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딕 아트의 새로운 허브
6년여의 오랜 기다림을 끝으로 드디어 베일을 벗은 노르웨이 크리스티안산의 미술관 ‘쿤스트실로’.

Franciska Clausen, Contrastes des Formes, 1927. ©Øystein Thorvaldsen.
노르웨이 남부 해안 도시 크리스티안산은 유럽 본토와 노르웨이 전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무역과 국방의 요충지였고, 현재는 여름 휴양지와 산업단지 등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지역이다. 2024년 5월 11일, 크리스티안산 오데뢰위아섬 해안가에서 스칸디나비아반도 아트 신에 새롭게 출사표를 던진 쿤스트실로(Kunstsilo)가 그랜드 오픈을 알렸다.
과거 곡물 저장고로 사용하던 건물을 레노베이션한 이곳은 개관 준비에만 6년여의 시간을 투자했다. 그 결과, ‘예술과 도시, 자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를 목표로 3개 층에 걸쳐 대형 전시, 강의, 워크숍,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펼칠 역동적 공간으로 거듭났다. 미술관 건축에서도 과거와 현재의 교감을 중시했지만, 그 안을 채울 소프트웨어 또한 미술사의 전통을 이어갈 연구와 전시 외에 디지털 기반의 몰입형 예술 프로젝트를 실시하는 등 장르 간 융합에도 주목할 예정이다.

위 쿤스트실로 내부 전시 공간. © Mestres Wåge / BAX / Mendoza Partida.
아래 Marianne Heske, Gjerdeløa, 1980. ©Marianne Heske.
우선 쿤스트실로의 토대가 된 영구 소장품은 크게 3개 컬렉션에서 비롯했다. 탕엔 컬렉션(The Tangen Collection)과 서던 노르웨이 아트 컬렉션(Southern Norway Art Collection), 그리고 크리스티안산 픽처 갤러리(Christianssands Picture Gallery)의 소장품을 관리할 계획이다. 크리스티안산 픽처 갤러리는 1902년 크리스티안산 최초의 아트 컬렉션으로 출범한 기관으로, 서던 노르웨이 미술관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탕엔 컬렉션은 쿤스트실로를 향한 기대감을 증폭시킨 일등 공신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 CEO 니콜라이 탕엔(Nicolai Tangen)은 개인 컬렉터 중 세계 최대 규모의 북유럽 현대미술 컬렉션을 보유한 인물인데, 2015년 고향인 크리스티안산에 자신의 소장품을 기증했다. 그는 약 25년간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5개국 출신 아티스트 400여 명의 작품 5500여 점을 수집했다. 특히 1920~1980년대에 중점을 둔 작품이 많다. 1950~1960년대 북유럽 비구상미술, 소냐 펠로브 만코바(Sonja Ferlov Mancoba), 아스게르 요른(Asger Jorn), 에일레르 빌레(Ejler Bille), 엘세 알펠트(Else Alfelt) 등 전위예술 그룹 ‘코브라(COBRA)’와 관련된 덴마크 작가 작품, 1960~1970년대 정치적 판화, 북유럽 현대 세라믹, 193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북유럽 사진 예술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낸다. 압도적 규모도 규모지만, 아스게르 요른, 롤프 네슈(Rolf Nesch), 안나-에바 베르그만(Anna-Eva Bergman), 마리안네 헤스케(Marianne Heske), 악셀 살토(Axel Salto) 등 특정 예술가에 관해 폭넓고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탕엔의 든든한 후광을 업은 쿤스트실로가 개관전 제목으로 선택한 것은 ‘북쪽의 열정(Passions of the North)’. 쿤스트실로의 프로그램 총괄 책임자 칼 올라브 세그로브 모르텐센(Karl Olav Segrov Mortensen)은 “개관전의 핵심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유럽의 대도시를 여행하며 국제적 미술 사조를 접한 수많은 북유럽 예술가의 열정에 관한 것이다. 이들 중 다수는 해외에서 접한 예술 창작 방식과 전략을 가져와 고국의 환경, 사회, 예술 커뮤니티에 접목하며 작업을 이어갔다”라고 설명한다. 20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예술, 문화, 사회 면에서 인류가 큰 변화를 겪은 시기다. 북유럽 예술가들도 이러한 흐름에 영향을 받으며 경험을 쌓았고, 독자적 작품 세계를 일구고자 했다.
쿤스트실로는 전시를 준비하며 20세기 북유럽 예술 전문가로 손꼽히는 노르웨이 출신 큐레이터 오스문 토르킬센(Åsmund Thorkildsen)을 초청해 탕엔 컬렉션에서 600점이 넘는 작품을 선택했다. 191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작품 제작 시기도 폭넓다. 토르킬센이 기획한 전시는 미술관 전 층을 무대로 노르딕 모더니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시대, 사회, 공동체의 양상뿐 아니라 기계와 자연, 농촌과 도시 등 대조적 긴장감을 탐구하며, 20세기의 삶과 현대미술에 대한 다각적 시각을 강조한다. 테마부터 작가와 작품 선정에 이르기까지 개관전을 발판 삼아 기존에 쓰인 북유럽 미술사의 페이지를 재검토하고, 향후 쿤스트실로가 그 중추적 역할을 하겠다는 선언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쿤스트실로가 여타 동시대 예술 공간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세그로브 모르텐센은 “우리의 포부는 북유럽 모더니즘의 본거지이자 노르웨이 남부 해안선의 지역 예술계와 커뮤니티에서 새로운 예술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쿤스트실로가 예술을 경험하고, 지역 및 국제적 협업을 지향하는 방식을 통해 예술이 무엇인지, 나아가 사회 전반에 걸친 예술의 역할에 대한 논의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따뜻한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이며 그들의 행보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아트나우〉에 당부했다.
글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