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당신에게 놀랐다

MEN

이렇게 잘할 줄이야.

1. <부산행>은 좀비 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좀비 영화는 한국에서 마이너 중 마이너에 속하는 장르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 움직인다는 설정, 온갖 상처와 병균을 이식한 듯한 외양 등이 현실 친화적 이야기에 익숙한 한국 관객에게는 허무맹랑하게 다가온 탓이다. 한국에서 좀비를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 영화 <부산행>을 제작한다고 했을 때 기대감보다는 우려가 앞섰다. 100억 원대의 제작비로 마이너한 장르를 만들다니. 다들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칸 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상영 이후 <부산행>에 대한 외신의 호평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역대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상영작 중 최고다!” <부산행>은 결과적으로 12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KTX라는 한국의 익숙한 배경, 우사인 볼트에 버금가는 스피드의 좀비로 볼거리를 강화하고, ‘헬조선’의 현실을 메시지로 장착했으니 전국은 그야말로 <부산행> 열풍이었다. 그 결과 지금 충무로 제작사들은 그동안 창고에 버려둔 좀비 영화 시나리오를 찾느라 혈안이 된 상태라고 한다. 천덕꾸러기 신세던 좀비 영화가 <부산행>을 터닝포인트 삼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신분 상승했다. 허남웅(영화 평론가)

2. HP에는 분명 무슨 일이 있다
누구도 HP 노트북을 디자인을 보고 구입하지 않았다. 심지어 배송될 때까지 디자인이 어떤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HP 노트북은 델과 함께 미국식 합리주의의 상징이었다. 스펙 대비 합리적인 가격, 튼튼하고 투박한 디자인. 그런데 최근 HP의 디자인이 변하고 있다. 레노버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준 충격 속에서 HP는 새로운 디자인 랭귀지인 파이(PHI)를 내세웠다. 진보, 조화, 상징이라는 다소 관념적인 단어로 채운 이 슬로건이 마법 같은 변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올해는 특히 HP 브랜드 로고를 바꾸고 완전히 새로운 PC를 내놓고 있다. 지난 4월에는 1cm 두께의 초박형 노트북 ‘스펙터 13’을 발표하며 최고 디자인의 윈도 노트북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이후로도 뱅앤올룹슨과 협업한 패브릭 재질의 PC ‘웨이브’, 도시락처럼 쌓아 올리는 모듈형 PC ‘엘리트 슬라이스’를 연속 발표하며 가장 다양한 영감을 주는 PC 디자인업체로 발돋움하고 있다. 5년 전까지는 이 역할을 애플이 수행했다. 애플 대신 HP라니. 정말 놀라운 변화다. 김정철(<더기어> 편집장)

3. <91 데이즈>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을 깨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소재의 작품이 끝없이 등장한다. 그중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도 많다. <91 데이즈>도 그중 하나. 금주법 시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남성 취향의 하드보일드 애니메이션이다. 회마다 여러 인물이 죽어나가는데 <대부>나 <스카페이스> 같은 묵직한 누아르 분위기가 물씬 난다. 마피아 패밀리에서 일하던 회계사 아버지가 조직으로부터 배신당해 온 가족이 살해당하는 걸 목격한 소년은 훗날 가족의 복수를 위해 신분을 속이고 패밀리에 들어간다. 그가 최후의 복수를 완성하는 91일간의 기록을 담았다. 음모와 배신, 살인, 복수, 우정, 의리. 누아르 마니아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모든 요소가 들어 있다. 차우진(문화 평론가)

4. 넥센의 선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개막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전문가 집단은 넥센이 하위권을 맴돌 것으로 예상했다. 심지어 한 방송 해설가는 “넥센보다 순위가 낮은 팀이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밴 헤켄, 조상우, 한현희, 손승락, 송신영, 박병호, 유한준, 스나이더, 박헌도까지 WAR(대체 선수 대비 기여 승수) 기준 30승이 한꺼번에 빠져나갔으니 무리한 예상도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넥센은 오히려 ‘지구 방위대’ 타선을 자랑한 지난해보다 한층 안정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리그 3위를 차지했다. 윤석민, 김하성, 고종욱, 김세현 등 기존 선수들의 성장에 신재영, 박정음 등 새로운 얼굴이 등장해 빠져나간 선수들의 빈자리를 채웠다. 고척돔이라는 새로운 환경은 기동력과 수비력, 투수력 중심 야구로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 144경기 장기 레이스를 대비해 선수들에게 충분한 휴식 시간을 주었고, 이길 수 있는 경기와 그렇지 않은 경기를 구분해 철저한 ‘선택과 집중’으로 시즌을 운용했다. 후반기 밴 헤켄의 영입 타이밍은 완벽했고, 신재영의 등장 같은 천운까지 따랐다. 넥센의 놀라운 성공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배지헌(<엠스플뉴스> 기자)

5. 김태리는 분명 새로운 얼굴을 가졌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아가씨>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김태리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대중은 초록 검색창을 경쟁적으로 공략했다. 그래도 별다른 정보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아가씨>로 장편 영화에 데뷔하기 전 김태리의 영화 출연 경력은 몇 편의 단편이 전부였다. 제작 단계부터 숙희 역의 캐스팅 조건은 악명이 높았다. ‘최고 수위의 정사 연기. 타협은 불가!’ 결과적으로 무려 1500 : 1의 경쟁률을 뚫고 김태리가 캐스팅됐다. 최고 감독과 최고 배우와 최고 스태프 사이에서 살짝 주눅이 들 법도 한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당찬 모습이 전부다. 하긴 아마추어같이 굴었다가는 최고 수위의 정사 장면을 무리 없이 소화하긴 힘들었을 거다. 그전까지 한국 영화계에는 데뷔작부터 강렬한 베드신을 펼친 여배우는 배우 생활을 길게 하기 어렵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해피엔드>의 전도연과 <은교>의 김고은이 이를 보기 좋게 깨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군림하고 있다. 김태리는 아마 이 선배들을 이어 보물 같은 배우가 될 것이다. 허남웅(영화 평론가)

6. 곽도원은 상업영화의 주연이 됐다
<곡성>을 제작한 곳은 할리우드의 6대 메이저 제작사 중 한 곳인 20세기폭스였다. 나홍진 감독에게 영화에 대한 전권을 부여했지만, 딱 하나 곽도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그동안 주인공으로 출연한 적이 없어 영화를 책임질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것이 이유였다. 곽도원 본인도 자신이 <곡성>의 주인공으로 관객을 설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오판이었다. <곡성>은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마을을 뒤덮는 와중에 이상 징후를 보이는 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의 사연을 다뤘다. 곽도원의 푸근한 인상은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별안간 자신의 가정에 닥친 사건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행동 또한 우리에게는 익숙한 것이다. 많은 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곽도원은 <곡성>으로 멋지게 주연 신고식을 치렀다.
허남웅(영화 평론가)

6. 발뮤다의 디자인은 혁신적이다
선풍기는 130여 년간 형태와 설계에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던 2009년, 영국의 고집쟁이 발명가 다이슨이 팬 없는 선풍기를 발명하며 선풍기도 변화의 여지가 있음을 증명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발뮤다 디자인(현 발뮤다 재팬)도 아주 비싼 선풍기를 내놓는다. 가격은 30만 원이 넘었다. 당시에는 이렇게 비싼 선풍기가 팔릴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발뮤다 선풍기는 몇 년간 입소문을 타더니 한국을 강타했다. 심지어 ‘강남 선풍기’로 불리며 올여름 품귀 현상까지 빚었다. 이유? 선풍기의 기존 형태를 유지했지만 거의 모든 부분에서 혁신을 추구한 결과다. 정밀하고 비싼 DC 모터를 썼고, 성의 없이 만든 날개 대신 이중 구조의 날개로 자연스러운 바람을 더 멀리 보내게 했다. 여기에 배터리팩 장착, 최소한의 전력 소비, 미니멀한 디자인 등 기존 선풍기의 안이함을 다 뜯어고치다시피 했다. 발뮤다는 이 선풍기 이후 가습기, 공기청정기, 토스터 등을 연속 히트시키며 자신의 실력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김정철(<더기어> 편집장)

8. 골로프킨은 여전히 무패의 챔피언이다
메이웨더와 파퀴아오가 은퇴한 지금, 세계 복싱의 최고 스타는 카자흐스탄의 골로프킨이다. 한국인 어머니를 둔 이 철완의 전적은 35전 35승, 32 KO. 여전히 무패다. 너무 압도적인 기량 탓에 일정이나 체중을 최대한 맞춰주겠다고 해도 라이벌들이 일부러 시합을 피한다. ‘골로프킨이 두렵기 때문에’라는 이유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골로프킨의 복싱은 얼핏 투박해 보인다. 상대에게 펀치를 맞으면서도 끊임없이 압박한다. 그리고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강한 주먹으로 상대를 박살내버린다. 복싱의 원초적 재미를 그대로 전해주는 선수다. 올해도 두 차례의 방어전을 시원하게 KO 승리하며 지금은 자신의 시대임을 보여줬다. 다음 상대로 언급되는 멕시코의 카넬로와 시합이 성사되면 ‘메이웨더-파퀴아오’ 전 이후 최고의 흥행 카드가 될 전망이다. 이기원

9. 박준수는 아직 더 달리고 싶다
<음악의 신 2>는 아주 독특한 지점에 있는 드라마다. B급 코드와 루저 정서가 난무하는 이 컬트적 드라마는 웹상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물론 <태양의 후예> 같은 드라마와는 완전히 다른 마이너한 지점에서. 한국에서도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다는 것 자체가 사건이라면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연출한 박준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사실 좀 불만족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음악의신 1>이 더 재미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중적 인지도는 가져왔지만 특유의 루저 감수성은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박준수는 <음악의 신>을 비롯해 , <방송의 적>, <엔터테이너스> 같은 독특한 프로그램을 연출해왔다. 박준수의 연출 아래 UV는 루저 이미지를 극대화했고, 이상민은 정상에 서 있다가 무너진 자의 비애를 코미디로 풀어냈다. 고상한 엘리트 이미지가 강했던 이적과 존 박은 스스로를 희화화하며 뮤지션의 오라를 벗어던졌다. 그러니까 박준수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메이저’라고 칭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 이사를 자주 다녔어요. 한 군데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닌 게 지금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태생이 메이저와 좀 맞지 않아요.” 하지만 그의 마이너한 감성에 반응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음악의 신 2>를 보고는 일부러 박준수의 전작을 다시 찾아보는 사람들까지 생겼으니까. 이제야 그의 비주류적 감성이 인정받는 시대가 온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청률은 어쩔 수 없는 족쇄다. “물론 저도 시청률 욕심 있죠. 그런데 전 국민이 사랑하는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은 못 만들 것 같아요. 하하. 아직 은 내가 재미있는 것, 젊은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하고 싶어요.” 이기원 사진 윤현식

10. 원종현은 감동이었다
NC 다이노스 투수 원종현은 대장암 수술을 이겨내고 올 시즌 중반 마운드에 돌아왔다. 보통 큰 병을 앓고 오래 쉬다 복귀할 경우, 일반적인 투수는 전보다 공의 힘이 뚝 떨어지게 마련이다. 원종현은 달랐다. 150km/h를 넘나드는 광속구도, 공 끝의 강력한 힘도 여전하다. 여기에 변화구 구사 능력과 제구력, 경기 운용 능력까지 부쩍 향상된 ‘완전체’로 다시 복귀했다. 데뷔 초기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제구력이 형편없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서울 구단의 한 타자는 “아프기 전보다 좋은 투수가 되어 돌아온 것 같다”며 “상대 팀이지만, 돌아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생각하면 존경스러울 정도”라고 칭찬했다. 원종현의 피칭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배지헌(<엠스플뉴스> 기자)

11. 샤오미는 놀라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샤오미는 아이폰을 닮은 저렴한 스마트폰으로 유명해졌지만 특허 문제와 온라인에 집중하는 특유의 유통 방식 때문에 해외 진출은 쉽지 않았다. 그 결과 2014년을 정점으로 샤오미의 매출은 떨어지고, 경쟁사인 화웨이나 오포 등에 밀려 존재감을 잃어갔다. 샤오미 열풍은 이대로 끝나는 듯했지만 반전이 있었다. 샤오미는 스마트폰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배터리, 이어폰, 체중계, 스피커 같은 소품부터 개인용 운송 수단, 정수기, 공기청정기, 밥솥, 전기자전거, 노트북, TV까지 생산하는 종합 가전 업체로 발돋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발뮤다를 본뜬 디자인, 애플 느낌이 나는 마감 등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보내지만 샤오미의 차별성은 디자인이 아니라 앱을 통한 구동 방식과 중국 중소 업체 제품을 샤오미의 이름으로 기획, 디자인, 판매하는 접근 방식이다. 놀랍게도 이제 멋지고 비싼 해외 명품이 등장하면 네티즌의 댓글이 달라붙는다. “빨리 샤오미가 비슷하고 저렴하게 만들어주기를….” 샤오미가 전자제품을 만든 지 2년 만에 얻은 성과다. 김정철(<더기어> 편집장)

12. 현대자동차는 디자인 부서를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지난 5월, 현대자동차는 벤틀리 외장과 선행 디자인을 총괄하던 이상엽 씨를 스타일링 담당 상무로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그보다 이른 올해 1월부터는 벤틀리 수석 디자이너 출신인 루크 동커볼케 전무가 현대 디자인센터장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역량을 입증한 인재다. 현대가 세계적 디자이너를 영입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제품 디자인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브랜드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소비자에게 디자인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다. 이미 페터 슈라이어 디자인 총괄 사장이 좋은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슈라이어 사장 이후 현대·기아차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결과적으로 두 디자이너의 영입은 의미가 크다. 현대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새로 시작하는 제네시스에 그들의 디자인 역량이 힘을 실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폐쇄적 조직인 현대가 개방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행보기도 하다. 앞으로 그들이 빚어낼 제네시스 브랜드 차의 모습이 기대되는 이유다. 류청희(자동차 평론가)

13. 이경규는 비로소 왕이 됐다
‘이경규 위기론’은 몇 년 주기로 반복돼왔다. <돌아온 몰래카메라>가 실패했을 때, <남자의 자격>이 폐지됐을 때, <힐링캠프>에서 하차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이경규의 시대는 끝났다고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올해 만 56세. 사실 현역을 떠난다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예능 환경도 많이 변했고, 젊은 층 위주의 프로그램이 다수다. 말하자면 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판이다. 하지만 이경규는 또 한 번 반전을 이끌어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이경규는 세계 방송 사상 전무후무할 이른바 ‘눕방’을 선보이며 ‘킹경규’라는 영예로운 닉네임마저 얻어낸다. 예능은 어디보다 치열한 정글이다. 늘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야 하고, 삶 자체가 개그의 소재가 되기에 배우나 가수보다 훨씬 롱런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경규는 30년 가까운 세월을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 이경규보다 웃기는 사람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이경규만큼 롱런할 수 있는 개그맨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기원

14. <드라마월드>는 한류의 다른 버전을 보여준다
<드라마월드>는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소재로 제작한 오리지널 시리즈의 제목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 드라마의 익숙한 클리셰(막장 코드나 출생의 비밀 같은)가 소재다. 한국 드라마 마니아인 미국인 소녀가 어쩌다 한국 드라마를 만드는 세계에 들어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한 편에 20분씩 총 10편으로 제작한 이 드라마는 모든 회차가 미친 듯이 웃기는 올해 최고의 코미디 중 하나다. 사실 이 작품은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지만 산업적으로도 꽤 의미심장하다. 배우이자 제작자 숀 리처드가 제작과 연출, 주연을 맡았다. 투자는 중국과 미국에서 받았다. 릴리즈는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미국, 중국, 한국에서 동시에 진행했다. 이 드라마는 한류의 다른 버전을 보여준다는 생각이다. K-팝과 마찬가지로 ‘한국 드라마’도 외국에서 참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차우진(문화 평론가)

15. 한화는 실패했지만 정근우는 실패하지 않았다
한화 이글스 2루수 정근우는 올해 34세다. 대개 여기저기 부상에 시달리며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할 나이다. 하지만 정근우는 올해 개인 한 시즌 최다 홈런(17개)과 최다 타점(83점)을 기록하며 나이를 잊은 듯한 활약을 펼쳤다.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투지 넘치는 플레이, 선수단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리더 역할도 정근우의 몫이다. 모 구단 감독은 “연일 강훈련과 특타를 하는 한화는 다른 팀에 비해 선수들이 경기 외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많은 팀”이라며 “그럼에도 불만을 표하지 않고, 묵묵히 동료들을 다독이며 최선을 다하는 정근우의 모습을 보면 감탄스럽다. 진정한 프로 선수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한화의 2016 시즌은 실패했지만, 프로 정신을 보여준 정근우의 야구는 실패하지 않았다. 배지헌(<엠스플뉴스> 기자)

16. 허정도는 많은 얼굴을 가졌다
드라마 <기억>과 . 영화 <좋아해줘>, <걷기왕>, <범죄의 여왕>. 올 한 해 허정도가 출연한 작품의 목록이다. 시계를 1년 전으로 돌리면 <풍문으로 들었소>나 <미세스 캅> 같은 작품도 있다. 작품이 많은 만큼 맡은 역할도 제각각이다. 그는 과외 선생, 다혈질 의사였고, 육상부 코치였으며, 우연히 누군가를 죽이게 되는 사법고시생이었다. 댐 안의 물을 방류하듯 불과 몇 개월 사이 출연작이 쏟아져 나오면서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도 순식간에 빽빽해졌다. 하지만 그 많은 작품 중에도 어느 하나 비슷한 느낌이 없었다. 사람들이 단박에 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 그가 그만큼 충실히 자신의 배역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가장 기쁠 때가 그런 때예요. 배역에 가려서 절 못 알아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그래도 연기자로서 제 밥값은 한 것 같아서요.”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범죄의 여왕>에 허정도는 고시원에서 공부하는 고시생이자 사건의 주요 키를 쥔 살인범으로 등장했다. 그가 처음 등장하던 신의 서늘한 표정은 아직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올해의 표정’을 시상하는 대회가 있다면 나는 분명 이 남자의 얼굴에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면서 들어오는 시나리오도 비약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아직 느긋하다. “한동안은 제 뿌리인 연극을 좀 하려고 해요. 영화나 드라마를 하면서 배우로서 코어 근육을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다음 스텝은 연극이 끝난 뒤에 생각할 겁니다.” 이제까지 허정도의 이름 뒤에는 ‘서울대학교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허정도라는 이름 석 자가 주는 신뢰가 생겼으니까. 이 얼굴을 내년에는 훨씬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이기원 사진 윤현식

 

17. 임창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임창정의 컴백 소식을 들은 가요 관계자들은 ‘어느 정도 선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차트 10위권 내에 드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는 뜻이었다. 아이돌과 힙합이 차트를 점령한 상황에서 이 정도면 후한 예상이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임창정은 모든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것도 몇 주 동안이나. 임창정은 세련된 음악을 하는 가수가 아니다. 늘 자기 스타일을 지키는 음악을 한다. ‘내가 저지른 사랑’도 우리가 임창정에게 기대하는 지점을 익숙하게 반복한다. 강한 고음에 방점을 찍는 전통적 발라드의 문법과 처량한 가사로 듣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다. 임창정이 이번에도 음원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건 시대에 맞추려 노력하기보다 여전히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슬슬 컴백을 준비하고 있는 1990년대의 다른 스타들도 임창정의 행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대중이 추억의 스타에게 기대하는 건 완전한 새로움이 아니다. 이기원

18. 박태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지난 2015년, 박태하 감독은 기적을 만들었다. 2014년 중국 2부 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옌볜 푸더를 우승으로 이끌며 1부 리그인 슈퍼리그로 진출했다. 2016년 전망은 밝지 못했다. 중국 슈퍼리그는 그야말로 ‘쩐의 전쟁’이다. 부자 구단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있다. 옌볜은 500억 원을 쓰고도 투자 규모에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족이 주축인 소수민족 축구팀이 세계적 선수와 감독을 영입하는 데 1000억 원 이상을 아끼지 않는 한족 팀 사이에서 살아남긴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몇 달 전에 기적을 직접 지켜본 나 역시 강등을 걱정했을 정도다. 박태하 감독만이 “모두를 놀라게 할 수 있다”며 긍정적이었다. 연변은 3라운드에서 수도 팀인 베이징 궈안을 잡으며 첫 승을 올리더니 이후 상하이 선화, 산둥 루넝 그리고 허베이 화샤 같은 강팀을 줄줄이 잡았다. 허베이의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지휘봉을 잡았던 세계적 명장 마누엘 페예그리니였고, 산둥의 감독은 독일의 명장 펠릭스 마가트였다. 옌볜은 한때 4연승을 달리기도 했는데, 이는 옌볜 구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박성웅 옌볜 단장은 “박 감독님을 믿었지만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며 감격했다. 그는 축구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영웅 대접을 받는다. 중국 내 조선족 사회는 축구로 하나가 됐다. 옌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중국 어디라도 조선족이 대거 모인다. 한국과 옌볜 사이에도 좋은 기류를 만들었다. 옌볜 축구 팬 홍용일 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모국인 한국을 모르고, 한국도 우리를 몰랐다. 이제 박태하가 놓은 다리로 서로 왕래하게 됐다.”
류청(<풋볼리스트> 기자)

19. <청춘시대>는 이상하고 대단한 작품이다
제목은 좀 따분했다. 예고편도 그저 그랬다.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1화의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 때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맙소사, 이 드라마는 대체 뭐지? 저 배우들은 또 뭐고? 이 작가는?’ 10년 전 <연애시대>를 쓴 박연선 작가는 <청춘시대>에서 20대를 가장 리얼에 가깝게 그려낸다. 대학교 앞 셰어하우스에서 지내는 5명의 젊은 여자. 그 유쾌하지만 비밀스러운 일상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이 다시 이 세계와 연결되는 과정이 그야말로 사람을 웃겼다 울렸다 한다. 올해 가장 이상하면서 대단한 작품이었다.
차우진(문화 평론가)

20. 이종석은 매의 눈을 가졌다
연타석 홈런은 타자에게도, 배우에게도 어렵다. 하지만 이종석은 <학교>부터 최근작 까지 주연으로 출연한 5편의 드라마가 모두 평균 15%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작품들이 꽤나 모험적이었다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상대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소년이었고, <닥터 이방인>에서는 북한에서 자란 천재 의사 역할이었다. 심지어 에는 웹툰 속 캐릭터로 등장했다. 다소 진부해 보이거나, 리스크가 큰 역할들이었다. 하지만 이종석의 선택은 옳았다. 좋은 시나리오를 보는 감식력이 있다는 걸 직접 증명한 것이다. 작품 선택 못하기로 유명한 유승호를 생각해보면 이종석의 선구안은 확실히 탁월한 데가 있다. 차기작은 드라마가 아니라 박훈정 감독의 영화 다. 과연 영화에서도 이 선구안이 통할지 궁금해진다. 이기원>

21. 카마로 SS는 독일산 스포츠카에 멋진 한 방을 날렸다
미국도 스포츠카 역사가 제법 길지만, 오랫동안 유럽 스포츠카와 직접 비교할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미국이라는 특수 환경에 특화되다 보니 운전의 재미를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서였다. 배기량 큰 엔진에서 나오는 넉넉한 힘으로 시원하게 달리는 맛은 좋아도, 커브보다 직진에 강하고 몸놀림이 둔한 것이 전통적 미국 스포츠카의 특징이었다. 점점 나아지고 있기는 해도 유럽 스포츠카와의 격차는 뚜렷했다. 적어도 쉐보레 카마로 SS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새로운 카마로 SS는 전통적 미국 스포츠카의 특성을 많이 이어받았다. 배기량 큰 엔진, 긴 차체에 비해 짧은 실내 공간, 보닛과 트렁크가 두드러지는 고전적 외모 같은 것은 그렇다. 그러나 스포츠카에서 가장 중요한 달리기 특성만큼은 전통이라는 굴레를 시원하게 벗어버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운전이 재미있다는 점이다. 큰 덩치가 무색하게 움직임이 빠르고 정확하다. 뼈대부터 꾸밈새까지 뛰어난 스포츠카를 만들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심지어 과거 미국 차의 공통적 단점이던 허술한 꾸밈새도 찾아보기 어렵고, 최신 기술을 반영한 편의 장비를 갖췄으면서도 비슷한 성능의 유럽 스포츠카보다 훨씬 저렴하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이 정도면 대단한 발전이다. 류청희(자동차 평론가)

22. 제이미 바디는 다시 태어났다
홀쭉한 볼에 짧은 머리, 날카로운 눈매. 레스터 시티 공격수 제이미 바디는 속된 말로 인상이 사납다. 어디서 껌 좀 씹었을 듯하다. 맞는 말이다. 바디는 한때 폭력 사건에 휘말려 전자 발찌를 차기도 했으니까. 축구도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게 아니다. 8부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만큼은 최고였다. 직선적인 움직임으로 골을 뽑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승승장구하던 바디는 2012년 2부 리그 레스터 시티에 입단했고, 2014년에는 팀을 프리미어리그 승격으로 이끈다. 2015~2016 시즌 바디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 시즌 개막전부터 11경기 연속 골을 넣었다. 이는 네덜란드 대표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뤼트 판 니스텔로이가 세운 10경기 연속 골을 넘어선 기록이다. 2016년 5월, 바디는 이미 예전의 그 사고뭉치가 아니었다. 24골(득점 3위)을 넣었고, 레스터 시티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시즌 전 도박사들이 예측한 레스터 시티 우승 확률은 5000분의 1이었다. 0.0002%의 확률.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었다. 이 정도면 ‘뷰티풀 바디’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류청(<풋볼리스트> 기자)

23. 정조국은 부활했다
올해 K리그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는 건 광주FC의 정조국이다. 리그 32라운드 현재 16골로 득점 선두다. 남은 경기는 6경기, 2위와 차이는 3골이다. 충분히 득점왕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아무도 정조국이 이렇게 잘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정조국은 지난 시즌 FC서울에서 1골에 그쳤다. 기회 자체를 잡지 못했다. 그 결과 올 시즌 초반 12년간 몸담은 서울을 떠나 초라하게 광주FC로 이적했다. “아빠는 왜 안 뛰어?”라고 묻는 아들 태하에게 더 이상 변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내린 결단이다. 남기일 광주 감독은 ‘정조국은 분명히 성공한다’고 확신했지만, 주위의 시선은 차가웠다. 축구 선수 정조국보다는 탤런트 김성은의 남편이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린다고 조소한 이도 많다. 하지만 정조국은 그런 예상을 뒤엎었다. 개막전에서 2골을 터뜨리더니 계속 골 행진을 이어갔다. 33세 정조국은 데뷔 시즌(2003년, 12골)과 유럽 진출 전 시즌(2011년, 11골)을 뛰어넘었다. 유명한 축구 격언이 있다. ‘컨디션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우리는 정조국의 클래스를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류청(<풋볼리스트> 기자)

24. 황인찬의 시는 새로운 세대의 문법이다
황인찬 시인은 스물여덟 살이다. 현재 20~30대에게 가장 인기 많은 시인이며, 단순하고 의미심장한 문장을 쓴다. ‘바로 읽히는 시’를 지향하면서도 ‘빨리 소비되는 가벼운 시’가 아니라 ‘오래 돌아보게 하는 시’를 쓴다. “멍하면 멍 짖어요/ 내가 좋아하는 나의 작은 새가요/ 잘못했어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멍하면 멍’ 중에서) 같은 시구가 그렇다. 모바일이 대세인 지금 가장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는 시인과 시집의 판매량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시인은 베스트셀러의 주인공이 되고, 그들이 참여하는 행사는 금세 매진되며, SNS는 친구(팬)로 가득하다. 말하자면 문학하는 이들이 ‘셀레브러티’가 되는 시대가 왔다. 그 이유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겠지만, 나는 그저 이 흐름의 방향이 궁금하다. 모바일이 문학을 구원할까? 모른다. 그러나 모바일이 소수 취향에 머물러 있던 무언가를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리는 건 분명해 보인다. 요컨대 중요한 건 결국 소통과 공감이라는 것이다. 차우진(문화 평론가)

25. 포드 익스플로러는 꾸준히 잘 팔린다
폭스바겐 판매 중단 여파로 지형도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독일 브랜드의 위세는 대단하다.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 브랜드, 특히 미국 브랜드는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그런 배경을 놓고 수입차 판매 순위를 살피면 포드 익스플로러가 유독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익스플로러는 SUV의 필수 요소나 다름없는 디젤엔진을 올린 것도, 요즘 유행하는 소형 SUV도 아니다. 그런데도 꾸준히 판매 순위 위쪽을 맴돈다. 2011년에 5세대 모델이 나오면서 높아지기 시작한 인기는 올해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정점에 올랐다. 브랜드 이미지나 서비스 등의 약점에도 이처럼 선전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비슷한 덩치와 장비를 갖춘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의 차들보다 값이 30~40% 저렴하다. 가솔린엔진이라는 것도 디젤 차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 포인트다. 새 모델의 보수적 스타일, 배기량 낮은 모델에서 사륜구동 장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소비층의 취향에 잘 맞는다. 싼값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차를 소비자가 마다할 리 없다. 신뢰성과는 별개로, 인기 비결은 의외로 단순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차가 익스플로러다.
류청희(자동차 평론가)

에디터 이기원(lkw@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