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여름
작열하는 태양과 무성하게 자란 풀숲의 짙은 향기는 여름의 매력을 강하게 어필한다. 뜨거운 계절의 추억처럼 우리 안에 오래도록 남을 작품들.
송번수
송번수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가시 모티브는 작가가 파리 유학을 마친 197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드러난다. 판화 작품에 자주 등장하던 장미를 날카롭게 사방으로 가시 돋친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해 삶의 굴곡을 거치며 가시는 그의 페르소나로 자리 잡게 된다. 가시는 전쟁과 사회적 갈등, 피폐함 등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확대되면서 냉엄한 현실의 상징적 묘사이자 그 안에 존재하는 희망이라는 양가적 의미를 더한다. 최근 작업에서 가시의 상징은 행성과 별자리로 확대된다. 숲으로 둘러싸인 작업실 위로 매일 밤 펼쳐지는 별들의 향연에 매료된 작가는 반짝이는 별빛이 가시의 날카로운 끝부분과 닮아 있음을 깨닫는다. 가늠하기 어려운 세월을 날아와 모습을 드러낸 별빛을 채집하듯 옮겨온 원색의 화풍은 세상의 경이로움을 목도한 노작가의 독백과도 같은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위쪽 슈고아츠(ShugoArts)에서 열린 미시마 리쓰에의 개인전 [HALL OF LIGHT] 전경. © Ritsue Mishima, Courtesy of ShugoArts, Photo by Shigeo Muto
아래쪽 뮤제오 디 팔라초 그리마니(Museo di Palazzo Grimani)에서 열린 미시마 리쓰에의 개인전 [In Grimani. Ritsue Mishima Glass Works] 전경. © Ritsue Mishima, Courtesy of ShugoArts
미시마 리쓰에
이탈리아와 일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본 유리 예술가 미시마 리쓰에(Ritsue Mishima). 유리공예로 유명한 이탈리아 무라노섬의 장인과 협업해 투명 유리로 빛의 윤곽을 그려내는 작업을 이어온 작가는 맑고 영롱한 작품을 통해 세상의 모든 빛을 머금은 다각도의 프리즘을 펼쳐 보인다. 주변의 공기와 빛 등을 모두 받아들여 작품이 설치된 장소의 에너지를 표출하는 작품은 공공 미술뿐 아니라 건축과 패션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오는 11월 도쿄도 정원 미술관에서 열리는 철제 설치 작가 아오키 노에(Noe Aoki)와 함께하는 2인전에서는 ‘생명의 빛’이라는 키워드로 유리와 철이라는 소재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왼쪽 김경태, Crossing Surfaces RB1a, Archival Pigment Print, 140×105cm, 2022. © Kim Kyoungtae, Courtesy of the Artist and Whistle
오른쪽 김경태, Crossing Surfaces YH2a (diptych), Archival Pigment Print, 80×60cm, 2022. © Kim Kyoungtae, Courtesy of the Artist and Whistle
김경태
사물의 실제 크기를 가늠할 수 없도록 확대하거나 원근이 사라진 대상의 대형 이미지를 선보이는 김경태. 피사체의 크기나 거리에 따라 인간의 눈과 카메라 렌즈가 현실 감각을 초월한 순간을 포착해 대상의 표면을 세밀하게 다룬다. 초점의 이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는 여러 구조물 사이를 지나가며 대상을 응시할 때 초점이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경험을 제공한다. 마치 작은 존재가 되어 큰 사물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켜 작품에 빠져들게 되는 것. 작가가 선택한 ‘솔’이라는 소재는 섬유 다발이 일정하게 수직이나 사선으로 교차되며 뻗어 있다. 극도로 확대된 화면은 흐릿하고 선명한 느낌을 동시에 드러내며 실제 사물을 만났을 때는 보기 어려운 장면을 아름다운 색감으로 펼쳐낸다.
김보희
푸른 야자나무와 바다가 보이는 산책로, 나른한 표정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강아지의 모습. 느긋하고 평화로운 풍경은 우리의 시선을 머무르게 하며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김보희는 동서양 회화의 전통 양식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체득 과정에서 성숙해진 고유의 기법을 통해 동양화의 현대적 확장성에 대해 탐구해왔다. 관조적 시선으로 주변 인물 또는 정물의 특징을 꾸밈없이 포착한 초기 작품을 거쳐 2000년대 초반에는 수묵 산수에 채색화적 기법을 적극 도입해 김보희식 점묘화를 확립했다. 제주도에 정착한 후에는 식물, 바다, 정원 등 작가가 일상에서 만난 초록·청색빛 제주를 이국적으로 담아내며 또 다른 작업 세계의 전환을 이룬다. 작가가 겪어온 시간 속 감정선이 고스란히 담긴 캔버스 속 풍경이 은은한 감동을 전한다.
에디터 조인정(ijcho@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