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후 불어닥친 아트 프로젝트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32만여 명의 일본인이 자신의 고향과 집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한다. 피해 지역 사람들의 마음속 상처를 보듬어주기 위해 예술과 기업이 발벗고 나섰다.
2011년 5월 미야기 현 나토리 시의 유리아게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사진 복구 작업 중인 후지필름 프로젝트팀.
2011년 3월 11일 일본 열도를 뒤흔든 동일본 대지진이 2주기를 맞았다. 피해 지역민에게 보조금과 후원금 등 물질적 지원은 이뤄지고 있지만,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쓰나미의 흉터는 아직 선명하다. 이들의 상처를 외면할 수 없는 예술가와 기업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진심으로 고민했다. ‘피해 지역의 복구를 돕기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예술은 어떻게 사회에 공헌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은 일본 내에서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로 결실을 맺었다.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사진을 복원해주는가 하면, 놀이 공간이 없어 방황하는 미야기 현의 이시노마키 어린이들에게 미술 활동을 지원하고, 지진의 폐해를 낱낱이 보여주기 위한 전시가 도쿄를 포함한 일본 전 지역에서 열린다. 쓰나미가 할퀴고 간 자리에는 새살이 돋듯 새 희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피해 복구를 위한 예술가와 기업의 피나는 노력과 열정이 일본 열도를 감동시키고 있다.
소중한 추억을 복원하다, 후지필름 재팬-사진 구조 프로젝트
후지필름사(社)는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손상된 사진을 복원해주기 위해 사내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사진 구조 프로젝트’ 팀을 꾸렸다. 대지진 후 10일이 지났을 즈음, 후지필름의 고객센터로 한 통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쓰나미로 손상된 사진을 깨끗이 복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시 TV와 신문 등 각종 매체에서는 피해 지역에 널브러져 있는 주인 잃은 사진과 그 사진을 주워 담고 있는 봉사자들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후지필름사 내부에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의견이 모였고 직원들은 바닷물로 더럽혀진 사진을 깨끗하게 세척할 방법을 찾았다. 지금까지 1500여 명의 후지필름 직원이 이 프로젝트에 참가해 80여 곳의 피해 지역을 돌며 약 17만 장의 사진을 세정 및 복원해왔다. 하지만 바닷물에 부식된 사진의 훼손 정도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지금은 가나가와(神奈川) 현에 있는 공장에서 전문가들의 손길로 세밀한 복원 작업을 펼치고 있다. 쓰나미로 가족을 잃은 한 피해 지역민은 사진 한 장을 손에 쥐며 이렇게 말했다. “쓰나미로 모든 것이 사라졌고 나의 소중한 사람들도 휩쓸려갔습니다. 내게 남은 한 장의 사진이 살아갈 힘이 됩니다.”
1 고베에서 열린 와와 프로젝트. 엔도 이치로 작가의 ‘무지개’.
2 라이브 페인팅을 준비하고 있는 엔도 이치로 작가. 3 각 프로젝트 리더들의 인터뷰 영상을 상영한다.
도시 재건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 ‘와와 프로젝트’
대지진 당시 통신수단마저 끊긴 피해 지역에 점조직처럼 아트 프로젝트 팀이 생겨났다. 사단법인 비영리 예술 단체 ‘커맨드엔(CommandN)’은 그 많은 프로젝트 팀을 서로 연결해주고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2011년 6월 ‘와와 프로젝트(WAWA Project)’를 결성했다.
와와 프로젝트는 피해 지역 출신 예술가와 시민운동가로 구성, 자신의 고향을 떠나지 않고 신문과 웹사이트를 통해 모금 활동을 벌이며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쓰나미로 인해 휘어진 간판과 전봇대, 소화기를 모아 박물관을 만들거나 대대로 이어온 양조장을 재건하고, 고등학교 미술 선생과 학생들이 함께 예쁜 문패를 만드는 등 도시를 살리기 위한 톡톡 튀는 예술 활동이 눈에 띈다. 특히 그들은 피해가 큰 미야기(宮城) 현, 이와테(岩手) 현, 후쿠시마(福島) 현에 프로젝트 디렉터를 두어 그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외부에 알리고 있다. 현재 20여 개의 프로젝트가 와와 프로젝트와 연계해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이어 지난해 서울에도 상륙, 아트선재에서 <동일본 지진 피해 복구 지원 프로젝트-서울전>을 열기도 했다. ‘만드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타이틀로 선보인 이 전시는 서울과 도쿄, 타이베이, 아시아 3개국 수도에서 동시에 개최해 지진 피해 상황과 복구 과정을 이웃 나라에 적극 알렸다. 이들은 지난 1월 한신 대지진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고베(神戶)에서 전시를 개최한 데 이어 3월 도쿄 3331 Arts Chiyoda에서 전시를 선보이며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1, 2 불꽃놀이를 이용한 드로잉 워크숍을 통해 이시노마키 아이들이 예술을 놀이처럼 즐기고 있다.
3, 4 쓰나미 피해가 두 번째로 큰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 2년 전 제1회 드로잉 워크숍을 개최, 어린이들의 미술 활동을 돕고 있다.
그림 그리는 어린이, ‘이시노마키 드로잉 프로젝트’
대지진 후 본국으로 돌아간 많은 예술가와 달리, 피해 지역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닌 영국의 한 아티스트가 있다. 어린이 아트 워크숍 기획자이자 미술 작가인 제이미 험프리스(Jamie Humphreys)다. 놀이 공간이 없어 떠도는 이시노마키의 어린이들을 보자 마음이 아팠고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바쳐 그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찾아주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샘솟았다. 그는 도쿄로 돌아가 일본 나카노 현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가네바코 준이치와 함께 장기 아트 프로젝트 ‘이시노마키 드로잉 프로젝트(Ishinomaki Drawing Project)’를 펼쳤다. 쓰나미가 덮쳐 초토화된 놀이 공간을 복구하고 다양한 미술 활동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했다. 특히 아이들이 직접 만든 작품들은 큰 호응을 얻었다. 불꽃놀이를 이용한 드로잉 워크숍, 박수를 치면 발광하는 ‘Clap Light 드로잉 워크숍’, 눈밭에서 즐기는 드로잉 워크숍 등 그간 보여준 다채로운 워크숍의 결과물은 2013년 6월부터 도쿄를 포함한 일본 전 지역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에디터 심민아
글 윤병우(아트디렉터 & 그래픽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