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것도 아닌, 당신 자신의 것
알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생각하지 않는 모든 것. 한때 내가 의식했지만 지금은 망각한 모든 것. 옛 음악과 흘러간 만화에서 발현된 무의식으로 작가 이동기가 그려내는 것.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의 공존을 통해 작품 세계를 확장하는 이동기 작가.
이동기
1993년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결합한 아토마우스를 탄생시켜 한동안 ‘팝아트’와 ‘아토마우스’로 규정된 그는 사실 생각만큼 명쾌하지도, 간결하지도 않은 작가다.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형식이나 명칭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페인팅과 드로잉, 조각 작업을 해왔다. 그는 6월 30일까지 서울 평창동 갤러리2에서 개인전 < Words >를 선보인다
오는 택시 안에서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의 ‘프리 버드’를 두 번이나 들었어요. 그 정도는 준비해야 오늘 대화를 유연히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그것 참 명곡이죠.
그 앨범 가지고 계시죠? 멤버 7명이 함께 찍은 사진을 커버로 쓴 1973년 정규 앨범. (테이블 위에 놓인 수십 장의 LP 중 하나를 집어 들며) 이거죠. 이 앨범이 나오고 1년쯤 지나 멤버 7명 중 3명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었죠.
맞아요. 전 그래서 더 애틋해요. 이미 세상을 떠난 이가 생전에 남긴 목소리나 연주는 어딘가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거든요. 그림을 남긴 화가가 죽는 것과는 또 다른…. (다시 LP를 뒤적이며) 이 CCR의 앨범도 명반이에요. 전 이런 1960년대 히피 스타일을 좋아했어요. 여기 꽃무늬 셔츠. 이게 히피에서 시작됐죠. 이런 건 미술과도 관련이 깊어요. 록 문화라는 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서양에서 지난 역사를 반성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거든요.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 유행처럼 얘기하는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개념이 등장했고요.
이런 음반을 10대 때부터 모았다고 하셨죠? 1967년생이니 그럼 서울 올림픽 이전이었을 텐데, 중·고등학생 때부터 모은 것치곤 레어 앨범이 많아요. 고1 때 미대 진학을 결정하셨다고 들었는데, 미술 잡지 대신 이렇게 음반만 사 모은 건가요?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전엔 국내에 세계 미술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어요. 대부분 올림픽이 끝난 후 잡지를 통해 들어왔죠. 지금도 기억나는데 서울 올림픽이 끝난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선 포스트모더니즘이 크게 유행했죠. 제가 학교에서 배운 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새였어요. 바스키아가 20대 후반이었고, 제프 쿤스도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을 때였죠.
그러고 나서 5~6년쯤 지나 아토마우스가 나왔죠. 작가로 데뷔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발표한 작품이었어요. 한데 전 그 캐릭터가 그렇게 나이를 먹은 줄 몰랐어요. 1993년생이니 벌써 20대 후반이에요.처음엔 사실 기호처럼 그린 캐릭터였어요. 작품 속 하나의 기호 같은 것으로 생각했고, 처음엔 여러 개를 그릴 생각도 없었죠.
그런데요? 어쩌다 보니 가장 많이 작업하게 됐어요. 반응이 있었고, 저도 더 발전시키려 했죠. 당시 국내엔 만화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가 없었거든요. 여전히 만화는 순수 미술에서 다루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강했죠.
그럼에도 아토마우스가 나와 성공했어요. 그리고 그건 10대 때부터 록 음반을 사고, 만화책을 끼고 산 청년이 자연스레 갖게 된 사회에 대한 저항감 같은 데서 비롯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생각이 분명 있었죠.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게 기존의 틀을 깨는 아방가르드 미학이었거든요. 팝아트도 마찬가지예요. 보통 친숙한 물건을 그리는 부드러운 미술 사조라고 여기는데 사실 팝아트는 애초에 아주 급진적이고 과격한 흐름에서 시작됐죠. 아토마우스도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만화와 음악을 비롯한 로 컬처와 하이 컬처의 관계, 한국 문화에서 제 백그라운드의 어떤 요소를 가지고 작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탄생한 거죠.

LP 음반과 만화책 그리고 기타
빌리 코브햄(Billy Cobham), 에벌리 브러더스(The Everly Brothers), 토토(Toto), 알 재로(Al Jarreau), 산타나(Santana), 마마스 앤 파파스(The Mamas & the Papas) 등. 그리고 헌책방에서도 찾을 수 없는 1980년대 만화책과 (뮤지션이 되는 걸 포기하며 손에서 놓은) 기타. 그간 직간접적으로 그의 작업에 영향을 준 물건들.
그럼 최근의 ‘메모’ 작업은 어디서 파생한 건가요? 이렇게 글자만 들어간 페인팅은 처음 봐요. 요 몇 년 문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현대미술에 개념미술이란 장르가 있잖아요. 그 개념미술의 특징 중 하나가 문자를 많이 쓰는 거예요. 먼저 하나의 컨셉을 정하고, 그걸 보여주기 위해 작품을 구성하죠.
말 그대로 메모지에 남긴 글씨를 캔버스에 옮긴단 얘기죠? 맞아요. 평소 주변에 굴러다니는 메모지나 종이에 아무렇게나 끄적거린 1~2cm 크기의 작은 단어들을 캔버스에 확대해 그리죠. 메모를 사진으로 찍고 그걸 크기만 키워 그대로 그려요.
굳이 손으로 ‘복사’하는 이유는 뭐예요? PC로 크게 출력해 캔버스에 씌우면 쉽잖아요. 메모 자체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든 페인팅을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에요. 이번 작품은 이미지와 언어의 관련성을 생각하게 하죠. 데리다(Jacques Derrida)라는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원시시대엔 라이팅과 드로잉의 구분이 없었다고, 시간이 흘러 그 둘이 분리되었다고요. 둘은 실제로 같은 개념이었다는 얘기죠. 정리하면 쓰는 것과 그리는 건 아주 오래된 원초적 행위였다는 말이에요. 그걸 ‘에크리튀르(ecriture)’라고도 하죠. 지금 추상 작업으로 해외에서 잘나가고 있는 박서보 선생님도 모든 작품 제목에 ‘에크리튀르’를 써요. 이번에 선보인 제 작품도 페인팅을 하며 글을 쓰는 에크리튀르의 형태라 할 수 있고요.
캔버스에서 아토마우스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이전 작품과는 분위기가 다른데, 어떤 연결 고리도 없나요? 저는 이제껏 형식적으로 여러 시도를 했어요. 추상과 이미지를 결합한 것도 있고, 문자 작업도 있고, 만화 이미지도 있고, 사진 같은 이미지도 만들었죠. 그런 흐름 속에서 나온 게 이번 작업이죠. 이제껏 해온 것과는 별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넓게 보면 연결되어 있어요.
말씀 중에 유독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라는 표현이 많아요. 제겐 작업이 다 어딘가에 반쯤 걸쳐 있거나, 기존 것에 대한 어떤 ‘저항감’에서 기인한 것처럼 들리는데, 실제론 어떤가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게, 저는 작품에 늘 다양한 측면을 담으려 하거든요. 아토마우스도 그렇죠. 순수 미술적 요소와 서브컬처적 요소, 일본과 미국 문화, 개념적인 것과 감각적 요소가 전부 결합되어 있어요.
도무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작업 스타일이군요? 개념을 미리 설정하지 않고 무의식적 방식으로 작업하는 걸 선호해서 그래요. 작업에 일관성이 없고 파편화되어 있죠. 조직화되어 있지 않고 제어할 수 없는 상태, 불확실한 상태, 그리고 무의식에 의해 그려진, 또 정돈되지 않고 복잡하게 얽힌 카오스 같은 상태.
‘무의식’에 대한 얘기가 자꾸 나오는데, 그것이 작품을 만드는 노동의 행태에는 어떻게 기능하는지 궁금해요.말 그대로 무의식이죠. 합리적이지 않은 비논리적 과정. 저는 비논리적 요소나 원시적 요소가 꼭 작품 속에 들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일주일 전쯤 전화로 음반에 대한 얘길 하면서, 천재 뮤지션들의 음악이 지난날 작업에 적지 않은 영감을 줬다고 하셨어요. 보통 그런 뮤지션의 천재성은 어떤 방식으로 작품에 발현되나요? 지금 얘기하면서 떠오른 건데, 어떤 초현실적 작용 같은 걸 받는 게 아닐까 싶어요. 또 초현실주의라는 개념에 ‘자동기술법(automatism)’이라는 게 있어요. 100년도 더 된 사조지만, 전 현대미술에도 참고할 게 많다고 생각해요. 오래전 초현실주의자들이 빈 캔버스에 아무 의미 없이 그림을 그리던 방식에 흥미가 많거든요. 의도적인 것과 의도적이지 않은 걸 분류해놓고 ‘나는 이쪽에 서야겠다’ 그런 방식으로 작업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는데, 음악을 통해 그런 영향을 받은 거죠. 음악의 역사를 보면 원래 축제나 제사 의식에서 시작된 거잖아요. 어떤 초월적 존재로부터 힘을 얻기 위해 제위를 하고 그러던 중 나온 거예요. 그래서 저도 그런 힘을 받으려고 음악을 듣죠. 그렇다고 음악을 통해 어떤 직접적 영감을 받고 그러는 건 아니에요.
직접적 영감보다는 그것의 힘을 빌린다고 하셨죠. 현대사회는 굉장히 논리적이고 시스템화되어 있고, 그래서 합리적이잖아요. 하지만 인간은 원래 원초적 존재죠. 동물이니까. 애초에 합리적 존재가 아닌 거죠. 그래서 늘 뭔가 그런 부분에 대한 갈망이 있다고 봐요. 어떻게 보면 천재 음악가들이 그런 부분을 채워준다고 할 수 있죠. 저도 그 힘을 빌리기 위해 음악을 듣고 있어요.
음악가가 되고 싶어서 작곡을 배우고 기타도 배웠다고 하셨어요. 한데 그걸 계속하지 못한 걸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여긴 적도 있나요? 아마 지금까지 음악을 했다면 굉장히 좌절하고 있겠죠. 천재들과 제 실력의 큰 괴리에 고통을 받으며.
오늘 인터뷰 주제가 ‘나의 물건, 내가 들은 음반과 음악, 그리고 만화가 어떻게 지금의 작업을 이루게 했나’라고 몇 번 말씀드렸는데, 얘기가 잘된 것 같나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요샌 어떤 앨범을 들으세요? 엘턴 존의 초기 음반요.
왜 그걸 들어요? 왜는 없고, 그냥 듣는 거예요. 그 의미를 다 생각하면서 듣진 않아요.
음악과 만화 등에서 비롯한 무의식에서 발현된 신작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서울 평창동의 갤러리2에서 볼 수 있어요. 문자를 그려 넣은 작품만 모아 10점 정도 전시합니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태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