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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옥, 여기에 살고 머무르기

LIFESTYLE

우리는 왜 다시 한옥을 열망하는가? 전통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되고 불편한, 이제는 한물간 주거 양식으로 치부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옛것에 대한 향수, 자연 친화적인 따뜻한 삶, 아파트 일색인 현대 주택의 보편성을 탈피한 새로운 아름다움 등 한옥의 의미가 재조명되고 있다.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현대적 삶의 방식에 맞춰 고치고 다듬어 세련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요즘 한옥. 이 칼럼은 한옥의 가치를 바르게 이해하고, 한옥 특유의 멋과 낭만을 향유하는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 떠난 일종의 짧은 여행기다.

PART 1
한옥을 꿈꾸며
과거가 아닌 현재의 시점에서 한옥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다.

가끔 우리가 설계한 ‘금산주택’을 한옥으로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 집의 절반을 비워 대청으로 만들고 지붕 아래 서까래를 드러내고 전통적 문을 달고… 그런 부분이 이 집을 한옥으로 인식하게 하는 모양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가장 현대적인 재료로 한국적 특성을 표현한 서양식 목조 주택이다.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을 보면 우리가 온전히 ‘한옥의 정의’를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한옥이란 과연 무엇일까? 한옥과 지금 우리가 보편적으로 살고 있는 집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재료’에 있다. 돌로 목재 기둥을 받치고, 흙벽을 세우고, 그 위에 검은 기와를 덮은 것이 전형적인 한옥의 모습이다. ‘한옥 등 건축 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살펴보면 “한옥이란 주요 구조가 기둥·보 및 한식 지붕틀로 된 목구조로 우리나라 전통 양식을 반영한 건축물과 그 부속 건축물”이라고 명시했다.
많은 이들이 한옥에 대한 향수와 호감을 가지고 새로운 주거 양식의 대안 중 하나로 한옥을 이야기한다. 서울 북촌한옥마을을 비롯해 새로 개발 중인 뉴타운이나 인천 송도 등 여러 곳의 지자체에서 대규모 한옥마을을 조성할 예정이며, 한옥 건축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국가한옥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한옥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반갑긴 하지만 한옥을 갈망하는 대중의 속사정도 생각하게 된다. 한옥의 형태와 공간을 선호하는 게 가장 우선이고, 이 자연 친화적이며 건강 증진적인 주택을 향한 애정도 있겠으나, 한편으로 무언가 자신을 남들과 구별하고자 하는 심리도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일단 비용 면에서 지금의 한옥은 콘크리트나 목조로 짓는 주택 건축비의 두세 배가 넘고, 고치는 비용도 일반 건물 신축 비용 이상이 든다. 그래서 한옥은 보편적으로 보급하기엔 상당히 고급스러운 주택 양식이 되었다. 예전에 낡고 오래된, 부수고 정비해야 할 대상으로 한옥에 접근한 일을 생각해보면 무척 새삼스럽다. 그렇다면 한옥이라는 형식은 과연 이 시대의 삶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일까?
본래 한옥을 포함해 집이란 사는 사람이 자신의 몸에 맞게 손보고 고치며 다듬어가는 공간이다. 과거에는 동네 큰 집, 작은 집 이렇게 몇 집 이웃이 모여 이른바 품앗이 형식으로, 멀리서 불러온 대목과 ‘00장이’라 불리는 각 분야의 장인과 함께 직접 손으로 나무를 재단하고, 마름질하고, 다듬어가며 소박하고 인간적인 분위기에서 집을 지었다. 또한 한옥에는 좌식 생활을 하던 우리 조상의 삶이 담겨 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네 30년 전의 모습이다. 방에 앉아서 밥을 먹고, 밥상을 물리면 그 자리에 앉은뱅이책상을 놓고 공부하고, 벽장에서 이불을 꺼내 깔고 자고, 비가 오면 문을 열어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식탁에 앉아 밥을 먹어야 하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아야 하고,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야 한다. 이런 가구로 인해 주거의 단위 공간은 훨씬 넓은 면적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현대 입식 생활을 가지고 한옥으로 들어가면 더없이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내용이 형식을 지배하는 것처럼 라이프스타일이 주택을 만든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전통은 계승해야 하는 것이지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전의 한옥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가옥이 아니라 지금의 환경에 적응한, 현대적 재료와 구법을 갖춘, 현재 우리의 정서와 정신을 담은 집을 한옥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북 상주에 ‘대산루’라는 집이 있다. 이 집은 2층 한옥이다. 한옥에 대한 또 다른 오해 중 하나는 한옥은 앉아서 생활하는 좌식 공간이며, 단층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는 절대적 전제가 아니다. 실제로 한옥을 이처럼 지은 역사도 생각만큼 길지 않다. 우리나라 고유의 난방법인 온돌이 널리 보급된 시기가 조선 중기인 17세기 이후다. 그 전에는 집의 일부에만 구들을 들인 경우가 많았고 일부 부유층에서만 온돌을 사용했다. 고려시대까지는 2층집이 꽤 있었는데 온돌이 널리 보급되면서 대부분 1층집이 되고, 가구나 창문의 형식도 바뀌고, 좌식 생활이 좀 더 보편화된 것이다.
대산루는 2층에 온돌을 적용한 특이한 집이다. 상주 지역에는 대산루 말고도 2층 한옥이 꽤 남아 있는데, 습기가 많은 지역 특유의 기후 탓일 거라고 짐작한다. 부엌을 1층에 두고 자는 방과 서재 등 사람이 주로 지내는 방을 2층에 두면 아무래도 집이 좀 더 쾌적했을 거다. 2층에는 경치를 보는 누마루도 있다. 대산루는 필자가 본 많은 한옥 중에서도 무척 멋있는 집이다. 이렇듯 그 시대의 생활을 받아들이고,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고, 당시의 기술이 담긴 집이야말로 ‘진정한’ 한옥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몇 년 전 공주 구도심에 있는 10평 규모의 작은 한옥을 고친적이 있다. 차를 좋아하는 주인이 50여 년 전에 지은 오래된 집과 뜰을 물려받아 골목과 함께 가꾼 아늑한 집이다. 이 집은 시멘트 기와와 입식 부엌을 적용해 한옥 관련법 규정 기준에는 맞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집을 보거나 찾아오는 사람은 모두 고향집에 대한 향수를 느끼며 즐겁게 머물다 가곤 한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우리 시대의 한옥.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가 보편적으로 쉽게 구해서 쓸 수 있는 재료로 삶을 담아내는 공간, 그것이면 충분하다.

글 임형남, 노은주(건축사, 가온건축 대표)

PART 2
의미있는 변신
한옥을 개조한 호텔과 카페, 레스토랑 등 한옥 열풍을 이끌고 있는 다양한 공간과 앞으로 만나게 될 미래적 한옥 공간까지, 변신의 귀재가 된 우리 시대의 한옥 속으로.

락고재의 중앙 마당

한옥 호텔에서의 고즈넉한 하룻밤
“하늘과 산의 경계 허물어지는 시간 앞에 / 천년의 필담을 풀듯 나누고픈 이야기들 / 참개구리 울음소리 툇마루에 흥건한 밤.” 임채성 시인이 쓴 ‘고택에서의 하룻밤’에 묘사된 것처럼 예스러운 분위기의 한옥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삭막한 도시의 삶 속 청아한 오아시스, 자연과 물아일체가 된 쉼의 여유를 선사한다.
국내 최초의 한옥 호텔은 2007년 경주에 문을 연 라궁. 16채의 한옥을 회랑으로 연결한 구조로, 전통에 현대 건축 기술을 더한 새로운 양식으로 화제가 되었다. 라궁이 신라시대 궁(宮)을 화려하게 재현했다면, 요즘 생기는 한옥 호텔은 오래된 가옥을 리모델링하거나 고택을 그대로 옮겨 새롭게 단장한 형태가 많다. 서울 북촌한옥마을에 자리한 한옥 호텔 락고재와 한옥 스테이 취운정은 100년 이상 된 한옥을 개조했다. 아담하지만 정자, 연못, 대청마루를 세심하게 되살린 락고재는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만끽하기 좋고, 취운정은 내부를 고가구와 청화백자, 민화 병풍 등으로 단장해 단아한 멋이 흐른다. 2014년 안동시에 오픈한 전통 리조트 구름에는 안동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고택 7채를 옮겨와 만든 한옥 리조트다. 외양은 전통의 모습 그대로인데, 첨단 스마트키 도어록, 개별 실내 온도 조절기, 월풀 시스템을 장착한 욕조 등 현대적 편의 시설로 무장했다.
한옥 숙박 시설이 인기를 끌자 호텔업계도 한옥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에 호텔 현대 경포대가 씨마크 호텔로 재탄생하며 한옥 별채인 호안재를 마련했다. 안채와 별채, 사랑채로 구성한 최고급 한옥 객실로 품격 있는 휴식과 함께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초고층 빌딩 사이에 거대한 한옥마을처럼 들어선 경원재 앰배서더 인천은 총 30개의 객실 중 14채가 독채형 객실이다. 특히 로열 스위트룸은 마당과 대청마루, 독립된 담장이 있어 조용히 사색하며 거닐기 좋다.

안동 구름에 중 대갓집이었던 칠곡고택의 사랑채. 방 안에 방이 있고, 문 안에 문이, 벽 안에 벽이 있는 구조의 객실로 고택의 전체 틀은 손대지 않고 방 내부에 새로운 벽과 문을 설치했다.

16채의 한옥으로 이뤄진 라궁은 각 집마다 노천탕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ㅁ’자형 한옥으로 둘러싸인 야외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자연을 즐기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정방형의 땅에 중정을 중심으로 4채의 한옥이 둘러싼 구조의 락고재. 그 중 정자방은 가장 작은 규모지만 정자 마루가 딸려 있어 시원하다.

작은 정원, 누마루와 연결된 취운정의 안방. ‘왕의 기운이 서린터’로 소개하는 이곳에는 이불을 깔아놓는 데, 잠시 누워서 왕기를 받으라는 의미다.

강화도에 위치한 담담각(淡淡閣)은 5000여 평의 대지와 그 안의 모든 공간을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 시설과 서비스도 최고급이다. 3개의 정원과 본채, 행랑채 등 2채의 한옥, 3개의 침실과 2개의 거실, 별도의 쉼채 1채로 구성했는데, 객실은 최고급 매트리스 위에 단아한 한식 침장을 두어 편안하고 고급스럽게 꾸몄으며 2명의 집사가 상주해 바지런하게 고객의 불편 사항을 해결한다. 내년이면 수영장이 딸린 한옥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양평과 경주 보문단지에 짓고 있는 한옥 풀빌라는 한옥 독채마다 온수 수영장, 대리석 욕조 등을 둔다고 하니 해외로 나가지 않고도 이색 휴양을 즐길 수 있다.

마당이 작은 도시형 한옥 호텔인 취운정의 대청방. 가로로 긴 유리창을 내 그 너머로 북촌한옥마을의 전경을 볼 수 있고, 욕실에는 편백나무로 제작한 욕조를 두어 편안한 입욕을 즐길 수 있다.

춥고, 낡고, 불편하다는 편견을 깨고 일반 호텔 못지않게 세련되고 안락하게 꾸민 요즘 한옥 호텔에서의 하룻밤. 바쁜 일상을 벗어나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또 있을까.

경원재 딜럭스 스위트룸의 대청마루와 로열 스위트룸 내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적절히 혼합한 공간으로 현대식 가구를 두면서도 대청마루 같은 한옥의 특징을 놓치지 않았다.

오감을 충족시키는 한옥 체험

사진 갤러리, 류가헌

갤러리
한옥 특유의 운치와 여유로움은 갤러리와 더없이 잘 어울린다. 비움의 미학을 강조한 한옥의 여백이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또 구조가 다양한 한옥의 장점을 살려 작품을 배치하거나 공간마다 성격을 달리 구성할 수 있어 관람객에게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학고재갤러리는 북촌을 대표하는 갤러리로 손꼽힌다. 한옥의 예스러움과 양옥의 세련된 멋이 조화를 이룬 공간으로 전시 내용 역시 옛것과 새것의 교감을 실천해 늘 주목받는 갤러리다. 서촌에는 사진 전문 갤러리 류가헌이 있다. 한옥 2채가 나란히 기와지붕을 맞댄 형태로 전시장 밖에 긴 툇마루가 있어 전시를 보고 나온 관람객이 삼삼오오 모여 감상을 나누기도 한다. 북촌한옥마을 초입길에 위치한 갤러리한옥은 한국미술사연구소의 부설 갤러리이자 한국문화종합연구소다. 규모는 작지만 작가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한 몰입도 있는 전시를 선보인다. 이종상, 이관우 등 한국 회화를 중심으로 중견급 작가를 선별해 전시를 기획한다.

한옥 4채를 연결한 카페 식물

카페 식물의 실내

카페
북촌, 서촌에 이어 익선동은 제3의 한옥마을로 불린다. 서민이 살던 120여 채의 한옥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이곳에 카페, 레스토랑, 숍, 아틀리에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1930년에 지은 한옥 4채를 연결한 실험적 설계가 돋보이는 카페 식물은 골목 일대에서 가장 핫한 카페다. 전통 자개상과 찰스 임스 테이블의 믹스 매치, 대청마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나무 덱 등 예스럽고 현대적인 것이 공존한다. 에스프레소와 초콜릿, 베일리스 밀크를 혼합한 식물 커피가 시그너처 메뉴로 반짝이는 자개상에서 마시는 커피가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삼청로에 위치한 카페 미러룸은 젠틀몬스터 쇼룸 설계로 주목받은 디자인 그룹 패브리커가 설계를 맡았다. 사방에 거울을 설치해 초현실적 분위기의 한옥을 체험할 수 있다. <킨포크> 한국어판을 발행하는 디자인이음의 베어 카페에서 책과 커피가 함께하는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는 것도 좋다. 커피 메뉴는 에스프레소와 브루잉 커피 정도로 단출하지만 커피 리브레의 원두를 사용하고 프렌치 프레스로 내린 커피도 맛볼 수 있다. 맛있는 커피 로스터리로 유명한 광화문의 나무사이로. 외관은 모던한 여느 카페 같지만 바깥 건물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마당이 있는 한옥이 등장한다. 천장이 낮은 다락에 올라가면 소반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수저로 장식한 벽이 독특한 레스토랑 가가

레스토랑&바
한옥의 멋과 풍류를 제대로 즐기려면 맛있는 음식과 술을 빼놓을 수 없다. 삼청동 일대에서 주로 볼 수 있던 한옥 레스토랑이 북촌, 서촌으로 퍼지며 오래된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최근에는 한옥 펍과 바도 곳곳에 생겨나며 툇마루에 앉아 크래프트 맥주를 즐기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100% 예약제로 운영하는 한식 레스토랑 가가는 푸짐한 한 상 차림이 아니라 모던하게 재해석한 한식 코스를 낸다. 메뉴는 날마다 바뀌지만 족발찜과 가지튀김이 인기 메뉴. 요즘 민어가 제철이라 한 마리를 다양하게 요리해 코스로 선보이기도 한다. 점심과 저녁 한 테이블씩만 받기 때문에 프라이빗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스페인 각 지방의 일품요리를 맛볼 수 있는 서촌의 한옥 레스토랑 타파스 구르메. 광어 카르파초, 치미추리 소스를 곁들인 돼지 등심, 치킨 파에야 등이 추천 메뉴로 엄선한 스페인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다. 90년 된 한옥을 개조한 아늑한 술집 주반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한옥의 낭만에 취해보자. 지중해 해산물 요리와 다국적 스파이스 요리를 즐길 수 있는 비스트로다. 셰프가 추천한 페어링 메뉴는 문배주와 양고기 꼬치. 전통주 4가지를 조금씩 담아내는 샘플러 메뉴를 이용해 요리와의 다양한 마리아주를 시도해볼 것.

그로서런트 숍 열두달

상점
여기저기 들어서는 한옥 상점의 다양한 얼굴. 그로서런트 숍 열두달은 식자재 쇼핑과 다이닝을 결합한 새로운 식문화 공간이다. 수제햄, 곡물, 잼, 뿌리채소, 청, 전통주, 수제 맥주 브랜드 7개가 ㅁ자형 한옥 곳곳에 숍인숍 형태로 입점해 있다. 제철 식자재를 활용한 요리 워크숍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가드닝 브랜드 파머스 러브 레인가든하다도 각각 북촌과 서촌 한옥에 둥지를 틀었다. 한옥의 나무와 돌이 주는 자연 친화적 감성이 식물과 잘 어울리기 때문. 한옥 문구 숍도 있다. 디자인 브랜드 웨일투웨일과 낮잠이 함께 운영하는 디자인잡화점54가 바로 그곳. 방 세 칸이 딸린 한옥을 개조해 디자이너의 취향에 따라 고른 문구와 잡화를 선보인다. 향기를 만들어 파는 가게 프루스트는 서까래와 기둥을 제외한 모든 곳을 순백으로 단장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향수, 패브릭 퍼퓸, 디퓨저, 캔들 등을 판매하고 난이도를 세분화한 조향 클래스를 운영한다.

이해박는집의 외부 전경

이해박는집의 중정을 이용한 대기실

병원
이웃집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한옥 병원은 그 자체로 환자에게 안정감을 준다. 북촌한옥마을을 걷다 보면 치과 이해박는집의 단정한 간판을 만날 수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앤티크풍 가구와 소품이 한옥의 정취를 더한다. 대기실로 사용하는 중정에 놓인 의자에 앉아 지붕, 나무,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며 차례를 기다리다 서까래가 올려다보이는 한옥 방에서 진료를 받는다. 한옥과 적산가옥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대구의 유방암 클리닉 임재양외과는 10년에 걸쳐 완성한 행복한 치료소다. 구가도시건축의 조정구 소장이 설계한 곳으로 빵을 굽는 제빵소도 함께 자리한다. 햇살이 화사하게 들어오는 고즈넉한 분위기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마당을 거닐고 대청마루에서 야생화 꽃밭을 바라보다 보면 대기 시간조차 치유의 시간이 된다.

함께 써 내려가는 한옥의 미래

2022년 개관 예정인 서울 신라 호텔의 한옥 호텔

얼마 전 서울시가 한옥 건축이나 보수 시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서울 시내에 한옥을 짓거나 기존 한옥을 수리하면 최대 1억 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금액도 금액이지만 기존에 서촌, 북촌, 인사동 등 열 곳의 한옥 밀집 지역에 한정해 지원하던 한옥 리모델링·신축 보조금의 지원 대상을 시내 전역으로 넓혔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경주의 한옥 호텔 라궁을 지은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대표는 “한옥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시작한 건 21세기에 들어서죠. 한옥을 비롯한 전통문화에 관심과 의미를 두기 시작한 게 그즈음이거든요. 그런데 그때 일어난 한옥 열풍은 사실 서울시를 필두로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은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서울시의 배려 덕분에 한옥 건축은 여전히 활발히 진행 중이며 보조금 지원까지 확대했으니 제2의 한옥 열풍을 기대할 만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한옥 건축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다.

삼간일목이 은평한옥마을에 짓고 있는 2층 한옥의 단면도

서울시가 2012년 특별건축구역으로 최초 지정한 미래형 한옥 주거 단지 은평한옥마을이 좋은 예다. 북한산 자락에 5만 2000㎡의 대단지 한옥촌으로 조성하고 있는 이 마을은 초반의 무서운 기세와 달리 가격이나 입주 등의 문제로 한동안 공사가 지지부진했다. 그런데 서울시의 한옥 지원 관련 조례 개정안으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늦어도 2019년까지 총 156채의 한옥이 들어설 예정이다. 본래 각종 지원 사업이 시작되면 기존의 한옥을 고치거나 그대로 재현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최근 설계하는 한옥은 전통 양식을 반영한 목구조이면서 첨단 기술을 적용한 신(新)한옥이다. 은평한옥마을에 들어서는 한옥은 대부분 자동화와 대량생산이 가능한 통합 시공 시스템으로 바꾸어 단가를 낮추고 아파트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주거 기능을 갖췄다. 특히 전통 한옥의 최대 약점인 단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썼다. 기본적으로 목재로 지은 한옥은 계절에 따라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나무의 특성 때문에 구조물에 틈이 벌어지고 여기로 외풍이 들어오면서 겨울에 심한 추위를 느끼게 된다. 신한옥은 이 틈을 단열재로 막고, 흙 대신 우레탄과 유리섬유 등 고효율 단열재로 외벽과 지붕을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했다. ‘2013년 대한민국 한옥 공모전’ 대상 수상자인 삼간일목의 권현효 대표는 “단열 효과를 높이기 위해 벽채를 건식 공법으로 시공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원목 마루나 타일 마감 등 좌식 공간인 한옥이 현대의 입식 생활과 만나 내적 변화를 꾀할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말하며 앞으로 한옥은 재료 측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고 덧붙인다. “현대건축에 쓰는 삼중유리나 서양의 목조 건축 기술도 상당 부분 도입하고 있어요. 특히 콘크리트나 철골 구조 등 다양한 현대건축 구조가 한옥의 전통 목구조와 결합되고 있는 상황이죠.” 조정구 대표도 현대적 재료와 구조, 공법으로 바뀔 거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비록 그 형태가 익숙하다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재료와 기술이 크게 바뀌고 있다.

서울돈화문국악당 콘서트홀

조정구 건축가가 설계한 새로운 형태의 한옥 낙락헌

은평한옥마을에는 특히 눈여겨봐야 할 한옥이 있다. 조정구 대표가 이끄는 구가도시건축의 최신작 낙락헌이 그중 하나. 기존 도시 한옥의 내향적 틀에서 벗어나 주변 산세와 자연을 그대로 집 안 곳곳에 끌어들인 개방적인 집이다. 특히 기둥을 세우고 한옥을 바닥에서 들어 올린 독특한 구조가 눈에 띄는데, 그 아래 뻥 뚫린 공간을 활용해 불편하던 주차나 현관 등의 문제를 해결했다. 삼간일목도 은평한옥마을에 들어설 한옥 설계를 마쳤고 착공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2층 한옥을 설계한 권현효 소장은 “개인적으로 처음 시도한 복층 한옥이라 기대됩니다. 설계도 어려웠지만 복층 형태 한옥의 가능성과 특유의 안락한 분위기를 많은 사람이 느꼈으면 좋겠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가회동이나 북촌의 경우 부족한 공간 문제를 지하까지 활용해 해결하고 있지만, 한옥이 진정 현대건축의 한 갈래로 자리 잡으려면 공간 활용성이 높은 다층 주택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은평한옥마을이 신한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으로 주목받자 충청남도 공주시, 경기도 화성시, 강원도 강릉 등에서 도 앞다퉈 관광자원 개발을 목적으로 한옥마을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전라남도는 행복마을 조성의 일환으로 장성, 나주, 강진 등 10여 곳에 한옥마을을 건설할 정도. 그동안 높은 가격과 단열, 유지·보수 등의 단점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없었던 한옥이 미래형 주택으로 각광받고 있다. 주거 공간 외에 호텔이나 공공 기관 등에서도 한옥의 미래를 이끄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된 서울 신라호텔의 한옥 호텔 건립도 그러하다. 신라면세점이 있는 자리에 들어설 한옥 호텔은 91개의 객실로 이루어지는데, 지하 3층에서 지상 3층 규모로 지어 다층 한옥을 실현할 예정. 지붕이 서로 겹치도록 설계해 마치 거대한 전통 마을 같은 모습으로 2022년에 등장한다. 내부에도 대청마루나 정원 등을 두어 또 한 번 도심 속 한옥 붐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한다. 7월에는 백남준 서거 10주기를 맞아 그가 유년 시절에 살던 한옥을 개조한 백남준기념관이 개관할 예정이고, 9월에는 서울 한복판에 지하 3층에서 지상 1층 규모의 서울돈화문국악당이 문을 연다. 세종시는 신도시에 건설하는 공공 건축물에 고풍스러운 한옥 기술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한옥의 미래는 분명 진행형이다. 다양한 장소에서 한옥의 구조와 공간을 만날 수 있는 건 좋은 현상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한옥의 대중화에 집중하느라 한옥의 미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거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급급해 한옥의 특징인 내·외부의 소통 문제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즉 전통을 지키면서 우리 삶에 적합한 공간과 형태로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옥은 현대 도시와 건축,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세련된 모습으로 우리 미래와 함께할 것이다.

한옥과 현대건축 양식을 혼합한 서울돈화문국악당의 국악마당

PART 3
행복한 한옥살이
허름한 길, 오래된 동네가 품고 있는 한옥에 둥지를 튼 사람들의 이야기.

화동에 위치한 어나더디 오픈 스튜디오

어나더디 오픈 스튜디오 내 카페

그들의 세 번째 한옥
삼청동에 위치한 공간 디자인 사무소 ‘어나더디(Another D)’의 김경민·정세영 부부는 한옥에 살며 한옥에서 일한다. 평화롭고 아늑한 삶을 염원하며 한옥살이를 시작한 지 9년 된 그들은 얼마 전 종로구 화동에 있는 한옥에 오픈 스튜디오를 열었다. 이것이 그들에겐 세 번째 한옥이다. 처음에는 삼청동에 위치한 32평짜리 한옥을 사무실로 사용했고, 두 번째는 인근 주민의 의뢰로 직접 시공한 한옥으로 사무실과 주거 공간을 옮겼다. 지금 그곳은 주거 용도에 집중하며 가족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한다. 그리고 6개월 전 좁고 긴 형태의 자투리 땅에 지은 2층짜리 한옥을 업무 환경에 맞게 고쳐 사무실 겸 기획 전시, 카페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카페에서 바리스타가 맞이하고, 낮은 계단을 오르면 오른쪽에 전시 공간이, 2층 사무실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엔 화장실과 정원이 딸린 작은 정자가 눈에 들어오는 구조. 3면에 넓은 창을 낸 2층 사무실은 자연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일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풍경과 맑은 공기, 언제든 열린 하늘 아래서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된다고. 사무실이 아니라 동네 마실 가듯 편안한 마음으로 커피 한잔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면 새롭고 창의적인 영감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평생을 살 수 있는 집
20년 가까이 미국에 머문 온라인 아트 플랫폼 도두바의 최자윤 대표는 한국에 돌아와 살 신혼집을 구했다. 한옥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종로구 체부동은 조선시대 풍경을 떠올리게 했고, 그 분위기에 반해 한옥을 구입했다. 시간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해 한옥 건축으로 유명한 사무소 효자동의 서승모 소장에게 설계를 맡겼는데, 지붕과 대들보가 있는 주춧돌만 남긴 채 모든 골절을 해체해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집과 마당을 한 바퀴 돌며 거실로 향하게끔 동선을 구성해 한옥의 재미를 살린 것이 특징. 비움과 덜어냄,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이들 부부는 많은 살림을 두지 않아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한옥이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주말에 남편과 함께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중정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쁘게 지나간 한 주가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흐른다. 이웃과 함께 부딪치며 따뜻한 정도 느낄 수 있다. 부부는 그들의 생을 마무리하는 곳 역시 이곳 체부동 한옥이었으면 한다. 그곳에서 함께 늙어가는 꿈을 꾼다.

꿈에 그린 한옥
바느질 작가 문수연은 어린 시절 일본식 적산가옥에 살았다. 당시를 회상하면 온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꽃이 만발한 마당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인 아파트로 이사한 이후 그녀는 늘 볕이 잘 들고 마당이 있는 한옥집에 살길 원했다. 그러나 사대문 안에서 그녀의 대가족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큰 한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양옥 주택을 선택했다. 그 후 혼자만의 작업실로 사용할 한옥을 구입했다. 지붕을 철거해 빛과 바람을 집에 들이고 전체 14평의 사다리꼴 부지는 집반, 마당 반으로 나눴다. 작년 11월에 완공해 지금은 이곳에서 사계절을 경험하는 중이다. 바느질 작업실이자 게스트하우스로 이용하며 집만큼 많은 시간을 보낸다. 가구를 놓고, 이부자리를 맞추며 꿈꿔온 한옥의 이미지를 하나씩 실현하고 있다. 한옥은 시간이 지날수록 운치를 더해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요즘. 각각 다른 곳에서 가져온 나무의 색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모난 돌은 점점 둥글게 변해간다. 대청마루는 반질반질 윤이 나고 꽃과 화초가 자란다. 꿈꿔온 행복이 이곳에 있다.

양태오 디자이너의 계동 한옥

지켜야 할 전통
세계적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의 회사에서 일하며 네덜란드와 독일 등 유럽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유럽 문화를 가까이에서 보고 느낀 그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문화 속에서 사는 삶이 어떤 느낌인지 확인하고자 한옥살이를 택했다. 도쿄 예술대학에서 공부한 건축가가 1917년에 지은 계동의 ㅁ자형 한옥 2채. 김영섭 건축가가 이 집을 개조해 살았고, 양태오 디자이너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100년이 다 된 한옥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소명으로 한옥의 외관과 구조는 고치지 않았다. 방음, 동선, 채광 등 꼭 필요한 것만 보완하고 내부를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리뉴얼한 정도. 가구 배치와 동선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아온 다양한 스타일의 가구로 한옥에 글로벌한 감각을 더했다. 큰 나무와 마당이 있는 한옥에서는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지 관찰하기 좋기 때문에 모든 가구가 중정을 향하도록 배치한 것이 포인트. 시간이 흘러 싹이 돋고, 꽃이 피고, 비와 눈이오는 풍경을 지켜보며 자연과 함께 살 때 가장 사람답다고 느낀다.

내 인생 최고의 컬렉션
서촌의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노란색 문이 유난히 눈에 띄는 작은 한옥 한 채를 만날 수 있다. 걸 그룹 2NE1 씨엘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이기진 교수의 작업실 겸 갤러리인 ‘창성동갤러리’다. 전 세계를 돌며 온갖 희귀한 골동품을 수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그에겐 이 공간 자체가 하나의 컬렉션이다. 일본에서 7년간 공부하고 돌아온 후 문득 한옥 단칸방에서 생활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창호지를 바른 문을 열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처마 아래 툇마루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로망을 품은 것이다. 결국 2007년 서촌에 자리한 허름하지만 운치 있는 30평대 한옥을 구입했다. 처음에는 100년 이상 전통을 이어온 한옥의 정취를 살리고 싶어 전혀 보수를 하지 않았다. 주말이면 지인들을 불러모아 막걸리파티를 열며 호젓하게 풍류를 즐긴 게 전부다. 그렇게 7년간 낡은 한옥에서 자유를 즐기고 나니 다른 걸 하고 싶어졌고, 2013년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혼자 즐기는 공간이 아닌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물리학자인 동시에 직접 그린 그림을 실은 동화책을 내고 다양한 미술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인 그는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자전거 메카닉 1>, <무심풍경 릴레이전> 등 작지만 이색적인 전시를 연다. 많은 사람이 전시뿐 아니라 운치 있는 처마, 서까래, 대들보 등 한옥을 구성하는 요소를 예술 자체로 보고 즐기길 바라는 마음을 함께 담아서.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문지영 (jymoon@noblesse.com) 김윤영 (snob@noblesse.com)
사진 이창재 디자인 이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