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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디 비엔날레 마니페스타 15

ARTNOW

유럽 여러 도시를 옮겨다니며 개최하는 노마디 비엔날레 마니페스타 15

바르셀로나 일원, 마니페스타 15의 작품이 설치될 장소. 산타콜로마 지역 여성의 자립을 돕는 문화센터 라 시바(La CIBA). ©Manifesta 15 Barcelona Metropolitana, Helena Roig.

9세기에 세운 산트 쿠가트 수도원. ©Manifesta 15 Barcelona Metropolitana, Helena Roig.

그라노예르스 자연과학박물관. ©Manifesta 15 Barcelona Metropolitana, Helena Roig.

 예술의 영토를 찾아서, 마니페스타 
올해 15회를 맞이하는 ‘마니페스타(Manifesta)’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키워드는 바로 ‘유러피언 노마딕 비엔날레’. 베니스, 카셀, 뮌스터처럼 도시 한 곳에서 고정적 행사를 치르지 않고, 매번 유럽의 여러 도시를 옮겨다니는 것이 다른 행사와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비단 주최 도시가 달라진다는 사실뿐 아니라 해당 도시에 대해 수년간 연구하는 ‘프리비엔날레 리서치(pre-biennial research)’ 과정이 반드시 선행한다는 것이 마니페스타의 뼈대를 이룬다.
도시 개발, 발전, 공적 공간 등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그 지역과 문화, 거주민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술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는 것. 결국 ‘노마드’를 자처함에도 어떤 비엔날레보다 ‘로컬’과의 친연성을 강조하는 셈이다. 단순히 미술품을 전시하고 감상하는 것보다는 연구와 교류, 소통의 장으로 구현하는 행사 방식에서도 이런 면모가 십분 드러난다.
태생적으로 ‘마이너’를 지향하는 마니페스타는 초창기부터 주요 예술 생산 중심지와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그 대신 새롭고 비옥한 문화 영토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천명해왔다. 실제로 새롭게 떠오르는 유럽의 ‘최전선’을 상징하는 지역에 집중하는 경향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예술의 정치적·사회적 참여를 강조하며 동시대의 여러 현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에서 개최한 마니페스타 14 설치 작품, 코소보 출신 작가 플라카 할리티(Flaka Haliti)의 ‘Under the Sun – Explain What Happend’. ©Flaka Haliti, Photo. ©Manifesta 14 Prishtina, Ivan Erofeev.

Ugo Rondinone, Not a Word[…], 2022. ©Ugo Rondinone. Photo ©Manifesta 14 Prishtina, Ivan Erofeev.

마틸데 카사니(Matilde Cassani)의 퍼포먼스 ‘Tutto’전경. 마니페스타 12가 열린 팔레르모 시내에서 색색의 종이와 천을 폭죽처럼 쏘아 올렸다. ©Manifesta 12 Photo by Francesco Bellina.

 사회 변화와 확장을 꿈꾸는 비엔날레 
2022년 7월 개막한 ‘마니페스타 14’는 코소보의 수도 프리슈티나에서 열렸다. 2008년 세르비아에서 독립을 선포한 영토 분쟁 지역인 코소보의 가장 큰 도시, 프리슈티나는 ‘유럽에서 가장 젊은 수도’로 불린다. 실제로 프리슈티나 시민의 절반 이상이 30대 이하이기도 하다. 오랜 내전과 1999년 나토(NATO)의 유고슬라비아 폭격 이후 주권을 되찾기 위한 싸움을 이어온 코소보를 무대로 마니페스타 14는 ‘집단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방식’을 찾고자 했다.
코소보는 마니페스타 개최를 계기로 자국의 상황을 세상에 알렸다. 문화 예술인, 언론인, 정치인은 개막 연설에서 자국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여행 제한과 엄격한 비자 발급 규정 때문에 코소보인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언급했다. 마니페스타의 디렉터 헤드윅 피옌(Hedwig Fijen)도 “코소보 사람들이 예술을 보러 여행할 수 없다면, 우리가 예술을 그들에게 가져다줘야 한다”고 역설하며 비엔날레의 포문을 열었다.
역대 행사 중 가장 높은 비중(39%)의 로컬 예술가를 포함해 103명(팀)의 아티스트가 참여한 마니페스타 14는 민영화로 공공 공간을 상실하고 전쟁 및 분쟁으로 쇠락한 건물이 증가한 프리슈티나 곳곳의 유서 깊은 호텔, 학교, 도서관, 박물관 등 25개 공간에서 전시를 치렀다. 유고슬라비아 시대의 사회주의 건축물인 청소년과 스포츠 센터 건물에는 한국 작가 이불의 대형 설치 작품 ‘Willing to Be Vulnerable – Metalized Balloon V4’가 등장했다. 1937년, 나치 깃발과 함께 폭발한 비행선 힌덴부르크호를 연상시키는 미래지향적 작품이 전시장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비엔날레의 대표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스페인 작가 루스 브로토(Luz Broto)는 ‘Swap Keys’라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열쇠집에서 만난 지역민과 방문객이 각자 열쇠 사본을 복사해 연락처와 함께 교환하고, 영원히 열쇠를 보관할 것을 제안했다. 비엔날레라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넘어 코소보인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기를 소망하며 진행한 이 프로젝트에 많은 사람이 기꺼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그런가 하면 시오타 지하루(Chiharu Shiota)는 15세기 터키식 목욕탕에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 실로 개인의 사연이 모두의 이야기로 연결되는 일종의 3차원 회화를 완성했다. ‘Tell Me Your Story’라고 명명한 작품 속 붉은 실로 엮은 종이에는 작가가 코소보에서 수집한 탄생, 유년 시절, 가족, 종교, 사랑, 죽음에 대한 사연이 손글씨로 적혀 있다. 이 외에도 로런스 아부 함단(Lawrence Abu Hamdan), 로니 혼(Roni Horn),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 등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참여해 힘을 보탰다. 이처럼 마니페스타는 역동적으로 사회적 공간을 구축하는 생생한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현장에 참여하기를 권하는 비엔날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언제나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마니페스타 10: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마니페스타 11: 취리히’는 개최국 및 도시 선정과 관련해 참여 작가들의 보이콧을 유발하거나, 대규모 예산을 따내기 위해 자본주의에 영합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후 2018년 팔레르모에서 열린 ‘마니페스타 12’는 다시 한번 ‘사회 변화를 위한 지속 가능한 플랫폼으로의 전환’과 ‘시민에게 도시의 미래를 상상하는 도구를 제공하겠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밝히며 시작했다. 비엔날레의 로드맵은 건축가 렘 콜하스의 건축사무소 OMA에서 진행한 도시 연구 ‘팔레르모 아틀라스(Palermo Atlas)’를 토대로 구축했다. 회화, 조각 등 전통적 매체를 철저히 제외하고 건축적 큐레이팅에 입각해 전체 행사를 기획한 마니페스타 12는 팔레르모의 유서 깊은 역사 위에서 이주와 기후변화라는 당대의 위기에 접근하고자 했다.

카탈루냐 지역의 텍스타일 아티스트 호셉 그라우-가리가(Josep Grau-Garriga)를 기념하는 그라우-가리가 텍스타일 아트 센터. ©Manifesta 15 Barcelona Metropolitana, Helena Roig.

바르셀로나 일원, 마니페스타 15의 작품이 설치될 장소. 5세기경 지은 에가라(Egara) 주교구. ©Manifesta 15 Barcelona Metropolitana, Helena Roig.

마니페스타 15의 메인 전시장 역할을 하는 ‘3개의 굴뚝(Les Tres Xemeneies)’. 사용을 멈춘 1970년대의 화력발전소를 마니페스타 15를 위해 전시장으로 재개관했다. ©Manifesta 15 Barcelona Metropolitana, Arnau Rovira.

 예술이 제시하는 대안적 도시 
2024년 9월 8일부터 11월 24일까지 열리는 마니페스타 15가 선택한 도시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다. 바르셀로나 외에도 주변의 11개 위성도시가 동참한다. 이로써 총 12개 도시를 넘나드는 마니페스타 15는 비엔날레 역사상 가장 넓은 지리적 범위를 아우를 예정이라고. 세계적 인기 관광지로 떠오른 바르셀로나에서는 ‘매스투어리즘’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 동시에 일반적 의미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넘어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 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다. 특히 시민의 삶과 밀접한 부동산 개발 정책이 ‘공유 숙박’, ‘단기 임대’ 등 새로운 형태의 수익 모델과 상충하며 도심과 농촌의 불평등 및 커뮤니티 파괴, 지역 정체성 훼손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이에 마니페스타 15는 선행 연구를 거쳐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대안적 도시 및 구조, 사회, 예술 커뮤니티를 지역 인프라와 연결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그 결과, 지역 주민과 함께 주최한 공개 집회에서 얻은 결과와 아카이브 리서치를 종합해 비엔날레 프로그램의 개념적 틀을 마련했다. 궁극적으로는 예술적 개입과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활용해 외곽 지역으로 문화적 관심을 분산하고, 도시와 도시 간 교류에 초점을 맞춘다. 다양한 층위의 교류와 협업을 위한 대안 모델 창출, 폭넓은 예술 관람층을 위한 접근성 확대, 투명성 제고, 친환경 문제에 집중하고, 커뮤니티에 기반한 프로젝트를 강화할 것이라고.
특히 마니페스타 15가 주목한 모델은 ‘아트 레지던시’다. 바르셀로나 교외 지역에 레지던시를 마련해 예술가와 예술 활동이 도시, 문화,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참여적이고 다학제적인 방식을 제안한다. 바르셀로나의 역사적 중심지 외에도 도시를 둘러싼 강, 산, 바다 등 자연환경과의 공존을 모색하고, 나아가 이러한 도시적·환경적·정치적 과제가 유럽 대륙을 넘어 전 지구적으로 미치는 영향까지 확장해나간다. 이른바 ‘생태사회적 전환’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험하기 위해 마니페스타 15는 다양한 배경과 전문성을 가진 이들을 초대해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와 시간 기반의 예술적 개입을 꾀한다.
행사가 열리는 주요 전시 장소는 열여섯 곳. 바르셀로나 건축 역사에 ‘합리주의 건축 운동’의 아이콘으로 기록된 에익삼플레 거리의 한 건물에 자리한 마니페스타 15 본부도 그중 한 곳이다. 전체 프로그램은 크게 3개 구역에서 이어진다. ‘밸런싱 컨플릭츠(Balancing Conflicts)’, ‘큐어 앤 케어(Cure and Care)’, ‘이매지닝 퓨처스(Imagining Futures)’는 곧 주제이자 기준이 되는 지역을 의미한다. 지역별로 ‘포커스 위크(Focus Weeks)’를 기획해 테마별 비엔날레 프로그램을 집중 소개하는 기간도 마련한다.

바르셀로나와 주변 도시 출신 문화계 인사로 구성한 마니페스타 15 예술팀. 왼쪽에서 일곱 번째 인물이 크리에이티브 메디에이터 필리파 올리베이라. ©Pietro Bertora / Manifesta 15 Barcelona.

1950년대 카탈루냐 합리주의 건축 디자인의 상징으로 꼽히는 카사 고미스(Casa Gomis). ©Nomad Studio

20세기 중반 카탈루냐 지역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구스타보 길리(Gustavo Gili) 출판사 옛 본사 건물. 마니페스타 15 예술팀 사무실이 이곳에 위치한다. ©Manifesta 15 Barcelona Metropolitana, Helena Roig.

 감독 대신 중재자 
예술 비엔날레라는 형식은 난관과 자성의 순간을 맞이하지만, 그 자체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는 예견처럼 마니페스타도 부단히 새로운 길을 찾으려 애쓴다. 전통적 용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총감독 혹은 예술감독으로 큐레이터를 초빙하는 일반적 방식이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메디에이터(Mediator, 중재인)’라는 직책으로 호명하는 것이 대표적 예.
올해 크리에이티브 메디에이터는 포르투갈 출신 큐레이터 필리파 올리베이라(Filipa Oliveira)가 맡았다. 2021년 포르투갈 코임브라 비엔날레의 공동 큐레이터, 제2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의 큐레이터 어시스턴트를 역임한 인물이다. 올리베이라를 중심으로 꾸린 예술팀에는 바르셀로나와 주변 도시에서 온 11명의 문화계 인사도 합류했다. 지역 출신 예술가의 참여도 두드러진다. 아우렐리아 무뇨스(Aurèlia Muñoz), 클라우디아 파헤스(Claudia Pagès) 등 스페인 아티스트와 더불어 아나 멘디에타(Ana Mendieta), 제러미 델러(Jeremy Deller), 주디 시카고(Judy Chicago), 엠버시 오브 더 노스 시(Embassy of the North Sea) 등 총 85명(팀)이 신작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과 프로젝트를 공개할 예정이다.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마니페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