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와 나
노보를 인터뷰했다. 지금 노보는, 그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노보
노보는 대한민국의 아티스트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프랑스를 기반으로 유럽을 돌아다니며 타투와 드로잉을 배웠다.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타투와 드로잉을 중심으로 다양한 설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16년부터 ‘노 다이셀프(know thyself)’라는 자신의 신념을 담은 전시를 연속해 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노보를 타투이스트라고 부른다. 틀리지도 않고 맞지도 않다. “타투가 뭐야?”라고 물으면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대답을 할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그것 역시 틀리지도 않고 맞지도 않다. 중요한 건, 우리가 타투의 본질에 대해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보를 만나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강조하고 싶지 않다. 그것 말고도 노보와 나눌 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2016년, 노보는 네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굉장한 열정이다. 그룹 전시까지 포함하면 너무 많다 싶을 만큼 전시를 했다. 그는 드로잉을 하고, 사람들은 잘 모를 테지만 설치 작업도 했다. 타투이스트의 틀 안에 가두기엔 노보는 넓고 크다.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건, 선 하나를 긋고 점 하나를 찍을 때, 익숙한 단어를 벽에 적는 순간에도 그가 그 평범한 행동을 얼마나 깊이 고뇌하면서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조금은 아는 사이다. 자주 만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를 생각하면 늘 약간의 존경심이 몸속에 어떤 기운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가 무엇인가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패션 잡지에도 자주 등장한다. 내년에는 한 글로벌 브랜드와 꽤 큰 규모의 협업 작품을 선보인다. 나는 노보가 대한민국의 순수 미술 신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미술 정규과정’에 소속된 적이 없다. 이른바 기존의 잣대로 그를 판단하고 평가하는건 굉장한 오만이라고 나는 감히 여기 적는다. 그깟 기준은 깔아뭉개버리라고 지금 여기 노보가 나타난 것이라고도 적는다. 그러나 노보는 고요한 사람이다. 그저 자신의 넘치는 창작 욕구를 작품으로 표현할 뿐이다. 그는 자신이 이루게 될 것들을 모른다. 나는 안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미래에서 왔다고 우기고 싶다. 하지만 선입견을 걷어내고 정확하게 바라보면 누구나 알 것이다. 노보가 어떤 작가인지.
우성/ 새로 한 드로잉 작품들을 방금 봤는데, 수십 개나 되는 것 같더라고요.
노보/ 8월에 전시를 하거든요. 하기 위한 전시가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전시예요. 작년에 전시를 네 번 했는데, 전시마다 주제가 달랐지만 큰 틀은 같았어요.
우성/ 노 다이셀프(know thyself)?
노보/ 네. ‘너 자신을 알라’는 뜻이에요.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기록하는 전시죠. 그 개념들을 모아 다시 한 번, 내 자화상이라는, 나 자신을 관찰하며 기록한 작품을 전시하려고 해요. 그래서 드로잉 작품이 많아요. 자화상을 그리면서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그렇게 상상한 모습과 연관되는 오브제들도 설치 작품으로 같이 전시할 거예요.
우성/ 전시를 본 사람들은 노보를 어떤 아티스트로 인식하게 될까요?
노보/ 정의하고 싶지 않아요. 정의할 수 없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분명한 건 그 사람 것이어야 한다는 거죠. ‘그것이 어떤 거다’라는 게 아니라, 있는 대로 보는 거고요. 제 작품은 과정이에요. 제가 저를 관찰하며 알아가는 과정, 그 과정을 전시의 형태로 보여줄 뿐이죠.
우성/ 지금, 되게 흥분한 것 같아요.
노보/ 미래를 생각하면 흥분되고 설레요. 하고 싶은 게 이렇게나 많아요.
우성/ 노보의 드로잉, 설치 작품 등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죠.
노보/ 네. 제가 그리거나 쓰는 건 ‘스위트(sweet)’, ‘해피(happy)’, ‘홈(home)’, ‘러브(loev)’, ‘호프(hope)’ 이런 단어예요. 직관적인 것들이죠. 벽이나 캔버스에 이 단어들을 썼다고만 볼 수도 있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제가 이 단어들에 대해 고민한 만큼, 그 고뇌에 담긴 간절함이 보는 사람들에게 전달될 거라고. 저는 정말 마음이 전달된다고 믿어요. 제 타투와 그림에는 종이비행기가 자주 등장해요. 그것도 희망을 상징하죠. 사람들은 언젠가 알게 될 거예요. 제 전시를 보거나, 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저에 대해 더 알게 되면 무언가 조립되는 느낌을 받을거예요. ‘아, 노보는 그래서 이런 걸 하는구나. 이런 그림, 이런 타투, 이런 설치, 이런 언어를 다루는구나’라고. 그게 무엇이든 분명히 알게 될 거예요.
우성/ 노보는 타투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아티스트라고 알려져 있잖아요. 작년 전시를 보면 설치 작품도 꽤 많더라고요. 그 작품이 흥미로웠고,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노보/ 잘 아시겠지만, 프랑스에서 타투를 배웠어요. 그 이야기는 이따 더 하겠지만, 아무튼 한국에 돌아왔을 때 친한 친구의 친한 형이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 형이 대화 중에 “너는 왜 타투로 작업해?”라고 물었어요. 그래서 저는 타투 머신의 기계음이 매력적이고, 아무것도 없는데에 선이 하나 생기는 게 매력적이라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그 형이 “그거 말고 네 안에 본질적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달랐어요. 모자를 쓰고 학교에 갔고, 전교생이 각진 가방을 멨지만 저는 배낭을 메고 다녔어요. 어머니는 광장시장이나 동대문시장에 가서 미군들이 입는 운동복 팬츠를 사서 저에게 입혔죠. 그때 애들이 저한테 “너는 왜 수영복을 입고 다니니” 그랬어요. 저는 그게 창피하지 않았어요. 저는 창의적인 아이였어요.
우성/ 그러고 나서 암흑기를 보내게 되죠.
노보/ 네. 중·고등학교 때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다 안 된다는 거예요. 머리를 짧게 자르라잖아요. 왜 그래야 하는지 몰랐어요. 교복을 입고 학생화를 신으라고 하는데 그것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건 다 선생님 기준이잖아요. 기준에 안 맞추면 때려요. 화가 났어요. 왜 맞아야 되지? 반감이 커졌죠.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게 억울해요. 누군가 저를 앉혀놓고 제대로 설명해주었다면,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다면, 저는 정말 엄청 다양한 생각을 하는 어른이 됐을 거예요. 어릴 때 저는 창의적이었어요. 하지만 그 시기에 재능이 사라졌어요. 그래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은 어떻게 보면, 제가 다시 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1 (왼쪽) Hope 3, Mixed Media, 22×16cm, 2017 (오른쪽) Hope 7, Mixed Media, 20.5×29.5cm, 2017
2Second Hope, Mixed Media, 390×480cm, 2017
3Understand, Mixed Media, 52×18.5cm, 2016
우성/ 다르다고 느끼는 것에 흥미가 있는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는 어땠어요?
노보/ 학교에 안 다니고 개인 작업을 했어요. 한국 유학생들이 거기 와서 입학 준비를 하는 걸 보면 답답했어요. ‘학점을 받고, 특정 과목을 이수하려는 거면 여기 왜 오지? 한국에서 하면 되잖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런 걸 원한 게 아니에요. ‘어떻게 하면 원천적으로 창의적일 수 있지? 순수하게 진짜 창의적일 수 있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거기서 학교에 다니고 졸업하면 한국에서 하던 거랑 다를 게 없잖아요. 그렇게 하면 제가 가진 것들을 잃어버릴 것 같았어요.
우성/ 그때 타투를 시작한 거죠?
노보/ 네. 독학으로요. 스물네 시간을 온전히 저를 위해 썼어요.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타투와 관련된 것을 찾아봤어요. 타투로 내가 가진 반감을 표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 마음을 담아 작업했죠. 그때부터 노보라는 이름을 썼어요.
우성/ 그때부터 타투를 소재로 작업한 거죠? 많은 사람이 노보를 타투이스트라고 부르는데, 나는 이 부분이 오해인 것 같아요. 타투이스트가 아닌 게 아니라, 그것이 일종의 도구라는 점을 망각한다고 할까. 그런데 왜 타투였어요?
노보/ 본능적으로 시작됐다는 게 엄청 매력적이었죠. 예를 들어 이 아이폰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거잖아요. 문신, 벽화 작업, 고기를 익혀 먹는 것 같은 건 본능적으로 하게 된 것이죠. 지금은 타투가 패션 스타일의 하나가 되었지만 그 시초는 본능적 행위였어요. 그래서 타투가 제 작업 소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죠.
우성/ 뜬금없지만, 노보에게 타투란?
노보/ 신념!
우성/ 타투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이루고 싶은 건 뭐예요?
노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당신들이 싫어하는 문신이 진짜 멋있다는 걸 보여줄게! 내가 죽을 때까지 이 일에 신념을 담을게. 그래서 당신들은 끝내 몰라도 당신들의 자식은 문신의 가치를 알게 해줄게.’ 이런 마음이었죠.
우성/ 몸에 타투가 많잖아요. 사람들이 쳐다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요?
노보/ 제 양팔에 블랙 타투가 있잖아요. 한때는 여름에 반소매를 안 입었어요 .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 타투를 본 청소년들이 받을 영향을 제가 책임질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따라 하고 싶어질 수 있잖아요. 그때는 저도 어렸고, 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제가 청소년들이 따라 할 만한 괜찮은 어른이 될지 알 수 없었어요. 그런 감정이 스스로 감당이 안 돼서 긴소매를 입고 다녔어요. 근데 사람들은 제가 타투를 가리고 다닌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건 달라요. 정말 달라요.
우성/ 작년과 올해 마치 쏟아내듯이 작품 활동을 하고 있잖아요. 당신 안의 어떤 마음이 당신을 이끌고 있는 걸까요?
노보/ 저는 어린아이처럼 마음껏 표출하고 있어요. 자신을 돌아보면서 제 것을 찾는 과정이라는 게 조금 다르겠죠. 선 하나 긋고 점 하나 찍는 것도, 그게 단순한 선 하나가 아니고 점 하나가 아니에요. 제 이야기죠. 재료를 손에 쥐고 있는 순간만큼은 두려운 게 없어요. 뭔가 만들면서 표현하는 게 정말 좋아요. 뭐든 하고 싶어 미치겠어요.
우성/ 언제 힘들어요?
노보/ 힘든 건 없어요. 작년에 전시를 준비할 때 작업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랑 프로듀서랑 걸어 다니면서 뭐든 주웠어요. 그걸 고르고 조합해 설치 작품을 만들었어요.
우성/ 작년에 전시한 설치 작품을 보면 유년의 경험이 모티브가 된 것 같더라고요.
노보/ 어머니가 제가 서른 살에 돌아가셨어요. 지금까지도 어머니의 공백때문에 힘들어요. 제 모든 감성을 물려주신 분이니까요. 어릴 때 왕십리 공장지대에 살았는데, 1층이 목공소였어요. 어머니가 장난감을 다 사주실 수는 없고, 그래서 목공소에서 버린 나무를 주워와 물감을 칠하고 니스도 칠해서 주셨어요. 저는 그걸 가지고 놀았고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우성/ 엄마가 노보의 작품에선 중요한 소재인 거죠? 작년에 전시한 바이올린 작품도 엄마에 대한 기억이 담긴 작품이잖아요.
노보/ 중학교 때 듣던 전자 바이올린 소리가 굉장히 좋아서 오래 기억에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프랑스에 갔을 때 돈을 모아 샀죠. 그게 첫 바이올린이었어요. 두 번째 바이올린은 제가 결혼한 후 선물로 받았어요. 제 아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제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자랐어요. 세 번째 바이올린은, 어느 날 프로듀서가 저한테 질문을 하는 거예요. 왜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느냐고. 그러면서 동생이 쓰던 바이올린이 있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으니 저에게 주겠다는 거예요. 그 순간 소유한 물건으로서의 바이올린이 작업의 오브제로 바뀌었어요. 청계천에서, 1만 원에 이만큼 살 수 있더라고요. 사다 걸어놨어요. 그런데 그 덩어리감이 엄마의 자궁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바이올린을 어머니라고 생각하면서 작업했어요. 그게 저한텐 절실했어요. 어머니와 대화하고 싶을 때 바이올린이 말을 걸어줬죠. 그즈음 깨달았어요. 어머니가 없는 빈자리를 바이올린이 채워줬구나.
우성/ 8월 전시에 대해 더 이야기하자면, 드로잉을 먼저 그린 것부터 차례로 봤는데 그림체가 달라지더라고요. 왜 그런 거예요?
노보/ 어떤 재료로 그리느냐에 따라 그림체가 바뀌거든요. 처음엔 색연필로 그렸어요. 그러다 파란색 물감으로 배경을 칠했어요. 어머니가 남기신 붓과 물감이 있거든요. 그 후에는 펜으로 그리고, 점점 자화상을 표현하기 수월한 재료를 찾아간 거죠. 색연필로 시작해 마지막에는 ‘크링크’라는 재료로 그렸어요. 그라피티 작가들이 쓰는 전용 마카 같은 거예요. 앞쪽의 쇠구슬이 눌리면서 잉크가 나와요. 양 조절을 잘해야 원하는 느낌으로 그릴 수 있어요.
우성/ 그 재료들은 어떤 기준으로 고른 거예요?
노보/ 돈이 많이 안 드는 걸로 그려야 했어요. 집에 있는 재료를 써보기도 하고 여러 재료를 섞기도 하면서 제가 원하는 그림체를 찾았어요. 캔버스 살 돈이 없었는데, 다행히 지인들이 캔버스를 사줬어요. 그 그림들은 작년 12월까지린 그거예요. 올해 1월부터는 이어지는 다른 작업을 하고 있어요. 마리아 작업, 폰트 작업…. 아, 네온 작업도 있어요.
우성/ 아, 물론 다 같은 맥락이겠죠? 너 자신을 알라, 노 다이셀프!
노보/ 네. 맥락은 같아요. 여기 사진이 있어요. 네온의 빛을 보고 자기 자신의 ‘노다이 셀프’를 찾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작품이에요. 이건 마리아상 작품이에요. 종교적 의미로 만든 게 아니에요. 누구나 희망이 있고 바람이 있잖아요. 그게 이뤄지길 바라며 기도하잖아요. 절실한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오브제가 있었으면 하죠. 그런 마음을 담고 싶었어요. 이 설치 작품들도 저에겐 그림이고 글이에요.
★ 노보의 새로운 개인전 [Understand Part. 1] < When I Was Young >은 8월 11일부터 9월 1일까지 윤현상재 Space B-E Gallery에서 열린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글 이우성(시인) 사진 김태선(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