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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예술적 숨결을

ARTNOW

뉴욕 도심에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이 놓였다. '퍼블릭 아트 펀드'는 새롭고 거대한 프로젝트로 뉴욕 시민에게 예술적 감성을 불어넣으며 공공 미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록펠러 센터 채널 가든의 입구에 설치한 엘름그렌과 드락세트의 공공 조각품, ‘반 고흐의 귀’
Courtesy of the Artists and the K11 Art Foundation, Galerie Perrotin, Galleria Massimo De Carlo, and Victoria Miro Gallery Photo by Jason Wyche, Courtesy of Public Art Fund, NY

‘반 고흐의 귀’를 설치한 후, 작품 앞에 선 엘름그렌과 드락세트 작가

맨해튼 5번가를 따라 록펠러 센터를 지나던 행인들은 낯선 구조물 하나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땅콩 껍질을 갈라놓은 듯 부드러운 곡선 형태에 내부는 파랗게 도색한 거대한 물체. 기념비처럼 우뚝 솟은 이 구조물을 찬찬히 뜯어보면 다이빙 보드와 입수용 사다리를 갖춘, 영락없는 수영장이다. 캘리포니아 어느 주택 뒤뜰에 있을 법한 수영장이 도심 한가운데에 나타난 이유는 뭘까? 지난여름 록펠러 센터 채널 가든(Channel Gardens) 입구에 설치한 이 구조물의 정체는 엘름그렌과 드락세트(Elmgreen & Dragset)의 공공 조각품 ‘반 고흐의 귀(Van Gogh’s Ear)’였다. 귀를 닮은 이 작품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을 연상시키지만 실제 수영장을 가져오는 대신 조각품이 수영장으로 보이도록 변주한 것이다. 이렇게 뜻밖의 장소에 예상치 못한 작품을 설치하면서 맨해튼 5번가는 새로운 경험의 장이 됐다. 이 작품을 바라보며 반 고흐라는 천재 예술가의 삶을 반추하건, 한가로이 수영을 즐기는 여름휴가를 꿈꾸건 그건 각자의 선택. 사람들은 낯선 장면에 잠시 혼란스러워하다 슬며시 웃음 짓고는 사진을 찍으며 이 신선한 조우를 즐겼다.예술을 통해 건조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낯선 공간, 다른 사고의 영역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은 뉴욕 공공 미술의 매력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현대미술계의 주목받는 작가들이 공간을 절묘하게 해석하고 다양한 담론을 제시하는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 뉴욕에서 이러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기관 중 특히 잘 알려진 것이 바로 퍼블릭 아트 펀드(Public Art Fund)다. ‘반 고흐의 귀’ 또한 이들이 기획한 프로젝트. 퍼블릭 아트 펀드는 1977년 도리스 프리드먼(Doris C. Freedman)이 설립한 비영리 기관으로 정부 기관의 보조와 기업, 개인의 후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브루클린, 맨해튼, 스테이트 아일랜드, 퀸스, 브롱스 등 뉴욕 시 5개 자치구 전역에서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유명 작가를 선정해 전시를 기획하고 신작을 의뢰하기도 한다. 전시마다 책임 큐레이터가 있고, 전시 기간은 보통 3개월에서 5개월 정도. 신진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의 영역(Public Realm)’이라는 공모도 있고, 작가와 청중이 함께 대화를 나누는 ‘퍼블릭 아트 펀드 토크(Public Art Fund Talks)’도 운영한다. 퍼블릭 아트 펀드가 다음에는 또 어떤 작품을 선보일까 하는 것은 많은 뉴요커가 언제나 궁금해하는 소식. 발표하는 작품마다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만큼 전시 작품 또한 매우 신중하게 선정한다. 그렇다면 이 공공 미술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어떤 작품을 선보였을까?

뉴욕 퍼블릭 아트 펀드의 기획으로 2014년 제프 쿤스가 선보인 ‘스플릿-로커’
Courtesy of Gagosian Gallery and Public Art Fund Photo by Tom Powel Imaging ⓒ Jeff Koons

먼저 2008년 덴마크 출신 설치미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이 선보인 ‘뉴욕 시의 폭포(New York City Waterfall)’는 여러 면에서 화제가 된 작품이다. 영국 테이트 모던에 거대한 인공 태양을 설치한 작가는 뉴욕에서 인공 폭포에 도전했다. 이스트 강을 따라 맨해튼, 브루클린, 거버너스 아일랜드에 27m에서 37m 높이의 비계를 설치하고 펌프를 이용해 강물을 빨아들였다가 다시 뿜어내 웅장한 폭포의 위용을 보여주도록 설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공학자와 과학자, 환경 전문가를 포함한 200여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뉴욕 시의 공공 미술 중에서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Christo and Jeanne-Claude)가 센트럴 파크에 설치한 ‘게이트(Gate)’에 이어 두 번째로 예산 규모가 컸으며, 환경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총 2년의 사전 준비 기간을 거쳤다. 작가는 도시의 강을 그저 덤덤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통해 한 번쯤 주변 환경을 돌아보는 계기를 선물하고 싶었다고 한다. 작품 설치 후에는 미국 전역에서 방문객이 찾아왔고, 이들을 상대로 자전거 투어와 보트 투어를 운영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뉴욕 퍼블릭 아트 펀드의 기획 중 대중적 인기를 누린 것으로 제프 쿤스의 작품도 빼놓을 수 없다. 작가는 2000년에 설치한 대형 작품 ‘퍼피(Puppy)’에 이어 2014년 다시 한 번 ‘스플릿-로커(Split-Rocker)’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록펠러 센터 앞에 설치한 이 작품은 식물의 외형을 장식적 형태로 다듬는 토피어리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꽃 화분 5만 개로 완성해 높이가 11m에 달했다. 제프 쿤스가 아들의 장난감 당나귀와 공룡에서 영감을 얻어 형태를 완성했는데, 대량생산품 특유의 얄팍함을 고급 예술로 변형하는 그의 장기가 여지없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현재 퍼블릭 아트 펀드는 영국 작가 마틴 크리드(Martin Creed)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매우 함축적이면서도 간결한 작품을 선보이는 개념미술가로 2001년 터너상을 수상했다. 그가 다루는 매체는 조각, 설치, 네온, 사운드, 필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 ‘이해(Understanding)’는 매우 단순한 방식으로 예술과 삶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는 그의 작가적 면모를 잘 드러낸다. 그는 ‘Understanding’ 글자를 총 15m 길이의 붉은 네온사인으로 제작해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Brooklyn Bridge Park) 부두 6(Pier 6)에 설치했다. 글자는 작가가 설정한 대로 속도를 달리하며 360도 회전한다. 예전에 마틴 크리드는 딸(양녀)과 함께 둘만의 암호로 평화, 사랑, 이해를 의미하는 수신호를 만든 적이 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가족으로 만나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약속이었다. 작가는 그 가운데 ‘이해’라는 단어를 선택해 이렇게 다시 예술 작품으로 완성했다. 이 시적이고 명징한 메시지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넘어 작품을 접하는 대중과 공유하기 위한 암호가 된다. 반목과 폭력에 관한 뉴스가 연일 들려오는 요즘 더욱 반가운 작품이다. 퍼블릭 아트 펀드는 마틴 크리드의 작품을 10월 23일까지 전시하니, 올가을 뉴욕을 방문하게 된다면 한 번쯤 찾아가봐도 좋겠다.

영국 작가 마틴 크리드가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에 설치한 작품 ‘이해’
Courtesy of the Artist, Gavin Brown’s Enterprise New York / Rome, and Hauser & Wirth Photo by Jason Wyche, Courtesy of Public Art Fund, NY ⓒ Martin Creed 2016

에디터 | 안미영 (myahn@noblesse.com)
글 | 황진영(Jin Coleman Art Advisory 대표)