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지레 포이에를레
햇살 좋은 가을,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베를린의 포이에를레 컬렉션(The Feuerle Collection)은 입구를 찾기 힘들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눈앞에 서 있는 커다란 콘크리트 건물의 존재감에 눌려 정갈한 모양의 인터폰도, 컬렉션 현판도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이런 느낌은 전화를 받고 나온 컬렉션 매니저와 함께 거대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의 전시장 입구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됐다. 관람객은 보이지 않았고, 안전을 위해 설치한 최소한의 조명 또한 어둑했으며, 거의 비어 있는 넓은 공간에 나와 컬렉션 매니저의 발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잠시 뒤 컬렉션 매니저는 “지금부터는 사진을 찍는 게 일절 금지되며, 가능하면 휴대폰도 물품 보관함에 넣어두거나 꺼주시면 좋겠다”고 짧게 말했다. 전시장을 둘러보는 동안 컬렉션과 대화하며 고요히 침잠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애니시 커푸어의 조각 ‘Torus’ 앞에 선 데지레 포이에를레.
런던과 뉴욕 소더비에서 미술품 경매업을 하고 쾰른에 갤러리를 열어 크게 성공한 독일 출신 컬렉터 데지레 포이에를레. 그의 동남아시아 아트 컬렉션과 기원전 200년부터 18세기를 아우르는 중국 한나라와 청나라 시대의 가구와 고미술 작품을 포함한 ‘포이에를레 컬렉션’은 2016년 4월 베를린에 문을 연 프라이빗 뮤지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통신 벙커로 쓰이던 건물을 영국 출신 건축가 존 포슨(John Pawson)이 개조한 이곳은 데지레 포이에를레가 수집한 수천 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다양한 문화권의 작품을 전시하며 알려졌다. 이곳에 가려면 사전에 공식 웹을 통한 예약이 필수다. 그렇게 방문한 이에겐 스태프들이 관람 규칙을 고지하고, 그들의 안내로 2개 층에 걸쳐 이어지는 너른 전시 공간을 만나게 된다. 나는 작품을 밝히는 최소한의 조명 빛을 따라 전시장 내 첫 번째 방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빛이 사라졌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나의 전시 가이드를 자청한 오너 데지레 포이에를레가 어둠 속 어디에선가 말했다. “존 케이지의 ‘Music for Piano #20’(1953)예요.” 2~3분 동안, 아니 어쩌면 그보다 길거나 짧은 시간 동안 암흑 속에 있는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어떤 이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1952년 뉴욕 우드스톡에서 존 케이지가 처음으로 퍼포먼스를 했던 순간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오래전 존 케이지가 하버드 대학교 무음실에서 느낀 것처럼, 신경계 혹은 혈관의 피가 도는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시간, 어둠 속에서 어떤 소리보다는 빛이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제 오른쪽으로 천천히 걸어보세요”라는 목소리를 듣고 그 방을 벗어났을 때, 밝은 빛 속에서 작은 불상 하나를 마주했다. 그리고 이어진 데지레 포이에를레와의 인터뷰는 사진기와 녹음기도 없이 조심스레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사이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선문답처럼 이어졌다.

16세기 중국 명나라 시대에 사용한 석회암 벤치와 포이에를레 컬렉션 내부.
방금 제가 경험한 것이 이곳 포이에를레 컬렉션을 방문한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존 케이지의 ‘Music for Piano #20’ 이후에 본 불상은 뭔가 의미하는 게 있을 것 같아요. 캄보디아의 크메르 불상입니다. 언제 만든 건지 알고 싶다면 나중에 사무실에 가서 알려줄게요.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이 공간에서 이 작품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죠.
잘 짜인 동선을 따라 전시장을 걷는 느낌입니다. 조명도 그렇고, 작품 배치도 그래요. 동양의 불상과 중국에서 온 듯한 가구 그리고 저쯤에 보이는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 작품도 인상적이에요. 다른 시대(시간)와 다른 문화(공간)에서 온 예술품을 병치(Juxtaposing of Art)하는 컨셉입니다. 저편의 가구는 중국 한나라부터 청나라 시대에 황실에서 사용한 것이죠. 오래전 베이징과 뉴욕 등 세계 여러 도시에서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아라키 노부요시의 작품은 모두 제가 아끼는 겁니다. (잠시 생각에 잠기며) 사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별 의미 없을 거예요. 누군가는 작품 앞에서 기도를 하거나 종교적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죠. 오래전 추억을 떠올리거나, 아니면 앞으로 이런 작품을 보러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을 테고요.
인터뷰는 이어지다 끊어지길 반복했다. 노트도, 녹음기도, 스마트폰도 없이 들어온 공간에서 준비한 질문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만나는 작품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애니시 커푸어의 조각 작품 옆엔 중국의 옛 성을 받치던 주춧돌이 있었다. 그리고 애덤 퍼스의 작품 ‘From the Series ‘My Ghost’’를 배경으로 17세기 청나라 초기에 만든 커다란 사이드 테이블이 놓여 있는가 하면, 검은 칠과 금으로 용 문양을 그린 16~17세기 것으로 보이는 중국 책장 2점이 나란히 전시돼 있기도 했다.
이건 쩡판즈의 조각 ‘Untitled’(2009년)네요. 쉽게 볼 수 없는 작품인데. 제가 이곳에 설치한 뒤 쩡판즈가 작품을 직접 보러 왔죠. 그는 이 공간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어요. 쩡판즈는 페인팅으로 유명하지만, 조각 작품도 훌륭합니다. 자주 만들진 않지만요. 사실 쩡판즈뿐 아니라 그간 많은 작가가 이 공간을 좋아했죠. 저는 이 공간에 작품을 설치할 때 작품의 정수뿐 아니라, 이 공간에 전시함으로써 비로소 발견되는 어떤 새로운 걸 찾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런 얘길 작가들과도 깊이 있게 하는 편이고요. 그게 제 컬렉션의 철학이죠.
새로운 경험, 그러니까 관람객이 전시된 작품을 보는 것 자체를 새로운 경험으로 이끌고자 하시는 거죠? 세상엔 감동적인 것이 아주 많습니다. 그걸 감상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죠. 그 방법을 찾는 과정이 제겐 매우 중요해요. 조명의 조도와 좌대의 사이즈, 공간 속에 좌대가 놓인 각도 그리고 벽과 작품 사이의 거리까지 제가 모든 것에 직접 관여해 고민합니다. 저를 ‘완벽주의자’라고 불러도 좋아요. 실은 작가들도 작품을 대할 땐 완벽주의자가 되거든요.
컬렉션 자체 그리고 이 전시 공간이 당신 자신인 건가요? 제 컬렉션을 전시하는 건 곧 내가 나 자신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특히 조각 작품 전시는 조명에 따라 느낌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조명의 앵글과 완벽한 자리를 찾는 건 작품을 전시할 때 아주 중요한 지점이죠.
말씀을 듣고 보니 마치 이 공간이 연극 무대 같네요. 지난 30년간 해온 일이니까요. 오래전 아트 딜러였을 때 이브 클랭, 요제프 보이스, 게오르크 바젤리츠, 브라이스 마던의 작품을 고딕과 바로크 가구들과 전시했죠. 요샌 그런 스타일의 전시가 많지만 제가 처음 시도한 거고, 제 갤러리도 그 덕에 유명해졌어요. 이런 전시는 장식적으로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공간과 문화를 넘어 현대미술 그리고 고전과 앤티크 작품의 정수를 끄집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스페인 출신 설치미술가 크리스티나 이글레시아스(Cristina Iglesias)의 ‘Pozo XII (Desde Dentro)’. 2 지난 가을부터 시작된 전시
여러 작품 사이에서 속삭이듯 시작된 인터뷰는 컬렉션 1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다시 이어졌다.
다른 시대와 다른 문화에서 온 작품을 병치하는 전시는 언제부터 그리고 왜 시작하셨나요? 만약 소장품이 다양한 시대를 넘나든다면, 작품 간의 다이얼로그가 중요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다양한 시대와 문화권의 작품을 수집한 지금의 제겐 이런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 아닙니다. 옛것인지 현대미술인지도 중요하지 않죠. 작품을 감상할 때 전 그저 작품 자체를 봅니다. 그리고 그걸 가지고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하죠. 이전에 몇몇 갤러리를 거쳐 런던과 뉴욕 소더비에서 일할 때 전 현대미술만 다뤘습니다. 지그마어 폴케, 게오르크 바젤리츠,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을 컨설팅하고 수집했죠. 그때 키펜베르거의 작품도 수집한 것 같아요. 당시 키펜베르거의 작품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거든요. 그러다 쾰른에 갤러리를 열고선 다시 제 전시 방식을 시도했죠. 이브 클랭과 요제프 부오이, 게오르크 바젤리츠, 브라이스 마던의 작품과 피에타상 그리고 바티칸에 걸려있었던 16세기의 희귀한 태피스트리 한 점을 같이 전시했어요. 그게 마침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많은 걸 할 수 있었습니다.
왜 뉴욕과 런던에서 일하다 쾰른으로 가셨나요? 당시는 모두 쾰른에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길버트 & 조지와 골동품 시계를 전시하거나 애니시 커푸어의 작품을 수백 년 전 타이 북동부에서 발견한 그릇과 전시했고, 리처드 디컨의 작품을 16~19세기 당시의 은으로 만든 커피 포트와 함께 전시했죠. 또 로제마리 트로켈과 과학 실험 기구 전시를 기획했고, 폰타나와 만초니의 작품은 파리의 에티엔 아브릴 작품과 함께 걸었어요. 성 아우그스티누스, 에라스무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초판본과 예술 작품을 같이 걸기도 했고, 에두아르도 칠리다의 작품은 중국 명나라와 송나라 시대의 쿠션과 함께 전시했죠.

제2차 세계대전 당신 통신 벙커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한 포이에를레 컬렉션 외관.
그렇군요. 당시의 전시가 이어져 지금의 컬렉션에 이른 거군요? 그땐 상당한 집중력을 발휘해 컬렉팅했습니다. 하지만 소문내진 않았죠. 시끌벅적하게 컬렉팅 하는 건 질색이거든요. 아무튼 그 후 중국의 황실가구 전시를 바르셀로나의 프라이빗 뮤지엄과 산탄데르 은행을 창립한 보틴가의 재단을 위해 열었죠. 그러고 나서 제 컬렉션을 가지고 뮤지엄을 열기로 결심했고요.
작품 선택의 기준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시간을 초월하는 작품성을 가졌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작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느냐, 그리고 그 작품이 내게 얼마나 ‘특별한가’입니다.
‘컬렉션’이란 행위는 아무래도 개인적이기 마련이죠. 그렇죠. 하지만 관람객이 원하면 전시작의 정보를 제공하긴 합니다. 물론 끝까지 작품의 제목이나 역사를 알고자 하지 않는 관람객도 있어요. 그저 이곳을 방문해 명상하거나 분위기에 침잠하는 거죠. 어떤 이들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느끼지 못한 걸 이곳에서 경험하는 데 의의를 두기도 합니다. 여길 궁금해하는 이가 아주 많아요.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소장품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게 가장 중요한 건 단순히 관람객을 초대해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그것으로부터 ‘에너지’를 느끼는 거죠.

3 포이에를레 컬렉션 내부. 10~13세기 중국 한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불상들이 보인다. 4 쩡판즈의 조각 ‘Untitled’.
어쨌든 지금도 현대미술 작품만 컬렉션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뮤지엄이 베를린에 있기 때문이죠. 베를린이란 도시에서 수집한 옛것을 전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옛것이라 해서 좀 그렇습니다만, 사실 그중엔 고작 200년밖에 되지 않은 것도 있어요. 그래서 그걸 보고 놀라는 이도 있고, 도리어 너무 ‘현대적’으로 보인다며 놀라는 이도 있습니다.
어떻게 지금의 공간을 베를린에 오픈하시게 되었죠? 베를린에 이 공간을 열기까지 사실 지난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스탄불과 런던, 중국, 스위스 그리고 스페인의 한 암벽 위 버려진 수도원까지 고려했죠. 그런 곳에 몇 작품이나 전시할 수 있는진 중요하지 않았지만, 어디에 전시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다 베를린을 택했어요. 베를린은 러프하지만 젊은 도시죠. 베를린과 우아하고 섬세한 제 컬렉션이 대비를 이룰 수 있길 바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통신 벙커로 쓰인 이 공간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처음 여기에 왔을 때 그저 흔한 벙커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중요한 역사적 장소로서 ‘캐릭터’가 있는 건물이었죠. 지금은 한 층 전체가 트인 거대한 공간이지만 아마 150개쯤 되는 방을 이곳에 만들 수도 있을 거예요. 그게 좋았어요. 그리고 건축가 존 포슨이 이곳을 새롭게 정비하기 위해 정말 애를 많이 썼죠. 건축가로서 흔치 않은 프로젝트였을 거예요. 그래서 서로 원하는 것에 대해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며 아주 미니멀하게 레노베이션을 했죠. 존 포슨은 제가 원하는 아이디어를 정말 정확히 구현해냈습니다.
조금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대영박물관이 문 닫기 30분 전에 입장해본 적이 있나요? 전 가끔 갑니다. 거기엔 정말 많은 유물이 있잖아요. 그걸 다 보겠다고 욕심부리기보다는 몇 작품만이라도 오래 들여다보기 위해서죠. 이 공간에서도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예전에 뉴욕에서 일할 때 저도 그랬어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주말마다 가서 서너 작품을 오랜 시간 들여다보곤 했죠. 그리고 센트럴 파크를 가로질러 모마에서도 같은 행위를 반복했습니다. 현대미술이든 고전미술이든 그 작품의 퀄리티를 보는 스킬을 그때 습득한 것 같아요. 작가들의 작업실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사이즈일지라도 간혹 엄청난 작품이 있죠. 그런 걸 발견하는 게 제 컬렉션의 기준이 되었고요.
다음엔 여기서 어떤 전시가 열리죠? 아까 전시장 안의 새 공간을 보셨나요? 짓는 데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가을에 오픈하는 ‘향’ 전시〈incense ceremony〉를 위해 만들었죠(전시 날짜와 예약 관련 정보는 이들의 공식 웹에서만 주고받을 수 있다). 타이완에서 향 마스터를 초대해 여는, 5년쯤 공들인 프로젝트예요. ‘향’을 전시에 담아내기 위해 업계 최고의 기술자들을 불러 공간을 만들었죠. 물론 이것 말고도 많은 계획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해내려면 시간이 필요하죠.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세요?
저처럼 프라이빗 뮤지엄을 만들려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어요. 특별한 세상이 펼쳐지고, 그것이 관람객들의 감동으로 이어지는 그런 뮤지엄을 만드는 데에 힘이 되고 싶어요.

애덤 퍼스의 ‘From the Series ‘My Ghost’’.
Adam Fuss
‘구성’에 중점을 두고 독특한 주제로 작업하는 영국 출신 사진작가 애덤 퍼스. 1961년생으로 20대 초반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으며, 20대 중반부터 뉴욕의 주요 갤러리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빛과 뱀, 아기, 해바라기, 인간의 두개골 등을 묘사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고, 특히 물방울을 표현한 ‘Ark’ 시리즈가 유명하다. 뉴욕 모마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5 15세기 후반, 명나라 초기에 사용한 옻칠한 테이블과 금박 입힌 화병에 담긴 부채(왼쪽), 벌레를 쫓는 용도로 쓰는 잉꼬털 불자(拂子)(오른쪽). 6 제임스 리 바이어스의 ‘Untitled’. 그의 작품 뒤로 아라키 노부요시의 ‘Erotos’가 보인다.
James Lee Byars
예술과 철학, 심리학을 공부한 경험을 살려 설치미술과 퍼포먼스, 조각 작품 등을 발표해온 미국 출신 작가 제임스 리 바이어스. 특히 관람객을 행위의 주체로 끌어들이는 퍼포먼스와 대형 설치 작품으로 유명하다.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는 물론 미국과 스위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전시와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2010년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조각 ‘최초로 완전히 의문스러운 철학의 형상’을 소개했다.

7 애니시 커푸어의 ‘Torus’. 8 운모석으로 만든 접시와 침향목 가루. 향 전시〈incense ceremony〉를 위한 설치물이다.
Anish Kapoor
인도 태생의 영국 조각가 애니시 커푸어. 1980년대에 리처드 디컨, 빌 우드로 등과 함께 ‘Young British Sculptors’로 불리며 주목받았다.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영국 대표로 참가했고, 1991년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상 ‘터너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도 삼성미술관 리움과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현재 세계에서 작품 가격이 가장 비싼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른 시대와 다른 문화에서 온 작품을 함께 병치하는 데지레 포이에를레의 작품 전시 방법. 16세기 중국 명나라 시대에 사용한 노송나무 테이블 뒤로 일본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의 ‘Erotos’가 보인다.
Nobuyoshi Araki
사람과 도시 등 주변의 모습을 담는 꾸준한 사진 작업을 통해 순수예술의 영역을 확장시킨 일본의 대표 작가 아라키 노부요시. 특히 그의 ‘에로티시즘’은 인간에게 내재된 성적 욕구를 독창적 시각으로 해석한 것으로, 말초신경의 자극을 넘어 미의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여자와 꽃, 음식, 도시, 하늘 등을 특유의 시각으로 포착한 그의 사진 작품에선 선정적이고 퇴폐적이면서도 애절하고 흐느끼는 듯한 센티멘털리즘을 엿볼 수 있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글 크리스틴 박(크리스틴 박 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