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체코
맛있는 맥주와 프라하 말고도 체코에 대해 알면 좋을 것이 너무나 많다. 체코에서 보낸 3일간의 봄날, 한 나라의 속살을 만나는 즐거움을 새롭게 느꼈다.
1 로맨틱한 분위기의 카렐 교 2 올드타운 스퀘어의 시계탑 3 프라하 구시가의 돌길을 천천히 걸어보자. 4 황금소로는 카프카의 생전 작업실로 유명하다.
1st Day 체코의 돌길을 걷다
9년 전에도 같은 길을 걸었다. 뼛속까지 시린 추위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실감한 곳, 체코 프라하. 그토록 아름답다는 야경조차 짙은 안개 때문에 제대로 볼 수 없었기에 한겨울에 찾은 프라하는 잊지 못할 추위만 기억에 남았다. 네루다와 카프카, 드보르자크의 나라 체코.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관광객에게 가장 친숙해진 유럽 도시인 프라하뿐 아니라 3일 동안 특색 있는 인근 도시까지 둘러보면서 새삼 이 나라의 매력을 발견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사실상 처음 온 것처럼 들뜬 마음으로 여행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이번 여행 내내 프라하 올드타운에 있는 메리어트 호텔에 머물렀다. 유명 관광지인 시민회관이 도보 3분, 바출라프 광장까지 10분이면 충분한 근접성 때문에 관광객뿐 아니라 비즈니스차 방문한 이들도 많이 찾는다. 첫날엔 프라하 구시가를 중심으로 유명 영화 촬영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영화가 프라하에서 촬영했는데 <미션 임파서블>, <트리플 엑스>를 비롯해 최근작 <베스트 오퍼>까지 숨은그림찾기 하듯 하나씩 맞춰보는 재미가 있다.
가장 먼저 찾은 명소는 프라하 시민회관. 아르누보 양식의 절정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프라하 시민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시민회관 내부의 벽화, 스테인드글라스 등은 알폰소 무하가 담당해 특유의 우아한 화려함을 보여준다. 체코의 유명 작곡가 스메타나의 이름을 붙인 스메타나 홀을 포함한 다양한 크기의 공연장, 레스토랑, 전시장 등이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스메타나 홀에서만 연간 100회가 넘는 공연이 열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클래식 축제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의 개막 연주회가 열리는 매년 5월 12일이 가까워오면 티켓을 구하기 위한 관광객으로 주변이 더욱 북적거린다. 마침 부활절 기념 마켓이 들어서 시끌벅적한 축제 분위기인 바출라프 광장을 지나 올드타운 스퀘어로 들어서자 갑자기 투둑투둑 우박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4월 중순에 내리는 우박이라니! 불과 5분 전 바출라프 광장에서 하늘이 참 푸르다며 미세 먼지 걱정이 없어 좋겠다는 대화를 나눈 것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우박을 피해 무작정 뛰어 들어간 곳이 알폰소 무하와 살바도르 달리의 전시회가 열린 작은 미술관이었으니, 우박이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준 셈이다. 여행을 떠나면 이런 돌발 상황마저 낭만으로 받아들이고 웃어넘기는 여유가 생긴다.
구시가를 느긋이 둘러보며 다다른 곳은 그 이름도 유명한 카렐 교. 한국 관광객에게만 유독 카를 교라고 알려져 있는데 정식 명칭은 카렐 교 혹은 찰스 브리지다. 구시가와 프라하 성을 이어주는 석조 다리인 카렐 교는 양쪽 끝에 세운 석탑과 난간을 따라 장식한 석상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양새를 자랑한다. 특히 권력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성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석상을 만지며 기도를 드리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설이 있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카렐 교 난간에 기대서서 얼굴에 닿는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블타바 강을 내려다봤다. 한강보다 훨씬 작은 블타바 강이지만 강변에 아파트만 쭉 늘어선 서울과 달리 초록빛 나무가 우거진 산과 오래된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도시 전체가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이는 데 일조한다. 손대지 않고 간직함으로써 더 빛날 수 있다는 걸 이들은 일찍부터 알았던 것일까? 그 덕분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라하는 도로가 대부분 몇백 년은 된 돌길이다. 굽이 낮은 플랫 슈즈를 신고 걸으면 발바닥에 돌의 굴곡이 그대로 느껴진다. 몇 시간을 걸으니 발바닥이 아파왔다. 힐이 어울리지 않는 도시, 하지만 기꺼이 힐을 포기하고 걷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곳이 프라하다. 첫날은 시민회관 지하의 플젠스카 레스토랑에서 일행과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맥주 한 잔에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테이블 사이사이를 한 노년의 아코디언 연주자가 흥겨운 연주를 들려주며 지나다녔다. 가까이 다가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그의 마지막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지폐 한 장을 내밀었어야 하나 하는 머쓱함이 스친 것. 레스토랑 안에서 연주자에게 돈을 건네는 이는 없었지만. 다시 들을 수 없을 연주자의 아코디언 연주를 굿나이트 송으로 떠올리며 첫날 밤을 맞이했다.
1 필스너 우르켈 브루어리의 맛있는 맥주 한 잔 2 필스너 우르켈 브루어리 3 유서 깊은 그랜드 호텔 푸프
2nd Day 체코 맥주, 왜 맛이 다를까?
체코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한결같이 들은 말, “체코에서는 맥주를 물처럼 마셔야 해. 맛이 달라.” 주량은 미미하지만 필스너 우르켈 브루어리(Pilsner Urquell Brewery)가 포함된 일정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달려서 도착한 도시 필센(Pilsen)에 위치한 필스너 우르켈 브루어리는 전 세계에서 맥주 애호가들이 줄지어 찾아오는 곳이다. 플젠은 토양과 기후가 맥주의 원료인 양질의 맥아와 홉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필스너 우르켈은 우리가 가장 많이 마시는 투명한 황금빛 라거 맥주를 세계 최초로 만든 곳. 황금빛 맥주를 통칭 ‘필스너 스타일(Pilsner style)’로 부르는데 인기가 높아지자 가까운 독일에서 너도나도 필스너라는 말을 남발하는 바람에 독어로 오리지널(original)이라는 뜻인 우르켈(urquell)을 아예 브랜드 네임에 더해 차별성을 강조했다. 필스너 우르켈 브루어리는 한화로 1만 원 정도 입장료를 내면 1시간 남짓 소요되는 영어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브랜드 히스토리부터 실제 원료를 보며 단계별 제조 방법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생산 공장 견학까지 포함되어 있다. 프로그램의 백미는 굽이굽이 이어지는 지하 동굴 속 오크통에서 저장 중인 맥주를 바라 따라 마시는 시음 기회. 전통 방법 그대로 오크통에서 숙성하고 여과를 거치지 않은 맥주라 그 맛이 남달랐다. 쌉쌀하면서도 향이 풍부한 맛에 계속 맥주잔으로 손이 갈 정도였다. 물론 30분 후에는 여지없이 취기가 올라왔지만.
맥주 한잔 곁들인 점심식사를 마치고 프라하로 돌아와 찾은 곳은 프라하 성, 성 비투스 대성당. 구시가에서 천천히 걸어 올라갈 수 있고 트램을 타면 15분 정도 걸린다. 프라하 성 중앙에 위치한 성 비투스 대성당은 카메라 앵글에 담기 힘들 정도로 높은 고딕 양식 건축물로 압도적 존재감을 드러낸다. 무려 1344년 카를 4세부터 짓기 시작해서 1929년에야 완공된, 그 자체로 체코 역사인 건축물이다. 성당 내부 초입까지는 무료 입장이나 알폰소 무하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성인들의 석상과 그림, 성당 아래 묻힌 체코 역대 왕들의 석묘, 국왕 전용 입장 통로 등을 자세히 보려면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성당 투어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10코룬, 한화로 500원 정도에 작은 초 2개를 구입해 기도를 드렸다.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가 있었기에 이날이 아니면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성 비투스 성당에서 5분 정도 아래로 내려오면 좁은 골목길, 황금소로(黃金小路)가 등장한다. 색색의 아기자기한 집이 이어져 동화 마을처럼 예쁜 이곳은 과거 프라하 성을 지키는 병사의 숙소로 쓰이다 16세기부터 금세공인, 연금술사 등이 모여 살면서 황금소로라 불리게 됐다.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프란츠 카프카가 거주하며 소설 <성(城)>을 쓴 작업실이 있기 때문이다. 황금소로의 여러 집 중 푸른색 외벽이 눈에 띄는 곳으로 예전 모습을 간직한 채 카프카 소설책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숍으로 운영 중이다. 자수성가로 부를 이룬 아버지 밑에서 자란 유약하고 예민한 기질의 카프카는 가업을 물려받을 마음이 없었고, 그런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부친의 눈을 피해 직장인 보험회사와 이곳을 오가며 소설 집필에 매진했다. 카프카 팬이라면 프라하 성에서 멀지 않은 카프카 뮤지엄을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카프카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부모님께 보낸 자필 편지, 영향을 주고받은 여자친구들 이야기, 수정 자국까지 남아 있는 소설 초고 등 그의 일대기에 맞춘 자료를 충실히 갖췄다. 황금소로를 나와 수십 년 전 카프카도 걸었을 길을 따라 내려오며 퀭한 얼굴로 소설을 쓰는 그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어느덧 해가 지고 프라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과 함께 프라하에서의 둘째 날이 흘러가고 있었다.
1 콜라나다에서 온천수를 맛 볼 수 있다. 2 카를로비바리는 동화 마을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쁜 도시다.
3rd Day 동화처럼 예쁜 온천 도시 카를로비바리
체코 여행 내내 마지막 꽃샘 추위가 따라다녀 몸을 웅크리고 다녀야 했다. 다행히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카를로비바리에서 맑고 쾌청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따뜻한 날씨와 만개한 꽃 덕분에 서울에서 놓쳐버린 봄을 다시 맞은 것 같았다. 카를로비바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온천 도시다. 14세기에 카를 4세가 사냥을 나왔다 화살을 맞은 사슴이 물웅덩이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이곳 온천수의 효능을 발견했다. 러시아와 독일에서 온 관광객이 가장 많고 한국에서도 입소문을 듣고 오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카를로비바리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세트를 현실로 옮겨놓은 것처럼 파스텔 컬러의 건물 하나하나가 특색 있고 예뻐 길거리를 걸으며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십여 군데의 콜라나다에서 솟아나는 온천수를 마셔보는 것이 카를로비바리를 즐기는 첫 번째 코스. 각종 미네랄이 풍부해 짭짤하기도 하고 철분 덕분에 비릿함도 느껴지는 독특한 맛이다. 몸에 좋다고 욕심껏 마시는 것보다 조금씩 각기 다른 맛을 즐겨보자. 장기간 카를로비바리 호텔에서 머물며 온천과 워터 테라피로 요양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대부분의 호텔에 온천수를 이용한 휴양 시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은 카를로비바리 영화제 기간에 할리우드 스타, 영화계 인사들이 머무르는 유서 깊은 그랜드 호텔 푸프(GrandHotel Pupp). 영화 <007 카지노 로얄>의 촬영지이기도 한 이 호텔은 3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올해 49회를 맞이한 카를로비바리 영화제는 김기덕,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소개하기도 한 필름 페스티벌로 여름이면 영화와 온천을 즐기기 위해 찾은 이들로 도시 전체에 활기가 넘친다. 카를로비바리는 프라하에서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고, 도시 둘을 묶은 현지 에이전시의 여행 상품도 다양하니 참고할 것.
카를로비바리 여행에서 빼놓으면 섭섭한 것이 두 가지 있으니 그 첫 번째는 베헤로프카 뮤지엄(Becherovka Museum)이다. 체코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전통 약주라고 생각하면 될 듯. 도수 40도의 독주로 예거마이스터처럼 다른 술과 믹스해 마셔도 좋고 칵테일 베이스로도 훌륭하다. 레몬 맛을 가미한 연노란색 베헤로프카 레몬이 인기가 많다. 카를로비바리 번화가 입구에 있으니 시음 해보자. 두 번째는 모세 크리스털 뮤지엄(Moser Crystal Museum & Glass Works). 와인글라스, 화병, 그릇 등 하나하나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럭셔리한 크리스털 제품을 만드는 곳. 10년 이상 경력의 마스터가 정성을 다해 만들어내는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카를로비바리 영화제 시상식 트로피도 이곳에서 만든다.
모든 일정을 마친 체코에서의 마지막 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해 호텔 방을 서성였다. 멀리 떠나왔음을 실감하는 낯선 호텔 방이 주는 설렘을 접고 돌아가야 할 시간. 결국 밤을 지새우고 창밖으로 아침이 밝아오는 것을 보았다. 손가락 끝으로 독한 술을 찍어 맛보듯 이제 체코를 조금 알 것 같은데 떠나야 한다. 여행은 대개 그러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떠난다. 프라하는 체코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가 맞다. 하지만 프라하가 체코의 전부는 아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깝게 느낀 체코를 다시 보러 와야겠다. 네루다의 시집과 카프카의 소설을 들고.
New Czech Airline, Prague Airport
다시 찾은 체코의 첫인상은 확연히 달라진 프라하 공항. 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대대적 개편을 통해 모든 표지판과 보딩 타임 전광판에 한글을 표기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스카이팀 항공사인 체코 항공은 작년 6월부로 인천-프라하 직항 노선 운항을 시작해 대한항공 A330-300 기종으로 인천 출발 정규편을 주 3회 운항한다. 한국 관광객에게 익숙한 대한항공의 비행기로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으며 한국인 승무원 1명이 동행한다. 체코 공항에서 특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VIP 서비스 클럽 콘티넨털(VIP Service Club Continental). 전 세계 어느 공항에서도 찾을 수 없는 VIP 의전 서비스로 200달러의 호사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해야 이용 가능한 제도로 편도 200달러를 추가로 지불하면 항공사 카운터를 이용할 필요 없이 별도 보딩 서비스(수하물 포함), 개인 출국 수속 서비스, 별도 보안 검색 서비스까지 누릴 수 있다. 번거로움 없이 편리하게 1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 여기에 공항에서 30km 이내의 장소는 리무진으로 데려다준다. 체코 항공은 7월 31일까지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 소지지와 OK190편 이용자에 한해 귀국 편도 체험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항에서 줄 서서 기다리지 않는 신개념 서비스를 누려볼 것.
에디터 고현경
사진 제공 체코관광사무소, 체코항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