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네가 그린 기린 그림

ARTNOW

현대미술계에서 대작은 과연 관행일까? 네가 그린 기린 그림도 내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근 미술계에 논란을 일으킨 한 사건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짚어보았다.

앤디 워홀에게 실크스크린 원본을 얻어 작업 과정을 그대로 반복해 제작한 작품. 흥미롭게도 스터트번트의 위작은 워홀의 원본과 쉽게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르다. 원본과 같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과정을 그대로 재현해 의도와 과정에 의해 귀결되는 바를 역추적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
스터트번트, 워홀의 꽃,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과 실크스크린, 1964
ⓒ Sturtevant, Courtesy of Thaddaeus Ropac, Salzburg-Paris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검찰이 화가로 활동해온 가수 조영남을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해석과 억측이 있었다. 그가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고 대작가(代作家)에게 작업을 의뢰, 완성 단계에서 그림을 납품받아 가필(加筆)하고 서명한 다음 전시를 하거나 판매했다는 것. 이런 정황이 알려지자 대중은 분노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현대미술을 책으로 공부한 전문가 일부가 그를 옹호하고 나섰다.
주요 언론이 인용한 전문가의 발언 중 “대작은 미술계의 오랜 관행이다”라는 말은 우리가 면밀히 살피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대작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남을 대신해 작품을 만듦, 또는 그런 작품. 관행의 정의는 이렇다. 오래전부터 해온 대로 함, 또는 관례에 따라 함. 과연 남몰래 대작가에게 신작을 의뢰해 약간의 붓질만 더한 뒤 서명하고 자신의 작품으로 전시해 판매하는 일이 오래전부터 해온 관례에 따른 창작 방식인가? 앤디 워홀도 조수에게 실크스크린 작업을 일임했다고? 개념미술가들이 작업의 컨셉만 정하고 작업은 조수에게 맡김으로써 예술의 진본이 갖는 권위를 파괴했다고? 그러니까 조영남도 현대미술의 실험 전통을 따른 셈이라고? 정말?
대작가의 주장대로 그가 대작을 맡아 그렸고, 조영남이 그 작품에 가필해 서명하고 유명세를 이용해 팔았다면 이건 윤리적 타락이나 미적 사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사건을 개념미술의 사례를 예로 들어 옹호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에 해당한다. 이번 경우와 같은 대작은 ‘작가는 컨셉과 계획을 수립하고 조수는 법칙에 따른 노동을 수행해 작업을 귀결 짓는’ 현대미술의 개념미술적 방법론과는 다른 것이다.
일각에선 “그는 화가도 아니다”라고 비난했지만 사실 열심히 창작 활동을 한 왕년의 그는 꽤 문제적 미술가였다. 현대 화가로서 일류는 못 됐지만 흥미로운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 조영남이 최선을 다해 그린 시절의 화풍은 한국식 앵포르멜이다. 아주 납작하고 텁텁해서 잘된 작품엔 아르브뤼(art brut) 같은 고졸한 멋도 있다.
그의 과거 그림과 대작 그림은 꽤 티가 나게 다르다. 전문적 미술 교육을 받은 바 없는 조영남은 그동안 드로잉의 필치나 붓의 운용에서 손목과 어깨 움직임의 강약을 조절해 회화적 면모를 드러낸 일이 없다. 반면 대작가의 그림을 보면 필력을 강조한 경우가 많고, 전에 없이 입체감과 깊이감을 추구하는 형상과 구도를 거듭 시도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대작에서는 ‘회화적 회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는 조영남이 그동안 추구해온 작품과는 결을 달리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필력을 강조한 작품은 작가가 작품을 그리는 매 순간 ‘작가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다시 말해 그가 컨셉을 제공했다 해도 대작가가 회화의 제작을 맡았다면 그건 조영남만의 작품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협업 작품이 되고 만다.

‘최후의 만찬’을 제작하기 위한 디세뇨 가운데 하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을 위한 습작, 종이에 적색 분필과 잉크와 펜선, 1492
ⓒ Soprintendenza Speciale per il Polo Museale Venezia

이처럼 인식의 혼란이 발생하는 이유는 16세기 이탈리아인이 창안한 개념 ‘디세뇨(disegno)’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가들은 도제를 여럿 거느리고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기 때문에 드로잉으로 작업 계획을 시각화하고, 그 옆에 작업에 관한 세부 지시 사항을 적어두곤 했다. 그리고 그 구상 단계나 구상안을 ‘디세뇨’라 불렀다. 디세뇨의 본뜻은 ‘작가의 창조적 아이디어’로 ‘채색과 선, 명암의 배합, 구도 등을 포괄하는 작품의 종합적 구상’을 의미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론가 프란체스코 란칠로티는 저서 <회화론(Trattato di Pittura)>에서 디세뇨를 회화의 4대 기본 요소(창의, 디세뇨, 구도, 채색)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원근법 이론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공간의 범위가 넓어지고, 이런 상황을 예술 제작 환경에 적용하면서 디세뇨라는 상위 개념을 추출한 것이다. 당시의 미술가들은 디세뇨를 통해 비로소 예술 창작 과정에서 창안과 노동을 분리하고 제작 노동을 관리하고 감독할 수 있게 됐으니, 이는 시각예술 창작 방법상의 일대 변환이 아닐 수 없었다.
디세뇨를 통해 더 높은 차원에서 조형을 사고할 수 있게 되자, 곧이어 전에 없던 개념인 ‘컨셉’이 파생됐다. 한국인은 컨셉을 ‘기본 아이디어’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확한 뜻은 ‘구체적 사례들에서 추출해낸 개요적·추상적 아이디어’다. 즉 작업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특정 종류의 디세뇨를 유형화하고, 다시 거기서 개요적·추상적 원형을 추출해낸 것이 컨셉이다. 축적해놓은 구체적 드로잉이나 기본적 조형 실험이 있어야 작업 컨셉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솔 르윗은 도제를 통해 작업을 물화하고 구현하는 과정에 공을 들였다.
솔 르윗, 연속 프로젝트 I(ABCD), 알루미늄에 에나멜, 1966
ⓒ Sol LeWitt

솔 르윗의 1971년 작 ‘벽 그림 84번(Wall Drawing #84)’을 구현하고 있는 헌터칼리지 대학원생의 모습. 지시문에 따라 실제로 작업을 구현해보면 개념미술이 결코 아이디어만으로 실현되는 작업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개념미술의 핵심은 작가의 작업 계획과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도제 노동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 데 있다.

과연 현대미술에선 컨셉만 중요하고 제작 노동은 제삼자에게 시키면 그만일까? 그렇지 않다. 개념미술가들이 컨셉에 주안점을 둔 이유는 작업 과정을 하나의 추상적 작품으로 삼아 기존 미술사가 지닌 ‘창작의 신화’를 파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념미술의 창시자 솔 르윗(Sol LeWitt)은 1966년 ‘연속 프로젝트 I(ABCD)’이라는 기념비적 작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리 결정한 전제에 따라 작업하고 주관성을 배제한 결과에 도달한다. 우연, 취향, 혹은 무의식적 기억의 형태는 작업의 결과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연속적 개념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는 아름답거나 신비로운 오브제를 만들지 않는다.” 당시 그는 관념과 과정마저 미니멀하게 정리하고자 애썼는데, 그 입증을 위해 매번 비창조적 결과를 구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다시 말해 제작 노동을 조수에게 전가하더라도 공무원처럼 관리·감독하면서 자신의 가설을 구현하고, 입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거꾸로 컨셉과 아이디어의 신화에 사로잡힌 상태는 아닐까? 현대미술에서 발상과 노동의 분리는, 발상과 노동을 분리된 형태로 통합해내는 과정이나 방식을 새로이 창출하고 통제할 때 비로소 새로운 존재의 의의를 획득한다. 발상만 중요하다고 믿어도, 노동만 중요하다고 믿어도 큰 착오를 낳는다. 현대미술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인간의 정념을 조형에 깃들게 하는 방법에 대한 조형 차원의 성찰과 실험이기 마련이다. 뇌에 연결된 손이나 몸이 노동환경에서 망상 너머로 생각의 가지를 뻗기 시작할 때 진정한 현대적 미술이 나온다.

에디터 임해경 (hklim@noblesse.com)
임근준(미술·디자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