겁니다. 하지만 실행 단계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아트 언리미티드라는 행사의 성격 자체와 전시 장소가 지닌 고유한 문제에 봉착한 거죠. 결국 저는 지면보다 높은 장소를 택했습니다.
전시장에서 장치를 통해 들리는 새소리는 굉장히 이상하고 불편했어요. 관람객은 높은 기둥 위에 설치한 시저리프트에 서 있는 제복 차림의 사나이(가 작가인지 아마 관람객 대부분은 몰랐을 겁니다)가 내는 가짜 새소리가 LRAD를 통해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 더욱 불편했을 거예요. 새소리가 갖는 메타포는 무엇인가요?
새는 이 작품에서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핵심적 은유입니다. 저는 작품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 몇몇 새소리에 빠져들었습니다. 새들의 아름다움, 소리를 모방하는 방법, 복합성과 언어에 대한 인식 및 실제 언어와의 관계를 파악했습니다. LRAD를 기반으로 한 기술을 살펴보면 가장 일반적으로 실생활에 적용하는 경우가 공항 활주로나 원자력발전소에서 새를 쫓기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새를 멀리 쫓아내기 위해, 고통받는 새소리를 녹음해 새들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발사합니다. 좀 아이러니한 일이죠.

〈A Dark Theme Keeps Me Here, I will Make a Broken Music〉전시 전경. 이 전시는 작가가 지난 3년간 제작한 작품들로 선보이고 있다.
Courtesy of Gallerie Giesla Capitain, Kunsthalle Dusseldorf Photo by Simon Vogel, Cologne and Katja Illner

〈A Dark Theme Keeps Me Here, I Will Make A Broken Music〉설치 전경, 2017
Courtesy of Gallerie Giesla Capitain, Kunsthalle Dusseldorf Photo by Simon Vogel, Cologne and Katja Illner
시간을 거슬러 작품 활동 초기로 돌아가보죠.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작곡가’라는 배경을 자주 언급하시던데, 음대생이던 당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예상하셨나요?
전 여전히 작곡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니 음악을 떠난 건 아니죠. 하지만 전형적인 작곡가의 길로 곧장 직진하고 있던 상황에서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가 되기까지 과정은 꽤 복잡합니다. 호주 시드니에서 학부 과정을 마친 후 저는 홍콩으로 돌아와 일하면서 몇몇 뉴미디어 아티스트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아티스트 그룹을 만들어 작품 활동을 했죠. 그 그룹에서 저는 ‘음악을 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서로 역할을 바꾸었고, 전 비디오를 만들기 시작했죠. 이후 제가 좋아서 하게 된 일련의 작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몇 년 후 다시 홍을콩 떠나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만난 그룹 멤버들과 헤어졌고, 저는 새로운 멤버를 찾기보다 혼자 작업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했어요. 전 어쨌든 누군가와 함께 일하기 편한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거기서부터 조금씩 방향을 선회하게 된 것 같습니다. 비디오 작품이 필요하면 바로 가서 비디오 편집 방법을 배웠습니다. 뇌파 센서를 이용한 작품을 만들 필요가 있으면 바로 가서 어떻게 전자 기기를 연결하고 프로그래밍해야 하는지 배웠죠.
초기작인 ‘iPhone Orchestra’(2010년) 프로젝트도 흥미로웠습니다. 당시 장면을 담은 비디오 클립을 보니 저도 참여하고 싶더라고요. 당시의 경험을 듣고 싶어요.
참가자는 오픈 콜을 통해 모집했어요. 누가 퍼포먼스를 주재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참가자를 얻게 될 수 있습니다.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와일드 카드인 셈이죠. 물론 일부는 친구거나 또는 친구의 친구였습니다. 저는 참가자들도 즐거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정말 중요한 부분이죠. 하지만 더불어 이 프로젝트는 밴드에 속한 음악가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크게 생각하지 않던 뮤지션들의 의식을 고양시키고 그들에게 힘을 더해주었다고 생각해요. 이 퍼포먼스의 의미를 과장하고 싶지는 않아요. 어쩌면 아이들이 학예회에 참여했을 때 느끼는 만족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 프로젝트는 또한 주거 공동체의 형성과 해체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하나같이 사소하지 않은, 중요한 것들이죠. 앙상블 음악을 만드는 것은 혼자 연주하거나 연습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거예요. 그룹 음악을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아트 언리미티드 2016’에서 선보인 ‘Canon’은 관람객의 적극적인 이동을 유도한다. Sound Performance(for one Performer with Audio Interface, Laptop. Long Range Acoustic Device(LRAD), Microphone), 2016
Courtesy of Gallerie Giesla Capitain, Team Gallery Photo by Simon Vogel, Cologne
2014년 한국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단체전에도 참가했습니다. 홍콩의 전시 기관인 패러-사이트(Para-site의) 전시를 가져온 것인데, ‘역병의 길(The Road of Plagues)’이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했습니다. 당신의 작품 ‘흐르는국경(Liquid Border)’(2012년)도 인상적이었고요.
‘흐르는 국경’은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저는 현장 작업과 현장 녹음을 일종의 필사본으로 사운드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도 이 단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죠.
당신은 BMW 아트 저니 어워드의 첫 수상자로 2015년부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갈등에 대한 소리의 역사로의 여행(For Whom the Bell Tolls: A Journey into the Sonic Histroy of Conflict)’ 프로젝트를 진행중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좀 더 쉽게 설명해주겠어요?
복잡한 질문에 간단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산업화 이전에 우리가 어떻게 시간과 공간을 표시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계가 보급되기 전에 우리는 때때로 종소리에 의존해 지금이 몇 시인지 가늠하며 살았죠. 하루와 1년, 주말과 일요일, 크리스마스와 장례식에도 모두 종소리가 들렸습니다. 종은 물리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형태에 집중하기도 하죠. 그러나 저는 소리가 실제로 퍼지는 방식과 소리가 생성되는 관계망에 좀 더 집중했습니다. 종을 한곳에 설치된 물리적인 사물로 인식하면서도 유동적이고 역동적인 것으로 판단했죠. 개인을 커뮤니티 안으로 끌어들이거나 밖으로 퍼뜨리면서, 커뮤니티와 끊임없이 연관시켜요. 이게 다 소리의 미덕입니다. 산업화 이전에 자연현상에 의한 소리를 뛰어넘어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무기와 종이었다는 것 또한 흥미롭습니다. 기계가 만들어지기까지 무기와 종만이 오직 큰 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거니까요.

〈A Dark Theme Keeps Me Here, I Will Make A Broken Music〉전시는 뒤셀도르프에서 갖는 첫 개인전이다.
Courtesy of Gallerie Giesla Capitain, Kunsthalle Dusseldorf Photo by Simon Vogel, Cologne and Katja Illner

1Studies for Pastoral Music(4 Guage Elephant Gun), Ink, Pencil, Watercolour on Paper, 18.5×27.5cm, 2015
Courtesy of the Artist
2Landschaft(on the Rooftop of a Medina Residential Building, Fez, Morocco, Sept 4 2015, 13-20- 14-05), Ink, Pencil, Watercolour on Paper, 18.6×27.5cm, 2015
Courtesy of the Artist
프로젝트는 이미 미얀마, 영국, 독일, 프랑스, 케냐, 모로코 등을 거쳤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요? 한국도 포함되어 있던데 한국에서는 언제, 어떤 작업을 할 계획이에요?
원래 서울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사찰에 있는 종을 보기 위해 방문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찰이 레노베이션 중이라 방문하지 못했어요. 이 종은 여전히 제가 기록해야 할 종 목록에 남아 있습니다. ‘누구를 위하 여종은 울리나’는 장기 프로젝트예요. 역사적으로 중요한 많은 종을 기록해야 합니다. 저 역시 이 프로젝트가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대단할 거예요.
현재 홍콩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하루 일과를 묘사해주시겠어요? 한편 홍콩 미술 인프라의 확장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홍콩은 M+ 프로젝트, 아트 바젤 홍콩 등의 성공적 운영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무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작가로서 홍콩이라는 지역이 지닌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제 하루는 지극히 일반적이에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 9시 30분에는 스튜디오에 도착합니다. 6시까지 그곳에 머물러요. 집에서는 거의 일하지 않습니다. 대개 프로젝트는 두 단계로 나뉩니다. 연구 단계는 많은 읽기와 글쓰기를 포함합니다. 다음은 제작 단계로, 드로잉을 하거나 작품을 제작하거나 스크린 프린트를 만들어요. 보통 이 두 단계는 서로 섞이지 않습니다. 다른 작업도 있는데, 주문받은 음악을 작곡할 때는 MIDI 키보드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 홍콩은 작업하기 좋은 환경이에요. 세계 어느 곳이든 쉽게 이동할 수 있는 항공편이 있고, 함께 일하고 싶은 굉장한 사람들이 모여 있죠. 모두 임대료에 대해 불평하고 있는 게 문제긴 하지만요. 현재는 그럭저럭 문제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아티스트 스튜디오 임대료는 어딜 가나 마찬가지니까요. 중요한 것은 음식과 제작 비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콩은 여전히 음식이 정말 싸요. 뉴욕이나 런던과는 상대가 안 되죠. 제작 비용도 이곳에서는 여전히 합리적이고 소요 시간이 매우 짧습니다. 막바지까지 계속 생각을 바꾸기 때문에 정말 도움이 됩니다.

‘소리’에 대해 고찰하는 작품. For Whom the Bell Tolls: A Journey into the Sonic History of Conflict, 2015~2016
Photo by Rekorder, Courtesy of BMW Art Journey

‘소리’에 대해 고찰하는 작품. For Whom the Bell Tolls: A Journey into the Sonic History of Conflict, 2015~2016
Photo by Rekorder, Courtesy of BMW Art Journey
당신은 작품에서 이주, 초국가주의, 정체성, 영토 같은 인류학적 관심과 음악이라는 관계의 시스템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으려면’이라는 글도 그러한 생각의 편린을 보여주죠 . 언제 작성한 것인가요? 특히 글의 마지막 문장인 “악마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지 않고 어떻게 그에게 대항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부분이 재미있습니다.
작년에 그 글을 썼지만, 제가 이미 이전에 다른 곳에 쓴 글과 기사에 나온 내용이기도 합니다. 전 정체성 정치학(identity politics)에 대해 이전에도 꽤 많은 글을 썼어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저도 잘 몰라요. 분명한 건 이 질문은 결국 제가 작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거죠.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홍콩 파빌리온 대표 작가가 되셨습니다. 축하드려요. 그 프로젝트에 대해 미리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안 돼요. 비밀입니다!(웃음)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글 류정화(전시 기획자) 사진 제공 샘슨 영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