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과학자 김대식
세상 어떤 뇌섹남도 고민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심도 깊게 말하는, 지금 가장 문제적인 이 남자.
김대식 교수는 열두 살 때 가족을 따라 독일로 이민 갔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독일에서 공부하며 다름슈타트 공과대학에서 심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이후 노벨상 사관학교라 불리는 독일 막스-플랑크 뇌 연구소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본격적으로 뇌 과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가 뇌 과학에 빠지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학부생 때 수개월씩 밤을 새우며 만든 ‘탁구 하는 로봇’을 작동하며 ‘기계도 쉽게 푸는 계산을 왜 인간은 못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다 그것에 빠진 것이다. 이어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MIT의 박사후 과정을 마치고 15년간 대학교수로 일했다. 일본에서 1년간 연구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카이스트에서 전자 및 전기과 교수로 일하기 시작한 건 겨우 5년 전의 일이다. 어릴 적 생활은 한국에서, 교육은 대부분 독일에서, 교수 일은 미국에서 했으니 세상을 한 바퀴 돈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세상을 돌며 연구한 그가 알아낸 뇌는 의외로 심플한 것이었다. 뇌를 아무리 잘라보고 해부해봐도 그 안에는 영상도, 소리도 없이 그냥 세포뿐이었다. 고작 1.5kg밖에 되지 않는 그 작은 세포 덩어리로 우리는 그간 우주를 연구하고 가늠하는 등 온갖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해답을 구한 거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뇌의 이런 초라한 모습에 더 끌렸다. 뇌가 없으면 ‘나는 나’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며, 결국 ‘나’라는 자아도 사라져버린다. 이처럼 뇌 과학에선 철학적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란 있는가 같은 것 말이다. 그는 뇌 과학의 이런 부분을 ‘실험 철학’이라 부르며 머리를 싸매고 연구했다. 철학자들과 거의 같은 질문을 하지만 실험으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는 점에서 기존 철학과는 다르다. “원래 과학은 질문과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영원히 풀리지 않을 만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거죠. 과학도, 수학도 그 과정에서 생겨났고, 궁극적으론 철학이 나옵니다.”
그의 말처럼 모든 현대 과학 문명이 철학에서 시작됐다면, 그건 아마도 3000년 전 그리스의 밤하늘 아래 누워 있던 옛 선인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같은 궁극적 질문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애초에 뾰족한 답이 없는 질문으로 시작해 그걸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수식으로, 어떤 사람은 말로, 어떤 사람은 음악으로, 어떤 사람은 시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 거라는 말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결국 핵심은 질문이며,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그가 펴낸 <김대식의 빅퀘스천>에는 태초부터 이제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온 다양한 철학적 명제가 등장한다. 그중 눈에 띄는 자문자답은 이런 거다. “삶에 의미가 있어야 하나?”라고 질문하고 “삶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의미 없는 삶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문제”라고 쓴 것 말이다. 그가 이렇게 쓴 이유를 보자. 모든 인문학 강연이 삶은 이렇고 저러며,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 의미라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은 것이다. “이건 모두가 생각해볼 문제예요. 과연 ‘의미’란 게 좋은 건지 말이죠. 사춘기엔 ‘삶에 의미가 없어, 죽고 싶어’라고 다들 한 번씩 말하잖아요. 그땐 의미가 없으면 나쁘다는 생각을 당연시했죠. 의미가 없는 것도 나쁘고, 나쁜 의미를 추구하는 것도 나쁘니까 좋은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요. 하지만 제 질문은 의미라는 게 진짜 그만큼 좋은 건지, 의미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거예요. 즉 ‘그것의 의미가 뭐냐’라는 건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라는 물음으로 바꿀 수 있죠. 이렇게 생각해볼 때 ‘삶의 의미는 무엇이고, 좋은 삶은 뭔가’라는 건 삶에 어떤 ‘기능’이 있음을 전제로 하죠. 여기서 종교적 해석을 제하고 과학으로만 따진다면, 자기 유전자의 보존과 확산이 인생의 의미일 거라는 말이 나와요.”
김대식 교수는 뇌 과학과 함께 오랫동안 연구한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열변을 늘어놓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땅엔 앞으로 50〜100년 안에 ‘강한 인공지능(어떤 문제를 실제로 사고하고 해결할 수 있는 컴퓨터 형태)’이 탄생한다. ‘약한 인공지능(기계적으로 일을 수행하며 사람 흉내는 내지만 자아나 자유의지가 없는 컴퓨터 형태)’은 빠르면 20년 후에도 가능하다. 약한 인공지능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으로, 이 세대를 ‘2차 기계 혁명’이라고 한단다. 1차 기계 혁명의 핵심은 사람의 육체적 노동력을 대체하는 것이었다. 한데 2차 기계 혁명에선 인공지능이 우리의 인지능력을 대신한다. 인간이 훨씬 자유로워지고 부자가 될 거라고 좋아하는 이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진 않을 수 있다. 기계는 지치지 않고 기억력도 무한대다. 결국 2차 기계 혁명이 진화하면 기계가 인간을 이길 수 있다. 터미네이터가 따로 없는 것이다. “이제까진 지구에서 인간이 가장 똑똑했어요. 그런데 기계가 지구에서 가장 똑똑해지면 모든 걸 자기 위주로 해석하기 시작할 거예요. 지금까지 지구에서 인간의 존엄은 절대적인 것으로 설정돼 있었죠. 그걸 설정한 건 인간이니까요. 하지만 기계에겐 인간의 존엄이 절대적인 게 아니에요. 기계가 볼 때 인간은 논리가 엉망이고, 말과 행동도 일치하지 않죠. 결국 기계가 인간을 없애버려야 할 존재로 볼 수 있는 거죠. 그럼 정말 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이런 건 앞으로 정치와 사회, 경제적으로 풀어야 할 일이고요.”
하지만 김대식 교수가 조금 전 얘기한 일은 실제로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는 이미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올 초 그는 ‘기술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실험을 이어온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함께 ‘싱귤래리티99(Singularity99)’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기술 발달로 다수인 99%가 일자리를 잃고, 1% 슈퍼 프로그래머가 부를 독식하는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술의 공존 방법을 모색하는 단체다. 이 모임에서 앞으로 그는 1% 미만의 프로그래머와 슈퍼 매니저가 이끌어가는 세상에서 다수가 일자리를 잃는 세상에 대한 대안을 연구할 계획이다.
인터뷰 말미, 김대식 교수는 뇌에 좋은 습관에 관해 묻자 “뇌는 예측한 정보와 현실을 비교해 큰 차이가 없으면 무시하거나 추가 정보 처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반복되는 생활이나 뻔한 생각보다는 새로운 경험과 생각 그리고 낯선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는 게 좋다는 말이다. 이는 정보에 수동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처리하는 것이 좋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그의 책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판단하도록 하는 하드웨어가 아니다. 또 이미 자신이 결정한 선택을 정당화하는 기계이기 때문에 인간의 의사 결정은 뇌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착각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의 삶이 착각으로 시작해 좌절로 끝난다 해도 어딘가에 솟아날 구멍은 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모든 걱정과 좌절 또한 우리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