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가족 사진
가장 가까운 이들이라고 생각하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은 주변인보다 적을 때도 있다. 요즘의 가족 말이다. 온 가족이 모여서 혹은 형제 자매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한 장을 오랜만에 꺼내보았다. 그때의 우리 모습, 나의 가족 이야기.
1 일본기독교청년회관에서 고희동 주례, 길진섭과 정지용 사회로 올린 김환기와 김향안의 결혼식(1944년)
2 서울에서 김환기와 김향안 부부(1944년)
3 파리의 M Bénézit 갤러리 오프닝 당시(1956년)
김환기 작가와 아내 김향안
“…나는 산만한데 아내는 치밀하다. 나는 격하기 쉬운 사람인데 아내는 냉정하다. 그래서 나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땐 아내와 의논을 하면 얻는 것이 있다… 아내에겐 절박상태가 없다. 입을 것이 없어도 내일 아침거리가 없어도 잊은 듯이 잠잔다. 아내는 낙천가다… 아내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피카소를 존경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나보다 아내가 더 잘 알고 피카소는 내가 더 잘 안다. 그러나 내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이해하는 정도보다 아내가 피카소를 이해하는 정도가 훨씬 위다… 어찌 됐든, 밉든 곱든 간에 우리들은 반생을 강아지처럼 살아왔다…” -김환기 (‘山妻記’ 중에서- 월간<신천지> 1952년 3월호)
김환기는 멋진 남자였다. 절세의 문장가여서도, 타고난 화가여서도 아니다. 남자로서 어쩌면 가장 힘든, 남편의 역할을 멋지게 해내서다. 그는 여자들이 아니, 아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남자였다. 아내들은 비단 치마도 좋아하지만 남편 얼굴 마주한 채 깊은 대화 나누기를 더 좋아한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선물 받은 화려한 꽃신을 옆집 여자 앞에서 내보이기를 좋아하나 “우리 남편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자랑하기를 더욱 좋아한다. 김환기는 아내 김향안에 대해 무척 잘 알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남편이었다. 잘 안다는 건 상대를 뜨겁게 위로할 때가 언제인지 안다는 것과 같다. 살면서 이보다 힘이 되는 경우는 단언컨대 없다. 그래서 흑백사진 속 김환기와 김향안 부부는 볼 때마다 늘 샘이 난다.
1 태어난 지 40일 된 날 아버지가 사준 미니 바이올린과 함께
2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에게 레슨받는 김영욱의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다부지다.
3 파김영욱은 현재 한국 최고의 현악 사중주팀, 노부스 콰르텟의 바이올리니스트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과 아버지 김성현(바이올리니스트)
“시카고 유학 시절 큰아들 영욱이 태어났습니다. 보통 음악인은 자신이 걸어온 예술가의 삶이 너무 힘들어 자식에게는 음악을 시키지 않겠다고 말하지요. 저는 아니었습니다. 순수하게 음악이 좋았고 바이올린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꼭 바이올린을 시키겠다고 총각 때부터 버릇처럼 말해왔죠. 우리 영욱이가 태어난 날 저는 악기점으로 달려가 어른 손바닥만 한 1/32사이즈 바이올린을 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주변 사람들이 속으로 많이 웃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상기된 얼굴로 집으로 돌아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갓난아기 옆에 장난감 같은 미니 바이올린을 뉘어놓고 세상을 얻은 듯 얼마나 기뻐했는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자 영욱이는 조금씩 고개를 가누었고 저는 바이올린을 아이 옆에 뉘어 찰칵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저는 영욱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바이올린을 직접 가르쳤습니다. 네. 다들 아시다시피 가족 간에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영욱이를 가르치며 단 한 번도 혼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바이올린을 가르치는데 어떻게 얼굴을 붉힐 수 있겠어요. 영욱이는 사춘기도 바이올린과 함께 즐겁게 보냈습니다. 영욱이가 지금 세계 무대를 활보하는 현악4중주팀, 노부스콰르텟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활약하고 있지만 저는 지금도 영욱이가 행복하게 바이올린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더없이 기쁩니다. 아마 영욱이도 이런 아빠의 마음을 알 거라고 생각해요.”
‘폭발력 있는 연주와 관객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는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은 2005년 서울예술고등학교 입학, 이듬해인 2006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조기 입학한 후 여러 국제 콩쿠르를 석권하고 현재 짐멘아우어 소속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 중이다. 그의 아버지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성현은 브릴란테 앙상블 리더로 아들의 모든 공연을 쫓아다니는 최고의 팬이다.
<내 아내의 모든것>의 민규동 감독이 여섯 살 때
포항 송도해수욕장에서 온 가족이 함께한 여름 한철(1975년)
영화감독 민규동과 동생 민진수(영화사 수필름 대표)
“1975년 7월 당시 10만 피서 인파를 자랑하던 포항 송도해수욕장을 찾았을 때, 해변가에서 영업하는 사진사의 유혹에 넘어가 찍은 가족사진이다. 부모님은 너무나 알뜰한 분이라 이런 충동구매에 어울리지 않는데, 그날은 왠지 내키셨나 보다. 난 당시 포항에서도 한참 떨어진 인구 3만 명의 안강읍이라는 시골에 살고 있었기에, 대도시와 바다 여행에 한창 신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와 동생 진수(현재 영화사 수필름 대표)는 모래사장에 도착하자마자 시키지도 않았는데 옷을 훌렁 벗어던진 채 뛰어놀고 카메라 앞에도 그대로 섰다(훗날 두고두고 후회했지만). 뒤로 보이는 영일만엔 막 태동 중인 포항제철이 위용을 자랑하지만, 그로 인한 바다 오염으로 2007년 해수욕장은 결국 폐장하고 말았다(그날의 인연 때문인지 우린 7년 후 포항으로 이사했고, 부모님은 지금껏 그곳에 살고 계신다).”
1 사진관에서 온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1979년). 미소를 머금은 아빠, 누나와 달리 긴장한 듯한 엄마와 형의 표정이 재미있다.
2, 3 어린 시절 사진은 닮은꼴인데, 최근에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볼 수 있다. 백가흠(왼쪽)은 엄마를 닮았고, 동생 백다흠(오른쪽)은 아빠의 젊은 시절 모습과 흡사하다.
소설가 백가흠과 동생 백다흠(사진가, 도서출판 은행나무 편집자)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단편소설 <광어>로 등단한 소설가 백가흠과 사진가이자 출판사 편집자인 백다흠은 문단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형제다. 초기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 <조 대리의 트렁크> 등으로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백가흠은 2012년 첫 장편소설 <나프탈렌>에 이어 최근 두 번째 장편소설 <향>을 발표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그만의 통찰력을 보여줬다. 도서출판 은행나무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백다흠은 문단에서 인정받는 작가 전문 사진가이기도 하다. 형 백가흠은 물론 그들 형제의 스승인 소설가 박범신을 비롯해 공지영, 은희경, 김경욱, 김영하 등 당대 유명 작가들이 기꺼이 백다흠의 카메라 앞에 섰다. 서로에 대한 코멘트는 쑥스러워 생략하겠다는 모습마저 닮은 그들의 가족사진을 두고 동생 백다흠이 짧은 소감을 보내왔다.
“2남 1녀인 우리 남매.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가 나, 그 왼편이 우리집 맏아들로 소설 쓰는 백가흠, 아빠 무릎 위에 앉은 소녀는 둘째 딸인 내 누나다. 한껏 뽐내고 잘 차려입은 느낌이랄까. 엄마의 중국풍 꽃무늬 원피스도, 아빠의 그 당시 유행한 뿔테 안경도, 가흠 형의 체크로 맞춘 아래위 패션도 그렇게 보인다. 또 젊디젊은 엄마와 아빠의 얼굴에서, 어린 자식들에게 내비치는 설렘과 기대감 같은 복잡다단한 감정이 설핏 건너오는 것도 같다.”
처음으로 2명의 디자이너로 함께 카메라 앞에 선 디자이너 설윤형, 이주영 모녀. 각자의 캐릭터가 잘 드러러나 이주영 디자이너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디자이너 설윤형과 딸 이주영(레주렉션 디자이너)
“저한테 어머니는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었고…. 저는 고민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런데 고민이라기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쉽게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길을 열어준, 헌신적으로 많이 도와준 어머니 덕분이죠.” -이주영(2012년 SBS CNTV <人더뷰> 4회)
2004년 브랜드 ‘레주렉션’을 런칭한 후 숨 가쁘게 준비한 컬렉션 일정을 마치면 쉴 틈도 없이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적 특성상, 이들 모녀는 함께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었다. 하지만 운 좋게 모 언론사와 인터뷰하면서 스튜디오에서 정식으로 촬영할 기회가 생겼다. 서로 일정 맞추기도 어려운 이 둘은 흔히 오지 않을 기회라 기쁘게 촬영에 임했고, 소장하고 있는 사진 중 베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각자의 개성과 카리스마가 잘 담긴 만족스러운 컷을 얻었다. 운명처럼 엄마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딸, 사진 속에서도 모녀는 참 닮아 보인다.
1 가회동 처갓집에서 아들을 안고 있는 김성근 감독의 모습. 현재 김정준 해설위원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2 김성근 감독 인생에서 가족과 함께한 처음이자 마지막 해변 여행
3 2013년 프로야구 시즌 중 깜짝 해설가로 나선 고양 원더스의 김성근 감독과 김정준 해설위원
야구 감독 김성근과 아들 김정준(SBS 스포츠 해설위원)
40년 전, 가회동 처갓집에서 아들을 안고 찍은 흑백사진 속 젊은 김성근 감독은 영락없이 지금의 김정준 해설위원 모습이다. 얼마나 닮았는지 SK 와이번스 시절 감독과 전력 분석코치로 한 팀에서 일한 이들을 두고 SK 와이번스의 스태프들은 “서로 너무 닮아 가끔 김정준 코치를 보고 감독님께 하듯 목례를 하게 된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사진 속 아빠 품에 안겨 있는 아들의 모습은 돌 지난 아기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꼿꼿하다. “정준이는 어릴 때부터 내 모습을 보고 똑같이 하려고 애쓴 것 같아요. 내가 기업은행 감독으로 있을 때 정준이가 네 살이었는데, 야구장에서 이미 선수들이 하는 포수 장비를 쓰고 돌아다녔어요. 장비가 무거웠을 텐데 그걸 입고 마치 자기가 선수인 양 뛰어다니면서 놀았죠. 충암고등학교 감독 시절에도 정준이는 동네 형들과 야구를 했는데, 내가 선수들을 지도할 때 방망이로 선수 이마를 톡 치는 모습을 보고 정준이도 야구를 하면서 형들 머리를 톡 치는 거예요. 그걸 보니 ‘아, 자식은 아버지를 보고 자란다는 말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자란 김정준 해설위원은 아버지를 닮아 상대에게 싱거운 말을 잘 건넬 줄 모른다. 그래서 이들이 함께 있을 땐 대화보다 침묵이 몇 배 더 길다. 가끔 눈이 마주칠 때가 있지만 그뿐, 대화는 마음과 마음으로 한다. “오랜만에 앨범에서 세 남매가 활짝 웃고 있는 아기 때 사진을 보니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웃음에서 아이들의 꿈을 봤거든요. 근데 난 지금까지 자식들의 꿈에 대해서는 같이 고민해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40년 넘게 팀의 지도자로 오직 야구만 생각하며 살아왔으니까. 너무 미안해요, 아이들에게.” 사진첩을 닫으며 김성근 감독은 김정준 해설위원의 백일 사진 한 장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 사진은 지금 고양 원더스 감독실 책상 유리 아래 끼워져 있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고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