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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은 내가 굴린다

LIFESTYLE

넘쳐나는 돈을 제대로 투자하고 싶거나, 원하는 수익을 내 방식대로 올리고 싶거나. 해답은 바로 패밀리 오피스다.

 

패밀리 오피스는 과거 유럽 왕가나 귀족 가문의 자산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던 ‘집사 서비스’에서 유래했다. 집사 서비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한 가문의 자산 관리와 세무 상담, 상속, 투자 교육, 라이프스타일까지 컨설팅하는 패밀리 서비스로 그 의미가 확장됐다. 천문학적 자산을 지닌 거부와 가업 승계를 거부하는 2세가 늘면서 국내에도 패밀리 오피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최근 국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한국형 패밀리 오피스는 대부분 자산가가 직접 차린 ‘내 돈만 굴리는 회사’를 뜻한다. 국내 자산가가 직접 차린 패밀리 오피스는 2007년 맥쿼리-MBK파트너스에 케이블방송사 씨앤앰을 매각해 ‘1조 거부’가 된 이민주 회장의 에이티넘파트너스와 마찬가지로 종합유선방송 사업자 큐릭스 지분을 매각해 3500억 원대의 현금을 거머쥔 원재연 회장의 제니타스가 대표적이다. 삼성생명도 지난 2012년 가문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패밀리 오피스 서비스를 시작했다. 금융자산 30억 원, 종합 자산 100억 원 이상의 개인보다는 `가문`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그런가 하면 부자 한 명을 위한 패밀리 오피스로 시작해 여러 고객의 자산을 함께 운용하는 패밀리 오피스도 있다. 1조4720억 원을 보유한 김정주 NXC 회장의 자산을 운용하는 ‘VIP투자자문’이 대표적이다. 패밀리 오피스는 개인 자산운용사 형태 외에 자선재단이나 헤지펀드 등 다양한 모습을 띠기도 한다. 또한 은행·보험·증권사가 부자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집사 서비스’ 같은 이름을 내걸고 패밀리 오피스를 자처하기도 한다.
제대로 된 패밀리 오피스를 직접 만들려면 엄청난 인력과 인프라가 필요하다. 유동자산이 1000억 원 이상은 있어야 패밀리 오피스를 만들 수 있는 이유다. VIP투자자문의 김민국 대표는 설명한다. “1000억 원을 외부 자산운용사에 맡긴다고 가정해보죠. 운용 수수료를 최저 1%로 잡아도 10억 원입니다. 이 10억 원을 외부 운용사에 수수료로 주느니 차라리 내 회사를 만드는 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연봉 1억~2억 원 정도 되는 매니저를 2~3명 고용하고 사무실 임차료를 내는 데 10억 원이면 충분하니까요.”
만약 투자할 수 있는 개인 돈이 100억 원이라고 치자. 외부 운용사에 이 돈을 맡기면 수수료(1% 가정)가 1억 원이다. 1억 원을 가지고는 매니저 1명을 뽑기도 어렵다. 연봉 1억 원을 받는 매니저를 뽑으려면 각종 부대 비용을 감안해 2.5배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 결국 250억 원은 있어야 매니저 1명을 고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VIP투자자문 최준철 공동 대표는 이렇게 덧붙인다. “사실 나만의 패밀리 오피스를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을 갖출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요. 패밀리 오피스에서 고용한 매니저는 좋은 투자 건을 찾아 외부 PF나 펀드매니저, 투자은행 등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패밀리 오피스 오너 본인이 어떤 투자 분야에 관심이 있느냐에 따라 패밀리 오피스 운용 인력의 구성도 달라지죠. 보통 매니저를 포함해 4~5명은 있어야 합니다. 물론 워런 버핏같이 머리가 깬 사람이라면 1명만 있어도 모든 게 해결되겠지만요.”

 

최근 들어 고액 자산가들이 직접 패밀리 오피스를 차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투자 성향에 맞고 높은 수익률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VIP투자자문을 공동 설립한 최준철·김민국 대표는 앞서 말한 대로 김정주 NXC 회장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김정주 회장은 넥슨의 성공으로 1조 원이 넘는 개인 자산을 보유했다. 이후 김 회장은 NXC 사업 영역에 각종 투자 사업을 추가했다. 지난해에는 1932년 창업한 노르웨이의 유아용품 전문 회사 스토케를 약 4억8300만 달러(약 585억 원)에 인수했으며, 올 초에는 미국의 이륜 전기차업체 ‘릿모터스’에 상당한 자금을 투자했다.
VIP투자자문 최준철 대표는 말한다. “2003년 김 회장이 자금을 대 VIP투자자문을 만들었어요. 100% 김 회장 자금으로 투자를 시작했죠. 김 회장은 사업도 열심히 하지만 사업으로 번 돈을 적극적으로 운용하고 싶어 했어요.” 김민국 대표가 거든다. “우리 회사는 김 회장을 대신해 국내와 해외의 주식 투자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스토케 인수는 다른 팀에서 했어요. 주식 투자는 전적으로 저희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김 회장이 다른 사업을 하면서 주식까지 직접 운용할 순 없죠. 그러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현재 VIP투자자문은 김 회장 외에 다른 고객의 자금도 운용하고 있다. 800명에 달하는 고객 중 상당수가 자신의 친인척과 함께 자금을 맡기고 있다.
인재를 뽑아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주며 자금을 운용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 국내엔 극소수에 불과하다. 결국 현재 국내 패밀리 오피스에 대한 관심은 ‘나도 (패밀리 오피스를) 만들어볼까?’보다 ‘나도 (자금을) 맡겨볼까?’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패밀리 오피스는 아직 국내에서 태동 단계다. 말하자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원과 생산 수단을 가진 부자들은 은퇴 후 자신이 일군 부를 어떻게 잘 물려줄 수 있을까 고민한다. 최준철 대표는 말한다. “1970~1980년대에 사업을 시작해 돈을 번 사람들이 2세에게 그 사업을 넘겨주는 시기예요. 2세 모임에 나가보면 아버지는 사업 확장에 관심이 많지만 자녀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볼 수 있어요. 회사를 팔아 생긴 현금 자산만 관리하고 싶다는 거죠. 아버지가 자발적으로 회사를 판 뒤 그 돈을 자녀에게 넘겨주는 경우도 있고요. 결국 이들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굴리는 데 필요한 서비스를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국내 패밀리 오피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거죠.”
패밀리 오피스가 부자들의 효율적 자산 관리를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최초로 ‘부자학’이란 학문 분야를 개척해 소개하고 있는 서울여자대학교 한동철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유럽과 미국에선 흔한 재단 형태의 패밀리 오피스를 국내에선 각종 규제 때문에 설립하기 어려워요. 만약 누군가 재단 형태의 패밀리 오피스를 만든다면, 국내법상 증여세나 상속세를 반드시 내야 합니다. 한데 재산 절반을 세금으로 떼이면서까지 누가 재단형 패밀리오피스를 만들려고 할까요?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도 패밀리 오피스 설립 시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제도 개선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패밀리 오피스가 활성화되면 묶여 있는 자금을 투자에 적극 활용하면서 산업 발전에 적잖은 기여를 할 수 있거든요.”
본격적인 저금리·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국내의 패밀리 오피스 설립은 앞으로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부자들이 자산을 직접 운용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는 데다 상속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의 패밀리 오피스를 통한 새로운 수익 창출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하제헌(경제 전문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장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