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더 높이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고, 스포츠 클라이밍의 매력에 한번 빠져들면 헤어날 수도 없다.

날이 따뜻해지니 문득 산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는 등산을 하고픈 소소한 욕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심 한복판에 살면서 산을 찾아간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오가는 빌딩 숲 사이에서 스포츠 클라이밍 센터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바로 저거야.” 몇 달 전부터 클라이밍을 시작했다는 지인에게 어떤 운동인지 물었다. “마치 새로운 여자를 만난 기분입니다. 처음에는 가장 쉬운 단계도 오르지 못해 절절매다 차츰 한 단계 한 단계 오르면서 정복하는 희열이 다음 단계에 대한 도전정신과 성취욕을 불러일으켜요.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오묘하면서도 야릇한 후기를 전하고 다시 클라이밍 센터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이 그새 더 탄탄해진 듯했다.
클라이밍이 정확히 어떤 운동인지 잘 모르는 이들도 다 안다는 클라이밍 여제 김자인 선수의 코치로 ‘더자스 클라이밍 짐’을 운영하는 김자하 대표는 “클라이밍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말이지요”라고 운을 뗀다. “연습하는 만큼 잘할 수 있고 여느 운동처럼 오래 한다고 지겹거나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항상 새로운 움직임과 코스에 도전할 수 있으니까요. 요즘 대세인 잔근육이 발달한 탄탄한 몸으로 가꿀 수 있고, 특히 남성미가 돋보이는 등 근육 만들기에는 최고입니다. 클라이밍을 손으로 당겨서 올라가기만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손으로 잡고 오르는 힘, 등으로 당기는 힘, 다리로 밀어주는 힘을 키우는 것은 물론 코어와 복근까지 단련할 수 있는 전신운동입니다.” 클라이밍을 시작하기 위해 거창한 준비를 할 필요도 없다. ‘비블럭 어반 클라이밍 짐’ 김다빈 팀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실내 클라이밍 센터에서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는 암벽화와 평상시 입는 운동복만 갖추면 됩니다. 단, 암벽화가 발에 잘 맞지 않으면 추락 위험성이 높아지므로 신발 사이즈를 잘 체크해야 합니다. 타이트한 암벽화를 신어야 발가락이 잘 모이고 살짝 구부러져 제대로 디딜 수 있지요. 간혹 장갑을 착용하면 더 잘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장갑이 겉도는 경우가 많고 마찰력 때문에 오히려 더 미끄러울 수 있습니다.” 운동을 위한 복장은 이제 준비 완료. 그럼 운동에 적합한 실내 클라이밍 센터를 검색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클라이밍 센터가 인공 암벽 시설인 암벽장(巖壁場)의 줄임말 ‘암장’으로 통하지만 국제적으로는 클라이밍 짐(gym) 또는 클라이밍 월(wall)이라고 표기한다. 초보자라면 무조건 집이나 회사에서 가까워 자주 들를 수 있는 클라이밍 짐에 등록하는 것이 좋다. ‘디스커버리 클라이밍 스퀘어 ICN’의 정지현 팀장은 “일반적으로 주 3회를 권장하지만 초보자의 경우 가능한 한 매일 조금씩, 본운동 기준 약 30분씩이라도 연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클라이밍을 잘하기 위해서는 수평 세계가 아닌 수직 세계에 적응해야 하지만 성인의 신체는 이미 직립보행에 최적화한 상태이기 때문에 클라이밍 본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꾸준한 시간 투자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원래 오르려는 강한 본능을 타고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일수록 높은 곳에 기어오르고 무언가 잡고 매달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점점 자라면서 그런 감각을 잃게 되죠.” 일단 클라이밍 짐을 방문해 체험해보면 높이 오르려는 인간의 본능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 쾌감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다. 따라서 가까운 센터에서 클라이밍의 기초를 익히고 기쁨을 느끼면서 근육과 인대를 활용하고 강화하는 법을 배우면 자연스레 규모가 더 크고 높은 시설을 찾거나 새로운 루트에 도전하게 될 것. 클라이밍의 공식 종목은 로프로 묶고 제한된 시간 내에 인공 암벽 루트를 최대한 높이 오르는 ‘리드(lead)’, 5m 이내 인공 암벽에서 정해진 루트를 안전 장비 없이 맨손으로 빠르게 오르는 ‘볼더링(bouldering)’, 로프를 장치하고 규격화된 암벽 루트를 누가 더 빨리 오르는지 겨루는 ‘스피드’ 등이 있다. 도심의 클라이밍 짐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종목은 볼더링으로, 홀드(hold)라고 부르는 알록달록한 인공 조형물을 손으로 잡고 발로 디디며 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잡을 수 있는 조형물을 표시해놓고 향하는 루트를 정해놓기 때문에 그 루트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진다. 수직 벽에 붙은 홀드를 잡고 오르는 것은 비교적 쉬워 보일 수 있지만, 경사가 있는 벽은 홀드를 잡고 매달리는 것만으로도 힘들 정도다. 처음에는 볼더링으로 오르는 것에 익숙해진 후 차츰 리드와 스피드 등에 도전하면서 실력을 기르는 것이 좋다.
디스커버리 클라이밍 스퀘어 ICN
리드, 볼더링, 스피드 시설을 모두 갖춘 곳으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초대형 센터다. 스트레칭 룸, 트레이닝 룸, 키즈 클라이밍 센터 등 초보자를 위한 공간도 마련해 누구나 클라이밍을 즐길 수 있다. 공식 경기장과 같은 4.5m 높이의 볼더링장에는 60개 이상의 루트를, 15m 리드 월에는 70여 개의 루트를 마련해 흥미진진하고, 스피드 월에는 계측기를 설치해 시간 측정과 함께 경기가 가능하다. 문의 032-715-5014

비블럭 어반 클라이밍 짐
볼더링에 특화한 클라이밍 짐으로 특수 인공 벽 설계와 그립감이 탁월한 유럽산 고급 홀드를 사용해 차별화했다. 2015년 시즌 월드 랭킹 1위에 등극한 천종원 선수를 비롯해 현 국가 대표 선수들이 운동하는 곳으로, 강사 역시 전·현직 국가 대표 선수다. 처음부터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제대로 볼더링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분기별 볼더링 파티와 각종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문의 02-547-5838

더자스 클라이밍 짐
클라이밍 가족으로 유명한 김자하, 김자인, 김자비 선수가 클라이밍 문화 창조와 대중화에 기여하고자 오픈한 곳으로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다. 클라이밍을 체험해보거나 가족 나들이, 건강한 데이트 장소로도 손색없다. 지속적으로 운동하는 회원이 지루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루트를 교체하고 홀드 세척을 통해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며 두 달마다 볼더링 대회를 개최해 친목을 도모한다. 문의 02-3445-5014
모든 운동은 본운동만큼 웜업(warm up), 즉 준비운동이 중요하고, 이는 클라이밍도 마찬가지다. 운동 전 10분 이상 스트레칭은 필수로 정적인 스트레칭으로 시작해 동적이고 다소 강한 스트레칭으로 마무리한다. 홀드를 가볍게 잡고 오르내리는 동작으로 몸을 푸는 것도 좋은 방법. 준비운동을 잘했다고 방심하지는 말자. 운동 중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몇 가지 사항을 유념해야 한다. 김다빈 팀장은 “클라이밍을 배우면서 자연스레 떨어지는 타이밍과 착지 방법을 익힐 수 있지만 처음에는 감을 잡기 어려우므로 과욕을 부리거나 무리해 오르는 것은 금물”이라고 조언한다. 초보자일수록 오르는 도중에 조금이라도 추락 위험을 느끼거나 힘이 빠지면 무조건 홀드를 잡고 천천히 내려와 발로 착지해야 한다. 정지현 팀장 역시 “오르기 전에 탄력 있는 매트리스에 착지하는 동작을 충분히 연습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특히 초보자의 경우 불안정한 착지로 인한 발목 염좌와 홀드나 벽에 피부가 쓸려 찰과상 또는 화상을 입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클라이밍 후 근육이나 인대에 지속적으로 통증을 느낀다면 파스를 붙이거나 찜질을 하는 등 자가 치료보다는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덕M재활의학과 이혁 원장은 “손목과 손가락, 팔꿈치 근육에 손상을 입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말한다. “심한 낙상이 아니면 뼈를 다치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근육이나 인대, 점액낭 등의 연부 조직 파열이나 염증을 살핀 후 물리치료, 약물 또는 주사 치료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전 기준만 잘 준수한다면 사고 위험이 거의 없고 어느 운동보다 완벽한 심신 단련법이므로 시작도 하기 전에 걱정부터 앞세울 필요는 없다. 신체 운동 효과와 관련해 김다빈 팀장은 “유산소운동과 근육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고 칼로리 소모량이 상당해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스포츠 클라이밍은 시간당 평균 600kcal 정도를 소모하는 초특급 운동. 이혁 원장은 “한쪽 팔과 근육만 사용하는 편측 운동과 달리 양팔과 다리, 몸통을 균형 있게 사용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디스크 증상이 있는 환자에게는 굴곡 운동보다 몸을 쭉 펴는 익스텐션, 즉 신전 운동이 필요하므로 클라이밍처럼 전신의 균형을 맞추며 움직이는 신전 운동은 유익한 편입니다.” 정지현 팀장은 마인트 컨트롤 면에서도 이만한 운동이 없다고 강조한다. “클라이밍의 참된 매력은 정신적인 부분에 있습니다. 수직 방향 운동이 흔치 않기에 높이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공포를 이겨내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오른 높이에 대한 성취감은 타인을 이겨 얻은 승리감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세상 모든 것을 극복한 기쁨이라고 할까요. 성취감이 조금씩 쌓이면 이 운동에서 헤어날 수 없지요. 상당한 정신력과 집중력이 필요한 만큼 일상과 업무에 대한 집중도가 상승하고 자신감과 자존감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회 운동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사람마다 체중과 기술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적정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초보자라면 1시간 내에 운동을 마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체력이 다할 때까지 오르는 것은 부상 위험이 있기 때문. 단, 신경계 적응 기간이 지나면 다소 지칠 때까지 훈련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전문가가 “몇 시간을 운동하든 내려올 힘을 남겨두는 것이 클라이밍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니 잘 새겨두자. 사람은 오르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지만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려는 본능 또한 강하다. 옆에서 홀드를 척척 잡고 원숭이처럼 쑥쑥 오르는 이를 보면 주눅이 들 수도 있다. 저 사람은 클라이밍에 적합한 신체 조건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남성은 175cm, 여성은 165cm 정도가 클라이밍에 가장 적합한 신장이지만, 세계 톱 순위 클라이밍 선수들은 의외로 신장이 작으니 키 탓은 하지 말길. 이보다 중요한 신체 조건은 양팔을 벌린 길이. 이 너비가 신장보다 긴, 일반적으로 팔이 긴 사람일수록 더 유리하다. 하지만 노력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 체중이 많이 나간다고 클라이밍을 잘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몸무게를 버틸 만한 근력이 없다면 불리하다. 자신의 체중과 몸을 컨트롤할 수 있는 근력과 신체의 균형이 중요하고, 그래서 이를 강화하면서 실력을 키우는 것이 바로 클라이밍이다. 철봉에 매달리기와 턱걸이부터 시작해 유연성과 코어 근육을 함께 단련하는 요가를 병행하면 도움이 되고, 기본적인 웨이트트레이닝과 크로스피트도 클라이밍 실력 향상에 효과적이다. 클라이밍을 시작해 재미가 들리면 무작정 오르고 싶은 욕구가 무한대로 뻗친다. 집에서도 손잡이나 고리만 보면 잡고 오르는 상상을 한다고. 실내 클라이밍에서 나아가 실제 암벽을 등반하는 알파인 클라이밍이나 빙벽을 오르는 아이스 클라이밍 영역까지 넘보게 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실내 수영장과 바다 한복판에서 수영하는 차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한다. 수영을 한다는, 즉 올라간다는 공통분모는 있지만 환경이나 방법이 다르므로 이에 적합한 트레이닝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자신의 몸을 사용해 잘 오르는 법을 알기 때문에 훨씬 수월하게 배울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 모든 운동은 시작이 반 이상이다. 클라이밍 센터는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많으니 일단 문을 열고 직진할 것. 그리고 클라이밍에 매료될 이들에게 미리 말하고 싶다. 국가 대표에 도전하고 싶거나 에베레스트 16좌를 정복하고 싶은 욕구가 움터도 책임질 수 없다고.
에디터 최정연(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