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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릴 것과 경계할 것

ARTNOW

예나 지금이나 아트 그 자체의 고귀함은 변함없지만 그것을 대하는 대중의 자세나 대중과 소통하는 작가들의 방식은 점점 과감해지고 있다. 예술가는 순수 예술과 상업 예술을 넘나들며 그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패션과 뷰티, 자동차업계에선 이제 예술가와의 협업 없이는 소비자를 설득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그 안에서 대중과 예술가가 누릴 것과 경계할 것에 대하여.

1960년대, 앤디 워홀이 “예술은 죽었다”고 말하며 팝아트를 들고 등장했을 때 이미 예술은 ‘생각하기’보다 ‘소비하기’에 한발 더 가까워진 상태였다. 그는 “이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중의 사고력 부재로 인해 팝아트가 이 시대에 용인된 거라고 했다. 일면 그의 말은 맞다. 대중은 예술에서조차 쉽게 만족하고 빨리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원하며 그런 추세는 점점 가속화하고 있다. 이처럼 예술을 쉽게 소비하고자 하는 대중의 욕구가 커지다 보니, 대중을 소비자로 보는 브랜드들이 제일 신이 났다. 각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매 시즌 예술가에게 영감을 받아 제작한 아이템과 컬렉션을 선보이고, 혹은 직접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상품을 작품화하는 데 사활을 건다. 예술가의 손길이 닿은 것은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이슈가 되니 브랜드도 좋고, 대중은 그것을 작품 대신 소유해 대리 만족을 얻으니 그 또한 나쁘지 않다.

브랜드뿐 아니라 영화나 앨범 재킷, 책 표지와 와인 레이블까지 예술가들은 장르를 넘나들며 종횡무진하고 있다. 터너상을 수상한 비디오 아티스트 스티브 매퀸은 <노예 12년>으로 2014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고, 정치와 역사, 이슬람 여성의 인권 문제 등을 주제로 작업하는 이란의 여성 작가 시린 네샤트는 <여자들만의 세상>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하면서 예술적 영상과 서사가 균형을 이루면 예술가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대중의 입장에서도 스케일에 초점을 맞춘 블록버스터나 배우의 유명세를 등에 업은 흔한 상업 영화와 달리 해체와 재조립의 미학을 바탕으로 만든 수준 높은 영상과 스토리를 감상할 수 있으니 손해가 아니다.

앨범 재킷이나 책 표지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 앤디 워홀의 샛노란 바나나가 눈에 띄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앨범 재킷은 예술 작품의 경지에 올랐고, 영국 뮤지션 킨(Keane)은 맨체스터 아트 갤러리에서 권오상의 조각을 본 뒤 앨범 재킷 디자인을 의뢰해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가 조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술의 대중 속 파고들기는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단편적인 예로 한 방송사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트 스타 코리아>에서 경합을 벌이는 작가들의 모습에서 예술 본연의 고고한 미학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안에서 예술은 인스턴트고 트렌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술계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지사. 하이트 재단 주관 전시에서 작가 김동규는 ‘대중성’을 꼬집는 작품을 선보였다. 브랜드에선 협업을 위해 예술성보다 스타성을 갖춘 작가(주로 2000년대에 부상한)를 선택하고, 그 때문에 진지하게 작업하는 작가들은 소외되고 있다며 “작가들이여, 대중성을 가져라”라는 역설적 메시지를 전한다. 미디어 아티스트 천경우도 < artnow >와의 인터뷰에서 “대중문화에서 순수 예술이 지닌 가능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순수 예술을 정의하긴 어렵지만, 단지 대중의 취향에 맞추거나 대중이 쉽게 향유하도록 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방향이어야 합니다. 그런 유형의 생산물은 이미 많지 않나요? 똑같은 것도 다르게 보게 하고,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고, 때론 익숙지 않아서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바로 대중문화 속에서 순수 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 아닐까요?”

앤디 워홀은 “예술가는 사람들이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을 생산하는 사람,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들에게 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생산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들에게 주면 좋을’ 그 예술을 대중이 가까이서 느끼고 향유하는 건 분명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예술가가 대중의 취향에 과하게 맞추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술이 몸을 낮춰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것보다 바람직한 건, 사실 대중이 본연의 가치를 잃지 않은 예술의 세계로 꼿꼿이 입장하는 것이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