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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 연출자

LIFESTYLE

대중이 원하는 모든 것이 짧은 동영상으로 바뀌었다고 단언하는 요즘, 서정적 내러티브로 이어가는 콘텐츠가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한 방송이 있다. JTBC 프로그램 <비긴 어게인>이다. 세 번째 시즌 방송을 앞둔 송광종 PD를 만났다.

“저는 음악을 잘 몰라요. 다른 음악 PD처럼 깊이 아는 것도 아니고요. 음악을 듣는 건 좋아하지만, 주로 출연자의 앨범을 들어요. 공부하는 것처럼 듣는 거죠. 그래서 좀 더 대중적 눈높이에서 끌어갈 수 있었을 거예요.” <비긴 어게인 3>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상암동. 지금 한국에서 가장 감성적 연출자라 평가받는 사람에게 돌아온 대답은 담담했다. 송광종 PD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조곤조곤한 말투의 소유자다. 방송국 아나운서를 꿈꾼 적도 있다. 하지만 일하는 방식은 영락없는 기획자다. 광고대행사에서 AE로 잠시 일하다 2007년 SBS PD로 입사해 연출 경력은 올해로 13년 차. 의외로 <패밀리가 떴다> 같은 왁자지껄한 리얼 버라이어티를 오래 했다. 2011년 JTBC로 옮기기 전까진 스튜디오 녹화 방송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음악에 관심을 둔 계기는 선배의 제안으로 <히든싱어 3>를 공동 연출했을 때다. “커튼 뒤에 숨은 원곡 가수를 목소리만 듣고 찾아내는 팬들의 진정성을 보고 음악을 달리 생각하게 됐어요. 가수가 노래할 때, 곡을 발표할 당시 사연을 알고 들으면 감동이 배가된다는 걸 느꼈죠.”
대중 앞에 선 스타보다 그 뒤에 숨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섬세한 솜씨. 어쩌면 그만의 연출 스타일은 바로 이때 정립됐을지 모른다. JTBC <힙합의 민족>(2016~2017년)을 연출할 때도 비슷했다. 예능에 맞는 경쟁의 룰보다는 힙합 고유의 가치에 집중했다. “제가 보기에 랩은 가사로 할 말 다 하는 속 시원한 매력이 있어요. 원래 그 일을 하는 래퍼 말고, 두려움 없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지 생각했죠.” <힙합의 민족>에는 국악인 김영임과 배우 양희경 등 각자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여성들이 참여했다. 그들에겐 아들보다 어린 래퍼에게 힙합을 배우고 직접 작사한 랩으로 대결하며 인생 2막에 도전하는 무대로, 잘 드러나지 않던 힙합 뮤지션에겐 자신을 알리는 기회가 됐다. 데뷔 50년이 넘은 배우 김영옥은 방송을 통해 ‘랩할매’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얻었고, 아직까지 안부를 물을 만큼 방송은 서로에게 중요한 경험으로 남았다. 송광종이란 이름이 음악을 잘 다루는 연출자로 온라인에 오르내리는 계기도 됐다.

1, 2 <비긴 어게인 2> 방송 당시 모습.
3 <너의 노래는>에 출연한 가수 정훈희.

그 후 만난 방송이 바로 <비긴 어게인 2>(2018년)다. ‘톱 뮤지션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나라에서 버스킹하는 여행’이라는 포맷부터 화제였다. 선배 PD가 연출한 시즌 1이 종편 채널 기준 6%라는 높은 시청률로 기획의 신선함을 증명했다면, 그가 연출한 시즌 2는 JTBC를 대표하는 새로운 예능으로서 안정적 흥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가수 박정현과 하림, 밴드 ‘자우림’의 김윤아, ‘악동뮤지션’의 이수현, 헨리에게 부여한 콘셉트는 ‘초심’이다. 스타에게 누구의 도움 없이 길에서 관객을 모으고 라이브로 노래해보라는 건 고난의 행군이나 다름없었다. 가수가 스타일리스트나 매니저 없이 혼자 떠나는 것 역시 도전 과제다. “시청자는 스타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곤란한 상황을 더 궁금해하는 것 같아요. 시즌 2에선 사전 답사 때 예상과 달리 헝가리가 너무 추웠어요. 다들 도착하자마자 독감에 걸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박정현 씨가 목이 잠겨 고생하면서 부른 ‘Someone Like You’ 영상은 2018년 JTBC 동영상 중 320만 뷰를 넘기며 최고 기록을 찍었어요.”
힘을 빼고 연주할 때면 늘 반응이 좋았다. 동시에 그에게는 시청자의 불만이 쏟아지기도 했다. 왜 유럽까지 가서 인정받으려 하느냐는 비난도 있었고, 가수가 뭐든 알아서 하게 두는 상황에 무례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때 김윤아 씨가 한 말이 크게 와닿았어요. 여기선 자길 아는 팬이 없으니 오로지 나를 위해 노래한다는 느낌이 든대요.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죠.” 또 <비긴 어게인>은 경쟁도 없다. 대신 결핍이 있다. “섭외할 때 항상 ‘<비긴 어게인>은 결핍의 코드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해요. 누구든 불편한 일을 하고 싶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저와 같이 가는 가수들은 정말 실력이 탄탄하잖아요? 합을 맞춰보지 않은 사람과 연주하는 음악의 질을 걱정할 뿐 전속 팀을 못 데려가는 것에 대해선 별말 없어요.”
7월이면 송광종 PD가 1·2 시즌에서 한껏 하지 못한 아쉬움과 출연진에 대한 존경과 믿음을 더해 만든 <비긴 어게인 3>를 볼 수 있다. 연출자와 같은 마음인 가수 박정현과 하림, 헨리, 수현이 이탈리아 로마와 독일 베를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을 이미 다녀왔다. “지중해는 날씨가 좋다 보니, 제가 지난 시즌을 연출한 게 미안할 정도로 가수들이 제 역량을 발휘하더군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노래 한곡 한곡마다 시청자에게는 가사를 의미 있게 전달하고 싶고, 출연진의 감정도 신경 쓰려 해요. 그 점이 다른 방송과 <비긴 어게인>의 차이점이죠.”
더불어 김필과 폴킴과 같은 젊은 가수 외에도 시청자에게 다소 낯선 적재, 임헌일처럼 무대 아래 ‘스타의 스타’로 인정받는 실력자들이 합류했다. 음악 신에서 오랫동안 활약해온 고수들이 방송을 통해 더 주목받았으면 하는 그의 개인적 바람 때문이다. 연주할 때면 카메라 앵글조차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이들을 섭외한 건 경력이 꽉 찬 연출자의 사명감 같은 거냐고 물었다. “그건 저를 위한 것이기도 해요. 나중에 방송을 그만할 나이가 됐을 때 의미 있는 일로 남을 것 같아서요.”
같은 이유로 임한 방송은 이전에도 있었다. 좀처럼 나서지 않는 뮤지션 정재일을 MC 삼아 꾸린 JTBC 4부작 특집 방송 <너의 노래는>(2019년)이다. 가수 박효신과 배우 김고은, 영화감독 봉준호 등 문화 인사와 한국 대중음악에 얽힌 이야기 또는 장소를 찾아보고 거기에 어울리는 컬래버레이션 무대를 선보였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깊이를 더했고, 소위 ‘방송계 프로’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누구나 내 포트폴리오에 하나쯤 꼭 넣고 싶은 일이 있잖아요. <너의 노래는>이 그랬어요. 정작 방송 당시엔 시청률이 낮아 괴로웠지만, 저는 가장 아끼는 기획이었어요. 회사 선배들뿐 아니라 출연한 가수 정훈희, 작사가 박창학, 국악인 안숙선, 연극인 박정자 선생님 모두 콘텐츠를 만드는 동료로서 도와주셨고요. 나중에 주변 제작자한테 부럽다는 말도 들었어요. 뭔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나 봐요.” 이야기를 듣는 내내 PD의 스마트 워치에는 계속 알람이 울렸다. “그런데 베를린은 이제 분단 같은 내셔널리즘으로 얘기를 풀면 안 될 것 같죠? BTS를 먼저 아는 세대가 살고 있으니까.” 바로 옆방에선 적재와 폴킴, ‘소녀시대’ 태연이 녹화 중이었고, 그의 머릿속엔 막바지 촬영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자기 일에 의견을 구하며 응하는 인터뷰. 결국 바쁘게 자리를 뜨는 그를 따라 이동하며 들은 PD의 바람은 짤막했다. 도심 공포물을 제작해보는 것이다. 언젠가 새로운 플랫폼에서 그 특유의 스타일을 볼 수도 있겠지만, 당분간은 미뤄두면 좋겠다. 비단 나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JK(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