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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귀한 삶에 고하는 말

LIFESTYLE

다이아나 강 대표가 멀게만 느껴지는 땅끝마을 해남의 미황사를 찾은 이유는, 미처 돌아보지 못한 자신과 마주하는 내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힐링’이라는 단어에 집착해 억지스럽게 마음을 가장하지 않아도 그곳에선 모든 것이 자유로웠다. 달마산의 산새를 고요히 바라보고, 바람이 흘러가는 소리를 마음에 담고, 이곳 주지인 금강 스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빗장이 반쯤은 저절로 열리니까.

 

다이아나 강 대표가 <노블레스>와 올해의 시리즈 칼럼을 기획하면서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어 한 슬로 라이프 중 하나가 ‘힐링 워크’였다. 천천히 걸으면서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는 그녀는 국내외의 ‘걷기 좋은 길’ 몇 곳쯤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전 어느 겨울날, 다이아나 강 대표가 해남 미황사로 짧은 여행을 제안했다. 법정 스님이 남도 순례를 할 때마다 거르지 않고 들르며 아껴둔 곳이라 표현했다는 미황사. 해남 시내에 들어선 후에도 차로 한참을 더 들어가야 나타나지만, 긴 이동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여느 큰 사찰에 비해 화려하진 않지만 마치 산속에 펼쳐져 있는 한 폭의 단정하고 담담한 그림 같았다. 중앙에 자리한 소탈하고 정갈한 모양새의 대웅전은 뒤로 달마산의 기암을 병풍처럼 두르고 앞쪽으로는 너른 남해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절경과 어우러져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안겨준다.

겨울엔 수행 프로그램을 따로 진행하지 않아 손님이 많지 않은 탓에 우리가 묵을 방을 데우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만큼 춥고 스산했지만, 코끝에 감도는 차가운 공기가 기분 좋게 느껴졌다. 날이 어둑해지기 전 다이아나 강 대표가 꼭 다시 걷고 싶었다던 미황사 근처의 옛길로 먼저 발길을 옮겼다. 늦가을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낙엽이 길섶 가득 메우고 있어 남다른 운치가 느껴진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아도 외롭지 않고,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무거운 머릿속 짐이 반쯤은 덜어지는 것 같았다. 멀리 남해가 보이는 너덜바위까지 오른 옛길 산행은 낮고 평평한 길이 이어져 걷기에 수월했다. 대웅전 오른쪽의 요사채를 지나 자리한 부도전(스님들의 사리를 땅 속에 봉인하고 작은 비석을 세운 곳)에는 둥글거나 네모진 몸돌에 지붕돌을 얹은 부도탑들이 자리해 있는데, 빼어나게 수려하진 않아도 선사들의 명호와 함께 새긴 거북, 게, 두꺼비 등을 천진하게 찾는 재미가 정감을 더한다.

“예전에 미황사에서 7박8일 동안 ‘참사랑의 향기’라는 집중 수행 프로그램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예불과 참선으로 묵언하며 고요히 보내다 보니 복잡한 일상에 나도 모르게 작아져 있던 마음이 힐링되는 걸 느꼈어요.” 다이아나 강 대표의 말에 그 경험의 시간이 문득 궁금해졌다. 현대를 사는 누구나 힐링 라이프를 꿈꾸지만, 진정한 힐링의 순간이 가끔은 뜬구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미황사의 하루 일과에 따라 저녁 예불을 드리고 스님들의 평소 식사를 이르는 발우공양으로 저녁식사를 마쳤다. 대여섯 가지 찬은 자극적인 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은 나물과 야채뿐이었지만 하나같이 정갈하고 맛깔스러웠다. 식사 후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사찰의 밤하늘은 흐린 날씨 탓에 아쉽게도 별 하나 보이지 않고 적막하기 그지없었지만, 조급한 강박이나 복잡한 심경이 그 고요함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칠흑같이 어두운 저녁, 조금은 차분해진 상태에서 금강 스님과 차 한 잔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마치 해답을 구하는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스님이 생각하는 힐링은 어떤 것이냐고. 금강 스님은 일본을 방문한 달라이라마를 만난 후 막 절에 도착했음에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온화하면서 유쾌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긴 호흡으로, 미황사의 템플 스테이 얘기부터 꺼냈다.

“약 12년 전인 2000년, 7박8일 동안 초등학교 4~6학년 아이들이 머물면서 경험할 수 있는 ‘어린이 한문학당’을 만들었어요. 처음으로 부모와 멀리, 독립적으로 떨어진 아이들이 도시에선 접하지 못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게 했죠. 소음 하나 없는 이곳에선 아이들의 예민한 감각이 열리고 집중력이 높아져요. 스님들 말씀은 물론, 새들의 지저귐도 아주 크고 아름답게 들리죠.”

부모의 보호 아래 자기중심적으로 지내던 아이들이 낯선 친구들과 함께 잠자고 생활하고 친해지며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님을 깨달아간다. 사람뿐 아니라 어떤 모습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지, 그 자연의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초록이 주는 편안함이 어떤 것인지. 아이맥스 영화보다 생생하고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그 어떤 값비싼 물감보다 선연한 빛깔의 저녁노을을 보며 살아 있는 아름다움도 느낀다. 그들 중 누군가는 1200년의 역사를 지닌 대웅전을 보며 건축가의 꿈을 키울 수도 있고, 자연에서 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도 있다.

그러던 중 2002년 템플 스테이가 정식으로 생겼다. 월드컵 기간 중 외국인 숙박 시설이 부족해지자 조계종의 제안으로 경기장 근처 절에서 숙박하며 전통 사찰 문화도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당시 땅끝마을에 위치한 미황사는 템플 스테이가 가능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먼 곳에 있을뿐더러 한국의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절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금강 스님의 생각은 달랐다. 여행을 떠나온 외국인에게 하루면 충분히 올 수 있는 이 정도 거리는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외국인이 꼭 큰 절을 좋아하란 법도 없다고 여겼다. 아담하고 조용한 사찰에서 잠자리와 음식을 깨끗하고 정갈하게 대접받을 수 있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고, 그런 면에서 미황사는 그 어느 사찰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외신 기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팸투어 행사 이후엔 더 많은 외국인이 미황사를 찾았죠. 어떤 이는 하루나 이틀 정도 계획하고 왔다가 일주일 더 머물기도 하고, 한 달간 휴가를 보내는 이도 있었어요. 낯선 환경임에도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쉴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힐링을 위한 수행
그 후 벌써 10여 년이 흘렀고, 365일 내내 어린 학생부터 다양한 직종의 일반인, 외국인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손님이 온다고 했다. 매일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탓에 금강 스님은 자신의 생활 패턴에 맞춰 수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어려운 수행이 아니라 주지스님과 함께 밥 먹고 차 마시고 청소하고 산책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게 수행으로 이어진다. 처음 와도 모든 것이 자유롭고 익숙하다. 예전에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 금강 스님이 추구하는 미황사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 스님들의 수행 공간이기보다는 일반인 누구나 언제든 찾아와서 쉴 수 있는 곳.

이곳의 힐링 프로그램은 사실 금강 스님이 전 세계 유수의 수행 센터 를 돌아다니며 오랫동안 준비한 결과물이다.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갈 수 있도록 진정한 수행의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욕심과 번뇌를 일으키는 감정, 잘못된 판단 같은 것을 교정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에요. 2005년부터 매달 20명씩,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기본으로 한 수행 프로그램을 지난달까지 70차례나 진행했어요. 첫 번째로 몸과 마음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줍니다. 아침엔 죽, 점심엔 발우공양, 저녁에는 당근 주스 한 잔, 잠들기 전 밤 9시에 생강차 한 잔, 참선 후 아침 6시에는 이곳에서 직접 만든 효소를 먹습니다. 그리고 걸으면서 깊은 호흡을 통해 몸속의 독소를 배출하고 맑고 청량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스스로를 정화시켜요. 몸뿐 아니라 마음속의 불만과 갈등, 긴장까지 씻어버리는 거죠.”

두 번째로 ‘수식관’이라는 수행법을 통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생각, 쓸데없는 추측과 상상을 없애고 자기 의지대로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책을 읽다가도 금세 다른 곳으로 쏠려버리는 마음의 방향을 다잡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모든 일에 직관과 통찰을 발휘하는 힘을 기르도록 한다. 금강 스님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유기적 연관성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고, 지금 현재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두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어떤 판단을 할 때 타인이 어떻게 바라볼까 신경 쓰는 것, 지금 현재보다 과거의 경험이 앞서는 것은 마음 자체를 흐리게 합니다. 이를테면 5년 전에 마신 차와 지금 여기서 마시는 차가 다른데도, 굳이 비교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차의 맛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어느 산지의 새싹인지, 어느 계절에 딴 찻잎인지, 누가 재배하고 만드는지, 어떻게 끓이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과거에 마신 차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마음이 지금 이 순간이 아닌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고, 잘못된 판단에서 파생된 것들에서 생로병사가 비롯됩니다. 어느 것 하나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고, 가능성은 천 가지, 만 가지예요.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방어막을 치는 데 에너지를 쏟지 말고 가능성을 열어둬야 날마다, 만나는 상황마다 평화롭고 행복해질 수 있어요.”

“다음은 없다”고 금강 스님은 특유의 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어투로 말했다. 지금을 즐기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런 생은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오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지금의 삶을 소중하히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벽 4시, 새벽 예불을 위해 몸을 일으켜 대웅전으로 향했다. 그 시간에 함께한 우리 모두 종교를 떠나, 겨울 산사에 내려앉은 새벽의 침묵을 경험한다는 사실에 더할 수 없는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해가 뜨고,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고, 지난해의 아쉬움을 묻으며 새해를 맞이하게 되겠지만, 어느 순간이든 그저 평화롭게 즐기면 될 일이다. 그 어떤 삶에도 부의 정도나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고단함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는 번뇌를 잠시 내려놓고 싶을 때, 힐링 라이프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싶을 때 다시 한 번 미황사를 찾고 싶다. 먼 산을 치고 되돌아오는 범종 소리만으로도, 계절을 입은 산사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유로운 숨을 내쉬는 것만으로도 이번 생이 얼마나 귀한지 체감할 수 있을 테니까.

문의 |www.mihwangsa.com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사진 안지섭  컨트리뷰팅 에디터 다이아나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