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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기술

LIFESTYLE

밀레는 매번 혁신적 가전으로 우릴 놀라게 한다.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베를린에서 최초로 공개한 신개념 오븐도 그렇다. 오븐이 음식과 대화한다는 독특한 발상부터 흥미롭다.

밀레 다이얼로그 오븐.

어릴 적 주방에는 큰 오븐이 있었다. 가스레인지와 오븐을 결합한 가스오븐레인지였다. 레버를 누르면 아래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며 내부를 뜨겁게 달구었다. 엄마는 가끔 오븐을 이용해 빵이나 쿠키를 구웠지만 상단에 자리한 가스레인지만큼 자주 쓰진 않았다. 지금처럼 다양한 요리 레시피를 접하기 어려웠고, 음식을 데우는 용도로 사용하기엔 오래 예열해야 하는 오븐보다 간편한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오븐은 주목받지 못한 채 유휴 시간만 길어졌다.
하지만 요즘 오븐은 다르다. 서구 식문화에 익숙해지고 집에서 다양한 요리를 해 먹는 홈 다이닝 문화가 자리 잡으며 자연스레 오븐의 활용도가 높아졌다. 먹다 남은 피자나 떡을 데울 때도 오븐을 켠다. 콤팩트한 사이즈에 사용하기 편한 제품도 많아졌다. 전기오븐을 기반으로 한 광파오븐, 스팀오븐 등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었으며, 베이킹과 로스팅은 기본이고 찜이나 튀김 등 새로운 기능을 더해 요리를 즐기는 이에게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지난 8월 29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볼레(Bolle) 이벤트 홀에선 이러한 식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밀레의 신개념 오븐을 소개하는 행사가 열렸다. 매해 열리는 가전 박람회 IFA 2017을 앞두고 전 세계 기자를 초청해 밀레의 신기술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프리미엄 생활 가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밀레가 ‘최초’의 기록 행진을 이어온 혁신적 기업이란 사실을 알 것이다. 1899년 창립한 밀레는 최초의 전기 세탁기(1901년), 최초의 전기 식기세척기(1929년), 최초의 완전 자동 세탁기(1956년), 최초의 세라믹 전자레인지(1971년) 등을 발표하며 가전 시장에서 꾸준히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1 빔프로젝트를 활용해 테이블 위에 제품 이름을 투영했다.   2 밀랍으로 감싸 조리한 송아지 고기 요리.   3 다이얼로그 오븐의 위력을 보여주는 이벤트 현장.

이들은 이번 행사가 브랜드 역사상 글로벌 기자를 한데 모이게 한 최초의 자리임을 강조했다. 그만큼 새롭게 공개할 제품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 행사장 중앙에 위치한 무대 양옆으로 6개의 큰 테이블이 자리한 걸 보고, 쿠킹 라이브 쇼가 열릴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보통 테이블 위에 네임 태그를 올려 좌석을 배치하는데, 밀레는 독특하게 빔프로젝터를 활용해 테이블 위에 이름을 투영했다. 실험적인 레스토랑에 온 듯 묘한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 앉자 테이블 옆으로 자리한 오븐이 눈에 들어왔다. 겉보기엔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빌트인 오븐과 같은 모습. 사회자가 신제품 다이얼로그 오븐이라고 소개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불현듯 몇 해 전 한 인터뷰에서 마르쿠스 밀레 회장이 밝힌 디자인 철학이 떠올랐다. “우리는 견고한 제품을 생산하는 동시에 유행을 타지 않는 모던한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패셔너블한 디자인은 금세 질리기 때문에 밀레와 성격이 맞지 않죠. 15년 후에도 멋지게 보여야 밀레 제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밀레답게 분명 외모보다 내실을 다졌을 거란 기대가 샘솟을 무렵 셰프가 등장해 이 오븐의 진가를 보여주겠다며 요리를 시작했다. 먼저 얼음 상자가 조리대 위로 올랐다. 그 안에 대구 살을 넣고 뚜껑을 닫은 후 얼음 상자를 통째로 오븐 안에 밀어 넣었다. ‘뜨거운 오븐 안에 얼음을 넣는다고?’ 행사장이 술렁였다. 의심의 눈초리를 뒤로하고 셰프는 디스플레이를 조작해 온도는 30℃, 시간은 8분으로 맞추었다. 잠시 후 오븐 문을 열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얼음 상자는 전혀 녹지 않고 안에 들어 있던 대구만 촉촉하고 부드럽게 익었다! 실제로 온도를 측정하니 대구는 57℃, 얼음은 -8℃를 유지하고 있었다. 왜 똑같이 열을 가했는데 얼음 속 대구만 선별적으로 익었을까? 궁금증은 더욱 증폭했지만 눈앞에선 흥미진진한 요리 시연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알루미늄 포일로 반만 가린 연어, 밀랍(비즈왁스)으로 감싼 송아지 고기가 다음 타자. 이 둘 역시 오븐의 마법 같은 힘을 받았다. 연어는 포일로 가리지 않은 부분만 익었고, 밀랍은 전혀 녹지 않은 채 송아지 고기만 부드럽게 조리되었다.

채소와 고기 등 전혀 다른 식자재를 한데 넣어 같은 시간 익힐 수 있다.

몇 가지 요리 시연을 통해 다이얼로그 오븐은 타깃을 인지하고 열을 가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 비법은 다이얼로그 오븐의 핵심 기술인 ‘M 셰프’에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전자기파를 사용해 음식을 조리하는 기술. 물론 전자레인지, 광파오븐 등도 전자기파를 활용한다. 이들은 높은 세기의 전자기파를 일방적으로 음식물에 투과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세기를 조절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반면 다이얼로그 오븐은 전자기파가 음식물에 지능적으로 반응하는 기술을 사용한다. “먼저 주파수 영역대가 낮은 전자기파를 음식물로 보내 조리 대상의 온도와 수분, 에너지 양을 측정합니다. 그 정보를 내부에 위치한 안테나를 통해 오븐이 다시 수신하는 거죠. 음식물의 상태를 파악하면 다이얼로그 오븐은 그에 맞는 전자기파의 강도와 범위를 스스로 조절합니다.” 마르쿠스 밀레 회장이 설명했다. 덧붙여 이렇게 전자기파가 음식의 상태를 파악하는 과정을 ‘대화’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그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긴 어려워도 눈으로 확인한 오븐의 활약은 분명 조리의 혁명을 가져올 것 같았다. 오븐 속 대화를 통해 고기는 육즙을 잃지 않고 균일하게 조리되고, 생선이나 채소의 조직을 파괴하지 않으며 빵은 표면이 갈색으로 변하거나 딱딱해지지 않고 훨씬 잘 부풀어 올랐다. 또 전혀 다른 식자재를 한데 넣어 같은 시간 익혀도 식자재 본연의 질감을 살려 조리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심지어 이 모든 요리는 기존 방법보다 70%까지 시간을 단축시켰다.

4 다이얼로그 오븐에서 얼음 상자를 꺼내는 모습.   5 전자기파를 사용해 음식을 조리하는 다이얼로그 오븐.

사실 밀레의 힘은 이런 혁신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혁신의 비결은 한눈 팔지 않고 가전에만 집중하는 고집에 있다. 밀레는 1910년에 잠시 자동차를 만들기도 했지만 기술과 지식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금세 사업을 접었다.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사업 확장이나 다각화를 꾀하지 않고 오직 가전제품 연구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렇게 한 우물만 팠기 때문에 이번 행사처럼 앞선 기술력을 선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IFA 2017에서 밀레는 오븐을 비롯한 드럼세탁기, 의류 건조기 등 생활 가전에 적용한 스마트 홈 애플리케이션 ‘밀레@모바일앱’도 공개했다. 이 앱에는 1100여 가지 조리법과 120여 가지 요리 영상이 있어 사용자가 쉽게 레시피를 검색할 수 있다. 앱에 있는 레시피 목록을 다이얼로그 오븐으로 전송하면 오븐이 알아서 그에 맞는 조리 설정을 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훨씬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다. 조리 시간은 단축시키고 에너지 효율은 높인 오븐. 셰프가 정교하게 조리한 듯한 수준 높은 요리를 집에서도 쉽게 완성하는 오븐. 이만하면 밀레가 강조하는 쿠킹 앳 홈(Cooking at Home)의 실현이 가능한 오븐이 아닐는지. 누구나 셰프로 만들어주는 다이얼로그 오븐은 내년 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먼저 만날 수 있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사진 제공 밀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