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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도 몰랐던 홋카이도

LIFESTYLE

홋카이도 하면 십중팔구 눈과 설국을 떠올릴 것이다. 눈이 녹고 그제야 제 모습을 드러낸 이 섬의 봄을 보고 있으면 편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눈을 가리는지 알게 된다.

오타루 운하의 야경

겨울은 미처 떠나지 못한 것 같았다. 분명 날짜는 4월을 넘어 5월을 향해 가고 있었고 ‘홋카이도 날씨는 초봄’이라는 안내를 듣고 갔지만, 비행기에서 내린 에디터에게 이 북쪽의 섬이 건넨 첫인사는 발을 내딛기 힘들 만큼 거센 바람과 부슬부슬 내려앉는 눈이었다. 따뜻한 남쪽에서 온 이방인에게는 버거운 날씨여서 나도 모르게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전투적 자세를 취했다. 한편으론 이곳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왜 흔히 ‘겨울 나라’라 불리는 홋카이도의 봄에 구태여 초대한 것인지 그땐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정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운을 뗐다. “홋카이도를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바로 봄·여름입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에도 선선한 날씨를 유지하기 때문이죠. 오히려 도시가 눈에 파묻히는 겨울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노보리베쓰에서 열리는 ‘도깨비들의 불꽃놀이’ 축제

자연 앞에 겸손하라
신치토세 공항에서 1시간 정도 달려 노보리베쓰 온천에 다다랐다. 생각보다 홋카이도는 넓고 크다. 도쿄가 있는 혼슈에 이어 두 번째 규모로, 일본의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각 도시 간 이동 거리가 꽤 긴 편이니 미리 정보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 노보리베쓰는 규슈 유후인과 더불어 일본 온천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지옥 계곡’을 중심으로 하나유라, 다키노야 등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온천 료칸이 포진해 있다. 노보리베쓰의 모든 온천수는 여기서 발원한다. 유황과 식염, 철과 라듐 등 피부와 여러 통증에 좋은 물이 흘러 내려간다. 6월부터 8월까지는 빨간 도깨비와 파란 도깨비가 불기둥이 솟는 죽통을 들고 불꽃놀이를 하는 퍼레이드를 펼치는 장관을 연출한다. 산 전체에서 유황 냄새 가득한 연기가 피어나는 화구터인 지옥 계곡에 다다르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자연의 웅장함에 잠시 겸손해질 것이다.
사실 이곳 외에도 홋카이도 곳곳에는 경이로운 자연의 흔적이 넘쳐난다. 대체로 화산 활동에 의해 생긴 특이한 지형이다. 신의 ‘선물’일 수도, ‘불편’일 수도 있는 이 자연환경을 홋카이도 사람들은 그저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 듯하다. 도야 호수가 그렇다. 안개 자욱한 이 도야 호수를 여름까지 눈이 녹지 않는 설산이 둘러싸고 있다. 호수지만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바다 못지않게 물결이 일렁인다. 이곳 사람들은 작은 유람선을 띄워 호수를 누비고 그곳을 터전 삼아 가리비나 조개 등을 잡으며 살아간다. 도야 호수는 일본인에게도 손꼽히는 휴양지. 호수를 지키는 ‘도야 윈저 호텔’은 일본 정·재계 인사의 휴양지로, 지난 2008년에는 G8 정상회담 회담장과 숙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미슐랭 별 2개를 받은 프렌치 레스토랑 ‘미셸 브라스 도야 재팬’과 별 하나를 받은 일식 레스토랑이 유명하다.

구하코다테 공회당

하치만자카

하코다테의 두 얼굴
하코다테를 거닐다 보면 이국적이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 곳곳에서 눈에 들어온다.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를 누비는 노면 전차 사이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부산항과도 비슷해 낯익다. 빨간 벽돌 건물이 줄지어 늘어선 ‘가나모리 아카렌가 창고군’도 그중 하나다. 부산항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벽돌 창고를 이곳은 그대로 보존해 소품 숍과 베이커리 등으로 채웠다. 하늘 맑은 날, 자전거를 타고 이곳을 누비면 하코다테 사람들의 생생한 생활상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어쩌면 부산으로 착각할 만큼 비슷한 하코다테는 지극히 이국적인 여행지다. 사실 홋카이도는 일본이라는 나라로 편입된 지 이제 갓 100년이 넘었다. 그 전에는 아이누족과 오로크족, 니브흐족 등 전혀 다른 민족이 거주했다. 이민족의 문화와 동화되는 데 주저함이 없어서인지 유럽을 떠올리게 하는 건물도 많다. 특히 유럽식 주택이 즐비한 거리에서 항구를 내려다보는 ‘하치만자카’는 영화 <러브레터>에서 여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던 바로 그 언덕길로 하코다테의 유명 포토 스폿이다. 녹음이 짙은 하치만자카를 뒤로하고 올라가면 갖가지 종교의 예배당이 있는 모토마치 교회군을 만난다. 고딕 양식으로 1924년 지은 가톨릭 성당과 비잔틴풍으로 지은 하리스토스 정교회 성당은 종교가 없더라도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 훌륭한 공부가 된다. 모토마치 교회군을 벗어나 5분 정도 걸으면 라이트 블루와 밝은 옐로 컬러를 칠한 르네
상스풍 건물을 만난다. ‘구하코다테 공회당’이라는 이 건물은 지은 지 100년이 훨씬 넘었다. 다이쇼 일왕과 쇼와 일왕이 행차했을 때 사용한 ‘왕가의 건물’이기도 하다. 왕실에 대한 자긍심이 투철한 일본답게 100년이 넘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것이 인상적.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잠시 시간 여행을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르누보 양식의 영국제 벽지와 붉은 카펫 그리고 휘황찬란한 샹들리에로 곳곳을 장식한 콘서트홀에 선 지금도 크고 작은 음악회가 열리곤 한다.
아침, 호텔을 나와 무작정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따라갔다. JR 하코다테 역 근방에 있는 ‘아사이치’는 꼭 한번 가보길 권한다. 홋카이도에서 누릴 수 있는 자연의 축복이 모두 모여 있다. 청정한 오호츠크 해역에서 잡은 신선한 해산물은 물론이고 갓 짜낸 고소한 우유, 한 입 베어 물면 진한 향과 단맛이 터져 나오는 유바리 멜론 등을 판다. 봄을 맞아서인지 통통한 아스파라거스와 딸기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시장의 베스트 상품은 아마 ‘삼색돈’이라 불리는 ‘가이센돈’일 것이다. 게살과 연어알, 성게를 밥 위에 가득 올린 덮밥이다. 다 아는 맛 아니냐고? 아마 한 입 먹는 순간 지금껏 알던 것과 전혀 다른 풍미에 놀라게 될 것이다. 흡사 버터 같은 성게와 톡톡 터지는 짭조름한 연어알, 포슬포슬한 게살이 먹는 내내 미각을 자극한다.

하코다테의 유명 스폿, 가나모리 아카렌가 창고군

삿포로 최대의 번화가, 스스키노

오타루 사카이마치혼도리를 관통하는 전차

여행자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오타루는 일본 사람에게도 묘하게 향수를 자극하는 여행지야. 고요한 물이 흐르는 운하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건물 때문일 거야.” 여행 전 만난 일본인 친구의 말에 오타루에 대한 기대감은 한층 높아졌다. 이미 영화 <러브레터>에 대한 기대로 막연한 호감을 품고 있는 터였다. 또다시 3시간을 달려 오타루 운하 앞에 섰다. 지금은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운하는 오타루의 심장과도 같다. 그 옛날 뱃사람들은 이곳을 이용해 물자를 날랐고, 지금도 운하 옆을 에워싸고 일렬로 선 창고 건물은 모두 100년은 거뜬히 넘었다. 눈 내리는 겨울도 좋지만, 초여름 밤 노란 불빛이 에워싼 오타루 운하의 야경은 더없이 매력적이다.
오타루는 한때 ‘북부의 월 가’로 불리기도 했을 만큼 번성했다. 그 옛날의 영광을 간직한 ‘기타노월’ 거리에서는 <러브레터>에서 나카야마 미호가 1인 2역을 맡은 여자 주인공 이쓰키와 히로코가 서로를 마주한 장면을 촬영했다. 또 이곳은 부호만이 누릴 수 있던 유리공예와 오르골 공방 등 세심한 장식 문화가 발달했다. 오타루 운하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사카이마치혼도리’는 공방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모두 손으로 직접 만드는 형형색색의 유리공예 제품과 함께, 증기시계가 매시간 울리는 ‘오르골당’에는 보석함 형태는 물론 작은 종 모양과 심지어는 스시를 형상화한 오르골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오르골이 모여 있다.
한편 홋카이도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라벤더 재배지다. 특히 삿포로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후라노는 겨우내 하얀 이불을 덮은 듯하지만 완연한 여름이 되면 온통 보랏빛으로 물든다. 프랑스 아비뇽의 라벤더밭 못지않은 풍광에 이곳을 보기 위해 여름에 홋카이도를 찾는 이도 많다. 인근의 비에이 역시 ‘꽃의 천국’이라 불려 삿포로에서는 후라노와 비에이 일대를 오가는 ‘노롯코 열차’를 여름에만 한정 운행한다. 워낙 인기가 높아 예약도 불가하고, 당일 예매만 가능해 운에 맡겨야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만으로도 시도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이틀간 하코다테와 오타루, 도야 일대를 여행하고 삿포로에 도착했다. 맥주 축제를 맞아 맥주잔 부딪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는 왁자지껄한 삿포로에 와서야 왜 이 섬의 봄에 초대됐는지 알 수 있었다. 겨울 여행지라는 편견은 보기 좋게 깨졌다. 홋카이도의 봄은 어딜 가도 같은 곳이 없고 발길 닿는 곳마다 새롭다. 햇살이 내리쬐다가도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바짝 마른 자작나무 숲이 이어지다 흐드러진 꽃밭을 만난다. 그 어떤 예측도 할 수 없어 마음 가는 대로 훌쩍 떠나면 그곳이 여행자의 길이 되는 곳. 당신이 몰랐던 홋카이도의 봄이다.

후라노의 라벤더 농장

 

More Information
에어부산은 김해국제공항에서 신치토세 공항까지 일·월·목요일에 운항한다. 소요 시간은 약 2시간 20분. 7월 1일부터는 주 5회로 증편해 운항하니 한층 여행 계획을 짜기가 수월할 것이다. 에어부산 http://www.airbusan.com

에디터 신숙미(프리랜서)
취재 협조 에어부산, 홋카이도 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