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테이스팅
부르고뉴 톱 와인은 언제나 진리다. 2012년 빈티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부르고뉴 본로마네 지역에 위치한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의 포도밭

부르고뉴 본로마네 지역에 위치한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의 포도밭

지난 2월 뉴욕에서 진행한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 2012 프리뷰 현장.

사진 속 인물 중 오른쪽에 있는 이가 오베르 드 빌렌이다.
2월 23일부터 28일까지 뉴욕에서는 부르고뉴 와인 행사 중 최대 규모로 손꼽히는 라 폴레(La Paulée)가 열렸다. 포도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뫼르소 지역의 축제, 라 폴레 드 뫼르소(La Paulée de Meursault)에서 유래한 것으로 미국에는 2000년에 건너왔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번갈아가며 1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일종의 ‘부르고뉴 와인 위크’. 부르고뉴의 톱 와인메이커가 직접 자신의 와인을 홍보하고 고객과 함께 테이스팅하는 자리로 각종 세미나와 이벤트, 와인메이커스 디너 등이 열린다. 필자가 이 행사를 특별히 선호하는 이유는 부르고뉴 최고급 와인의 최신 빈티지를 가장 먼저 시음하는 기회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다니엘 레스토랑에서 진행한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 2012 프리뷰에는 와이너리의 공동 소유주 오베르 드 빌렌(Aubert de Villaine)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포도밭에서 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도전의 연속’이다. 특히 2012년엔 내내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었다”라고 그는 말했지만, 어쨌든 로마네 콩티 2012는 예의 완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3월엔 매우 건조해 포도나무가 지나치게 일찍 싹을 틔웠고, 4월에는 급작스레 기온이 내려간 데다 비까지 내려 잡초와 곰팡이가 들끓으면서 포도밭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6월 말에 코트드본 지역에 불어닥친 우박과 폭우. 본로마네 지역은 거의 영향이 없었지만 몽라셰 지역은 꽤 타격을 입었다. 여름에는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며 포도송이가 뜨거운 태양에 노출돼 일부 타버리는 등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그런 이유로 수확기에 들어선 포도의 상태는 알의 크기가 매우 작고 껍질이 두꺼웠으며 수확량도 예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평소 30ℓ/ha의 수확량을 유지했으나 2012년 빈티지의 경우 20ℓ/ha에 불과하다. 비록 소출량은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온갖 변덕스러운 기후를 헤쳐나가기 위해 도멘의 모든 노하우를 동원한 결과 잘 숙성된 과일을 얻을 수 있었고, 이로써 로마네 콩티는 이름값을 해냈다. 개인적으로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 2012는 최고의 빈티지로 꼽히는 2010년 빈티지와 매우 유사한 캐릭터를 지녔지만 풍성도 면에서 2010년 빈티지에 비해 조금 모자란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천천히 숙성되면서 그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 오베르 드 빌렌은 2012년 빈티지가 1991년 빈티지와 흡사하며, 지금 즐기기에 좋을 뿐 아니라 오랜 숙성도 가능한 와인이라고 말했다. 사실 일전에 시음한 그의 이웃, 도멘 뒤 콩트 리제-벨레르(Domaine du Comte Liger-Belair)에서도 잘 빚은 2012년 빈티지 와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플래그십 와인인 라 로마네.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 바로 북쪽에 위치해 거의 동일한 성질의 포도밭을 일구고 있지만, 같은 쌀이라고 모두 밥맛이 같을 순 없듯 이곳의 오너이자 와인메이커 루이-미셸 리제-벨레르(Louis-MichelLiger-Belair)의 실력 또한 이 지역에서 최고로 쳐준다. 도멘 뒤 콩트 리제-벨레르의 라 로마네는 피노 누아의 섬세함과 우아함, 숨은 파워까지 겸비해 그야말로 출중했다. 이곳 역시 포도 수확량이 줄어 연간 3500병 내외로 만들던 것을 2840병밖에 생산하지 못한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단 1357병만 내놓은 에셰조 2012년 빈티지 역시 눈길을 끌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루이-미셸의 최고 와인으로 평가하는 2009년, 2010년 빈티지와 견줘도 좋을 만큼 퀄리티가 뛰어난 와인이다. 특히 잔에서 피어오르는 고혹적이며 화려한 향기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필자는 2013년 4월과 2014년 4월 두 번에 걸쳐 부르고뉴를 방문해 총 600여 종의 와인을 시음했고, 최근의 라 폴레 행사에서도 300여 종의 와인을 테이스팅했다. 전부 2012년 빈티지로, 결론만 이야기한다면 전반적으로 다양한 변수가 있었음에도 상당히 매력적인 와인이 탄생했다. 2012년에는 포도가 성장하는 시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추운 날씨, 지속적으로 내린 비, 우박, 곰팡이 등등. 그 결과 2003년 빈티지 이후 가장 적은 와인 생산량을 기록했지만, 품질은 최근 부르고뉴에서 생산한 와인 중 가장 뛰어난 2010년 빈티지의 스몰 버전으로 불릴 만큼 훌륭하다.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모두 좋지만 레드 와인이 좀 더 매혹적이다. 레드와인의 경우 타닌의 집중도가 아주 좋은 편이며 신선한 산미와 밸런스가 돋보였다. 2012년 빈티지는 21세기에 생산한 와인 중 최고로 인정받는 2005년, 2010년 빈티지엔 미치지 못하지만 2002년 빈티지와 견주어도 될 만큼 좋은 빈티지로 기억될 듯하다(물론 둘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장기 숙성이 가능한 컬렉터블 와인, 동시에 영할 때도 마시기 좋아 더욱 호감이 간다. 이제 한국에서도 서서히 부르고뉴 2012년 빈티지 톱 와인이 출시될 예정이니 부르고뉴 2012년 빈티지의 새로운 매력에 푹 빠져보기 바란다.
도멘 뒤 콩트 리제-벨레르 라 로마네 2012
T A S T I N G N O T E
1 Domaine de la Romanée Conti Romanée Conti 2012
실크처럼 매끄러운 질감과 조화로운 산미가 돋보인다. 부드럽게 혀를 누르는 타닌의 자극이 달콤한 피니시와 어우러지며 입안에 오래 머문다. 잔에서 피어나는 향기는 피노 누아의 화려함과 우아함, 순수함까지 표현해주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복합미를 더하며 후각을 마비시킨다.
2 Domaine de la Romanée Conti La Tâche 2012
피노 누아가 보여줄 수 있는 파워와 집중도, 그와 동시에 화려하면서 우아한 피노 누아의 매력을 아주 잘 표현한 와인이다. 묵직한 타닌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산미의 밸런스 또한 환상적. 피니시에서 느껴지는 라 타슈 특유의 미네랄 캐릭터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최소 15년 이상 숙성이 필요해 보이며 20년 뒤에 만난다면 정말 매력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줄 듯.
3 Domaine de la Romanée Conti Romanée Saint Vivant 2012
지금까지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에서 생산한 로마네 생 비방 중 가장 향이 우아한 와인이다. 은은하면서도 탐스러운 과일 캐릭터와 미묘한 오리엔탈 스파이스가 코를 자극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민트, 미네랄, 머스크 향기가 더해진다. 맛도 균형이 잘 잡혀 있고 묵직한 보디감도 일품.
4 Domaine de la Romanée Conti Échézeaux 2012
우아하면서 섬세한 피노 누아의 특징을 여실히 드러낸다. 혀에 닿는 감미로운 산미가 인상적이며 질감 또한 부드럽고 입안에 오랫동안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의 다른 와인에 비해 파워와 집중도가 약간 모자란 느낌을 주지만 가장 쉽고 빠르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에셰조의 매력이 아닐까.
5 Domaine du Comte Liger-Belair La Romanée 2012
검은 과일과 붉은 과일의 캐릭터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며 그 뒤를 이어 본로마네 포도밭 특유의 스파이시한 향과 민트, 허브, 미네랄, 머스크와 꽃 향이 은은하게 피어오른다. 부드러운 타닌, 감미로운 산미, 달콤하고 긴 여운. 2009년, 2010년 빈티지에 비해 전체적 파워나 스케일 면에서 조금 모자란 느낌을 주지만 우아함과 화려함에서는 좀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6 Domaine du Comte Liger-Belair Échézeaux 2012
최고의 바이오 다이내믹 와인에서 느껴지는 오리엔탈 스파이스를 필두로 과일, 꽃, 허브, 미네랄, 오크 향이 풍부하게 어우러져 피노누아가 표현할 수 있는 화려함의 끝을 보여준다. 실키한 질감과 매끄러운 타닌 역시 인상적이며, 타닌과 산미의 균형감도 환상적이다. 굉장히 뛰어난 집중도를 보여주며 여운도 길고 진하다. 미디엄 보디가 아닌 풀 보디 와인이었다면 지금까지 시음한 에셰조 중 최고의 와인으로 기억했을 것 같다.
4종의 2012년 빈티지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 와인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글·사진 이준혁(소믈리에, 크리스탈 와인 미주 법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