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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서예리입니다

LIFESTYLE

그녀에 대해 무엇부터 설명해야 할까?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고음악의 거장 르네 야콥스 앞에서 당당하게 오디션을 요구하고 배역을 따내 이듬해 유럽 클래식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강단? 아니면 필리프 헤레베헤, 지기스발트 쿠이켄 같은 고음악 거장과 작업하는 동시에 진은숙, 볼프강 림 등 현대음악 작곡가의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며 벌써 2018년 스케줄을 대부분 채운 스타성? ‘1000년을 아우르는 소프라노’라고 불리며 유럽 클래식 무대에서 활약하는 그녀가 1월 중순 이반 피셔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앞두고 잠시 한국에 왔다.

그녀에 대해 무엇부터 설명해야 할까?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고음악의 거장 르네 야콥스 앞에서 당당하게 오디션을 요구하고 배역을 따내 이듬해 유럽 클래식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강단? 아니면 필리프 헤레베헤, 지기스발트 쿠이켄 같은 고음악 거장과 작업하는 동시에 진은숙, 볼프강 림 등 현대음악 작곡가의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며 벌써 2018년 스케줄을 대부분 채운 스타성? ‘1000년을 아우르는 소프라노’라고 불리며 유럽 클래식 무대에서 활약하는 그녀가 1월 중순 이반 피셔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앞두고 잠시 한국에 왔다.

헤어 & 메이크업 에이바이봄 의상 협찬 가브리엘 콜란젤로 by 지 라운지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성악가 서예리를 두고 요 몇 년 한국에서도 난리입니다. 조수미 씨를 언급한 글까지 봤어요. 이런 인기,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예전엔 사실 그런 칭찬이 부담스럽기만 했는데, 지금은 그에 맞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앞서요. 이젠 제가 이루어놓은 성과가 아니라, 제 노래로 칭찬받고 싶죠.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수미 선생님은 제가 음악적으로 정말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분이기에 비교되는 것 자체가 영광입니다. 진심이에요.

고음악과 현대음악 양쪽에서 모두 사랑받고 있어요. 고음악과 현대음악을 병행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이 둘을 함께 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건 뭔가요? 감상자는 자유롭게 들을 수 있어도 부르는 사람은 마음대로 불러선 안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고전주의 시대나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도 어느 정도는 작곡가의 뜻에 얽매이지만, 고음악이나 현대음악은 더 그래야 한다고 보거든요.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것 이면에 다른 의도가 숨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악보의 음표와 가사만 공부해선 좋은 노래를 할 수 없어요. 그 시절의 시대상에 대한 폭넓은 배경지식은 물론 곡을 쓴 작곡가의 당시 심경도 제대로 알아야 하죠. 제 경우 문헌 공부도 악보를 통한 연습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두 분야의 음악을 대하는 자세도 서로 다른가요? 두 분야 모두 지금 시각에서 보면 ‘시대 음악’입니다. 그 말은 음악의 작곡 당시 배경이 중요하단 뜻이죠. 그 때문에 그에 맞는 노래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해요. 작곡가가 악보를 세상에 던져놓은 후엔 연주자가 그걸 나름대로 이해하고 그에 따라 연주하는 게 불가피하니까요. 하지만 결코 작곡가가 의도한 걸 무시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걸 지어내 표현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그건 해석의 자유 영역을 벗어난 일이죠.

바흐 음악에 특히 강하다고 알려졌어요. 한 인터뷰에선 노래 연습보다 ‘바흐의 생각을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고도 했고요. 대체 배를 통해 입으로 나오는 소리보다 더 중요한 건 뭔가요? 배에서 공기를 뿜고 성대를 거치는 것으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게 있어요. 전 그걸 ‘표현의 힘’이라고 하죠. 예전에 탤런트 김혜자 씨가 10여 년을 활동한 광고 모델을 그만둘 때 인터뷰한 게 있어요. 모두가 아는 그 조미료 광고죠. 당시 기자가 이렇게 물었어요. “어떻게 하나의 광고로 이렇게 오랫동안 히트 상품을 만들 수 있었느냐”고요. 김혜자 씨가 답했죠. 요리사를 불러 그 상품을 넣어 찌개를 끓이게 한 뒤, 실제로 맛보며 정말로 맛있다고 느낄 때 “아, 이 맛이야!”라고 말하는 걸 광고로 찍게 했다고요. 근데 이건 틀린 말이 아니에요. 목소리나 표정은 비슷하게 만들 수 있어도, 전달하는 진심까지 비슷하게 꾸밀 순 없거든요. 기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표현의 힘’은 바로 마음에서 나온다고 봐요.

10여 년 전, 고음악 거장 르네 야콥스(Rene Jacobs)가 지휘한 몬테베르디 오페라로 화려하게 데뷔했어요. 그런데 이후 고된 연습으로 탈장 수술을 네 번이나 했죠. 그 일이 후회되진 않으세요? 수술(2004년) 이후엔 사실 제 의지만큼 노래하지 못했어요. 완쾌 후에야 겨우 활동을 재개했죠. 그 중요한 시기를 공백으로 남긴 건 아쉬웠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했어요. 노래는 몸을 악기로 쓰는 건데, 무리를 해서까지 준비가 덜 된 음악을 청중에게 들려주는 건 또 아니라고요. 그래서 힘들게 데뷔한 후에도 2008년까지 들어오는 주요 연주를 대부분 거절했죠. 그런데 그 덕분에 전 그때 유럽 최고의 고음악 전문 음악대학인 스콜라 칸토룸(Schola Cantorum Basiliensis)에서 고음악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을 정신에 위안을 주는 시간으로 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해외를 무대로 활동하는 동양인 성악가의 삶이 궁금해요. 동양인이란 이유로 실수에 더 엄격하거나 그런 경험은 없나요? 실수에 엄격하다기보다, 당연한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동양인이 서양의 전통음악, 특히 서양의 고음악 중에서도 종교음악을 하며 인정받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그건 표현이나 기법의 문제가 아니에요. ‘정신세계’의 영역이죠. 서양에서만 공부한 서양인이 한국에 와 종묘제례악을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제대로 된 기술로 연주한다 해도 뭔가 빠져 있을 것 같은 편견을 버릴 수 없죠. 근데 경험에 따르면 오페라로 인정받는 것보다 ‘오라토리오(oratorio, 16세기 무렵 시작된 로마의 종교음악)’나 ‘칸타타(cantata, 17~18세기 바로크 시대에 유행한 성악곡의 한 형식)’로 인정받는 게 훨씬 어려운 것 같아요.

어쨌든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했단 말이죠? 서양음악의 전통 안에 제대로 머물기 위해 라틴어도 배웠고, 성경 지식은 물론 서양 사상의 근원인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어요. 또 리허설이나 연주할 때 녹음한 걸 여러 번 들어 외국어를 더 완벽히 발음하려고 노력했고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딕션’(노래할 때의 발음)이 그 나라 사람보다 좋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합니다.

혹시 아직 만나지 못한, 앞으로 꼭 한번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작곡가가 있나요? 지난 세기 작곡과 지휘 분야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거장이라 할 만한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선생님과 함께 해보고 싶어요. 그간 그분과 여러 작업을 했지만, 막상 그분의 지휘로 연주를 함께하진 못했죠. 함께 연주할 계획을 세운 적도 있지만 그분의 건강 문제로 리허설만 하고 막상 연주 땐 다른 분이 지휘했어요. 머지않아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신다면 꼭 그분의 지휘에 따라 노래하고 싶어요. 그분이 직접 지휘하는 ‘Pli Selon Pli’를 부를 수 있다면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거 같거든요(아쉽게도 피에르 불레즈는 이 인터뷰가 끝난 후 얼마 안 된 1월 5일 9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연습이나 공연 외 시간은 어떻게 보내세요? 전엔 책을 보거나 요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1년에 40일 정도만 집에 있고 나머진 연주 여행을 하기 때문에, 연주가 없을 땐 그저 집에만 있고 싶죠. 아, 근데 요샌 육아 때문에 남는 시간이라는 게 없어요.(웃음)

세계적 소프라노에게 육아라니, 어쩐지 매치가 잘 되지 않아요. 근데 언젠가 아기를 낳고 소리가 더 따뜻해지고 둥글어졌다는 말을 한 적 있죠? 무대에 섰을 때 실제로도 그걸 느끼세요? 신체적 이유에 대해선 제대로 설명할 능력이 없어요.(웃음) 임신한 경험이 무엇인가 밑에서 받쳐주는 느낌을 줬고, 그게 연장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아마 호르몬의 영향도 크겠죠. 근데 더 중요한 건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는 제가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가장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이었거든요. 그래서인지 그만큼 표현의 폭이 넓어진 건 확실해요. 그게 다른 사람에게도 들리는 게 아닐까 싶고요.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노래가 정말 더 잘되고 저음과 고음의 영역이 더 넓어졌어요.

인터뷰를 준비하다 우연히 직접 부르신 헨델의 ‘Tu del Ciel’을 들었어요. 그리고 여태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죠. 진심으로 감사해요.(웃음) 전 앞으로도 이렇게 제가 이루어놓은 성과 때문이 아니라, 제 노래로 칭찬받고 싶어요. “노래를 들으니 마음에 기쁨이 생겼다”, “CD를 들었는데, 평안이 찾아왔다”는 식의 칭찬이 ‘세계적 지휘자와 연주하는 소프라노’라는 소개보다 훨씬 의미 있다고 봐요.

앞으로 어떤 성악가로 남고 싶나요? 더 오랫동안 ‘노래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오래전 TV에서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른 김정구 선생께서 당신을 ‘노래하는 김정구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걸 보고 뭔가 느낀 게 있었어요. 나도 언젠가는, 언제까지나 나 자신을 저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만큼 전 노래 부르는 게 즐거워요. 제 삶이자 보람이고 인생 그 자체죠.

올해 한국 무대에도 서세요? 12월 통영국제음악당 무대에 섭니다. 통영에 가면 늘 치유하고 돌아오기 때문에 무척 기대돼요.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김지수 (kjs@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