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고깃집
질 좋은 한우를 대하는 진지하고 실험적인 자세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요즘 고깃집에 관해.

카운터석 형태로 프라이빗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현담원 그릴.
프라이빗한 룸에 들어서자 은은하게 실내를 비추는 디자인 거장의 조명과 현대미술 작가의 커다란 그림이 반긴다. 방과 연결된 라운지에는 갖가지 위스키를 진열한 고급스러운 칵테일 캐비닛과 시가 박스가 놓여 있다. 어느 품격 있는 프렌치 파인다이닝 공간처럼 보이지만 한우 전문 레스토랑이다. 이곳에서는 등심, 안심 등 어떤 부위를 주문할지 고민할 필요 없이 그날 가장 좋은 육질의 소고기를 다양한 부위별로 맛볼 수 있다. 다양한 반찬과 쌈채소로 거하게 차린 한 상은 이제 옛말. 제철 식자재를 이용한 다양한 전채가 코스식으로 상에 오른다. 전담 셰프가 정성스레 구워 캐비아를 올린 고기 한 점에 위스키 한 모금을 곁들이는 호사가 가능하다. 이것이 요즘 종종 만날 수 있는 고깃집의 풍경이다. 마장동의 부티크 정육점 겸 레스토랑 본앤브레드를 기점으로 모퉁이우, 수린, 현담원 그릴 등 조금씩 컨셉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고급스러운 한우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이들이 선보이는 한우 오마카세는 고급 스시집처럼 한우 구이와 곁들임 요리를 코스로 구성하는 새로운 외식 문화다. 소의 원산지와 품질을 까다롭게 관리하며 부위별 숙성을 통해 최상의 소고기를 내는 것은 기본, 코스식 구성과 위스키 페어링까지 새로운 미식 경험을 선사한다.

1 입맛을 돋우는 제철 해산물로 만든 전채 요리.
2 정육 전문가가 상주 해 한우의 다양한 부위를 맛볼 수 있는 우라만.
3 백김치와 토마토 김치, 생와사비와 봉선화 소금을 내는 꿰뚫의 기본 곁들임.
고깃집은 역시 고기 맛이 가장 중요하다. 프리미엄 한우 다이닝은 대부분 투플러스 한우, 30개월 미만의 한우 암소나 거세우 등 최상의 고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붓처리 서울’은 투뿔등심과 붓처스컷을 운영하는 SG 다인힐의 고기 편집숍 겸 레스토랑. 입구에 놓인 진열대에는 부위·지역별로 고기를 진열했다. 음성·함양·서귀포 등 부위별로 가장 맛있는 전국 각 지역의 한우를 제공한다. ‘꿰뚫’은 베테랑 한우 전문가가 육량과 마블링을 따져 그날 경매장에서 가장 우수한 품질의 암소를 들여온다. 그뿐 아니라 고기의 질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별도의 숙성 센터를 마련해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우라만’의 황규하 헤드 부처는 육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작업 노하우를 겸비한 정육 전문가다. “보통 소고기는 10개 부위로 대분할하고 이를 다시 39개로 소분할하는데 일반 한우 고깃집에서는 안심, 등심, 채끝 등 소위 잘나가는 부위만 판매하죠. 최근 한우 구이 전문점에서는 육부장이라 불리는 정육 기술자를 두어 소고기를 직접 정형하기도 해요. 이를 통해 기존 고깃집에서 만날 수 없던 다양한 부위를 제공할 수 있고 셰프 역시 더 좋은 메뉴를 만들 수 있어요. 우라만에서는 육회용 고기로 흔히 우둔살과 홍두깨살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설도에서 나오는 설기살과 보섭살, 앞다리에서 나오는 꾸리살을 사용해요. 더 담백하고 감칠맛이 있다는 평을 듣고 있죠.” 좋은 한우 고기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은 숙성으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 웨트에이징 방식을 이용하는데 살균 효과와 감칠맛을 더하는 히말라야 암염이나 코퍼 소재로 마감하는 특별한 숙성고를 제작하기도 한다. 1℃를 유지하는 냉장고에서 평균 2~3주 내외로 소고기를 숙성하는데 스테이크용은 웨트에이징 후 드라이에이징으로 마무리하기도 하고, 얇게 써는 부위는 최소한의 숙성을 통해 식감만 살린다. 원육의 부피나 고깃결, 커팅 상태, 지방이나 단백질 함유량에 따라 숙성 온도와 기간을 다르게 설정하며 위아래 표면이 균일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루에 한 번씩 뒤집는 정성을 쏟기도 한다.
“메뉴는 한 가지 코스뿐이죠. 채끝등심, 등심, 치맛살, 부챗살, 새우살, 안심추리 등 그날그날 선도 좋은 부위를 마치 스시처럼 즐길 수 있어요. 소고기구이 이외에도 청어알이 터지는 매콤한 육회, 꼬치에 꿰어 내는 버섯과 가리비, 차돌구이삼합 등 한 입 거리의 음식을 중간중간 내어 질리지 않고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했죠.” ‘수린’ 황성만 대표의 말이다. 고기의 부위나 숙성 방식 외에 차별화를 위한 포인트로 각별히 신경 쓰는 것은 곁들임 음식이다. 한식은 물론 일식이나 프렌치 요리를 접목한 코스 형태로 질리지 않고 맛있게 고기를 즐길 수 있다. ‘현담원 그릴’의 장지호 셰프는 “정성스럽고 배려심 깊은 일식 가이세키의 요소를 더했어요.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유연한 코스의 구성이 뒷받침되어야 하죠. 제철 해산물로 만든 전채로 입맛을 돋우고 고기 부위별로 어울리는 토핑을 곁들여요. 안심에는 캐비아를, 꽃등심에는 일본식 파 양념을 올리는 식으로 계속해서 맛의 변주를 이끌어내죠”라고 말한다.

4 싱글 몰트위스키와 한우 구이 페어링.
5 고기 맛에 물리지 않도록 중간중간 한 입 거리 음식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레스토랑은 좌석이 많을수록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있어 큰 규모를 지향한다. 최근 생긴 프리미엄 한우 다이닝의 또 다른 공통점은 두세 팀만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거나 개별룸을 마련했다는 것. 셰프와 대화할 수 있는 일본 스시집의 다치 문화를 기본 포맷으로 카운터석을 구성해 몇 시간 동안 코스가 이어져도 지루할 틈이 없다. 분더샵 청담 7층에 자리한 ‘우엑스’는 하루에 딱 1팀, 최대 8명만 예약을 받는다. 식사용 테이블과 고기 굽는 테이블을 별도로 분리했는데, 이는 셰프가 고기를 굽기 때문. 주택을 개조한 아늑한 분위기의 ‘온도’는 개별 룸 사이에 우아한 응접실도 갖췄다. “식사가 끝난 후에도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라운지를 마련했어요. 공간 전체를 사용할 수 있는 프라이빗한 경험이죠.” 온도 안충훈 셰프의 말이다. 맛의 변주는 페어링으로 이어진다. 최근에는 와인은 물론 위스키와 한우구이를 함께 즐기도록 페어링하는 시도가 돋보인다. 냄새에 민감한 위스키 애호가를 위해 하향식 덕트(아래로 공기를 흡입해 밖으로 배출하는 시스템)를 설치하고, 바텐더가 상주하는 바를 마련해 하이 체어에 앉아서도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고깃집은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까? 현담원 그릴의 장지호 셰프는 한우 전문 레스토랑이 새로운 외식 문화를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반년 사이에 한우 전문 레스토랑이 대거 오픈했어요. 항간에서는 스시야가 앞다투어 오픈한 것을 떠올리며 한때의 유행에 그칠 것이라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스시야는 외식업계에 잘 정착했어요. 하이엔드 스시야에서나 사용하던 귀한 식자재를 이제 미들급 스시야에서도 보편적으로 쓰고 있죠. 외식업계의 변동이 시장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한우 전문 레스토랑 역시 시간이 지나면 더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며 업계를 바꿔나갈 거예요.”
Restaurant Info
꿰뚫
ADD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46길 25 유현빌딩 TEL 02-548-1996
붓처리 서울
ADD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60길 18 2층 TEL 02-543-7159
수린
ADD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164길 24 TEL 02-515-9220
온도
ADD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68길 35-1 TEL 02-555-4525
우라만
ADD 서울시 용산구 소월로38길 25 1층 TEL 02-797-8399
현담원 그릴
ADD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168길 6 TEL 02-6925-3127
에디터 김윤영(snob@noblesse.com)
사진 박유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