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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반려동물이 사는 세상

LIFESTYLE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매일 이별을 품고 사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별만 생각하며 살 순 없다. 그만큼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순간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마이던 시절, 친구네 집에선 진돗개 한 마리를 키웠다. 천방지축인 그 개의 이름은 검뭉이었다. 검뭉이는 늘 소파나 신발, 발수건 등을 물어뜯어놓았다. 또 뭐든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친구네 아버지는 그런 검뭉이의 나쁜 습관을 고치고 싶었다. 그래서 매도 들어보고 간식도 조절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하루는 친구의 어머니가 검뭉이를 훈육하고자 서점에서 진돗개 훈련 서적을 산 적도 있다. 한데 검뭉이는 그 책도 먹어치웠다. 검뭉이는 그런 개였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쯤 되어 다시 만난 검뭉이는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뭐든 씹어 삼키는 습성이 사라져버렸다. 예전처럼 잘 짖지도 않았다. 빈 참치 캔을 던져줘도 본체만체했다. 바나나 껍질도 마찬가지 였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뭉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충격이었다. 개가 늙어 죽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검뭉이가 내가 준 참치 캔을 씹어 먹다가 죽은 게 아닐까 생각하며 풀이 죽어 지내기도 했다. 친구와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펑펑 울었다. 검뭉이가 언제까지고 우리가 던져주는 바나나 껍질을 받아먹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검뭉이는 15세에 세상을 떠났다. 사람으로 치면 90세쯤 되는 나이였다.
최근 여자친구가 키우는 노견 ‘호야’를 통해 이전의 경험을 떠올렸다. 호야는 15세의 잉글리시코카스패니얼이다. 중소형견인 호야는 대형견 검뭉이보다는 조금 더 오래 산다. 하지만 최근 몸 상태가 부쩍 나빠졌다. 예전엔 소파 위에도 펄쩍펄쩍 잘 올라갔지만, 요샌 열 번은 뜀뛰기를 해야 겨우 올라갈 수 있다. 또 힘들게 올라온 소파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내려오는 일도 잦다. 그때마다 누가 뒤에서 자길 민 줄 알고 한동안 가까이 오지도 않는다. 손으로 내리고 올려준다고 눈치를 줘도 알아먹지 못한다. 나이를 먹어 고집도 세졌다. 작은 개가 소파에서 자주 뛰어내리다 보면 관절에 무리가 간다고 해서, 얼마 전엔 애견용 계단을 사기도 했다. 요새 호야에게 여길 오르는 건 북한산을 등반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1 곧 16세가 되는 호야는 자궁축농증에 걸렸지만, 점차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2 반려동물 선진국인 일본엔 나이 든 그들을 케어하는 반려동물 요양원이 성업 중이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데 올 초엔 이런 호야가 생리를 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열다섯 살이나 먹은 할머니 개가 회춘했다며 비싼 양고기 스틱을 2개나 줬다. 호야는 그 뒤로도 몇 달간 간헐적으로 생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야는 짖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이상한 소리로 괴롭게 기침을 시작했다. 감기인가 싶어 동물병원에 데려갔다가 자궁에 농이 생겨 고름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궁축농증’이라는 병이었다. 그래서 피를 흘린 것이다. 원래 건강한 아이였는데, 나이가 들며 몸 상태가 나빠졌단다.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는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개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하지 못하고, 개 주인은 아픈 개를 어떻게 간병해야 할지 잘 모른다. 그래서 노견을 키우는 반려인이 믿을 사람은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 하나다.
이후 서너 달에 한 번씩은 호야를 차에 태워 동물병원에 간다. 병원 대기실에서 호야를 안고 있으면 ‘목줄은 사람이 개에게 매는 게 아니라, 개가 주인에게 매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노견을 돌보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상당한 시간과 의지와 정신을 투자해야 한다. 더불어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돈도 엄청 깨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병원은 노견의 친구. 호야는 앞으로 더 자주 병원에 드나들게 될 것이다.
물론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것처럼 반려동물의 수명도 길어지고 있긴하다. 수년 전 호주에서 양을 몰던 한 개는 30세까지 살았다. 사람 나이로 210세쯤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죽음은 찾아온다. 그래서 나이든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매일 이별을 품고 사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별만 생각하며 살 순 없다. 그만큼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순간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과 이별한 후, 반려인은 백이면 백 ‘미안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 미안함을 줄이고 싶다고? 지금 그들과 잘 지내면 된다. 나이 든 동물과 사는 걸 안쓰럽게 보는 이도 있는데, 사실 녀석들과 사는 건 어쩌면 또 다른 기회를 얻는 일 인지도 모른다. 사고나 병으로 반려동물을 갑자기 떠나보낸 이에겐 그들에게 최선을 다할 기회마저 없었으니까. 이별의 순간은 늘 벼락처럼 온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답이다.
나이 든 생명에게 힘든 계절이었던 여름이 갔다. 지난여름은 특히 더 더웠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반려동물을 떠나보냈다는 소식도 몇 번 들었다. 가는 생명의 끈을 잡고 있던 동물들이 그걸 놓아버리는 계절이 여름이다. 잘 아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도 지난여름 반려견을 떠나보냈다. 그가 방송할 때마다 옆에 와 혀를 내밀며 뒹굴던 17세의 골든리트리버였다. 반려견을 떠나보낸 후 크리에이터는 일생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한 저널리스트 진 웨인가튼은 자신의 묘비명을 ‘개를 사랑한 유머 작가 진 웨인가튼’으로 정해놓을 정도로 개를 사랑했다. 그는 <노견 만세>에서 반려견이 나이 먹는 걸 지켜보는 일은 자기 삶의 축소판을 지켜보는 일과 같다며 이렇게 말한다. “개는 나이가 들면서 쇠약해지고 변덕스러워지고 상처받기 쉬워진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 분명히 맞이하게 될 그날은 온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슬퍼함은 곧 우리 자신을 위한 슬픔이다.”
한데 위의 글을 옮기다 보니 문득 골프 선수 박인비와 반려견 새미의 일화가 떠오른다. 3년 전, 박인비 선수는 새미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미국에서 열리는 메이저 대회 참가를 포기했다. 새미는 박인비 선수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 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기념으로 아버지가 선물해준 반려견이다. 하지만 그즈음 16세의 노견이던 새미는 눈과 귀의 기능이 떨어져 건강 상태가 상당히 나빴다. 그리고 얼마 후 아시아 선수 최초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 선수는 한 인터뷰에서 또다시 새미를 언급했다. “새미가 나를 기다리는 것 같고, 빨리 집에 돌아가 안아주고 싶다”고.
반려동물 1000만 시대에 늙은 반려동물의 삶은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혹시 반려인인 우리가 그걸 결정하는 건 아닐까? 한 친구는 예전엔 반려견이 나이 들어 죽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젠 아프지 않고 그냥 오래 살다 죽기만을 바란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남은 시간이 얼마든, 슬픔에 빠져 우왕좌왕하기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아파도 말도 못하고 늘 주인 곁을 맴도는 한 생명이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길, 많은 반려인이 한 번쯤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