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오늘도 변신 중
전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많은 미술관 소식을 쏟아내고 있는 뉴욕. 9·11 테러 희생자 추모 박물관 오픈과 3년에 걸친 리모델링을 마친 쿠퍼 휴잇 스미스소니언 디자인 미술관의 재개관,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더 스쿨 갤러리의 오픈 소식을 전한다.
희생자들의 생존 당시의 사진을 붙여둔 전시실

9·11 사고 당시의 빌딩 잔해를 그대로 전시한 박물관의 실내 전경
9·11 추모 박물관 개관
9·11 추모 박물관이 개관했다. 9·11 추모 공원 내에 위치한 이 박물관 앞은 티켓을 사려는 인파로 늘 붐빈다. 개관 전 열심히 홍보한 탓도 있지만, 사실 이곳이 지금처럼 붐비는 건 13년도 더 된 9·11 테러 희생자의 추모 열기가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박물관에 입장하면 천장과 외벽을 모두 유리로 디자인한 중앙 홀에서 포크 모양의 녹슨 철제 기둥 2개를 마주하게 된다. 이 기둥은 원래 테러로 붕괴된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에 있던 것. 본격적 전시가 시작되는 지하 전시실로 들어가기 전 어느 한 곳에서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믿을 수 없어”, “이게 무슨 일이야” 등 참사를 목격한 이들의 목소리와 얼굴이 LED 화면에 문자와 영상으로 새겨진다. 불타는 빌딩에서 한꺼번에 수백 명이 빠져나올 때 사용한 ‘생존자의 계단’도 원형 그대로 전시돼 있다. 계단 앞 안내문엔 일군의 사람들이 찍힌 사진도 있다. 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채 생존을 기원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 박물관 어디서든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희생자의 넋을 기르는 1층의 한 공간에서만큼은 망자에 대한 예의로 사진 촬영을 엄격히 금지한다. 바로 추모관이다. 희생자의 사진으로 모든 벽을 두르고, 가운데에 암실을 만들어 유족들이 희생자 개개인에 대해 회상하는 음성을 들려주는 추모관은 여러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9·11 추모 박물관엔 희생자의 사진을 비롯해 1만2000여 점의 전시물과 소방·재난 담당자의 교신 등 2000여 건의 음성 기록, 테러범들이 공항에 들어서는 장면 등 580시간 분량의 영상 기록이 전시돼 있다. 지난 5월 15일 오바마 대통령은 9·11 추모 박물관 준공식에서 “치유와 희망의 거룩한 장소를 우리에게 제공해준, 9·11 추모 박물관의 건립에 공헌한 모든 이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히기도 했다. 9·11의 역사를 보존하고 전 세계에 이 비극을 전하기 위해 세운 추모 박물관은 그날의 사건이 일어난 배경과 그에 따른 국내외 반응을 연대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9·11 추모 박물관이 뉴욕의 뜻깊은 명소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www.911memorial.org
더 스쿨 갤러리의 오프닝을 빛낸 시카고 출신 작가 닉 케이브의 사운드 슈트

현재 레노베이션 막바지에 있는 쿠퍼 휴잇 스미스소니언 디자인 미술관
쿠퍼 휴잇 스미스소니언 디자인 미술관의 재개관
미국에서 유일한 디자인 전문 미술관인 쿠퍼 휴잇 스미스소니언 디자인 미술관이 재개관을 앞두고 있다. 12월 12일 그랜드 오픈을 선언하고 새로운 공간에 대한 홍보를 시작한 것. 미술관 주인 쿠퍼 휴잇(Cooper Hewitt)은 무려 9100만 달러(약 937억 원)를 쏟아부은 레노베이션 소식을 언론에 흘리며 이 공간에 미니 골프장을 들여놓았다고도 했다. 미술관 건물의 원래 주인인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오래전 3층 한편에 골프 퍼팅 연습을 위한 공간을 만든 걸 따라 한 것이라 한다. 미술관 건물의 역사를 되새긴다는 의미와 함께 작은 유머를 구현한 것.
큐퍼 휴잇 스미스소니언 디자인 미술관은 재개관을 준비한 지난 3년 동안 관람객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디자인으로 미술관을 새롭게 단장했다. 그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던 3층은 특별 전시를 위한 넓은 갤러리로 변신했고, 무료 개방 예정인 야외 정원엔 18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거대한 좌석까지 마련했다. 최초의 설계도엔 존재하지도 않던 정원 공사를 위해 무려 3000만 달러(약 309억 원)를 추가 투입한 것이다. 한편 ‘몰입의 방’이라 불릴 2층의 새로운 공간은 1만 점이 넘는 쿠퍼 휴잇의 소장품 중 선별한 500여 점이 벽을 채울 예정이다. 또한 이번 재개관에서 선보일 핵심 아이템이기도 한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내장한 전자펜을 통해 미술관 내 각 작품에 대한 정보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고, 펜 끝에 장착한 특수 센서를 이용, 추후 개인 PC나 휴대폰으로 내려받아 작품에 대해 복습도 할 수 있다.
미술관 디렉터 캐럴린 바우만(Caroline Baumann)은 “쿠퍼 휴잇 스미스소니언 디자인 미술관이 관람객을 위한 더없이 신나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지은 지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건물을 소위 ‘신나는 장소’로 바꾸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현재 뉴요커들은 정원·조명·건축·실내 디자인 등을 각각 쟁쟁한 디자이너에게 위임한, 오로지 디자인만을 위해 존재하는 쿠퍼 휴잇 스미스소니언 디자인 미술관의 재개관을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www.cooperhewitt.org
더 스쿨 갤러리의 전시 공간
잭 셰인먼의 더 스쿨 갤러리 개관
지난 5월 17일, 뉴욕 첼시에서 2개의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유명 갤러리스트 잭 셰인먼이 그의 오랜 숙원이던 킨더훅 지역의 한 낡은 초등학교를 갤러리로 만드는 더 스쿨 갤러리 일명 ‘학교 프로젝트(The School Project)’를 선보였다. 잭 셰인먼의 이런 시도는 뉴욕 시의 최북단 도시인 브롱스보다 위쪽, 소위 ‘업스테이트 뉴욕’이라 불리는 지역에 새로운 미술 바람을 몰고 왔다. 3만m2(약 9000평)에 달하는 옛 학교 건물 곳곳에 그의 컬렉션을 전시해, 최근 실업률 증가로 실의에 빠져 있는 업스테이트 뉴욕의 주민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준 것이다.
1984년 워싱턴DC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잭 셰인먼은 그간 자신의 이름을 딴 잭 셰인먼 갤러리(Jack Shainman Gallery)를 통해 리넷 야돔-보아키예(Lynette Yiadom-Boakye)와 엘 아나추이(El Anatsui) 등의 흑인 작가를 소개하며 특급 갤러리스트로 성장해왔다. 이번에 소개한 학교 프로젝트는 그의 미술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학교 프로젝트의 개관전에선 소리 나는 옷을 입고 퍼포먼스를 선보인 시카고 출신 작가 닉 케이브(Nick Cave)의 무대가 화제가 됐다. 앞으로 잭 셰인먼은 학교 프로젝트를 통해 수백 점에 이르는 자신의 컬렉션과 공간 부족 문제로 첼시의 갤러리에선 시도하지 못한 특별 전시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www.jackshainman.com/school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글·사진 이나연(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