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칸타빌레
아름다운 음악은 능란한 프로페셔널의 손끝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실력과 열정, 무엇 하나 뒤지지 않은 세계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켄싱턴 심포니오케스트라
영국, 켄싱턴 심포니오케스트라 KensingtonSymphony Orchestra
6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온 켄싱턴 심포니오케스트라(KSO)는 현재 영국에서 가장 기량이 뛰어나고 실험적인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956년경 창립자 레슬리 헤드(Leslie Head)가 ‘요즘 오케스트라 프로그램은 너무 지루하다’며 학생과 아마추어 음악가에게 참신한 연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단 2명의 지휘자 리스트(레슬리 헤드와 현재 지휘자인 러셀 키블(Russell Keable))를 보유한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KSO는 누구나 알 만한 클래식 명곡은 물론 그동안 도외시해온 걸작과 저평가된 영화음악 그리고 동시대 작곡가의 작품을 엄선해 레퍼토리를 꾸린다. 무엇보다 오케스트라의 평판을 보여주는 예는 세계적 솔리스트와의 협연.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데미덴코(Nikolai Demidenko)와 오보이스트 니컬러스 대니얼(Nicholas Daniel), 바이올리니스트 태스민 리틀(Tasmin Little),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Steven Isserlis) 등이 지금까지 KSO의 무대를 함께했다. <클래시컬 뮤직 매거진>이 ‘금세기 최고의 아마추어 그룹 중 하나’라 평했고, <더 선데이 텔레그라피> 역시 ‘비전문 오케스트라의 가장 전문적인 연주’라며 극찬하기도 했다. KSO의 신년 첫 연주회는 1월 19일 퀸 엘리자베스 홀에서 열린다. www.kso.org.uk
뉴잉글랜드 필하모닉의 ‘A Distant Journey’ 공연 모습
미국, 뉴잉글랜드 필하모닉 New England Philharmonic
‘현존하는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하라.’ 이것이 뉴잉글랜드 필하모닉(NEP)의 미션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진취적인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로 평가받는 NEP는 창단 이후 30여 년간 열정적인 음악감독들에 의해 꾸준히 혁신을 거듭해왔다. 1976년 현악기만으로 구성한 미스틱 밸리 체임버 오케스트라(Mystic Valley Chamber Orchestra)에서 출발해 곧 관악기와 타악기 등을 더한 완전한 오케스트라로 재탄생했고, 1983년 음악감독 로널드 펠드먼(Ronald Feldman) 영입 이후 뉴잉글랜드 필하모닉이라는 새 이름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더불어 전속 작곡가 프로그램과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미국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그룹의 중심에 섰다. “NEP는 우리가 전형적으로 생각해온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훨씬 넘어선, 매우 전문적인 연주를 보여준다.” 2011년부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곡가 데이비드 라코위스키(David Rakowski)의 말이다. 한편, 현 음악감독 리처드 피트먼(Richard Pittman)이 전하는 NEP 최대의 유산은 매년 배출해낸 젊은 아티스트들이다. 1994년 처음 도입한 영‘ 아티스트 컴페티션’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진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지난해 승자는 14세 바이올리니스트 오스틴 권(Austin Kwoun)으로 12월 열린 NEP의 패밀리 콘서트에서 쇼스타코 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A단조’를 선보였다. http://nephilharmonic.org
일본, 분쿄 시민 오케스트라 Bunkyo Civic Orchestra, Tokyo
3000개가 넘는 아마추어 클래식 악단이 활동하고 악기를 사서 정기적으로 연습하는 인원만 20만 명에 달하는 클래식 마니아의 나라 일본에서도 유독 주목받는 시민 오케스트라가 있다. 도쿄 분쿄(文京)구를 중심으로 한 분쿄 시민 오케스트라(BCOT)가 그 주인공. 의사와 변호사, 교사, 방송국 PD 등 직업이 다양한 20대부터 70대까지 단원 90여 명이 참여하는데, 그간 일본 각지는 물론 독일과 크로아티아, 러시아 등 세계를 돌며 공연을 펼쳐 현지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02년에는 한국을 방문해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전주곡과 스트라빈스키 발레 모음곡 ‘불새’ 등을 연주했다. BCOT가 특히 유명해진 이유는 1993년 창단과 함께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온 지휘자 마쓰시타 이사오 덕분이다. 베를린 유학 시절 윤이상의 가르침을 받은 마쓰시타 이사오는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행진곡을 작곡한 세계적인 지휘자 겸 작곡가. 그는 음악가와 애호가가 만나면 음악가는 열정을 되찾고, 애호가는 전문적 기술을 전달받을 수 있다며 BCOT 덕분에 다시 음악을 취미로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www.bcot.info
드라마<베토벤 바이러스>의 모델이 된 서울시민교향악단
한국, 서울시민교향악단 Seoul Civic Symphony Orchestra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기억하는가. 오합지졸 시민 오케스트라의 성장담을 통해 우아함의 표상과도 같던 클래식 음악을 일상으로 끌어들인 이 작품은 2008년 국내에 기묘한 클래식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지만, 실제 드라마의 모델이 된 오케스트라가 있다. 2001년 창단한 서울의 아마추어 관현악단 테헤란밸리 오케스트라다. 2013년 창단 연주회 10주년을 기념하며 서울시민교향악단으로 새롭게 태어났는데, 2012년부터는 프로 오케스트라에도 쉽지 않은 도전인 베토벤 심포니 전곡 연주 프로젝트를 시작해 2014년까지 3년간 총 6곡(1번, 2번, 3번, 5번, 7번, 9번)을 선보였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이 기획한 시민 오케스트라 축제의 오디션 당시 심사를 맡은 클래식 평론가들로부터 ‘프로 단원들을 긴장하게 할 실력’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대부분 10년 이상 악기를 다룬 실력파인 데다 카셀 국립대학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를 역임한 광주시향 부지휘자 김영언이 현재 이들의 지휘를 맡고 있다. 2015년 3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제15회 정기연주회를 진행한다. http://seoulcivicsymphony.org
음악을 통해 빈민층 아이들을 보호하겠다는 포부 아래 시작된 엘 시스테마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 El Sistema
1975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허름한 차고 안에 11명의 빈민층 아이들이 모였다. 끔찍한 가난으로 미래를 잃어버린 아이들은 이곳에서 총대신 악기를 들고 난생처음 음악을 연주했다. ‘기적의 오케스트라’라 불리며 오늘날 세계 문화예술교육의 가장 훌륭한 사례로 꼽히는 엘 시스테마 프로젝트(2008년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시스테마>가 개봉했다)는 이렇게 시작됐다. 실제 엘 시스테마는 한 이상주의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경제학자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Jos′e Antonio Abreu) 박사가 음악을 통해 빈민층 아이들을 마약과 폭력, 범죄로부터 보호하겠다는 포부 아래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현재 세계 200여 센터에서 40만 명의 단원이 활동하는 거대한 재단으로 성장했다. 정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 재단(FESNOJIV).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가 ‘차세대 최고의 지휘자’로 지목해 화제가 된 미국 LA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과 17세에 베를린 필하모닉 역대 최연소 단원이 된 콘트라베이시스트 에딕슨 루이즈(Edicson Ruiz) 등이 엘 시스테마가 낳은 대표적 스타다. http://fundamusical.org.ve/en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글 류현경(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