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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을 기억해

LIFESTYLE

기계만 만지던 공학도가 디자인을 하는 일, 옛 종이 식권을 전자 식권으로 바꾸는 일, 무대를 늘 갈망한 배우가 땀 흘려 배역을 따내는 일. 누구나 생각하지만 아무나 하지 못한 일을 결국 해낸 얼굴들.

 

공학도 출신 가구 디자이너, 양재혁(움직임 대표)
양재혁 대표는 공학도 출신이다. 그것도 ‘기계항공공학부’라는 이름의, 기계와는 도저히 인연을 뗄 수 없을 것 같은 학부에서 수년간 공부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가구를 만든다. “공돌이가 무슨 가구냐”는 편견도 있었지만, 해외에서 먼저 유명해진 그의 가구는 현재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선 아주 ‘핫’하다.
그를 제대로 알려면 그가 어떻게 가구에 빠지게 되었는지부터 말해야 한다. 2011년 그는 학교의 지원으로 한 달간 삼성디자인밀라노센터에서 연수했다. 대학의 ‘통합창의디자인 연계 전공 과정’을 통해 유럽의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면서 그는 우연히 이탈리아의 관록 있는 여러 수제 가구 브랜드의 제작 현장을 경험하고 감탄하며 자연스레 가구에 빠져들었다. 당시 그는 휴대폰 같은 전자제품은 어렵겠지만, 가구는 혼자서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길로 서울로 돌아온 그는 같은 학부 친구들을 몇 명 모아 가구 브랜드 ‘움직임(Umzikim)’을 만들었다. 물론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디자인 교육이라곤 융합 전공에서 배운 서너 과목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에겐 ‘공대생은 뭐든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있었다. 심지어 그 자신감은 세계 최대 가구 박람회인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만 35세 이하 디자이너가 참여하는 신진 디자이너 전시 <살로니 사텔리테(Saloni Satellite)>에 지원서를 내는 ‘기행’까지 벌이게 했다. 그런데 얼마 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별생각 없이 결과를 기다리던 이들에게 전시 기획자 마르바 그리핀의 초청장이 날아온 것. 정규 디자인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한 공대생들의 가구가 세계 유명 가구 박람회에 초대된 순간이다.
“사실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제일 잘한다고 보지 않아요. 우리 같은 공대생도 디자인이란 말만 쓰지 않을 뿐, 늘 무엇인가를 만들거든요. 근데 거기에 디자인적 시각을 더하면 분명 더 좋은 걸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특히 책상을 주로 제작해온 ‘움직임’의 가구 철학은 단순하다. 가구를 쓰는 그 순간 행복하면 삶도 행복해진다는 것. 다시 말해 사람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움직임에 변화를 줘 마음까지 움직이겠다는 거다. 지난해 ‘움직임’은 엑스포 밀라노(EXPO Milano)의 밀라노 디자인 위크 특별전에 아시아 대표 젊은 브랜드로 초청돼 또다시 세계에 얼굴도장을 찍었다. 지금은 한국 브랜드 중 최초로 미국의 디자인 매장 ‘ABC홈’에까지 진출한 상태다. 편견을 깨고 이탈리아와 미국의 가구 디자인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양재혁 대표의 의미 있는 움직임을 앞으로도 기대해본다.

 

점심밥을 혁신한 사업가, 조정호(벤디스 대표)
조정호 대표는 20대 중반까지 평범한 사시 준비생이었다. 대학 1학년을 마친 후 짐을 싸 서울 신림동 고시원으로 향했고, 거기서 3년간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세 번째 1차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고시원 휴게실에서 별생각 없이 뉴스를 보다 출퇴근 시간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광역버스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다. 순간 그는 번뜩이는 사업 아이템을 생각해냈다. 직접 전세 버스를 구해 이용객에게 월 고정 버스 요금을 받자는 거였다. 그는 당장 버스 회사에 전화해 사업의 타당성을 알아봤다. 직장인 커뮤니티에도 아이디어를 올려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당시 그의 머릿속엔 지긋지긋한 고시원 생활을 벗어나 마크 저커버그 같은 슈퍼스타가 될 거란 생각이 가득했다. 그래서 그는 사법시험을 고작 1개월 앞두고 고시원을 탈출했다. “저를 잘 아는 친구들은 사실 제 외향적인 성격이 고시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일로 전 당시 아버지와 1년 가까이 대화도 하지 않고 지냈죠.(웃음)”
근데 정말 그가 저커버그처럼 창업에 성공했을까? 아니, 그는 전세 버스 사업을 시도조차 못했다. 전세 버스 사업을 하려면 당장 운수사업법을 비롯한 여러 법규에 걸리는 부분이 많았던 것. 명색이 법대생이었지만 가장 기본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해 그는 좌절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창업을 하겠다고 결심한 그는 재빨리 다른 아이템을 찾았다. 친한 친구 셋과 의기투합해 2011년 동네 식당의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모바일 서비스 ‘숨 포인트’를 만들어냈다. 동네 식당을 이용하고 모바일 포인트를 적립, 나중에 쌓인 포인트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는 그렇게 매장과 이용자를 연결하는 서비스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13년 우연히 한 대기업에서 외주 시스템 제작을 의뢰받으며 모바일 식권 서비스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모바일 식권 서비스 솔루션인 식권대장은 그렇게 태어났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지만, 누구도 사업으로 연결하지 못한 그런 아이템.
식권대장은 구내식당이 없는 회사나 종이 식권을 사용하는 회사에 스마트폰 앱을 통해 식권 발급과 식대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기업이 직원에게 식대 금액에 해당하는 식권대장 포인트를 지급하면, 직원은 제휴 식당에서 스마트폰에 설치한 식권대장 앱을 사용해 해당 포인트로 식대를 결제하는 방식이다. “사업 초기엔 회원사가 5개 기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50여 개 기업이 식권대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멀어진 아버지와도 사이가 좋아졌고요.” 조정호 대표는 저커버그처럼 벼락부자가 되진 못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혁신적 서비스로 세상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 젊은 기업인으로 통한다. 그는 앞으로 모바일 전자 식권 서비스가 자리 잡으면, 그걸 바탕으로 다양한 푸드테크 사업을지 벌일 생각이다. 종이 식권과 장부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수많은 직장인의 점심밥을 혁신할 그를 응원한다.

 

새내기 인기 배우, 강영석
번지르르한 겉모습에 불안정한 내면을 숨긴 나쁜 엘리트, 익살스럽고 능청스러운 분위기 메이커, 전대미문의 살인 사건에 휘말린 하버드 로스쿨 학생, 여자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천재 학자지만 밤에는 치명적인 존재로 변신하는 뱀파이어까지. 시공간을 초월한 이 인물들은 지난 1년여 동안 신인 배우 강영석이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소화해온 캐릭터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친구의 권유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접하면서 연기를 시작했다.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에 재학 중인 스물여섯의 그는 그동안 뮤지컬 <아이 러브 유>와 <화랑> 등 여러 교내 공연에 출연하며 실력을 다져왔다. 그리고 지난해 5월, 오디션을 거쳐 연극 <모범생들>의 주연으로 발탁되면서 꿈에 그리던 공식 데뷔 무대에 올랐다. 시즌 1차 공연에서는 상위 0.3%에 속하는 모범생 민영으로, 시즌 2차 공연에서는 민영과 대립하는 나쁜 엘리트 명준으로 분했다. 같은 작품에서 다른 역할을 소화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그는 지난해 11월 뮤지컬 <총각네 야채 가게>의 해외파 총각 최윤민으로 변신해 평단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출중한 노래 실력이 요구되는 뮤지컬은 제게 큰 도전이었어요. 명성 높은 작품이라 부담도 컸지만 극 자체와 캐릭터를 더욱 자세히 분석하고 머리와 마음으로 이해하면서 작품에 임했습니다.”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가창력을 알아본 관객은 뜨거운 호응을 쏟아내며 찬사를 보냈다. 최근엔 두 남자의 갈등 구조와 숨 막히는 전개, 강렬한 반전이 드러나는 라이선스 뮤지컬 <쓰릴 미>의 주연 ‘나(네이슨)’ 역할을 맡아 열연 중이다. 상대인 ‘그’와 갈등을 겪으면서 여린 감성을 드러내다가도 때때로 ‘그’를 강렬하게 옭아매는 인물로 복잡 다변한 캐릭터의 심리를 표현한다. 이 작품은 현재 한창 인기몰이 중인 배우 강하늘을 비롯해 지창욱, 김무열 등이 출연한 대학로 뮤지컬계의 스테디셀러로 신인 배우가 얼굴을 알리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1년 새 수십 번을 무대에 오르자 전엔 상상하지 못한 에피소드도 생겼다. 처음 사인을 요청해온 팬, 그 팬을 위해 즉석에서 만들어낸 사인, 무언가에 홀린 듯 연기한 날과 그날 터져 나온 박수갈채 등은 그의 연기 인생에 가장 큰 원동력이다.
그야말로 일복이 터진 그가 최근 또 한 가지 기쁜 소식을 전했다. 4월 27일에 막을 올리는 창작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에 주연으로 캐스팅된 것. 배역은 천재 물리학 교수 ‘프로페서 V’다. 소년 같은 부드러운 외모 뒤에 숨겨진 거친 마성의 매력으로 캐릭터의 이중성을 폭발시킬 전망이다. 단 2명의 배우가 100분간 24곡의 넘버를 소화하며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이 작품은 그의 개성과 역량이 최대치로 드러나는 공연이 될 것이다. 이토록 굵직한 작품을 척척 해내는 공연계 샛별 강영석의 다음 목표는 뭘까? “뮤지컬 <헤드윅> 무대에 서고 싶어요. 배우로서 모든 조건을 갖춰야 오를 수 있는 무대죠. 그 목표를 이룬다면 큰 숙제를 해결한 기분이 들 거예요.” 그는 촬영 전 대기실에서 내내 오디션 대본을 보고 있었다. 무대와 연기를 늘 갈망하는 젊은 배우는 그렇게 작품을 준비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더 큰 배우로 성장 중이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박용빈  헤어 구예영, 유리(김활란뮤제네프 청담부티크)  메이크업 최희선, 서민주, 배지희(김활란뮤제네프 청담부티크)  의상 스타일링 고은숙  의상 및 제품 협찬 포튼가먼트, 폴 스미스, 유니페어, 휴고 보스, 에트로, 브루넬로 쿠치넬리, 어쉬 by 시원아이웨어, 브레게, 예거 르쿨트르, 이노메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