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예술가가 먹고 놀고 마시는 곳
노는 것도 예술적일 것 같은 뉴욕의 아티스트들은 어디서 밥을 먹고 파티를 할까? 유명 작가의 로프트? 파워 컬렉터의 펜트하우스? 아니면 특급 딜러의 갤러리? 맞거나 혹은 틀리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뉴욕에는 당신도 가볼 수 있는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있다는 사실.
1 첼시 아트 타워 21층의 글라스 하우스에서 내려다본 첼시 전경.
2 허드슨 강변에 자리한 첼시 아트 타워.
3 글라스 하우스에서 오프닝 파티를 개최한 척 클로스 자신의 얼굴을 이미지화한 작품.
4 뉴욕 예술가들의 오프닝 전시가 종종 열리는 글라스 하우스.
쇼핑 단지로 전락한 소호의 천문학적 임대료를 피해 1990년대 무렵 갤러리스트와 예술가들은 첼시로 대거 이동했다. 20세기 초만 해도 첼시는 생선 창고와 자동차 정비소가 즐비한 황량한 공장 지대였다. 이런 공장을 개조해 개성 넘치는 갤러리들이 들어섰지만 마땅한 파티 장소가 없다는 게 흠이었다. 갤러리는 예술 작품을 보여주는 데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떠들썩한 파티를 열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었다. 지금은 300개가 넘는 갤러리 군락으로 변모한 첼시에 최초로 글래드스톤 갤러리를 연 전설의 아트 딜러 바버라 글래드스톤(Barbara Gladstone)은 당시 소호에서 보티노(Bottino)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대니 에머먼(Danny Emerman)에게 이렇게 말했다. “첼시로 와줘요. 예술가들에게도 좋은 레스토랑이 필요해요”라고. 이탤리언 레스토랑 보티노가 1996년 첼시에 문을 연 배경이다. 슈퍼 딜러인 래리 가고시안(Larry Gagosian)도 가고시안 갤러리 1층에 호화 레스토랑 오픈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곳 말고도 첼시에는 간판도 테이블도 없지만 전시 오프닝 날에만 반짝 파티 장소로 변하는 별난 공간이 많다. 지금 그곳들을 소개한다.
전시 오프닝 파티로 주목받다, 첼시 아트 타워
1층에 말버러 갤러리가 있는 첼시 아트 타워의 상층부는 미술계 인사들의 파티장으로 종종 변신한다. ‘글라스 하우스’라 불리는 21층은 3면이 모두 유리로 돼 있어 허드슨과 첼시 일대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평소엔 쥐 죽은 듯 조용하지만 페이스, 데이비드 즈워너 등 유명 갤러리의 전시 오프닝이 있는 날에는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룬다.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명단의 이름을 확인하는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유명 셰프의 요리를 먹으며 미술계 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최근 뉴욕 화단의 마당발로 유명한 척 클로스의 전시 오프닝 파티에 운 좋게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양고기 스테이크와 입맛 돌게 하는 레드 와인을 즐기고 있는데, 옆자리에 미국 현대 회화 작가 리사 유스카비지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두 달 전 리사의 개인전을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에서 보고 칼럼을 썼는데, 이 작가를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이야. 예술과 포르노그래피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그녀의 회화 작품에 대해 궁금한 점을 마음껏 물을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사이먼 앤 가펑클의 폴 사이먼과 사진을 현대미술의 반열에 올린 신디 셔먼, 현대 회화의 젊은 파워 데이나 슈츠까지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작품이 없으면 어떤가. 그 작품을 만들어내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수시로 출몰하는 장소인 것을.
545 West 25th Street, New York, +1 212 242 7800
1 클래식한 분위기의 보티노 레스토랑은 20년 동안 첼시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다.
2 2012년 9월 보티노 바로 옆에 오픈한 아시안 레스토랑 ‘찹 숍’.
3 다양한 아시안 푸드를 즐길 수 있는 ‘찹 숍’의 대표 메뉴 ‘팟타이’.
뉴욕 예술계 종사자들의 아지트, 보티노 & 찹 숍
이탤리언 레스토랑 보티노의 공동 대표인 대니 에머먼과 마 챈(Mah Chan)은 2012년 9월 보티노 바로 옆에 아시안 레스토랑 ‘찹 숍(Chop Shop)’을 오픈했다. 1996년 바버라 글래드스톤의 제안으로 소호에서 첼시로 자리를 옮긴 뒤 뉴욕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자리매김한 레스토랑 보티노가 최근 아시안 미술의 흐름을 감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 지역 컬렉터와 작가들의 발길이 잦아진 점을 눈치챈 듯한 움직임이다.
짜장면과 군만두, 팟타이 등 군침 도는 아시안 푸드를 선보이는 찹 숍은 파티를 할 만큼 규모가 크지 않다. 하지만 이곳은 트라이베카(Tribeca)나 헬스키친(Hell’s Kitchen)에 비해 상대적으로 먹거리가 부족한 첼시 지역의 매력적인 식사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20년 가까이 첼시 예술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보티노는 여전히 전시 뒤풀이 장소로 인기다. 찹 숍에서 가벼운 런치를 먹고 보티노에서 느긋한 저녁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장담하건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뉴욕 예술계 종사자 한두 명은 반드시 마주치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볼로네제 라자냐를 먹는 미국 현대미술 작가 제프 쿤스라든가 아스파라거스 샐러드를 먹는 세계적 딜러 데이비드 즈워너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다. 첼시에 적을 두고 있는 갤러리스트라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보티노에서 하는 뒤풀이에 참석해봤을 테니까.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미술계 지인들의 식사를 만든 지 20여 년이 된 에머먼은 현대미술의 흐름을 꿰는 미술 전문가가 다 됐다. 단순한 레스토랑을 넘어 명실공히 하나의 예술 기관이 된 공간이다.
Bottino : 246 10th Avenue, New York, +1 212 206 6766
Chop Shop : 254 10th Avenue, New York, +1 212 820 0333
1 레스토랑이 들어설 가고시안 갤러리 1층 내부는 아직 공사 중이다. 건물 앞을 지나는 어퍼이스트사이더들의 궁금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2 샬라 몬로케(가운데), 애비 로젠(오른쪽)과 식사 중인 래리 가고시안(왼쪽).
어퍼이스트사이드의 떠오르는 핫플레이스, 가고시안 레스토랑
작품 거래액으로 보나 작가군으로 보나 2013년 현재 명실상부한 최고의 갤러리는 가고시안(Gagosian)으로 꼽힌다. 지난해 연매출 1조 원을 기록한 이 초대형 갤러리는 현재 고급 레스토랑 오픈 준비로 분주하다. 메디슨 가에 있는 이탤리언 레스토랑 ‘산탐브로에우스(Sant’Ambroeus)’와 손잡고 가고시안 갤러리 1층에 레스토랑을 낸다는 소문은 오픈하기 전부터 이미 뉴욕 예술가들 사이에 퍼져 있었다. 게다가 세계 1위 매출의 화랑 주인, 래리 가고시안이 평소 다니던 단골 레스토랑의 노하우를 그대로 옮겨왔다니 최고의 맛과 서비스는 두말하면 잔소리. 지난가을 첼시를 곤경에 빠뜨린 허리케인 샌디의 여파로 레스토랑 오픈에 전력을 쏟지 못해 당초 2012년 가을에 문을 열기로 돼 있던 공간은 현재도 공사 중이다. 어찌 됐든 내부 공사 현장을 철저히 막아놓은 건물 앞을 지나며 어퍼이스트사이더들은 문 열기만 손꼽아 기다린다. 얼마나 대단한 물건이 나올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오픈하게 되면 뉴욕 최고의 딜러, 작가, 컬렉터들의 사랑방이 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980 Madison Avenue, New York, +1 212 744 2313
에디터 심민아
글 이나연(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