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퍼포먼스를 고백한다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은 많은 작업 중에 왜 ‘행위’를 선택했을까? 최근 퍼포먼스 작업을 했거나 곧 선보일 작가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퍼포먼스를 하는지, 이 장르를 통해 언젠가 꼭 하고 싶은 작업은 무엇인지.
뉴욕 센트럴 파크를 포장한 크리스토와 잔-클로드 부부의 퍼포먼스 전경

김구림
나는 미술을 전공하기 전부터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화가가 되고도 극단에서 연출을 맡았고 무용 공연에서 안무를 했으며 대한민국무용제에서 무대미술상을 받기도 했다. 영국 테이트 모던과 한국의 영상자료원은 내가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실험 영화를 소장하고 있다. 다양한 활동은 자연히 형식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퍼포먼스를 통해 이 지구 상에서 발생하는 많은 일에 대한 내 생각을 표현하고 관객과 한자리에서 호흡하며 소통할 수 있다. 동양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나의 퍼포먼스는 시간에 따라 흐르지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역설이 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선보인 퍼포먼스는 1970년 경복궁현대미술관에서 소개한 ‘도(道)’ 작품을 재현하며, 흰 천 위에 무겁고 큰 나무둥치를 올려놓고 그 위에 나체로 앉아 요즘 말로 ‘멍때리기’를 하는 작업이다. 그동안 어딘가에서 에밀레종 소리가 퍼지고 관객은 작가와 혼연일체가 되어 스스로 공(空)의 세계로 들어간다. 노자가 말하길, 모든 만물을 생성하는 도의 문은 기(氣)라 했다. 즉 ‘에너지’의 운동으로 열리기도, 닫히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듯 나는 행위예술을 하면서도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여러 가지 퍼포먼스를 구상해왔지만 예산과 장소가 여의치 않아 발표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중에서도 음악가 20여 명이 등장하는 대형 퍼포먼스는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다.
김아영, 세바스티앙 베트로,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 2016

김아영
지난 6월 17일과 18일, 파리 오페라극장의 퍼블릭 공간에서 퍼포먼스 프로젝트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In This Vessel We shall be Kept)’를 선보였다. 팔레 드 도쿄 미술관의 파비용 리서치 랩 소속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파리오페라단 무용팀 안무가와 협업으로 완성한 작업이었다. 지난 몇 해 동안 다양한 작곡가와 함께 서사와 음악 구조를 결합하는 시도를 해왔다. 이는 사운드 설치, 합창 퍼포먼스, 무대 작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됐다. 당분간 이러한 시도를 계속할 생각인데, 매체를 불문하고 서사의 내용과 음악 구조를 결합하는 작업을 퍼포머들과 함께 계속하고 싶다. 작가가 떠난 후에야 비로소 시작하는 ‘전시’라는 방식은 대개 긴 기간 동안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을 향해 열려 있다. 그사이에 관람객은 작가가 부재한 공간과 감각을 체험한다. 이때 관람객의 지각으로 완성되는 그 찰나의 희열에서 창작자 본인은 배제되기 쉽다. 그런데 퍼포먼스는 ‘그 순간’을 함께 나누거나 경험하기 힘들다는 고민을 가볍게 상쇄한다. ‘작업의 완성’, 그 순간에 함께 하고자 하는 열망이 퍼포먼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만든다.
정세영, Deus ex Machina, 2016

정세영
나는 행위를 중시하는 ‘퍼포먼스(performance)’라는 단어보다 바라보는 모습을 강조한 ‘스펙터클(spectacle)’ 이란 단어에 더 익숙한 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업이 일반적 극장 공연 문법에 기반을 둔다. 얼마 전 한국에서 처음 열린 ‘댄스 엘라지’에서 선보인 ‘Deus ex Machina’ 역시 인간의 몸이 어떤 원리로 관객에게 서사를 전달하는지에 대한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한 작품이다. 나는 퍼포먼스라는 광활한 범주를 통상적 관람 형태로 설득력 있게 축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동시에 스펙터클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와 관련한 다음 작업은 ‘지진 바라보기’다. 퍼포먼스를 통해 어설프게 지진을 재현한 비극에서 공포와 연민이 발생하는 과정을 살펴보고 싶다.
신제현, Trailling, 2014

신제현
2014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50일 동안 고리원자력발전소 주변에 사는 나의 가족을 포함한 3000여 명의 이름을 쓰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다. 마치 수행 과정 같은 이 작업은 사진이나 회화, 조각으로 전하기 힘든 고통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퍼포먼스는 제작 과정 자체를 작품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작품의 개념을 직접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2년 전부터는 닭을 키우거나 식물을 재배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데, 현재 생물학자, 물리학자들과 협업해 색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키우는 퍼포먼스를 계획 중이다.
오민, ABA Performance, 2016

오민
비디오는 나에게 비교적 섬세한 통제 수단이다. 반면 퍼포먼스는 나에게 통제 불가능을 의미한다. 완벽한 공연에 도달하기 위한 정교한 계획과 트레이닝을 하면서도 그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정신 수양, 그리고 불완전한 것에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의 희열이 계속 교차하는 가운데 긴장과 이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첫 공연은 관객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유희적 요소를 사용했고, 관객과 일종의 게임을 한다는 생각으로 진행했다. 두 번째는 비디오와 물리적인 실제 공간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확장했다. 최근 진행한 ‘ABA Performance’는 비디오와 공연이 어떻게 다른 재료를 취하며 구체화되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ABA Performance’의 대응점이 되는 비디오 ‘ABA Video’를 10월 두산아트센터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요즘 ‘관찰자의 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데, 앞으로 비디오의 눈과 관객의 눈의 차이가 주요 골조를 이루는 퍼포먼스를 만들어보고 싶다.
정금형, 재활훈련, 2015

정금형
퍼포먼스를 간단히 표현하면 ‘자, 그럼 지금부터 우리 한번 같이 가볼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내가 퍼포먼스를 하는 이유는 내가 기다리는 어떤 관객을 만나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8월 말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시작하는 전시를 통해 어떤 작업을 펼칠지 많은 고민을 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작업을 하든 주어진 상황에 잘 어울리고 보기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퍼포먼스다.
전소정, 꿈의 이야기 순이, 2012

전소정
작업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일종의 새로운 여정을 제안한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작품은 지속적으로 형태를 바꿔 궤적을 그리며 이동한다. 베를린에서 만난 간호사, 광부들의 이야기는 유사한 희곡 형식의 텍스트가 되었고, 장소를 옮겨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만난 현지의 이민자들은 극 위의 주인공으로 초대되었다. 현실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허구 속으로, 그리고 다시 현실 속으로 밀어 올리는 반복되는 과정에 여러 인물들이 함께했고, 그곳에 그들의 움직임과 목소리가 있었다. 그런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조소희, 물구나무, 2014

조소희
나는 2005년 첫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그 이후 작년까지 총 일곱 번의 퍼포먼스를 했다. 그중 몇 편은 자연을 배경으로 공연한 것을 영상으로 기록한 것이다. 나는 그것에 ‘비디오 퍼포먼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특정 이야기를 할 때 반드시 신체와 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진행한 퍼포먼스가 대부분 인간 혹은 예술가의 존재론에 관한 것이다. 2014년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선보인 ‘물구나무’는 퍼포머의 키에 맞춰 만든 큐브 형태의 작은 공간에서 한 사람이 물구나무서기를 반복하는 작품이다.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 단숨에 지구를 번쩍 들 수 있는 방법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이런 위트가 사물을 다르게 보는 예술 행위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내 작업에선 인간의 몸뿐 아니라 장소와 환경도 매우 중요하다. 최근 몇 년간 ‘색 만들기/ 빛 만들기’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데, 퍼포먼스의 형식으로 구상하고 있는 것이 있다. 폐허인 건물 바닥에 빛과 삼원색 물감으로 걸레질을 해 삼원색 레이어가 겹치며 점점 다른 색으로 변하는 비디오 퍼포먼스를 계획 중이다.
정새해, 해변의 여인, 2016

정새해
내 작업에서 퍼포머는 곧 퍼포먼스의 주제다. 나는 퍼포머 한 사람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끌어내고 그것을 어떤 형식으로 보여줄지 고민한다. 그래서 퍼포머가 누구냐에 따라 작품의 연출방식이 달라진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은 나 자신을 탐구하는 자전적 비디오 퍼포먼스로, 1980년대에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미술 교육을 받으며 예술가를 꿈꿔온 이야기다. 올해 전시한 비디오 퍼포먼스 ‘해변의 여인’은 현실 속에서 환상을 좇고 이를 구축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인식적 태도를 반영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일종의 자화상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싶다. 한 인물의 자전적 퍼포먼스 작업이 30년 혹은 50년 동안 이어진다면,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퍼포머와 작품 형식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도 흥미로울 것이다.
천경우, Ordinary Unknown, 2015

천경우
일회적이고 비물질적인 이 방식은 내게 하나의 실험이자 경험으로서의 작업이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익명의 참여자들과 함께할 때 예측하지 못한 감성이 충돌하고 새로운 발견이 가능하다. 내게 있어 퍼포먼스의 실체는 행위 후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스멀스멀 생겨나는 여운이다. 외형적으로는 타인과의 관계에 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언젠가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 음식을 나누는 퍼포먼스를 한국에서 실현해보고 싶다. 음식을 먹는 것이야말로 일상에서 잠재적 본능과 인간관계가 잘 드러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퍼포먼스는 우리 안에 숨은 소중한 본성을 깨운다.
이건용, 달팽이걸음, 200

이건용
1973년 제8회 파리 비엔날레에 설치 작품 ‘신체항’(1971년)으로 참여하면서, 작가의 몸도 예술 작품의 매우 강력한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1975년부터 본격적으로 퍼포먼스를 했고, 1980년대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당대의 사회적·세계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생명의 흔적을 남기는 원초적 그리기 작업인 ‘신체 드로잉’이나 ‘달팽이 걸음’ 같은 퍼포먼스와 IMF를 다룬 퍼포먼스, 2000년대 이후 테러리즘의 고발과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해온 작업을 영상 기술을 이용해 보다 스케일을 키워 작업해보고 싶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각계각층의 무관심과 국가권력 또는 이해 집단의 충돌에서 파생된 희생을 텍스트를 이용한 퍼포먼스로 보여주고 싶다. 퍼포먼스는 예술가와 감상자가 동일한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전 과정을 통해 소통한다는 것이 어떤 장르와도 바꿀 수 없는 장점이다.
에디터 |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