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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들의 자화상

ARTNOW

예술가들의 자화상은 작품으로 표현한, 자기 자신에게 외치는 독백이자 세상을 향한 고해성사다. 피카소, 프리다 칼로, 김환기 등 동서양 대가들의 자화상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들이 왜 자화상을 탐닉했고 어떻게 그림을 해석해야 하며 작품에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얽혀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았다.

Autoportrait, 1901, 캔버스에 유채, 81x60cm, 파리 피카소 미술관 소장.

‘Autoportrait’_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
왜 자화상인가? 피카소는 생을 마감하기 1년 전인 91세까지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자신을 그릴 때 가장 솔직해진다고 고백한 피카소는 자화상을 통해 내면에 숨은 진실된 형상을 찾고 싶어 했습니다. 피카소가 남긴 자화상은 시기에 따라 표현 양식이 달라지는데, 젊은 시절에 그린 자화상은 세상에 대한 열정과 함께 자신감 넘치는 눈빛과 표정이 담겨 있는 반면 청색 시대에는 인간의 고뇌와 두려움이 어둡게 표현되어 있지요. 그러나 1918년 11월 거울 앞에서 자화상을 그리려는 순간, 그의 정신적 동지인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에 빠진 후로 더 이상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감상 포인트 코트를 입고 있는 유화 자화상은 피카소의 청색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1900년 파리로 유학 온 이듬해에 그린 이 자화상에선 이방인으로서 파리 화단에 정착하며 견뎌야 한 외로움과 가난, 고독함이 진하게 묻어납니다. 더욱이 친한 친구 카를로스의 자살 소식을 들은 터라 극도의 우울함과 슬픈 감정이 내재되어 있지요. 짙은 감색 코트 깃을 목까지 세우고 정면을 응시하며 서 있는 모습은 시크한 파리지앵을 연상시키지 않나요? 움푹 파인 창백한 얼굴 위 짙은 눈동자는 스무 살의 풋풋함 대신 성숙함이 느껴집니다. 배경을 연한 푸른색으로 처리,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어 극도의 고독감을 잘 드러냈습니다. 머리와 수염, 눈동자까지 코트와 동일하게 어두운 색으로 표현했고, 인물의 묘사를 단순하게 처리해 화면의 통일성을 추구했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나는 결코 어린아이처럼 데생한 적이 없다. 열두 살 때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렸다”라고 말한 피카소는 어려서부터 미술에 천재성을 보였습니다. 열아홉에 파리로 건너가 일생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습니다. 파리 생활을 처음 시작한 1900년, 화려함 뒤에 가려진 파리의 빈곤함을 목격하고 하층민의 비참한 삶과 고독감을 ‘청색’ 작품으로 표현했습니다. 1904년 몽마르트르 언덕에 아틀리에를 마련한 피카소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면서 화풍이 청색에서 장밋빛으로 점차 밝아졌습니다. 가난을 벗 삼고 실험과 광기로 충만한 피카소의 청색 시대는 그의 생애 가장 중요한 시기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그린 코트 입은 자화상은 파카소의 최대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 이지호(이응노미술관 관장)

Pablo Ruiz Picasso(1881~1973년)
스페인 남부 말라가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난 피카소는 14세에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에 입학해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1897년 마드리드에 있는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뒀다. 20세에 파리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으며, 1901년 시작된 청색 시대와 1904년 장밋빛 시대를 거치며 1905년 파리에서 인정받는 화가로 발돋움했다. 같은 시기 그는 당대 최고의 근대 회화 작가 브라크와 만나 입체주의 미술 양식을 창안했으며 1920년 신고전주의, 1925년 초현실주의를 접하게 된다. 1940년부터 남프랑스 해안가에서 아름다운 목가풍의 작품을 그리며 여생을 보냈다. 회화뿐 아니라 도기, 조각, 석판화 제작에도 열정을 쏟은 피카소는 총 5만여 점(유화 8000점)의 작품을 남겼으며, 대표작으로는 ‘게르니카’, ‘아비뇽의 처녀들’, ‘꿈’ 등이 있다.

The Little Deer, 1946, 목재 섬유판 위에 유채, 22.4x30cm, 개인 소장.

‘The Little Deer’_ 프리다 칼로
왜 자화상인가? 의대 지망생인 열아홉 살의 프리다는 전차와 버스가 충돌하는 대형 사고로 온몸이 부서지는 엄청난 상처를 입었습니다. 부러진 척추를 맞추기 위해 꼼짝 못하고 누워서 지내야 했죠. 어느 날 어머니가 건네준 화구를 가지고 침대에서 그림을 그리다 자연스럽게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후 프리다는 스물두 살 연상인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했지만 연이은 유산과 수술, 리베라의 끝없는 외도, 이혼, 재결합 등 매우 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듯 고통과 불행으로 점철된 그녀의 인생은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그녀에게 그림은 마치 일기와 같은 것이었지요. 프리다는 자기 삶을 그림으로 진솔하게 기록했고 특히 자화상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녀가 남긴 그림 143점 중 70점이 자화상입니다. 그녀는 자화상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소재가 나 자신이기 때문에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감상 포인트 그림을 보면 황량한 숲 속에 어린 사슴 한 마리가 홀로 서 있습니다. 사슴 몸에 화가의 얼굴을 결합하고 등에는 9개의 화살이 꽂혀 있어 상처에서 피가 흐릅니다. 저 멀리 번개 치는 하늘과 바다가 보이고, 사슴 앞에는 아직 푸른 잎이 달린 부러진 가지 하나가 놓여 있군요. 프리다는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운명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당시 프리다는 척추 접합을 위한 대수술을 받은 후였고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부러진 가지와 화살은 고통을, 꺾인 나뭇가지는 다가올 죽음을 뜻합니다. 그럼에도 작품 속 프리다의 표정이 얼마나 고요한지요. 이는 삶에 대한 굳건한 의지와 의연함을 보여줍니다. 사슴 앞에 놓인 부러진 가지에서 돋아난 푸른 잎 또한 부활에 대한 믿음을 상징합니다. 이 작품은 아픔을 이겨내려는 의지와 희망을 표현한 프리다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독창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면서 동시에 멕시코의 정체성을 작품 속에 담았습니다. 멕시코에는 인간이 동물로 변형될 수 있다고 믿는 ‘나괄리즘(nagualism)’ 사상이 존재하는데 아즈텍 문명에 의하면 인체 중 오른발을 의미하는 동물이 바로 ‘사슴’입니다. 프리다가 어린 시절 병을 앓은 후 줄곧 불편했던 신체 부위가 오른발이므로 그녀가 사슴을 그린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동물을 사랑한 프리다는 원숭이, 개, 앵무새, 물고기 등을 집에서 키웠습니다. 그림에 등장한 사슴 역시 그녀의 애완동물입니다. 이 작품에서 자신이 기르는 어린 수사슴과 자신의 얼굴을 결합했는데 사슴의 뿔과 고환은 남성을, 귀고리를 한 자신의 얼굴은 여성을 나타내 양성성을 보여줍니다. 1946년 5월 3일 프리다는 이 그림을 친구 리나와 아르카디 보이틀러 부부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습니다. 김보라(미술평론가)

Frida Kahlo(1907~1954년)
1907년 7월 6일 독일계 유대인 사진작가와 멕시코 원주민 어머니 사이에서 네 딸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고, 19세에 전차 사고로 평생 30여 번의 수술을 받았다. 22세에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했지만 남편의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개인의 삶을 반영한 그림으로 1930년대 말부터 주목받기 시작해 멕시코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로 활동했고, 1954년 7월 13일 4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대표작으로 ‘2명의 프리다’, ‘나의 탄생’, ‘머리를 자른 프리다의 자화상’ 등이 있으며 ‘뿌리 혹은 거친 땅’은 2006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중남미 예술 작품 중 최고가인 560만 달러에 팔렸다.

1 자화상, 1930년대, 캔버스에 유채, 27x22cm, 환기미술관 소장.
2 편지 그림, 1955, 종이에 펜, 환기미술관 소장.

‘자화상’ & ‘편지 그림’_ 김환기
왜 자화상인가? 산, 달, 강 등 자연을 소재로 서정성 깊은 작품을 선보여온 김환기가 자화상을 그렸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삶의 본질을 찾기 위해 자화상을 탐닉한 김환기는 청년기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유화, 편지 그림, 드로잉 등 다양한 형태의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김환기에게 자화상은 자기 발견을 위한 시도이며 ‘자기 확인’과 ‘내적 분출’의 의식입니다. 산, 달, 사슴, 학 등 한국적 소재와 리드미컬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편지 그림 속 자화상은 그가 추구하는 서정성과도 일맥상통하죠.
감상 포인트 1930년대 앳된 모습의 청년 김환기의 자화상에선 몽상적인 표정과 예술가의 감수성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살짝 치켜뜬 눈썹과 사색에 잠긴 듯한 몽롱한 눈빛이 강한 대비를 이룹니다. 간결하게 표현한 코와 굳게 다문 단아한 입술에선 청년의 순결함마저 느껴집니다. 바다 물결같이 풍성하게 부푼 머리카락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닮아 에너지 넘치고 자유로워 보입니다. 디테일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순한 색으로 처리한 묘사는 원숙기의 작품 세계를 연상시키기도 하고요. 또한 1955년 부인 김향안(본명 변동림)에게 보낸 ‘편지 그림’ 속 자화상은 각별한 부부애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정한 포즈로 서 있는 부부의 모습과 함께 산, 달 등 구상적인 소재를 귀엽고 앙증맞게 표현했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김환기는 젊어서부터 해외 미술을 궁금해했고 그곳에서 자신의 작품 수준을 가늠해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눈치챈 김향안 여사는 망설임 없이 “그럼 예술의 중심으로 가봅시다”라고 제안했고, 미술계에 대한 정보와 거주할 곳을 찾기 위해 남편을 두고 먼저 파리로 떠났습니다. 파리에 있는 부인을 그리며 김환기가 보낸 편지가 바로 두 사람의 모습을 담은 드로잉입니다. 집 정원의 과일나무, 꽃 등의 소식을 전하며 하루라도 빨리 파리에 가고 싶은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사실 김환기는 그림은 물론 글 쓰는 능력까지 갖춰 수십 편의 시와 수백 편의 글을 남겼습니다. 문인인 부인 김향안은 김환기의 첫인상을 ‘편지를 잘 쓰는 키다리 시골뜨기’라고 기억할 만큼 그의 재치 넘치는 편지 그림에 반했답니다. 1940년대 초반 화가와 문인으로 만난 두 사람은 예술적 동료이자 삶의 반려자로서 세인의 부러움을 샀지요. 이들의 애틋한 연애사는 편지 그림 속 드로잉에서도 한눈에 드러납니다. 박미정(환기미술관 관장)

Kim Whan Ki(1913~1974년)
한국 현대 추상회화의 선구자 김환기는 남도 끝자락, 신안군 안좌도에서 태어났다. 15세에 서울 중동학교로 유학을 갔으나 곧 그만두고 본격적인 예술 수업을 받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쿄 니시키 시 중학교를 거쳐 니혼 대학교 예술학부를 졸업, 1944년 부인 김향안과 결혼했다. 1930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자연,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와 목가구 등 골동품과 민예품에서 우리 옛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작품으로 표현했다. 1940~1960년대에는 예술가, 미술 행정가, 교육가 등으로 한국 미술계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1956년부터 1959년까지 현대미술의 메카 파리에서 시정신(詩精神)을 구현하기 위해 작업에 매진했다. 이후 1963년부터 1974년 작고할 때까지 활동한 뉴욕에서 김환기 예술 세계의 정점을 찍었다.

에디터 심민아
이지호(이응노미술관 관장), 김보라(미술평론가), 박미정(환기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