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움의 미학
정도련의 일상은 매우 단조롭다. 화려한 것은 일절 없고, 도대체 어느 한곳에 큰돈을 쓰지도 않는다. 그가 지난 수십 년간 고집스럽게 유지해온 몇몇 아이템엔 어떤 단조로움의 미학이 숨어 있다.
정도련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미국에 이민 간 정도련은 UC 버클리에서 미술사로 박사 과정을 마치고 버클리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뉴욕 모마 등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며 아시아 작가를 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했다. 미술 작품을 잘 보존하고, 전시하고, 해석하는 고전적 의미의 ‘큐레이터’ 역할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는 그는 지난해 여름 홍콩 M+시각문화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로 영입돼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다.
1 필통 출장 중 호텔에서 가져온 각종 펜, 맨소래담 립밤, 안경을 조여주는 드라이버, 뉴욕 모마의 큐레이터로 일할 당시 사들인 작품 리스트와 해설이 담긴 USB. 필통 속엔 늘 이렇게 일상적인 물건이 들어 있다. 무작위적 조합이지만, 그 이상 내 단조로운 일상을 가장 잘 설명하는 아이템도 없는 것 같다. 누군가 인생은 ‘랜덤’이라 하지 않았던가. 무작위 속에서 나름의 룰을 찾고 있다.
2 몰스킨 노트 일상을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 10년 전부터 검은색 몰스킨 노트를 쓰기 시작해 벌써 10여 권을 모았다. 작가나 갤러리스트를 만나면 그날의 대화를 꼭 정리해두는데, 그것이 도록을 만들거나 강의를 준비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언젠가 지금껏 모아온 노트를 정리해 책으로 출판할 계획도 있다.
3 안경 눈으로 벌어먹는 직업상 안경에 특히 관심이 많다. 딱히 컬렉팅을 하려 한 건 아닌데 벌써 12개나 모았다. 시계 차는 것에도 불편을 느끼는 내게 안경은 유일한 ‘패션’ 액세서리다. 그런데 안경을 전부 어디서 사느냐고? 바로 남대문의 단골 안경집. 미국 유학 시절부터 다닌 곳으로 지난겨울에도 가서 하나 맞췄다.
4 캔버스 토트백 주머니가 가벼워야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서 외출할 땐 늘 주머니를 대신할 가벼운 토트백을 챙긴다. 최근 들고 다니는 건 1년 전 뉴욕에 있는 편집숍 ‘If’에서 산 Y’s 제품. 주로 커다란 캔버스 백 안에 작은 캔버스 백 2~3개를 포개 넣고 다니는데, 외출 후 반나절만 지나면 도록과 책 등 일거리가 가득히 쌓여 모든 가방이 빵빵해진다.
5 주은지 큐레이터 주은지는 대학원 선배이자 내 인생의 멘토다. 현재 샤르자 비엔날레의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며, 2003년 YBCA(Yerba Buena Center for the Arts)의 아시아 그룹 작가전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글 이재명(홍콩 통신원) 사진 Dio Mi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