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상남자인가?
여자가 남자에게 끌리는 요소에는 인상, 성격, 능력, 직업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절대 빠질 수 없는 게 ‘상남자’의 면모일 것이다.
영화 <생명의 나무>
브래드 피트 주연 영화 <생명의 나무>에는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복싱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가 “스스로를 방어하란 말이야! 어디 해봐!”라고 외치며 화난 표정으로 아들을 툭툭 친다. 아버지가 왜 화를 내는지, 아버지를 때리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어린 아들의 얼굴은 이유 없는 폭력에 대한 공포와 혼란,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가득하다. 남자들은 폭력과 친해지며 남자가 되는 법을 배운다.
사실 오늘날 남자가 길거리에서 주먹 쥐고 싸울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여전히 이종격투기 경기장과 피트니스 클럽을 메운다. 브래들리 쿠퍼나 휴 잭맨이 등장하는 폭력의 향연을 보면서 환호하고 거친 농담과 여성을 정복한 영웅담을 나누며 누가 더 남자다운지 겨룬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이제 먹히지 않는다. 우리들의 어깨 너머로, 그리고 TV나 잡지에는 여자 못지않게 날씬하고 예쁜 중성적인 남자들이 등장해 하트를 날리고 윙크를 하며 여심을 뒤흔든다.
사회생활을 하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는 프레임이 있다. 국회의원이 찢어진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길거리에서 피자를 뜯어 먹으며 돌아다니면 이상하지만 잘생긴 대학생이 그런 모습을 보이면 ‘낭만적’으로 보인다. 유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역할 구분에 대한 강박이 서구권보다 훨씬 강하다. 공자도 <논어>에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어버이는 어버이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하라고 분명히 밝혔다. 냉정하게 말해서 자기 역할에 최대한 맞는 연기를 하며 살라는 뜻이다. 약 10년 전만 해도 남녀를 불문하고 학생이 머리를 기르거나 문신을 하면 ‘학생답지 못하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남녀의 자기다움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길러졌다. 여자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윗사람에게 앉는 자세부터 말투까지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주의를 받으며 여자로 길들여졌다. 그런 면에서 여성으로 자라는 과정은 좋건 싫건 문화적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남자는 가정 안에서 길러지지 않았다. 역할 모델을 제시하기에 우리나라의 아버지들은 너무 바빴다. 어린 아들들은 사춘기가 되면 친구들과 몰려가서 19금 영화를 몰래 보며 키득거리거나, 미디어에 등장한 인기 많은 남자를 따라 하며 독학으로 남자다움을 배웠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남자는 이런 것’이라는 기준은 시시때때로 변했고 남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나도 10대가 되기 전에는 톰 크루즈가 영화 <폭풍의 질주>에서 시끄러운 미국의 스포츠카를 몰고 스피드의 공포를 극복하는 모습이나, 실베스터 스탤론이 아폴로 크리드를 주먹으로 때려눕히거나,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무표정하게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I’ll be back”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남자다움의 표상으로 여겼다. 떡 벌어진 어깨에 울툭불툭 튀어나온 근육 때문에 휘청거리는 걸음거리, 각진 날카로운 얼굴, 강렬한 눈빛, 찢어진 청바지와 해진 가죽 재킷, 사막을 향해 달리며 검은 매연을 내뿜는 낡은 미제 오토바이. 이런 것이 10대 이전의 나에게는 ‘남자의 상징’이었다.
영화 < 트루 라이즈>

상남자의 기준은 시대를 거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내가 미국으로 건너간 1990년대에 ‘자상한 남자’ 붐이 일기 시작했다. 그룹 보이즈투멘의 “네가 나에게 돌아온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나는 무릎을 꿇고 있잖아”식의 가사가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심지어 내 어릴 적 영웅인 아널드 슈워제네거도 1990년대 영화 <트루 라이즈>에서는 외로운 터프가이가 아니라 아내인 제이미 리 커티스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훌륭한 가장으로 변했다. 돈과 힘이 있어도 그것을 오직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서만 쓰는 사람, 나는 이때부터 다시 그것이 진정한 남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리키 마틴의 노래가 히트하면서 ‘멋진 상남자’의 이미지가 또 바뀌었다. 말끔하게 면도하고 여자처럼 길쭉한 몸매를 자랑하는 ‘매끈한’ 남자,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남자를 ‘남자’로 보지 않은 당시 미국인은 이들에게 ‘메트로섹슈얼’이라는 제3의 성을 부여했다. 이 남자들은 가정을 이루고 충실한 가장으로 사는 대신 뉴욕이나 런던 같은 국제적 대도시의 세련된 바에서 ‘픽업 라인’을 던지며 모델처럼 생긴 여자들을 유혹하고 매끈한 인테리어와 전망 좋은 아파트에서 칵테일 세트, 스테레오 시스템 같은 장비를 갖춰놓고 그것을 가족으로 여기며 살았다. 이런 경향은 점점 심해졌다. 2000년대 중반의 디자이너 청바지는 다리에 근육이 조금이라도 붙은 남자는 끼워 넣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가늘게 디자인되었다. 에디 슬리먼, 질 샌더의 재킷은 날씬하다 못해 ‘마르지’ 않으면 절대로 입을 수 없었다. 마침내 옷에 자신의 몸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굶겨야 하는 고통은 여자들의 전유물에서 남녀의 공통 과제로 떠올랐다.
이렇듯 ‘남자는 이런 것이다’라는 기준은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이 모든 이미지는 우리 머릿속 깊이 축적되었고 남자들은 터프하고 싶은 동시에 자상하고 싶고, 자상하고 싶은 동시에 세련되고 싶어지면서 다양한 상반된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게 되었다. 매스미디어는 쉬지 않고 새로운 상남자 모델을 만들어냈다. 요리 잘하는 요섹남, 머리 좋은 뇌섹남, 와인과 클래식에 능한 고상한 남자 등등. 많은 남성이 특히 최근 핸섬한 셰프들의 미디어 점령 이후 “남자로 사는 것이 정말로 머리 아파졌다”라며 한숨을 내쉴 정도로 상남자의 이미지는 또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 역사와도 맥을 같이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상의를 벗은 채 둥근 방패와 창을 가지고 자신의 도시국가를 보호하러 용감하게 전쟁터로 나가는 영웅들의 젊고 탄탄한 몸매가 상남자의 상징이었다. 이런 남자의 모습은 당시 그리스 여성에게는 생존에 대한 희망이자, 아이를 만들어 도시의 번영을 이어나가고 싶은 성적 본능의 자극제였다. 그리스인에게 남자의 의무는 아름다운 나체를 최고의 병기로 갈고닦는 일이었다. 기름칠한 기계 같은 몸으로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 경기에서 다른 주자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면 온갖 찬사와 영광, 그리고 여성들의 선망의 주인공이라는 상이 주어졌다. 중세의 유럽 기사들은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힘이 약해진 유럽인을 노예로 잡아가거나 살육하고 여자들을 해하려고 몰려든 아랍인, 바이킹, 몽골인으로부터 안전을 약속하는 보호자로 존재감을 높였다. 기사가 탄 흰 말과 빛나는 갑옷은 여성들에게 안도의 한숨과 함께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상남자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19세기가 되면서 다시금 상남자의 이미지에 대변혁이 일어났다. 젊은 남자보다는 나이 많은 남자가 인기를 끌었다. 젊은 남자들도 수염을 기르고 수염에 하얀 분을 발라 나이가 들어 보이려고 노력했다. 몸이 너무 마른 남자는 일부러 기름진 음식을 먹어 살을 찌웠다. 그 전까지 상남자는 맥주나 위스키를 병째로 비울 수 있고, 거대한 스테이크를 단숨에 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19세기는 자본주의의 도래와 맞물렸고 여성들은 젊고 몸 좋은 남자들이 적군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방패 같은 존재가 아니라, 돈을 못 벌어 논밭이나 공장에서 공구를 휘두르며 박봉으로 고생시킬 가능성이 높은 남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별로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 하지만 가난이라는 끔찍한 또 하나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돈이라는 방패가 있는 남자가 상남자로 떠올랐다. 뻣뻣하게 풀칠한 검고 무거운 정장, 왁스를 발라 가지런히 정리한 콧수염, 거울처럼 반질반질하게 닦아놓은 구두, 머리를 조금만 잘못 숙여도 떨어질 것 같은 모자는 ‘이 사람은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걸 보여주는 광고판이자 멋진 상남자의 상징이었다.
이상적인 상남자는 이렇듯 시대별로 변해왔다. 그러나 변함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의 커뮤니티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고대 그리스 남자는 몸을 갈고닦아 도시국가를 지키는 방패가 되어야 상남자 대접을 받았고, 19세기에는 돈을 많이 벌어서 공장을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해 국가 경제와 산업 발전을 주도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남자가 상남자였다. 21세기에 들어 매스미디어가 문화 주도권을 쥐면서 남자의 사회적 공헌과 성취에서 ‘남성성’이 분리되는 듯 보이지만 나는 사람의 본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긴 역사의 흐름이 말해주듯 결국 그 시대에 필요한 사람,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을 어느 사회건 남자다운 ‘상남자’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상남자가 되려면 피트니스 클럽에 가서 억지로 무거운 물건을 들고 내리며 근육을 기르거나, 취미에 맞지 않는데도 음악이니 미술 등의 문화 지식을 채우려고 고생하기보다는 자신의 역할과 이미지를 일치시키기 위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프랑스 철학자 카뮈는 자기 존재와 겉모습이 일치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찾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카뮈의 말처럼 남의 의견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세운 원칙을 지키며 사는 남자가 시대를 막론한 진정한 상남자다.
조승연 <이야기 인문학>, <공부 기술>, <그물망 공부법>, <비즈니스 인문학> 등 총 16권의 책을 출간하고 O tvN <비밀 독서단>, MBN <황금알>에 고정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하며 지금은 한문과 중국어를 배우면서 동양 언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오리진보카’ 대표로, 세계에 수출할 영어 어휘 학습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글 조승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